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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유언
12/14/20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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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유언

 


홍옥순


 


30년 전 겨울 집으로 차압 우편이 날아왔다. 알고 보니 남편 급여가 압류된 것이었다.
남편은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보증을 서 줬다. 그런데 사업이 망하자 친구가 도망가 버렸다.
우린 3천만 원의 빚만 떠안고 말았다.
당시 큰딸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었고 그 밑으로 두 살 터울의 아이가 셋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캄캄했다. 막막한 현실에 눈물도 나오지 안았다.

우리는 집을 팔아 빚을 갚고 낮선 곳으로 이사와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공부를 잘했던
큰딸은 집안에 보탬이 되겠다고 야간 고등학교를 지원했다. 둘째 시누이는 이사짐을 싣는
내게 오십만 원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 돈으로 쌀과 연탄을 사서 한동안 살았다.
남편은 공장에서 굳은 일을 했고 나는 파출부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행방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모든 것을 제쳐 두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곳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달동네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허름한 집이 나왔고
친구 부부가 일 나간 사이, 고만고만한 세 아이가 라면 하나를 끓여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
있었다. 빚지고 도망갔다는 말에는 눈물도 안나왔는데 그 아이들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쏱아졌다. ‘그래, 큰딸이 야간 고등학교에 갔어도, 풍족하게 못 살아도 우린 굶진 않잖아.’

우리 부부는 그 집을 나와 근처 가게에서 라면 두 상자를 샀다. 쪽지에 “ㅇㅇ 씨, 우린
우린 원망 안 해요. 언젠가 웃으면서 만나요.”라고 적어 놓고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네 자녀 모두 출가 시키고 손주도 보며 친구를 까맣게 있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장한 청년이 집으로 찾아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넙죽 절하더니 30년 전 사주신
라면 먹고 이렇게 자랐다면서 자신은 ㅇㅇ씨의 장남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3년 전 아버지가 꼭 빚을 갚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했다.
기 전에 갚아야 했는데 미안해서 면목이 없다.“라며 아버지는 편치 못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고 했다.

청년은 3천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망설이는데 “아버지가 이제 빚 갚고 편히
갈 수 있게 받아 주세요.”라며 청년이 봉투를 놓고 서둘러 떠났다.

먹먹한 마음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ㅇㅇ씨, 나는 그날 이미 빚을 있었는데, 30년을 그 빚 때문에
힘들어했군요. 웃으면서 만나자는 약속, 우리 하늘에서 지켜요.’ 이제 칠순이 되는 남편과 먼저 간
친구의 넋을 기리며 언젠가 만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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