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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장미숙
07/14/20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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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숙

 

  빵이 가득 든 봉지가 매장 한편에 놓여 있는 걸 보니, 오늘 수녀님이 다녀가실 모양이다. 빵은 모양에 상관없이 겹쳐진 채 봉지에 들어 있다. 조명이 환한 진열대에 모셔졌던 빵들이 하루 지난 지금은 잉여의 빵으로 전락해 있다. 어떤 건 모양까지 찌그러졌다.

 그렇다고 이것들이 버려지는 건 아니다. 이미 깐깐한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진가는 사라졌지만, 이것들이 갈 곳은 따로 있다. 이것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것들을 거두어가는 손길에 의해 이것들은 다시 누군가의 시선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간절함이 될 수도 있다.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빵에 나는 무감각하다. 모든 빵을 내 손으로 포장하여 진열대에 올리지만, 빵을 입에 가져가는 일은 거의 없다. 아침밥을 먹은 터라 배가 고플 일도 없거니와, 빵이 몸에 좋지 않다는 믿음 때문이다.

  매일 아침, 갓 구워진 빵은 손님들의 식욕을 부추긴다.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허기진 속을 채우기 위해 빵집을 찾는다. 그들에게 진한 빵 냄새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빵을 살피며 눈을 반짝이는 손님의 모습에서 빵이 가진 힘을 느낀다. 커피 한잔에 허겁지겁 빵을 먹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에게 빵은 절실함이다.

 빵은 갓 구워져 나온 것과, 어제 팔다 남은 것으로 구별되어 가격이 정해진다. 새로운 빵은 깔끔하게 포장하여 중앙 진열대에 올리고, 하루 지난 빵은 할인딱지가 붙은 진열대에 올린다. 이것들의 차이는 손님의 태도도 달라지게 한다. 지난 빵은 거들떠보지 않는 손님도 있고, 할인 매대만 찾는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도 있다. 할인진열대의 빵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거둔다. 이제 손님들에게 덤으로 주거나, 아르바이트생들의 간식으로 준다. 그리고 수녀님이 가져간다.

  손님이 구별하지 못하는 빵의 상태가 내게는 확연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내게도 배부른 간사함이 찾아들었다. 하루 지난 빵은 이미 빵으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값어치가 사라진 그것들은 음식물쓰레기통에 던져지기도 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이 베먹다 무시로 남겨서다. 이런 빵에 관심을 갖는 손님도 더러 있다. 덤을 바라는 무언의 눈빛을 나는 곧잘 읽는다.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고, 당연한 듯 받는 손님도 있다. 그 빵의 쓰임을 나는 모른다. 누군가에게 다시 건네질지, 아니면 집안에 굴러다닐지, 혹은 양식으로 쓰일지.

  양식이 되는 게 확실한 건, 수녀님이 가져가는 빵이다. 음식이 넘쳐나는 세상이라지만 그건 보편적 진실은 아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먹을 걸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빵이 양식이 될 때, 빵의 가치는 영양과 품질보다 욕구의 충족이 먼저다. 사 먹을 수 없으면 욕구는 더 간절해진다. 누군가가 나눠주는 건 갈급함을 부추긴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시민들은 빵을 달라고 외쳤다. 그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있었는데 빵이 없으면 비스킷을 먹으면 되지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와전일 수도 있겠지만, 경험하지 못한 자의 몰이해를 대변하는 말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프랑스는 기근이 들어 빵 값이 폭등하자, 시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에 아랑곳없이 세금은 치솟고 빵을 살 수 없게 된 시민들은 혁명군으로 변했다. 빵이 가진 권력이 대단한 것이었음을 알게 한다.

 나도 몇 년 전, 빵의 권력 앞에 초라해진 적이 있다. 가정적인 문제로 민간쉼터에 몸을 의탁했는데 삶의 바닥과 마주한 경험이다. 그곳은 의지할 곳 없는 여성과 아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이었다. 갖가지의 폭력을 피해 맨몸으로 집을 나온 사람들에게 방과 먹을 것을 제공했다. 수녀님이 운영하는 그곳에서 나는 중학생이던 아이와 함께 삼 개월을 지냈다. 철문을 닫으면 암흑뿐인 지하방에는 간단한 침구류와 기본적인 생활도구가 있었다. 쌀과 김치는 있었지만, 부식은 따로 해결해야 했다.

 외부와 단절된 곳이라 많은 것이 제한되었다. 겨우 기본적인 의식주만으로 근근이 버티는 게 전부였다. 한참 크는 아이는 늘 배 고파했으나 외면해야 했을 만큼 빈곤했다. 모두가 그랬다. 그곳에 몸을 의지한 엄마들에게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한둘은 달려 있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먹을 걸 사줄 수 없다보니, 그나마 제공에 제한이 없던 쌀이나 밀가루, 김치로 간식을 만들었다. 누룽지와 김치부침개에 아이들은 질려 있었다.

 특별한 게 필요했던 아이들이 기다리는 건, 빵이었다. 가끔씩 아이들에게 빵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빵은 수녀님의 절대 권력이었다. 수녀님은 공부를 한다거나, 말을 잘 듣는 아이들에게 빵을 줬다. 중학생이던 아이는 수녀님에게 빵을 받으면 삽시간에 먹어치우고는 입맛을 다셨다.

 그 빵이 어떤 빵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저 내게는 사먹을 수 없는 비싸고 고급스런 빵으로 생각되었다.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냉정했던 수녀님은 아이들을 편애했다. 우리아이는 고분고분하고 얌전한 아이는 아이어서 수녀님에게 혼이 많이 났다. 내 마음은 조급했고, 아이가 순둥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곤 했다.

 어느 날, 우연히 1층 수녀님의 냉장고 안을 보게 되었다. 냉장고 안에는 빵이 가득했다. 케이크도 있었다. 어디서 오는 빵일까 궁금했다. 수녀님이 직접 산 건 아닐 터였다. 그곳은 모든 물품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옷이며 신발, 가방, 가전제품 심지어는 컵과 수저까지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필요가 없어진 물건들이 그곳으로 들어오는 셈이었다. 수녀님은 지원받은 물건을 엄마들에게 나눠줬다.

 삼 개월이란 한정된 기한이 있어서 수녀님은 엄마들을 내보내고 다시 맞곤 했다. 상처받고 약해진 엄마들을 수없이 봐온 탓인지 수녀님은 무표정했다. 때론 무섭고 두려웠다. 아이는 한없이 먹을 걸 탐했고, 냉장고에 가득했던 빵을 본 날, 나는 한없이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나는 빵을 달라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아들은 이제 군인이 되었다. 그리고 빵을 탐하지도 않는다. 나는 아들이 먹고 싶어 하는 걸 별 망설임 없이 사주는 걸로 사랑을 표현한다. 나는 빵집에서 일을 한지 수년이 지났고, 팔다 남은 빵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빵이다. 오히려 내가 선심 쓰듯 누군가에게 건네기도 하는 빵이다. 빵은 매일 쏟아져 나오고, 나는 그 빵들을 기계처럼 포장하고 진열한다. 그리고 손님에게 선택받지 못한 빵은 또 다른 쓰임을 위해 모아진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도 내가 한때 머물렀던 그곳에는 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빵을 먹이고픈 마음이 간절한 엄마들의 떨리는 눈빛을 생각한다. 그리고 빵은 따뜻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삼일에 한 번씩 빵을 가져가는 수녀님이, 겉모습처럼 따뜻한 분이기를 나는 또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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