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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글쓰기 운명은 어떻게 될까?
05/06/2018 20:30
조회  331   |  추천   2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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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글쓰기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강원국

 

머지않아 인공지능(AI)이 글 쓰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인류의 글쓰기는 종언을 고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지치지 않는다.
밤낮없이 쓸 수 있다.
모든 걸 안다.
좌절하지도 않는다.
평가에 무감각하다.
모든 표현이 가능하다.
설득은 기본이고 감동까지 이끌어낸다.
인간의 마음이 어느 코드에서 감응하는지 완벽하게 읽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빅데이터가 가져온 변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은 개와 고양이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급격한 발전이 이뤄졌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수집한 어머 어마한 데이터 양 덕분이다.
페이스북에만 하루 3억 개 이상의 글이 올라온다고 한다.
트위터에도 하루 4억 건 넘게 포스팅 된다.
페이스북의 ‘좋아요’ 패턴만 분석해도 어떤 글이 인정받는지, 사람들은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지역별, 성별, 연령별, 관계별로 전수조사가 가능해졌다.
구글의 검색 기록을 분석하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물론, 생각의 분석과 함께 향후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앞으로 뇌를 연구하는 사람, 컴퓨터 전문가, 글 쓰는 사람들이 모여 빅데이터를 놓고 머리를 맞대면 어떤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매뉴얼로 만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글 쓰는 원리를 밝혀내고 글쓰기 모형을  창안하여, 모든 글에 적용하고, 누구나 활용 가능한 글쓰기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싱귤래리티와 글쓰기
‘싱귤래리티’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알파고 이후에 부쩍 많이 회자되는 개념이다.
우리말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라고 번역된다.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역사적 분기점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컴퓨터 구조를 처음 생각해낸 천재 수학자 폰 노이만이 1953년 처음 언급한 이후, 2005년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의 도래 시점을 2045년이라고 예언했다.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글을 잘 쓰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불과 30년도 채 남지 않은 미래다.

인간 글쓰기 지위 추락
그 때가 되면 인간의 글쓰기는 상당 부분 경쟁력을 잃게 된다.
글쓰기 직업 가운데 가장 먼저 위협 받는 것은 기자다.
기사는 육하원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쓰면 된다.
이미 몇몇 해외 언론에서는 스포츠 기사 같이 틀에 박힌 내용은 컴퓨터에게 맡기고 있다고 한다. 기자 다음은 변호사다.
변론문은 정보를 수집해 단순논리를 펴면 된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가장 잘할 수 있다. 교수와 평론가의 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논문이나 비평은 시각과 관점, 해석이 들어가야 하니 좀 늦게까지 살아남겠지만 말이다. 회사원, 공무원은 비교적 안심해도 좋을 듯싶다.
조직에서 쓰는 글은 배경과 맥락을 알아야 쓸 수 있는데, 이건 인공지능에게도 어렵다. 소설가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은 인공지능이 넘보기 더 어려운 영역이다.
끝으로, 시인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도 불멸이다.
시인의 예민한 감성과 고도의 비유는 인공지능이 흉내 내기 힘들 것이다.

기계와 인간을 구분하는 보루
사람에게는 컴퓨터에 없는 능력이 있다.
전체를 일별하는 능력이다.
한눈에 파악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당신 아내가 세계에서 가장 예쁩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즉시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컴퓨터는 전 세계 여성 얼굴을 모두 입력해서 자신이 정한 미적 기준에 따라 순서를 세워본 후에야 가장 예쁘지 않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척 보면 아는 능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적응무의식’이라고 하는 이 능력이 컴퓨터는 없다.
사람에게 어려운 문제는 컴퓨터에는 쉽고, 사람에게 쉬운 문제는 컴퓨터에는 어렵다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다.
인간이 직관을 타고났다는 것은 희망이다.
아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보만 아니라면, 누구나 직관의 힘으로 로봇보다 글을 잘 쓸 수 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인간에게 가장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은 직관이다.’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로봇이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갖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심쿵’하는 날이 쉽게 올 것 같지도 않다.
육체적·지적 능력에 비해 감성은 굳이 인공지능을 통해 구현할 필요가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성은 인간만의 경쟁력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역설적으로, 느낌이 없는 인간은 기계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빅데이터는 인간도 공유할 수 있다.
정보를 분석하고 편집하는 역량만 있다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글쓰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계도 하는 일을 인간이 못할 리 만무하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 글쓰기는 이성과 논리보다는 직관과 감성이 풍부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정보의 분석과 취사선택 능력도 중요해진다.

인공지능 시대 인류는 뭘 하지?
글쓰기 노동에서 상당 부분 해방된 인간은 무엇을 할까.
노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될 것이다.
뭐 하며 놀지?
원시시대를 떠올리면 답이 있다.
원시인들은 동굴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글자가 없어 그림을 그렸다.

다시 그런 날이 오고 있다.
글을 쓰며 놀아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 오히려 글 쓸 일이 더 많아질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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