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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밥이 될 때도 있다
03/18/20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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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밥이 될 때도 있다



교회의 홈페이지에 댓글을 열심히 달았더니 '댓글왕' 상을 받았다. 웹사이트를 활성화 하려는 사이버 전도팀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한 것인데 뜻밖의 상을 받은 것이다. 타겟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사이버 시대가 도래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구역 예배나 소그룹 모임을 알릴 수 있어 교회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참석여부가 쉽게 파악이 되고 모임 장소와 지도까지 첨부 가능하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원래 살갑지 않은 성격이기에 댓글에 무심하거나 인색한 편이었다. 리액션이 너무 없다고 단체 카톡방에선 쫓겨난 적도 있다. 선배언니가 초대해 놓고는, 문인인 네 눈치를 보느라 다들 가벼운 농담을 꺼려해서 화기애애했던 방 분위기가 다운이 되었다나. 지나친 것보단 묵묵부답이 나을 듯해서 눈팅만 했더니 성의 없다며 퇴출감이란다.

그 일이 있은 후 무응답이 교만해 보이기도 하겠다 싶어, 나도 가끔은 카톡 친구에게 정다운 인사를 해야지 마음 먹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매월 첫날 한 편의 시를 선정해 보내는 것이다. 되도록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순전한 내 취향의 시이다. 받고 좋아할 만한 친구들에게만 보내서 그러는지 몰라도 반응이 썩 좋다.

'내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해를 새해로 맞을 수 없다'는 구상 시인의 '새해'라는 시 구절이 와 닿았다는 이가 많았다. '모든 것이 순탄하리라고 믿기로 한다'는 이채 시인의 2월 시 첫 구절에 왈칵 눈물이 났다는 소설가도 계셨다. '수국색 공기가 술렁거리고'라는 박목월의 3월의 시에선 그 표현이 너무 좋아 어릴 적 엄마가 키우던 화단의 수국이 생각나고 엄마생각을 했다는 교우도 있었다.

짧은 시 한편이 마음을 정화시키고 추억을 부르고 강퍅한 마음을 유순하게 만드는 걸 보았다. 받아본 이들은 매월 보내라고 주문한다. 손가락 놀림 한 번에 기쁨을 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수고야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겠다.

무명의 시인이었던 친정아버지는 가난을 유산으로 주셨다. 4명의 자식들을 공부시키려 시를 포기하고 신문기자를 하셨던 아버지. 한 권의 시집을 내시고 '과작 시인'으로 불렸던 아버지. 엄마는 밥이 안 나오는 문학과 멀리하라며 자식들을 세뇌시켰다. 엄마의 원대로 가정대학을 나온 나와 전기공학을 전공한 남동생은 생업은 따로 두고 수필로 등단을 하였다. DNA는 전공과 상관없이 불쑥 튀어나온다.

지난 토요일 소설가 L선생님과 만났다. 멀리 사시는 분이 일부러 LA코리아타운까지 나오셔서 은혜를 베푸신다니 반갑고 황송했다.

이유인즉 매월 보내주는 시에 감동해서 밥을 사신다나? 맛있는 점심을 사주시려 핑계를 댄 것이겠지만 아무튼 시가 만들어준 맛있는 밥상을 받았다. 종종 이런 시간을 갖자 하신다.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어라! 시가 밥이 되었네?' 혼잣말을 하고 웃었다. 가끔 엄마 말이 틀릴 때도 있다.
 

 

기사입력 2016/03/16 19:48
미주 중앙일보[이 아침에] 수필가 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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