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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에서 만난 두 모습
12/28/201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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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어느 토요일 여고 동창회의 송년회가 있었다. 송년파티엔 좀 처럼 참석하지 않고 살았다. 이유인 즉 송년파티의 필수품인 반짝이는 파티 의상도, 두를 모피도 없기 때문이다. 있다 해도 내가 반짝이를 입고 돌아다니면 움직이는 자개 장농 같을 것이고, 모피를 두르면 캘리포니아 주의 상징 동물 비슷할테니 일찍이 삼가기로 결정했다. 거기다 비싼 당일 회비에, 밀린 동창회비도 내야하는 부담도 작용했다.

이번엔 명예로운 졸업생에게 주는 '영매상' 받은 소감을 말해야 한다고 했다. 프로그램에 이미 넣었다니 자의는 약간, 타의가 많이 개입한 출석을 했다(책 출간을 기려 개교 100주년 기념식 때 모교에서 주는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받았다). --->그 때의 소감문 http://blog.koreadaily.com/joannelee/35442

송년회엔 우리 동기는 단 4명 참석해서 역시 적은 인원이 참석한 선배들 테이블에 합석했다. 공교롭게도 한 주 전 도서관후원회 주최의 송년파티에 와서, 판을 깬 '그녀'와 동기인 선배들이다. 불청객의 횡설수설과 이상 행동으로 도서관 직원이 경찰까지 부른 희한한 사건이 있었다. 선배들을 통해 '그녀'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었다.

KS 마크에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녀'는 한국에서 대학 강의를 하다가 이곳에 왔다고 한다. 엄마와 살다가 몇 년전 돌봐주던 어머니가 타계하자 증세가 더 심해졌단다. 지금은 동창들도 혈족도 변한 그녀를 두려워해 혼자 떠돈다고 한다.

10년 전 봤던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인 노벨상 수상자 존 내쉬가 생각났다. 천재성과 정신분열의 광기를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녀도 영화 속 존 내쉬가 하던 대사인 '정보부' '미행' '도청' 이런 단어를 주로 쓴다. 오래 전 도서관에서 만났을 때, 자신의 IP가 늘 추적 당해서 도서관 컴퓨터를 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만 해도 얼굴도 곱고 깨끗했다. 이번에 본 그녀는 노숙자라 불러도 실례가 안 될 정도의 행색이어서 몰라봤다. 송년회에 선후배가 모여서 여흥을 하며 경품을 타고 웃고 즐기는데, 그녀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홀로 쌓은 벽에 갇혀 사는 선배 생각에 한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무슨 굴곡이 똑똑한 그녀의 삶을 흔들었는지 안타깝기만하다.

"천재가 아니길 천만 다행이다." 남의 불행에 비추어 이런 생각밖에 못하는 나는 부족한 인물이다. 모자란 후배여도 그 선배가 어서 동굴에서 나와 엽렵한 K여고 동문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낮은 자를 위해 오신 성탄의 그 분이 내 병을 고치듯 '그녀'에게도 치유의 손길을 베푸시길 기도한다.

평범한 삶이 행복이란 걸 우린 자주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아아, 이 모든 것이 차라리 영화 속 이야기라면 좋겠다.

[이 아침에] 평범한 삶이 행복이다 
 이정아 수필가/LA중앙일보
 기사입력 2015/12/2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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