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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보다 잿밥
06/04/20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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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잿밥‘만 생각했던 처녀 선생님
                                                                       이정아/수필가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가정선생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첫 부임지는 경기도 평택, 서울에는 가정선생의 자리가 나질 않아 차선책으로 경기도에 있는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대학공부까지만 부모 담당이고 결혼은 스스로 벌어 가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세뇌를 받은 탓에 취직이 급했다. 교육자로서의 사명감 그런 마음가짐도 없는 채로, 혼수준비를 위한 취업이었다. 

통근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면 수원, 평택, 대전에만 서는 익스프레스 열차를 타고 다녔다. 대전의 카이스트 연구원들과 늘 같은 시간에 타게 되어서 통근 열차안에서의 미팅을 더 기다리는 철부지 선생이었다. 실제로 그 안에서 연분이 싹터 결혼에 골인한 동료교사도 있다. 

학생단속을 핑계로 합법적으로 공짜영화를 볼 수 있어서, 그게 큰 권력인 양 극장을 수시로 드나들며 그 당시의 모든 영화를 섭렵하였다. 분필로 찌든 목에 삼겹살로 기름칠을 해주어야 한다며 학교앞 부대찌개집에서의 회식을 은근 기다리곤 했다. 염불보다 잿밥에 공을 들인 철없던 짓이 돌아보니 많이 부끄럽다. 

선생 7년차가 되어 잘 적응이 되고 1급 정교사로 자격이 업그레이드 되었는데, 아쉽게도 늦게 공부를 결심한 남편을 따라 미국엘 오는 바람에 추억 속의 한 장면이 되었다. 

평택에는 좋은 쌀이 나오는 경기평야도 있지만 거대한 미군부대인 캠프 험프리가 있어서 학부형 중에는 미군부대의 군속들이 많았다. 부대에서 나오는 물건을 파는 상점도 많아서 그 동네 전체에 미제 물건이 흔했다. 반 농업에 반 상업 지역이었다. 햅쌀이나 참기름을 선물하는 학부형이 있는 반면, 레브론 샴푸니 다이알 비누 일명 귀지과자인 시리얼 등을 담임선생에게 주는 학부형도 있는 참 재미있는 동네였다. 

그 속에서 나는 엄마의 원대로 착실히 혼수품을 장만하였다. 당시 유행이던 코닝 그릇이나 리베이 컵세트 등을 차곡차곡 사 모았다. 그런 물건들이 다시 원산지인 미국으로 되돌아 올 줄 누가 알았으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깨지지도 않는 그 때의 코닝 그릇이 아직도 내집 부엌에 있으니 말이다. 코닝 그릇의 역이민인 셈인가? 

그때 환장하게(?) 좋아하던 미제 물건은 이곳에 와 보니 그저 그런 서민용품들 이어서 놀랐다. 이젠 미제 물건에 열광하는 세대는 지나갔고 명품이어야 만족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단다. 해외직구라나 뭐라나 하며 현지인들보다 더 싸게 득템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참으로 한국이 잘사는 나라가 되긴 되었나 보다. 

가끔 한국 뉴스에 평택이 등장한다. 미군기지 이전이니, 천안함 폭침이니 삼성전자의 대단위 공장건설 등으로 조명이 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럴 때면 내가 가르친 예전의 제자들이 그 중심에서 활동할 것이고, 그 언저리에 살고 있을것 같아서 유심히 보게된다. 예전엔 생각없는 생계형 선생이었을 망정, 나와 인연 맺었던 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30년 전의 평택 시절 제자 우진숙이 카톡을 보냈다. 한참을 잊고 지내던 '스승의 날' 이란다. 스승이란 단어조차 민망하다. 사진을 보니 세월이 보인다. "이제 우리 함께 늙어가고 있구나."


[이 아침에]/LA중앙일보 06.03.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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