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nnelee
joanne(joannelee)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2.01.2008

전체     140352
오늘방문     2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3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편견의 날들 속에서
05/06/2015 08:18
조회  1447   |  추천   9   |  스크랩   0
IP 45.xx.xx.88


                                               


[이 아침에] 편견의 날들 속에서
                                                수필가/이정아

 

수영을 하러 간 스포츠센터에서 키가 아주 큰 청년을 보았다. 농구공을 든 흑인 청년이었는데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공으로 갖가지 묘기를 보이니 주위 사람들의 환호가 대단하다. 공을 드리블하며 슛을 하는 포즈로 뛰어오르는데 청년의 등이 보였다. 그의 등엔 "Don't Shoot" 이라는 글씨가 써 있다. 두 손을 치켜든 항복의 실루엣이 그려진 아래의 그 글씨가 섬뜩했다.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가 강렬하기도 했거니와 그 의미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쏘지 말라는 직역의 뜻보단, 경찰이 무고한 흑인에게 종종 이렇게 한다는 경고이자 동의를 구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관광지의 풍광이 찍힌 티셔츠는 관광도시인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티셔츠는 관광지의 엽서 역할도 하지만 이런 공공의 이슈가 되는 메시지보드의 역할도 한다. "쏘지 마세요" 전쟁터가 아닌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에서 보는 이런 무서운 문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멜팅팟인 이곳에 와서 산 지 30년이 되었어도 나는 아직 한국말을 하며 한국음식을 먹는다. 다른 나라 말을 여러 가지 들어보긴 해도 사용은 못하고, 다른 나라의 음식은 다채롭게 먹긴 하나 그 음식을 먹는 나라 사람들을 이해하진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라며 나만을 위해 분주히 살았기에.

아프리칸 아메리칸, 라틴 아메리칸, 코리안 아메리칸들이 섞여 살아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오해는 편견을 낳으며 적을 만들게 된다. 대개 흑인은 난폭하다거나, 라티노는 손버릇이 나쁘다거나 등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말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타민족이 한국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하는 중고서적 세일에 봉사자로 참여했었다. 내 옆엔 도서관에서 나온 타인종 여성 수퍼바이저가 앉아서 북세일 광경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계산대를 유심히 보던 그녀가 줄 서 있는 두 명의 한국인을 보더니 "좀 이상하지?" 하며 동의를 구한다. 두 사람은 진열용 도서관 박스를 손에 들고 있었다. 거기에다 흰 니트를 덮었으니 더 의문스럽다나?

 

결국은 무거운 몸을 일으키더니 그 쪽을 향한다. 가서 보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고른 책이 많아 도서관 박스를 잠시 썼고 계산 후에 리턴한다고 했다며 '노프러블럼'이란다. 흰색 니트는 본인이 들고 온 숄인데 추울 때 둘렀다가 거추장스러워 박스 위에 올린 거라며 그 또한 '노프러블럼' 이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국인을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입력해 두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누명이 벗겨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잠시 후 다른 자원봉사자가 가져온 박스를 보고 기함했다. DVD와 CD의 빈 통이 가득한 거다. 우린 분명 알맹이가 담긴 것을 기증받았고 그걸 1불씩에 판다고 가격표까지 붙였는데, 1불이 아까워 슬쩍 가져간 양심불량자가 이렇게나 많다는 증거가 아닌가? 손님의 90%가 한국인이어서 남 탓을 할 일도 못되었다. 아까 그 수퍼바이저가 자리에 없길 망정이지 부끄러웠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때 정직할 수 있어야 선진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아도 하늘은 보고 있다. 서로를 용납하고 배려하는 세상에 살려면 우선 정직해야한다. 편견과 오해가 만드는 또 다른 전쟁인 폭동을 피하려면, 어찌 살아야 할까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 5월 6일 2015년


이 블로그의 인기글

편견의 날들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