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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꽃 동네서 날아온 호박죽
03/20/20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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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파피꽃 동네서 날아온 호박죽

 

                                                        수필가 이정아

피터 엄마가 카톡을 보냈다. "새알심 넣을까요? 팥도 넣을까요?" "네, 둘 다 넣어주세요."

맞춤 음식 주문하는 것도 아닌데 대답을 했다. 8년 만에 만난 예전의 교인이 내 손과 발이 많이 부은 것을 보더니 호박죽을 쑤어 보내 준다고 했다. 기왕이면 내 기호에 맞게 만들어 보낸다며 일일이 물어보는 것이다. 같은 교회에 출석하다가 교회가 분란이 일자 문 집사님댁은 멀리 랭캐스터로 이사를 갔다. 우리 집도 다른 교회로 옮겼다. 교회가 달라지니 만날 기회가 없었다.

노방전도와 무숙자 선교에 앞장서던 그 댁을 따라다니며 도왔었다. 아이들끼리도 친해서 두 가족이 열정적으로 '헤수스 떼 아마(Jesus te ama)'를 외치며 다운타운을 누비던 날이 있었다. 옆의 친구가 신실하면 그 신앙의 좋은 본을 받을 수 있어서, 하루하루가 즐겁고 뿌듯했다. 마치 사도 바울 인듯 살던 그 시절의 착각이 그립다.

두 집 다 바삐 살다가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생각이 났다. 작년 연말에 한인타운에서 상봉을 하고 지난 설엔 그 집에 가서 신년맞이를 했다. 마치 시골 사는 큰집에 온 것 같이 푸근했다. 넓은 터에 농사를 지어, 식재료를 자급자족한다며 두 내외뿐인 집에 냉장고가 다섯 대나 있었다. 우리 집은 요즘 두 개의 냉장고를 하나로 줄여서 살고 있기에, 그 댁의 냉장고방을 보니 놀라웠다. 배우 집에 옷방이 따로 있듯 냉장고 방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각종 건어물부터 다양한 젓갈에 장류, 온갖 나물, 갖가지 생선 등, 한국에서 공수했다는 먹거리가 가득했다. 지진이 나도 전쟁이 나도 1년은 끄떡없이 버틸 수 있겠다. 한인 타운과 멀리 살기에 쟁여놓고 산다며 식재료를 나누어 준다기에 극구 사양했다. 공연한 욕심을 내어 싸오면 먹지도 않고 굴리다가 버리기 일쑤여서 어딜 가든 먹을 걸 싸 오는 건 사양한다. 당일에 충분히 대접 받은 것으로 족하다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주위에 보면 음식 욕심이 유난한 사람들이 있다. 외양으로 보면 전혀 먹을 걸 밝히지 않게 생긴 사람이, 호텔의 식탁보까지 보자기로 사용하며 행사 음식을 싸간다. 자주 목격하니 이젠 놀랍지도 않다. 연세가 많아서 분명 소화도 어려울 터인데, 평상시의 우아하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음식 앞에선 눈에서 레이저를 뿜는다. 노추나 노욕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다.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 반면교사로 삼는다.

두 시간의 긴 여행을 한 호박죽이 배달되었다. 팥을 따로 삶고 새알심도 따로 정성껏 담고, 보온가방에 담긴 죽이 아직 따스하다. 텃밭에서 딴 근대도 들깨로 무쳐 보냈고, 애호박도 찌개용으로 일일이 썰고, 석류는 알알이 따서 속만 보냈다. 잘생긴 무도 손질되어 들어있다. 솜씨 좋게 구운 호박빵도 들어있다.

이 양반이 오래 못 만났어도 시시한 내 살림솜씨를 알고 있구나.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카톡이 왔다. "피터 아빠 도착했지요? 절대 답례 보내지 마세요. 드시고 건강해지시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 뭐라도 챙겨 보내려 주섬 주섬 하던 손이 부끄럽다. 그녀의 마음을 물질로 갚으려는 내가 너무 싸구려 같아서.

파피꽃이 피면 꽃 보러 왔다는 핑계를 대고 날 잡아 랭캐스터에 가리라. 함박꽃 같은 그녀를 만나러.

 

 

 


미주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5/03/1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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