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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01/26/201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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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 있되 거리를 두라'

                                                                      이정아

남편이 내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것이 2년이 되었다. 수술 후 2년까지 적응기였다면 그 이후는 안정기에 접어든다니 건강상태는 전과 비슷하지만 마음은 많이 안정이 되었다.

수술 당시 남편의 신장 기증 소문을 듣고 한국에 있는 남편의 동창들이 많이 병문안을 왔다. 너무 잦은 방문객 때문에 부득이 비싼 1인실을 써야 했을 정도이다. 방문하고 돌아가는 이마다 빠짐없이 하는 덕담은 "너희 부부는 진정으로 부부 일심동체가 되었다"는 말이었다.

'부부일심동체'의 진정한 의미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생겨난 겸양지덕을 바탕으로 한 것일 터인데, 그걸 문자 그대로 풀어 몸도 하나요,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게 부부라고 해석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가 되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하나로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길들이려하는 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정의하는 말 중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시편이 있다. 구속 받는 걸 싫어하는 나를 표현하기에 아주 유리한 글이어서, 그 책을 접한 대학시절부터 지금껏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 시가 예언자의 '결혼(On Marriage)' 항목에 있어서 부부사이의 금과옥조로 알고, 결혼 때에도 그 말에 힘입어 결혼했다.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는 구절을 더 알기 쉽게 '참견받기 싫으면 참견하지 말자'로 바꾸어 이해하고 살았다. 그러니 '일심동체'는 우리부부사이엔 요원하다.

자식과 부모는 끓는 국을 갖다 주면 꼭 먹기 좋게 식을만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고도 한다. 그 말은 자식과도 현명하게 '거리'를 두고 살라는 말일 것이다. 참나무와 삼나무가 서로의 그늘에 살지 못하듯, 나무와 나무사이에도 간격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사이에 햇볕도 들고 바람도 들 테니 말이다. 전선 위의 새들도 자기 몸 하나 만큼의 간격을 두고 앉는다질 않던가.

그러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도 거리가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서로 다른 면모를 받아들이며 그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기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얼마나 가까워졌느냐가 사랑의 척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로 합일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사랑의 환상은 깨지고 만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저쪽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의리가 없느니, 배반을 때렸느니 불평을 하는 이들을 본다. 남의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그 대상이 자신과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리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 놓인 적당한 그 거리를 인정할 때 보다 성숙한 관계가 될 것이다.

 

너무 집착하지 말고 거리를 두자. 그 사이에 산들 바람이 불게 하자. 그래야 길게 간다.

 

 

중앙일보 미주판[이 아침에] 기사입력 2015/01/2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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