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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의 십계명
10/13/201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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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의 십계명

                                                                                                                                                 이정아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지만 나는 시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육사출신의 군인 시아버지는 늘 내게 작전지시 하듯 주의 사항을 전달하시곤 했다. 시아버지는 시정명령을 적어서 품에 간직하고 있다가 나를 만나면 그걸 꺼내어 읽으셨다. "제 1은, 제 2는, 제 3은…"하고 읽으시는데 보통 7번까지 있었다. 그 내용은 "부드럽지 않다, 금방 '예'하지 않는다, 여성스럽지 않다" 등등이었는데 한마디로 하자면 '뻣뻣하다'로 요약 할 수 있다.

남을 가르치려드는 선생 출신의 며느리와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삼는 군인의 기 싸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요즈음 곰곰 돌아보니 요령부득의 미운 며느리였을 것이다. 그냥 립서비스라도 애교를 부릴 줄 아는 며느리였으면 시댁과의 갈등 같은 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타고난 성격 탓인지 친정과도 마찬가지였다. 친정아버지는 늘 내게 어려운 분이었지, 애교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 생존해 계신 친정엄마와도 최대의 밀월기간은 일주일이고 그걸 넘기면 늘 다투고 만다. 아파서 한국에 오랜 기간 있을 때에도 즐거운 동거는 잠시뿐 오피스텔로 나와서 딴살림을 차리니 훨씬 숨쉬기가 수월했다.

혈육과의 동침이 어려운 것은 서로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늘 잘되라고 조언을 한다는 것이 잔소리처럼 들리고, 자식은 아직도 나를 못 미더워하는 부모인가 싶어 반발하다보니 상충하는 것이다. 이럴 때 혈연이 아닌 사위나 며느리가 완충의 부드러운 역을 감당해야 집안이 화목하게 돌아갈 것인데, 지혜 있는 이가 그 역할을 잘 할 수가 있다. 나는 유연하지 못해 그 역을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

'정직'을 삶의 모토로 삼아 거짓말은 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았다. 그러나 살다보니 내가 하지 않은 말도 날개를 달고 다니며 사람사이에 골을 만들기도 한다. 한 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사이가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는 걸 보면서, 입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기술이 필요함을 느낀다. 나의 언어는 치장이 없는 대신 부드럽다거나 상냥하진 않다. 전화도 '용건만 간단히'여서 상대방이 늘 묻는다. "바쁘세요?" 이메일도 무척 사무적이다. 오죽하면 오랜 친분의 나태주 시인이 올해 칠순 기념문집을 내시는 데, 내 편지글을 책에 실으려니 너무 딱딱하다며 친절한 글 한 편을 다시 써 보내라고 하셨을까.

정감 넘치는 사람을 근지럽다, 가증스럽다 폄하하곤 했지만 이젠 따스한 사람이 좋다. 나이가 드니, 더러는 포기하고 더러는 용납하여 뜨뜻미지근한 사람이 되어간다. 전에는 태도가 분명치 않은 사람을 회색분자라며 욕을 퍼붓곤 했다. 횡행하는 흑백 논리 속에서 모 아니면 도라고 주장하는 세상이다. 다른 것을 틀리다며 수용을 거부하는 때에 회색이 블루오션이라고 중용의 색이라고 주장하면 돌을 맞을 것인가?

인터넷에서 '입의 십계명'이라는 글을 만났다. 1.희망을 주는 말2.용기를 주는 말 3.사랑의 말 4.칭찬의 말 5.좋은 말 6.진실된 말 7.꿈을 심는 말 8.부드러운 말 9.화해의 말 10.향기로운 말을 하라. 시아버지가 속주머니에서 꺼내어 나를 향해 읽으시던 것과 너무 비슷해서 놀라웠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바른 사람으로 만들고 싶으셨던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을. 항상 지나고 나야 알 수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미주중앙일보/이 아침에/10월 7일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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