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nnelee
joanne(joannelee)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2.01.2008

전체     140711
오늘방문     31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3 명
  달력
 
장 보는 남편들
02/18/2014 09:39
조회  2973   |  추천   9   |  스크랩   0
IP 172.xx.xx.139


 
 
 
 
          장 보는 남편들
                                                                                                              이정아
                   
주말에 장을 보면 장보는 시간보다 계산대 앞에 줄 서는 시간이 더 길다. 그래서 나는 주로 평일에 장을 보는 편이다. 요즘은 그나마도 남편이 장을 봐온다. 트럼펫을 부는 남편이 매주 목요일 밴드연습을 마치고 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오는 것이다. 카톡으로 무엇을 사오라고 지시(?) 했어도 한두 가지 빼먹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병치레하는 동안 장보기 연습을 오래 하였기에 이젠 알아서 척척 잘도 사온다. 조림용 생선을 사오라 부탁하면, "무는 안 필요해?"라고 물을 정도이다.

지난 목요일에 장을 잔뜩 봐온 남편이 마켓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고 이야기 한다. 카트를 끌고 채소 칸에 가서 파를 고르는데 같은 밴드에서 트럼본을 부는 김 선생을 만났다고 한다. 그도 아내가 적어준 메모를 보며 장을 보더란다. 돌아서서 생선 파는 섹션에 가니 예전 기독합창단의 같은 멤버였던 한의사 이 집사를 만났다는 거다. 연신 와이프와 통화하면서 명령에 따라 장을 보더라고 한다.

남자가 장을 보는 풍경은 이젠 흔한 일이다. 우리 집의 주방에서는 브라운 슈가를 쓰고, 쌀은 혼합미를 먹으며, 쇠고기 살 때 국거리인지 구이용인지는 구태여 따로 말을 안 해도 된다. "파가 10 단에 1불이면 물 값도 안 나오고 인건비도 안 나오겠네."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이젠 남편이 한다. 생선찌개나 곱창전골은 마켓에서 포장된 걸 사다가 물만 붓고 끓이는 게 더 실속이 있다는 둥 가정주부가 다 되었다. 장을 봐오고 수납하고 갈무리까지 하니 나의 부엌일은 아주 쉬워졌다.

일 안하고 집에서 살림만 하면 당신보다 더 잘 할 수 있겠다며 이제까지의 나의 공로를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남편은 이제 장보기뿐 아니라 살림까지 넘보려는 듯하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전반전엔 내가 살림을 했으니 후반은 남편이 살림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하프타임에 선수교체라고나 할까?

그러나 역할을 바꿀 생각을 하니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족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하니 말이다. 이 나이에 어딜 가서 돈벌이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반평생을 버는 것보단 소비하는 데에 전력을 하며 살았으니 그 동안의 남편의 수고가 새삼스럽다.

늘 부족하다 타박만 하였지 감사를 모르고 살았다. 미팅 때 눈 맞춘 죄로 나의 평생을 책임진 남편. 설상가상으로 아프기까지 하여서 자신의 신장까지 떼어 나누어 주었으니 생각할수록 고맙다. 잠깐씩 나가 서류정리를 하던 회사일도 쉬고 집에서 전적으로 노는 나는 이제 '삼숙'이가 되었다. 기력 다 떨어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립서비스뿐이어서 미안하다.

"여보 그렇게 살림이 하고 싶다면 전적으로 맡으시구려. 내가 모든 걸 양보하리다." 인심 한번 크게 썼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2월 18일 2014

 
이 블로그의 인기글

장 보는 남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