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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또 다른 얼굴
04/13/20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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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포기했어요." 그녀의 눈이 젖어있다. 지난 주일 예배 시작하고 옆 사람과 인사하는 순서에서 내 손을 잡고 그녀가 인사 대신 한 말이다. 순간 내 가슴도 쿵 내려앉았다. 예배시간 내내 슬픔이 이입이 되어 둘 다 하염없이 울었다. 누군가가 우리 사이에 티슈 한 통을 가져다 놓았다. 아직 젊고 예쁜 그녀는 남편의 병구완을 3년간 했다.

내가 아파 수술받고 한국에서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그 사이 그녀 내외가 둘 다 암 투병을 했다고 들었다. 환자는 환자가 그 마음을 알기에 서로 위로를 주고받았다. 자기는 다 낫는데, 남편은 아직 아프다며 기도해달란다. 내가 교우들께 많은 기도의 빚을 졌기에 갚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항상 내 옆자리에서 함께 예배하던 그녀를 바라보면 늘 애잔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아이들 돌보며 남편 간병을 해야 하는 수고가 안쓰러웠다. 눈만 마주치면 눈물이 났다. 배우자를 간병하는 어려움, 나를 간호하는 내 남편의 수고를 보아 알기에 말이다. 함께 운다는 건 그녀의 슬픔에 편승하여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제 그 어려운 시간을 지나 그녀의 남편이 육신의 장막을 벗었다. 의사가 포기한 지 나흘 만에 하늘로 갔다. 마지막 말이 "나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었다니 고통 없는 천국에서 안식하길 소망한다. 오늘 교회에서 만난 눈물 파트너 그녀는 남편의 투병 기간 3년이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다며 교우들을 오히려 위로한다. 감사한 일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마지막에 죽는다. 생명이 내 마음대로 온 것이 아니듯 죽음도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온다.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죽음을 산 자는 알 도리가 없다. 죽음을 경험한,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죽은 이와의 관계를 상실한 데에 대한 아픔이며 홀로 남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가는 것과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국 가는 것이다.

로마 시대엔 25세에 불과했다던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파비엔 구-보디망(Fabienne Goux Baudiment) 세계미래학회 회장은 2070년에는 평균수명이 120세가 될 것이며, 미래의 장수 사회가 결혼 패턴과 가족제도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120세까지 사는 게 행복한 일일까. 이제는 삶을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생명의 의미는 길고 짧은 데 있지 않다.

잘 사는 방법은 일생을 통해 배워야만 한다. 아마도 사는 것 이상으로 평생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죽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눈물 많은 내가 주책없이 그녀 앞에서 먼저 울지 않기를 기도한다. 공연히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도록 그녀 앞에선 당분간 먼 산을 자주 바라볼 작정이다.

유난히 주변의 많은 이들이 천국으로 이사한 슬픈 4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고난주간이다.


[이 아침에]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얼굴

미주 중앙일보 이정아 수필가/ 기사입력 2017/04/12 19:14


죽음, 삶, 고난주간, 종려주일,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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