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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단상
09/03/201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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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단상(斷想)


#1
작년 12월에 재미 수필가 협회의 송년회가 있었다. 5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인지인 재미수필 9집의 출판기념회를 가졌고, 2부 순서에 오행시백일장이 있었다. 걸린 상품은 화가이자 수필가인 홍 알리사(Alicia Hong)씨의 6호 크기의 유화 한 점 이었다. 홍화백은 ‘해바라기 화가’라는 닉네임이 말해주듯 해바라기를 주로 그린다. 그녀의 집에 가면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타일에도, 부엌의 벽에도 해바라기 그림으로 가득하다. 참한 해바라기 한 송이가 다른 꽃들을 배경으로 수줍게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그림을 보고 모두들 욕심이 생겼는지 열심히들 시를 지었다. 무더기로 핀, 강렬하고도 흔한 해바라기 그림과 달랐다. 샤이니 골드 톤의 액자도 품위 있었다. <연분홍치마> 라는 시제에 맞춰 5행시를 적어내고 기다렸더니 덜컥 장원에 걸려 그림을 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현관 콘솔위에 붙이니 집안이 화사해졌다. 억지 춘향의 5행시로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을 날리자 높--이
단 너머의 아이들 볼 수 있도록
조 띤 얼굴로
맛자락 날리며
중 나오게

#2


‘해바라기 화가’인 홍화백은 수필가 협회의 부회장이기도 하여서 동인집인 재미수필 9호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였다. 회원작품들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한 회원이 낸 그림이 있는 수필에 등장하는 그림이 낯익은 그림임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유명한 화가인 반 고흐의 ‘four cut sun flowers’ 이기에 말이다. 늘 해바라기에 대해 연구하고 그리는 그녀의 눈에 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상하여 본인에게 직접 문의했더니 자신의 작품이 맞다고 우기더라는 것이다. 수차 확인해도 같은 대답이어서 그냥 실었다는 것이다. 흑백으로 스캔 되어서 온 그림으로는 진위를 가리기에 어려움이 있었단다.

그날 9집의 수필집을 받아본 이들은 모두 놀랐다. 그림에 작은 상식이라도 있는 사람 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고흐의 그림이 2006년 신아무개 작‘해바라기의 웃음’ 으로 둔갑해 칼라로 인쇄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 그림 때문에 정직성에 의심을 받은 그녀를 협회에서 조사해보기로 하였다. 재작년부터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였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문제 삼지 않았었는데 이번 참에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알아보니 안타깝게도 학력도 경력도 모두 거짓이었다. 거짓학력으로 동창회의 부회장까지 했으니 이곳사람들이 무척 어수룩하긴 한 모양이다. 저작권 문제 등이 걸려있으므로 협회에서는 제명처분을 하였다. 그녀는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말고 오히려 기회로 여겨야할 것이다.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거짓인생으로 살았을 것이 아닌가? 마침 해바라기 화가의 눈에 띈 것은 오랜 거짓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어서 일 것이다.


#3
성가대의 찬양곡에 플루트의 독주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을 연주하러 오신 박 집사님이 성가대 연습실로 오시면서 커다란 해바라기 조화 한 송이를 들고 오셨다. 요즘 해바라기에 연루된 사건이 많아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호기심을 표하였더니 내게 선물이라며 주셨다. 알고 보니 해바라기로 장식한 볼펜이었다. 요즘 내손에서 해바라기 한 송이가 춤을 춘다.

#4
어젠 고전 수필을 읽다가 우연히 조위(曺偉 : 1454 - 1503)의 규정기(葵亭記)라는 글을 읽었다. 유배지에서 만난 해바라기에 대해 쓴 글이었다. 작은 마당에 무성한 해바라기를 보고 거하는 집의 정자를 葵亭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귀양살이를 하는 자신의 신세를 귀하지 않은 식물인 해바라기에 빗대어 쓴 글로, 천한 식물로 부터도 배울 바가 있다는 글이었다. 많이 생략하였으나 내용은 이러하다.

‘버림받은 사람으로서 천한 식물로 짝하고 먼데서 찾지 않고 가까운데서 취했으니 이것이 나의 뜻입니다. 거기다 해바라기는 두 가지 훌륭한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능히 해를 향하여 그 빛을 따라 기울어집니다. 그러니 이것을 충성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또 분수를 지킬 줄 아니 그 것을 지혜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이것은 군자도 어렵게 여기는 바이지만 내가 옛날부터 흠모해 오던 덕목 입니다. 이런 두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는데도 연약한 뭇 풀들에 섞여 있다고 해서 그것을 천하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이로써 말하면 유독 소나무나 대나무나 매화나 국화나 난이나 혜초만이 귀한 것이 아님을 살필 수 있습니다. ‘

해바라기가 피면 이젠 예사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러 곡절을 겪으면서 해바라기는 내게 다정한 꽃으로 다가왔다
.





2008년 2월 16일/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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