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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사이
11/04/201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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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사이


아침 출근 길 101번 헐리웃(Hollywood)프리웨이에서 110번 하버(Harbor)프리웨이로 갈아타야 하는 길은 늘 어렵다. 모이고 갈라지는 8차선의 큰 도로여서 맨 오른쪽으로 진입한 나는 차선을 대 여섯 번 빠르게 바꾸어야 왼쪽편 110번의 가장 자리라도 걸칠 수 있다. 나처럼 겁이 많은 사람은 차선을 쉬이 바꾸지 못하므로 내가 초조한 것은 둘째 치고 다른 차의 진행도 방해하는 셈이어서 좋은 운전자는 아니다. 겨우 겨우 제대로 된 차선에 들어서야 한숨이 쉬어지고, 그제서야 비로소 앞차와의 간격이니 안전거리니 하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된다.

달리는 자동차가 안전운행을 하려면 차간에 간격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나 사람 사이에도 간격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학교에선 수업과 수업사이에 쉬는 시간이 있으며 계절도 예외는 아니어서 새봄이 오기까지 세 계절의 간격이 있으니 해마다 오는 봄이 새로운 것이다.

사람사이도 너무 가까우면 싫증이 나기 마련이며 예의에 어긋나기도 쉽다. 전기 줄에 앉아있는 참새도 비둘기도 자기 날개를 펼칠 만큼의 간격을 두고 앉는다지 않은가? 그러니 상대와의 간격유지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한다.

젊은 날 읽은 칼릴 지브란의 시들은 한편 한편이 내게 보석처럼 다가왔다. 특히 '예언자'부분에 나오는 '부부사이에 산들바람이 불게 하라' 는 구절은 은연중에 내 마음에 파고들어 결혼을 하면 그대로 하리라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한 결혼에서 아무래도 나는 나긋나긋한 신부 감은 아니었던 듯하다.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나는 결혼후에 받게 될 남편의 간섭이 제일 불편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간섭받기 싫으면 간섭하지 말자 대략 이런 작전을 세워두었다. 바가지 하나는 긁지 않겠다 뭐 그런 맹세 아닌 맹세를 한 셈이다. 이후 그 맹세가 완전히 지켜졌다고 는 할 수 없어도, 그 본래의 취지는 잊지 않고 살았다.

그리 살아와서 그런지 남편이 여행중 이라거나 출장 중이어도 아쉽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 이번에 시아버님의 병환으로 일주일간 남편이 한국을 가야했는데, 늘 그렇듯이 내겐 심호흡의 기회였다. 남편이 없으니 내 주변엔 더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평소에 둘 사이에 불던 산들바람과는 다른 속 시원한 바람이었다. 공기가 맑아진 것 같기도 하고, 코끝까지 시원해지는 것이 살 것 같았다.

나는 겨울에도 난방을 할망정 창문으로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야 살맛이 나고, 강의나 강연을 들을 때도 옆자리가 비어있어야 숨통이 트인다. 그러니 타고난 간격론자인 셈이다. 교회에 가서도 자리가 부족하지 않으면 부부가 꼭 붙어 앉질 않고 한 칸을 떼어 앉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면 남들은 두 분이 다투었냐 어쩌냐 하고 묻기도 하지만 그냥 웃고 만다. 요즘엔 남편이 예배를 촬영하는 카메라맨으로 봉사하므로 혼자서 편하게 설교를 듣고 자유로이 예배를 즐길 수 있어 좋다.

나는 이 간격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용을 하며 산다. 수시로 살갑지 않다 뻣뻣하다는 평을 듣지만, 오래 아는 이들은 그랬기에 오래갈 수 있었다는 걸 알고 이해한다. 조금 안다고 엎으러지고 앵기고 감기고 하다보면 금방 징그러운 사이가 되고 마는 걸 많이 봐왔다. 겉으론 덤덤해도 안으론 살가운 사이, 아닌 듯 보여도 진짜 친한 사이로 사는 것이 요즘 말하는 cool한 사이가 아닌가싶다.

베란다 문 너머로 낮의 여운인 붉은 노을이 황홀하다. 아침을 시작하는 새벽 미명도 서늘하도록 곱다.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자연의 간격인 것이다. 역시 적당한 사이 안에는 여유로운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수필가 이정아

두번째 수필집 <선물> 중 에서


간격, 안전거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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