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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캘리포니아 미션…'왕의 길'에는 정착민들의 애환이 남아있었습니다
09/28/2016 12:03
조회  1107   |  추천   1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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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타바버러 미션 앞 바닥에 그려진 분필화들.
샌타바버러 미션 앞 바닥에 그려진 분필화들.
롬폭 숲속에 숨겨져 있어 신비스런 라푸리시마 미션.
롬폭 숲속에 숨겨져 있어 신비스런 라푸리시마 미션.
카멜 미션 내부에 있는 세라 신부와 라수엔 신부의 묘.
카멜 미션 내부에 있는 세라 신부와 라수엔 신부의 묘.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로 유명한 LA인근 샌게이브리얼 미션.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로 유명한 LA인근 샌게이브리얼 미션.
라푸리시마 미션에 있는 군인 막사 모습.
라푸리시마 미션에 있는 군인 막사 모습.
여행기간 1년, 작은 RV(레저용 차량)를 타고 미국 40개 주 여행에 나선 본지 신현식 사진기자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주 1회 연재한다. 신 기자는 앞으로 미국의 '속살'과 각 지역 한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 전할 예정이다.

캘리포니아 미션 여행의 목적지중 한 곳인 중가주 롬폭에 도착했다.

이 지역에 있는 라푸리시마 미션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방이 숲으로 쌓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숲을 통과해 조그만 다리를 지나자 갑자기 평야가 펼쳐지면서 얕은 산 밑으로 멀리 주황색과 흰색이 어우러져 길게 늘어선 미션이 보인다.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요새 같은 곳이었다.

그동안 샌디에이고의 미션 3곳과 LA지역의 샌게이브리얼과 샌퍼낸도 미션, 벤투라 미션, 샌타바버러 미션, 솔뱅의 샌타이네즈 미션 등을 거쳐온 탓일까 나름 미션에 대한 선입견이 생겼었다.

미션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한 탓에 대개는 도심에 위치하며, 상업화 되어 있었다. 특히 샌호세 미션,UC 샌타클라라안에 있는 샌타클라라 미션 및 샌프란시스코의 두 군데 미션 등은 소실 후 복원되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라푸리시마는 지금까지 봐왔던 미션의 모습이 아니었다. 감동적이라고 할까? 마치 마법의 성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건물과 전시되어 있는 유물들은 몇백년의 세월을 넘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초기 역사는 미션의 역사나 다름 없다.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는 1769년 군대와 신부를 캘리포니아에 보냈다. 후니페로 세라 신부를 책임자로 인디언 개종에 나섰다. 스페인의 프란체스카 수도사들은 종교적 열정과 개척 의지로 군대와 더불어 샌디에이고에서 부터 샌프란시스코 북쪽 소노마까지 '왕의 길 (El Camino Real)' 루트를 따라 1769년 부터 54년간 총 21개의 미션을 세웠다. 샌디에이고에서 소노마까지 약 500마일 거리를 21등분해 건설한 것이다.

미션은 군 요새와 성당이 혼합된 형태로 건축됐다. 프레시디오(군 요새)와 푸에블로(마을)가 함께 만들어졌다. 미션들은 스페인 군인과 성직자, 일반인들이 사는 요새였으며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의 모태가 됐다. 초기 미션은 정복을 위한 전진기지였다. 정복자들은 원주민인 인디언들과 충돌하며 지배하고 공존했다. 인디언들을 개종시키고 스페인어를 가르쳤다.

인디언들은 이들의 개척 생활을 지탱하는 노동력의 근간이었다. 그중 샌게이브리얼 미션은 남가주와 중가주를 잇는 허브 역활을 하는 대규모의 미션이었다.

1834년 11월에 기록한 미션의 자산 목록을 보면 울을 짜는 4개의 물레, 브랜디를 만드는 4개의 증류기가 있었고 와인 공장, 대장간,비누,초를 만드는 곳, 물레방앗간이 있었다. 4개의 포도밭에 16만3578그루의 포도나무, 9개의 과수원에 2333 그루의 과일나무, 소1만2980 마리, 양 6548 마리, 말 2938 마리를 보유했다. 재산목록에는 1323명의 인디언 숫자도 적혀 있다.

정복자들은 인디언들을 혹독하게 대했다. 또 수용생활을 하면서 열악한 환경으로 전염병에 걸려 많은 인디언들이 죽었다. 샌게이브리얼 미션의 기록을 보면 1778년부터 1865년까지 유럽인들에게서 전파된 전염병 콜레라, 수두 등으로 6000명이 사망했다. 지금도 이들을 묻은 구덩이와 추모비가 미션에 남아있다.

사실 인디언들은 노예같은 삶을 살았다. 세라 신부의 후임 라수엔 신부가(카멜 성당안에 두 신부가 나란히 안장되어 있다) 세운 미션 산타크루즈 신부들이 인디언들을 가혹하게 다뤄 이런 처사에 못이기고 반란을 일으켜 신부를 살해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인간의 욕망, 정복욕의 희생자들이 현지 인디언들이었다.

반면 중부지방 샌미겔 미션의 호라 신부는 인디언들에게 스페인어를 강요하지 않았고 개종한 인디언들도 그들의 마을에서 살게 하였고, 음식을 충분히 주었고, 체벌 하지 않았다.

미션의 역사는 정복의 역사이고 캘리포니아의 역사다. 1834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면서 미션은 폐쇄됐다.

이후 미국-멕시코 영토전쟁 이후 캘리포니아주가 미국에 합병 되면서 미션은 가톨릭교회로, 역사의 보관 및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거쳐온 미션들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듯했다. 대개 가톨릭 신자인 백인들이나 히스패닉 들이었다. 간혹 아시안들도 눈에 들어왔다. 카멜 미션에 갔을때는 10여명의 인도인들도 봤다. 성지순례를 온 듯한 여성은 기도를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미션은 이주민 정착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미션 여행을 결심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민자로서 정착의 역사 현장과 도시들을 여행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묘미는 만나는 자연과 역사와 현상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유가 아닐까.

*중앙일보 웹사이트(koreaadaily.com)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소박한 모습의 소노마 미션.
소박한 모습의 소노마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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