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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법정 비마 앞에 선 사도바울: St. Paul Standing in front of Corinth Court Bema
03/29/20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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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Paul Standing in front of Corinth Court Bema

View in English via Google translation, Click here, some inaccuracy though.

 

그리스 고대도시 고린도의 비마 Bema앞에 사도바울 St. Paul이 서있다.

유대인들의 고소로 총독 갈리오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비마라고 불리는

높은 단상 Judgement Seat 앞에 섰는데, 다행히도

총독은 유대인 끼리의 종교적 문제라고 고소를 취하했다.

 

사도바울이 재판을 받았던 법정 Bema



환상 속에 들은 예수님의 음성 두려워 말고 말하라에 힘입어,

아고라 Agora 광장과 시장터에서

40대중반의 사도바울은 힘차게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대리석 바닥의 고린도 시내 레카이온 거리 Lechaion Road



시장터


AD 50년경 사도바울은 고린도에 16개월을 머물면서

로마에서 쫒겨온 유대인 아굴라와 Aquila그의 아내 브리스길라 Priscilla,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온 실라 Silas와 디모데 Timothy

이방인 디도 유스도 Titius Justus,

현지 유대인 회당장 그리스보 Crispus, 소스데네 Sosthenes와 함께 선교사업을 펼쳤다.

당대의 석학이 천막 만드는 직업도 마다 않으면서.

사도바울은 3, 마지막 4차 선교여행 때도 고린도를 다시 방문한다.

 

2차 선교여행 당시 지명과 현재


바울은 서신을 통해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분쟁 가운데 있었던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 God’s Church’라 부르고,

교인들을 향해 ‘성도 Holy People’라 부르며 가슴에 품는다.



BC 6세기 태양신 아폴로 신전도리아식 38개 기둥중에 7개 기둥만 남아 있다



고린도의 유대인, 헬라인, 로마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헬라인은 플라톤, 에피쿠로스 학파 등 철학적 지혜자라고 자만하던 이들,

다윗보다 위대한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저주했고,

정복자 로마인에게는 하찮은 식민지의 지방종교,

문화 역사적인 배경이 초신자 이방인들의 문제등

 

바울은 AD 5년경에 학문의 도시 길리기아 다소(현재 터키 Tarsus) 에서 태어나

예수님이 예루살렘, 갈릴리, 사마리아 사역을 하는 동안

가말리엘의 유대교육을 받고 열열당원이 된다.

예수님 승천 1-2년 후 그이 나이 29세경에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후 기독교에 개종한다. 9:1-8

 

사울의 다메섹 회심 Conversion of Saul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16세기

바티칸 파올리나 예배당 프레스코화


 바울의 회심, 라파엘로 산치오, 16세기, 타피스트리, 바티칸 미술관

젊은 사울이 묘사되어 있다.

 

개종 후 생명의 위협을 피해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3년을 보낸 후

32세경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만났지만

 또 다시 생명의 위협을 피해 10여년을 고향에 칩거해야 했다.

 


다행히 바나바의 인도로 첫 이방인 교회 안디옥교회에서

목회자로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후 소아시아, 그리스에 4차에 걸친 선교,

그동안 신약성경의 4분의 1 에 해당하는 서신서 Pauline epistles 를 쓰고,

53세경에 로마황제에게 항소, 55세에 가이사랴에서 연금 2,

로마로 이송, 연금 2, 잠시 석방되아 57세에 마지막 4차 마게도니아 사역,

60 세경에 재수감후 참수, 순교,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초대교회 교부인 터툴리안 Tertullian AD 160-225 

“바울 사도가 황제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네로 황제의 기독교 대박해 때에 로마에서 참수당했다”고 전한다.

로마 서쪽 성문 밖 순교기념교회의 바울 참수 장면 부조.


고집스러운 로마행은 그를 죄수로 만들고 목숨을  단축시켰지만

그의  35년 동안의 사역은 결국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만들고,

복음을 세계로 내보내는 활로를 열어 주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유대교 안의 한 분파로만  간주되었던 초기 기독교에

자체의 일목요연한 교리 확립은 사도바울의 서신서에서 유래된다.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배가 파선하는 곤경을 겪으면서도,

열악한 지역을 아픈 몸을 이끌면서 4차에 걸친 전도 여행,

순교하기 까지 어려운 주의 사역을 감당한 성자이다.

 

바오로(천주교), 바울로(정교회, 성공회) 파울로스(그리스어) 파울루스 (라틴어), 여러 이름중,

바울은 로마시민으로서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유대인으로서 사울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을 가졌는데

이방인 선교사역에서는 그의 소명의식을 나타내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의 출생지 다소는 예루살렘으로 부터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로 통하는 길목으로 자연스럽게

그의 선교여행의 관문을 제공한다.

 

 &&&&&&&&&&&&&&&&&&&&&&

 그리스 고린도는 BC 1000 년경 도리아인에 의해  거주 시작,

BC 500년경에 무역과 상업이 번창한 인구 30만의 대도시,

BC 160년경에 로마에 의해 파괴, BC 40 년경에 재건후에 여러 지진으로 폐허화,

그래도 그리스 아폴로 신전을 비롯한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그리스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가는 길에 유명한 고린도 운하가 있다.

네로 황제가 시공을 하다가 실패, 후에 19세기에 프랑스에 의해 완공되었다.

 

고린도 운하

 



멀리 보이는 600 미터 정도의 높은 아크로-고린도산Acro-Corinth 위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비너스)를 섬기는 신전이 서있다.

천여명의 여사제들을 통한 음란한 제사로서 도시를 타락으로 이끌었다.



피레네 샘터 Peirene Fountain 


목욕탕과 물길




비마 쪽에서 바라본 산정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누이를 위해 세운 코린트식 신전


로마식 공중화장실 변기


왼쪽부터 아우구스트스 (옥타비아누스), 카이자르, 네로 황제 두상

 


목이 없는 석상들당시 개인 집앞에는 문패 대신 주인의 조각상을 사용,

상인들은 몸통만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주문이 들어 오면

머리를 만들어 올려 놓고이사가면 머리만 옮겨 갔다고 한다.


석관 sarcophagus


고린도에서는 병의 치유를 위해 신에게 아픈 신체부분을 점토로 만들어 바친다.

 

2차 전도여행 끝에 겐그레아 Cenchrea에서 바울은 서원대로 머리를 깎고,

배를 타고 에베소에 들렸다가,

가이사랴 항구를 거쳐 예루살렘에 도착,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 온다.

 가이사랴 항구의 유적을 돌아 본다.


상당한 규모의 잘 설계된 가이사랴 항구


신전터도 남아 있고


원형 무대도 남아있다

사도바울이 2년간 감금되어 있던 곳은 찾을 수가 없고...



오늘은 사순절 5째 주일,

COVID-19을 겪어 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사도바울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한다.




St. Paul, Corinth, Bema, 사도바울, JasonKim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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