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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세상을 인정합시다
02/27/202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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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3.xx.xx.72

02/27/2020


불공평한 세상을 인정합시다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불공평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할텐데

의인은 상을 받아야 정의로운데

반대로 짓는자가 보기에 

되게 보이면 화가 불끈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불공평 것을 인정합니다


내가 스스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설자리가 없어집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선과 악이 그리고 상과 벌이

공존하는 불공평 사회를 인정합시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만 합니다

이렇게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주옵소서!


복음

<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세상에 참으로 많은 종교가 있지만, 믿음의 대상이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경배하는 경우는 그리스도교밖에 없는 같습니다. 가령 불교는 부처상을 앞에 두고 예배하는데, 모습은 매우 평화롭고 세상 고통을 초탈한 것처럼 보입니다. 원불교는 동그란 원을 그려 우주의 궁극적 진리를 표현합니다. 이슬람교는 쿠란의 여러 문구를 예술적으로 그려 내는데, 역시 알라의 초월성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유독 그리스도교만이 예수님께서 박혀 돌아가신 모습의 십자가를 걸어 놓습니다. 절대자의 고통, 절대자의 죽음을 앞에 두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시지만 동시에 무능하시고, 초월적이시나 가장 버림받은 곳에 머물러 계시는 분을 경배합니다.


십자가는 죄인이 지고 가는 형벌 도구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위에서 죽었다는 것은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로 억울하게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무겁습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이유는 가족이라는 무게,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무게, 사회적 책임이라는 무게 온갖 무게에 짓눌려 고생하는 이들과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십자가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갖은 비난을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은 철저하게 고독할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로움에 떨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억울하게 고통받고 있는 이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이들, 외로움에 떨고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이들을 내려다보시며 혀를 차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고통받으시고, 그들의 노고를 함께 짊어지시며, 그들의 외로움을 사랑으로 채워 주시려고 몸소 그들의 자리인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모시고 경배합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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