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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원통하게 만들면 하느님이 알고 계신다
02/07/202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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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7/2020


남을 원통하게 만들면 하느님이 알고 계신다

우린 자신도 모르게 남을 비통하게 만듭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나의 실수가 남의 원한으로 이어진다면 죄악입니다
울부짓는 울음 소리를 하느님이 듣고 계십니다
억울함을 하느님께서 보복하여 주십니다
그러기에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여서는 않됩니다

반드시 회개하고 반성함으로 피해자를 위로합시다
물질적 피해는 갚아야하고 정신적 피해도 함께 보상해야 합니다
내가 서있는 곳곳에서 나로인하여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의 명예도 천금같은 값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피해를 주었으면 명예를 반드시 내가 회복하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시엔 하느님이 나에게 갚아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4-2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비명을 하느님이 들었다

 

오늘 복음은 헤로데의 폭력으로 세례자 요한이 죽게 된 이야기입니다. 헤로데 임금이 동생의 아내 곧 제수인 헤로디아와 혼인하자, 세례자 요한이 이를 두고 여러 차례 잘못된 행실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헤로데는 그 말에 불편해하면서도 세례자 요한이 군중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적절한 기회가 닿아 세례자 요한을 죽이고 맙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항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을 하기 마련입니다. 헤로데에게도 그럴 만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는 세례자 요한이 자신을 자꾸 비방하고 나서면 국가 분열이 일어나 안정된 정치를 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국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참석한 생일잔치에서 약속을 어기기라도 하면, 자신의 권위가 실추되어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은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목이 잘릴 때 그가 외쳤던 비명도 하느님께서는 가슴 아프게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른 체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폭력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폭행을 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셨고, 그 폭력의 악을 폭로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가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명시적으로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헤로데가 되는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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