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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두려움과 고민?
08/03/2019 04:00
조회  546   |  추천   3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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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2019


나에게 두려움과 고민?

만사에 스스로의 순위가 있는 법인데
늙으면 늙은이의 모습 또한 그런 것이라
생각 됩니다, 노인의 모습은 약해지고
병들고 그래서 소멸되는 것을 순환이라 합니다
이런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순환을 모른체
늙어도 티가 없고 용맹스런 활동이 이어진다면
이는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내 모습에 두려움과 걱정이 
오장육부에 이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내 나이면 필연적으로 받아야 할 상급들이
어딘가 발견되는 것이 정상이라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으로 변해 갑니다
언제 나에게 다가올 질병과 고통을 걱정합니다
나에게 취약점은 “인내력 부족” 입니다

또한 “절제력 부족” 도 큰 문제입니다
한번 빠지면 중독에 가깝도록 몰두합니다
요즘 골프에 중독 허우적입니다
하루도 빠지지않고 18홀에 묻힌 나를 보면
내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이 것은 아닌데 주먹을 쥐어보아도 도래미타불
어느세 골프장에 와 있네요, 오늘만은 참아야지
아편하는 사람들이 이러한가 나를 의심해 봅니다

오늘은 하루를 집에서 두문불출 견디어 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공만 보이고 골프장 홀에
깃대가 보이고 나잇샸 벳샷 번갈아 보이고
내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분간을 못했지만
결코 이겨냈습니다 첫날입니다

두번째 날도 콜프장을 가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산으로 갈 채비를 준비중입니다
언젠가 다가 올 늙은이의 질병들 나는 두렵습니다
마음엔 고민이 가득합니다 인내력 절제력 모자란 나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기도합니다
주님! 나를 도와 조옵소서! 주님만 믿습니다!

복음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묵상
50년째마다 지내는 희년의 제정으로 해방과 용서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소개합니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사용하고 있는 땅은 하느님의 소유이므로 손대지 말고 그대로 놓아두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희년을 통하여 종살이와 재산 몰수와 강제 노동에 한계를 정해 놓습니다. 희년은 정의의 해입니다. 바로 여기에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모든 정의는 이런 신적 토대에 바탕을 두며 특히 아버지의 유일한 부성애에서 기원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형제 관계가 드러날 때 특별히 가치가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죄를 용서하는 희년을 선포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 한 부분을 읽으십니다(루카 4,16-21 참조).


언뜻 보기에 죄는 하느님의 율법에서 해방되는 행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힘든 종살이에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요한 8,34)이고,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더욱더 중대한 죄를 저지르기에 이릅니다.


헤로데는 거침없이 당당하게 말하고 화를 내며 용기 있게 꾸짖는 예언자 세례자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가둔 다음 목을 베어 죽입니다. 그는 초대한 손님들 앞에서 한 맹세와 약속의 종이며, 특히 자신이 저지른 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악에서 자유롭게 되고, 우리와 세상의 모든 실재가 온갖 억압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십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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