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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겐 미워할 시간도없다
01/17/2020 04:00
조회  894   |  추천   12   |  스크랩   0
IP 108.xx.xx.239

01/17/2020


노인에겐 미워할 시간도없다

나에겐 새로운 현상이 보입니다
높은 산에 오르면 아래쪽 사방이 보입니다
구름에 가려진 도시 혹은 산맥들이 다 덮히고
작은 산 봉우리만 내미는 먼산이 보일때도 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면서 내가 돌아가는 종점으로 보입니다
종착역이 가까히 다가왔다는 것을 느낌니다

진실로 말하건데 사람을 미워할 시간도 없어젔습니다
모두를 용서하고 칭찬만 남기고 싶을따름이지요
칭찬하고 자랑만 할사이 미움은 절로 날라가버립니다
노인에겐 미워할 시간도 허용되지 않거든요
세상사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보입니다
사람들이 전부가 귀하고 소중히 생각됩니다
나에겐 시간이 없다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죄를 용서할 시간도 없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께 미루어 놓고, 자기들끼리 단죄하기 바빴던 바리사이의 모습을 보며 오늘 우리 사회의 갈등을 반성합니다. 우리 나라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 국가들 가운데 사회 통합 지수가 늘 꼴찌 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서로 포용하고 화해하고 보듬는 데 너무 인색한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중풍 병자를 고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예수님과 중풍 병자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묵상은 중풍 병자를 들것에 뉘어 데리고 와서 지붕까지 뚫고 예수님과 만나게 한 네 사람에게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이름도 출신도 사상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죄인으로 낙인 찍힌 중풍 병자와 함께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이를 치유의 사건으로 명확히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이 땅 위의 반목과 대립, 그리고 단죄와 갈등의 한가운데서 보여 주셨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난 용서 못 한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 그 사람은 안 볼 거야.”와 같은 말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죄와 그 때문에 생긴 상처에 짓물러 터진 마음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신앙인은 이를 이겨 내는 내적 힘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무작정 참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허덕이는 우리네 삶에 다른 이의 도움이 함께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인내는 형제애 안에서 더욱 견고해집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은, 위대한 영웅의 초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혼자 아픔을 감당하는 것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의 용서 안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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