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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타관생활을 통해 아픔과 슬픔과 치유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07/03/20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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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타관생활을 통해 아픔과 슬픔과 치유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 타관생활에서 아픈 스토리를 가진 한인들에게 해독제가 되었던 눈물과 치유가, 환희의 공감을 만나면

기쁨(Joy)행복(Happiness)으로 전환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시인의 삶의 해석처럼, “잘 울어야 눈물도

꽂이 되고, 너를 위해 울 때, 적당히 울 때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겸손으로 착하게 울 때, 눈물은 진주를 닮은

하나의 꽃이 되어서, 세상을 적시며 흐르는 강물과 같은 꽃눈물이 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인들이 흘리는 모든 눈물이 똑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언제 어떻게 흘리느냐에 따라

눈물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가 감동한 시인이 노래한 눈물은, 딱딱하게 굳어진 한인들의

죄성을 녹이는 참회의 눈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인들의 지속적인 눈물은 눈동자 표면을 촉촉하게

해주는 윤활유와 같지만, 그러나 우리 한인들의 감성적인 눈물은 강력한 감정이 불러오는 눈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치유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한 친구는 고교 시절에 주변의 괴롭힘에 힘들었습니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모친은 우울증을 체험했으며,

암흑기 같은 청년시절을 보낸 직장생활도 결혼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저는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으나, 눈물을 보인 상황에서 크게 웃었으나, 함께한

친구들에게 진실의 공감이 담긴 위로를 듣던 그 친구는, “정말로 힘들었어요라고 전하며 결국 울기 시작했으며,

그러나 눈물이 슬픔의 해독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어떤 감정을 숨겼다면 불안감 때문이었으며, 우리는 누군가의 공감을 받을 때 불안감을 밀어낼 수

있었습니다.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울 수 있었습니다. 슬픔이 치유의 공감을 만나는 순간 행복으로

전환될 수 있었으며, 치유의 공감이란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동감의 아픈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치유의 공감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슬픔이란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 우리와 함께 공유되면 연대감과 행복감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기쁨은

두 배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바이블에서 100세의 아브라함과 90세의 사라가아들을 낳을 것이란 천사의 말을 듣고 기뻐했으며, 믿음

속에 진리를 꺼냈습니다. 웃음은 눈물이 나오는 곳만큼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 웃음은 눈물과 똑같은

곳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눈물도 그렇고 웃음도 세상의 어둠에서, 길 잃은 모든 한인들이 창조주로부터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그리워하는 오클랜드의 세상에도 오고 있었습니다. 우리 한인들의 웃음은, 어둠의 적이고 어둠의

하나의 병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치유제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인들에게 꺼내 놓기 어렵거나 공감해 줄 동료가 없는 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당신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이야. 우리가 안아줄 거야. 더 이상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바로 그 한인

느꼈을 무거운 감정을 더 이상 숨겨둘 필요가 없을 때, 드디어 그 기억은 머리 속에서 다시 꺼내도 괜찮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편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 타관생활에서 진하게 묻어나는 슬픔의 꽃과 웃음의 꽃을 피우는 토양은 다르지 않았으며, 우리

이곳 삶들의 동일한 토양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묻어 둔 기억을 그대로 바라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버려진 느낌도, 한 명도 아는 척 해주지 않는 학교생활도, 무기력했던 모습도 모두 우리

한인들의 일부이었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일들이, 우리가 다시 버림을 받거나 비난을 받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이, 바로 치유와 회복의 완성인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삶의 해석처럼, 한인들의 눈물은 태평양의

진주들을 닮은 꽃들이 되는 것이고, 이곳 타관의 세상을 적시며 흐르는 강의 물가의 꽃들이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채화아티스트/기도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 제임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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