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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tter’s Fort
09/13/20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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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tter’s Fort

 

내가 사는 동네 쌔크라멘토는 NBA 농구팀이 있을 만큼 큰 도시이지만, 캘리포니아의 수도로서 안전하고 쾌적하여 빌어먹을 도시가 아니다. 그 옛날엔 멕시코의 땅이었으므로 가톨릭의 풍취가 많이 남아 있고, 이름 자체도 성례(聖禮; sacrament)에서 유래했다.

 

쌔크라멘토의 시초는 싸터(John A. Sutter)라는 수완 꾼의 역사였다. 그는 독일 태생의 스위스 사람이었다. 재물 복이 있어 돈 많은 과부의 딸과 결혼했으나, 낭비벽이 워낙 심해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그는 어느 날 빚쟁이들을 피해 처자식을 유럽에 남겨두고 야반도주하듯 미국으로 도망쳐 왔다.

 

그는 1839년 캘리포니아 쌔크라멘토 인근에 도착했다. 당시 그곳에는 멕시코 현지 총독이 허허벌판인 땅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싸터는 총독을 설득하여 50만 에이커라는 광활한 땅을 불하받았다. 멕시코는 그곳의 땅을 러시안, 인디언, 그리고 미국인들의 침공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었는데, 싸터가 이를 대행하는 조건으로 땅을 불하했던 것이다.

 

정착촌(colony) 또는 요새(fort)는 일종의 경제공동체였으며, 중세의 봉건마을과 같았다. 주변의 인디언, 동부에서 온 이민자들, 멕시칸들을 고용하여 농사를 짓고 무역을 하고 수렵을 했다. 싸터는 봉건영주처럼 행정권, 사법권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아니 싸터가 물레방아를 건설하던 콜로마라는 강가에서 그의 하인 마샬이 금을 발견했던 것이다. 애초 금이 발견된 것을 비밀에 부쳤으나, 금방 사실이 알려지고 산지사방에서 인파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금을 찾아 수많은 인파가 싸타의 땅을 무단점거하고 파헤쳐 메뚜기 떼처럼 황폐화시켰다. 싸타의 정착촌은 순식간에 경영난에 빠지게 되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에서 승리하고 1948년 캘리포니아의 땅을 차지했으며, 미국정부는 싸타가 멕시코 정부에서 불하받은 땅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리 저리 여러 이유로 싸터의 정착촌은 폭삭 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큰 아들은 골드러쉬로 인한 인구집중과 도시건설의 필요성을 일찍 예감하고 쌔크라멘토 도시 자체를 기본부터 계획하고 건설하는 일에 매진하여 막대한 돈을 벌었다.

 

싸터라는 이름은 여러 곳에 잔재로 남아 있다. , 병원, 음식점, 호텔, 학교, 마을 등을 싸터라고 이름 지었다. 싸터라는 개인을 빼고 캘리포니아의 역사와 현재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래는 Sutter's Fort의 갖가지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입니다.

싸터라는 사람이 순전히 개인적인 힘만으로 이런 정착촌을 만들고 운영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쌔크라멘토, 싸터, 캘리포니아 캐피탈, 골드러쉬,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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