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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놀이(jaeok9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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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모음
03/03/20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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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싸움의 기록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잡고 개새끼 건방진 자식 하며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샤쓰를 찢어발기고 아버지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얼굴을 내리쳤지만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또 눈알을 부라리며 이 x발 놈아 비겁한 놈아 하며

아버지의 팔을 꺾었고 아버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

문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

마루로 다시 기어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

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

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

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 번 소리 질렀다

이 동네는 법도 없는 동네냐 법도 없어 법도 그러나

나의 팔은 죄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시장에서

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문 열어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

 

 

그해 가을

 

그해 가을 나는 아무에게도 편지 보내지 않았지만

늙어 군인 간 친구의 편지 몇 통을 받았다 세상 나무들은

어김없이 동시에 물들었고 풀빛을 지우며 집들은 언덕을

뻗어나가 하늘에 이르렀다 그해 가을 제주산 5년생 말은

제 주인에게 대드는 자가용 운전사를 물어뜯었고 어느

유명 작가는 남미기행문을 연재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여기 계실 줄 몰랐어요

그해 가을 소꿉장난은 국산영화보다 시들했으며 길게

하품하는 입은 더 깊고 울창했다 깃발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말뚝처럼 사람들은 든든하게 박혔지만 햄머

휘두르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모래내 앞

샛강에 젊은 뱀장어가 떠오를 때 파헤쳐진 샛강도 둥둥

떠올랐고 고가도로 공사장의 한 사내는 새 깃털과 같은

속도로 떨어져내렸다 그해 가을 개들이 털갈이할 때

지난여름 번데기 사 먹고 죽은 아이들의 어머니는 후미진

골목길을 서성이고 실성한 늙은이와 천부의 백치는

인골로 만든 피리를 불며 밀교승이 되어 돌아왔고 내가

만날 시간을 정하려 할 때 그 여자는 침을 뱉고 돌아섰다

아버지, 새벽에 나가 꿈속에 돌아오던 아버지,

여기 묻혀 있을 줄이야

그해 가을 나는 세상에서 재미 못 봤다는 투의 말버릇은

버리기로 결심했지만 이 결심도 농담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떨어진 은행잎이나 나둥그러진 매미를 주워

성냥갑 속에 모아두고 나도 누이도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 그해 가을 나는 어떤 가을도 그해의 것이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것도 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비하시키지도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그해 가을 나는 살아 온 날들과 살아 갈 날들을 다 살아

버렸지만 벽에 맺힌 물방울 같은 또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가 흩어지기 전까지 세상 모든 눈들이 감기지

않을 것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이

이장을 끝내고 소풍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 아버지…… xx,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해 가을. 가면 뒤의 얼굴은 가면이었다

 

 

1959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봄은 오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는

채 꽃 피기 전에 아주 작은 열매를 맺고

不姙의 살구나무는 시들어 갔다

소년들의 性器에는 까닭없이 고름이 흐르고

의사들은 아프리카까지 移民을 떠났다 우리는

유학 가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얻어 먹거나

이차 대전 때 南洋으로 징용 간 삼촌에게서

뜻밖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놀라움도 우리를 無氣力不感症으로부터

불러내지 못했고 다만, 그 전해에 비해

약간 더 화려하게 절망적인 우리의 습관을

修飾했을 뿐 아무 것도 追憶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살아 있고 여동생은 발랄하지만

그들의 기쁨은 소리 없이 내 구둣발에 짓이겨

지거나 이미 파리채 밑에 으깨어져 있었고

春畵를 볼 때마다 부패한 채 떠올라 왔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되어도

우리는 봄이 아닌 倫理와 사이비 學說

싸우고 있었다 오지 않는 봄이어야 했기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監獄으로 자진해 갔다

 

 

그날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어느 날 갑자기 망치는 못을 박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벼는 잠들지

못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재벌의 아들과 고관의 딸이 결혼하고 내 아버지는

예고 없이 해고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새는 갓 낳은 제 새끼를 쪼아 먹고

캬바레에서 춤추던 유부녀들 얼굴 가린 채 줄줄이 끌려나오고 어느 날

갑자기 내 친구들은 고시에 합격하거나 문단에 데뷔하거나 미국으로

발령을 받는다 어느 날 갑자기 벽돌을 나르던 조랑말이 왼쪽 뒷다리를

삐고 과로한 운전수는 달리는 버스 핸들 앞에서 졸도한다

어느 날 갑자기 미류나무는 뿌리 채 뽑히고 선생은 생선이 되고 아이들은

발랑 까지고 어떤 노래는 금지되고 어떤 사람은 수상해지고 고양이 새끼는

이빨을 드러 낸다 어느 날 갑자기 꽃잎은 발톱으로 변하고 

처녀는 양로원으로 가고 엽기 살인범은 불심 검문에서 체포되고 

어느 날 갑자기 괘종시계는 멎고 내 아버지는 오른팔을 못 쓰고 수도꼭지는 헛돈다

어느 날 갑자기 여드름투성이 소년은 풀 먹인 군복을 입고 돌아오고

조울증의 사내는 종적을 감추고 어느 날 갑자기 일흔이 넘은 노파의 배에서

돌덩이 같은 태아가 꺼내지고 죽은 줄만 알았던 삼촌이 사할린에서 편지를

보내 온다 어느 날 갑자기, 갑자기 옆집 아이가 트럭에 깔리고 축대와 뚝에

금이 가고 월급이 오르고 바짓단이 튿어지고 연꽃이 피고 갑자기,

한약방 주인은 국회의원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갑자기 장님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갑자기, ×이 서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주민증을 잃고 주소와 생년월일을 까먹고 갑자기,

왜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풀섶 아래 돌쩌귀를 들치면 얼마나 많은 불개미들이

꼬물거리며 죽은 지렁이를 갉아먹고 얼마나 많은 하얀 개미알들이 꿈꾸며

흙 한점 묻지 않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지

 

 

정든 유곽에서

 

1

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음악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잡초 돋아나는데, 그 남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목단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의 잠, 한잔도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벌목

당한 여자의 반복되는 임종, 병을 돌보전

청춘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의 신체를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일본인가, 일식(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 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 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전쟁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사명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생진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조국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의 별

 

 

다시, 정든 유곽에서

 

1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냐

우리의 하품하는 입은 세상보다 넓고

우리의 저주는 십자가보다 날카롭게 하늘을 찌른다

우리의 행복은 일류 학교 뱃지를 달고 일류 양장점에서

재단되지만 우리의 절망은 지하도 입구에 앉아 동전

떨어질 때마다 굽실거리는 것이니 밤마다

손은 를 더듬고 가랑이는 병약한 아이들을 부르며

소리 없이 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우리는 누구냐

우리의 후회는 난잡한 술집, 손님들처럼 붐비고

밤마다 우리의 꿈은 얼어붙은 벌판에서 높은 송전탑처럼

떨고 있으니 날들이여, 정처 없는 날들이여 쏟아 부어라

농담과 환멸의 꺼지지 않는 불덩이를 廢車의 유리창 같은

우리의 입에 말하게 하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2

철든 그날부터 변은 변소에서 보지만 마음은 늘 변 본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명절날 고운 옷 입은 채 뒹굴고 웃고 연애하고......

우리는 정든 마굿간을 떠나지 못하고

 

무덤 속에 파랑새를 키우고 잡아 먹고

무덤 위에 애들을 태우고 소풍 나간다 빨리 달린다

참 구경 좋다 때때로

 

스캔들이 터진다 이 등등한 늙은이가

의붓딸을 하고 습기 찬 어느날 밤 新婚夫婦

연탄 가스로 죽는다 알몸으로, 그 참 구경 좋다

 

철든 그날부터 변은 변소에서 보지만 마음은 늘 변 본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악에 받친 소년들은 소주 병을 깨고 제 팔뚝을 그어도......

여전히 꿈에 부푼 식모애들은 때로, 私生兒를 낳지만

언젠가, 언젠가도 정든 마굿간에서 한 발자국, 떼어 놓기를 우리는 겁내며

 

3

우리는 살아 있다 살아 손가락을 발바닥으로 짓이긴다

우리는 살아 있다 살아 애써 모은 돈을 인기인과 모리배들에게 헌납한다

우리의 욕망은 백화점에서 전시되고 고층 빌딩 아래 파묻히기도 하며

우리가 죽어도 변함 없는 좌우명 인내! 도대체 어떤 사내가

새와 짐승과 나비를 만들고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제 7일에

휴식하는가 새는 왜 울고 짐승은 무얼 믿고 뛰놀며 나비는

어찌 그리 고운 무늬를 자랑하는가 무슨 낙으로 남자는 여자를 끌어안고

엉거주춤 죽음을 만드는가 우리는 살아 있다 정다운 무덤에서 종소리,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후회, 후회, 후회의 종소리가 그칠 때까지

 

4

때로 우리는 듣는다 텃밭에서 올라오는

노오란 파의 목소리 때로 우리는 본다

앞서 가는 사내의 삐져 나온 머리칼 하나가

가리키는 方向을 무슨 소린지 어떻게,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안다 우리가

잘못 살고 있음을 때로 눈이 내린다

참회의 전날 밤 무릎까지 쌓이는 표백된 記憶

이내 질퍼덕거리며 낡은 구두를 적시지만

때로 우리는 그리워한다 힘 없는 눈송이의

모질고 앙칼진 이빨을 때로 하염없이 떨리는

들은 보여 준다 개죽음을 노래하는 지겹고

숨막히는 행진을 밤마다 공장 굴뚝들은

거세고 몽롱한 사랑으로 별길을 가로막지만

안다 우리들 의 이미지는 우리만틈 허약함을

안다 알고 있다 아버지 허리를 잡고 새끼들의

손을 쥐고 이 줄이 언젠 끝나는지 뭣하러 줄

서는지 모르고 있음을

 

5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낡은 구두에 묻은 눈 몇 송이

우리가 부를 수 있는 것은 마음 속에 항시 머무는 먹장구름

우리가 예감할 수 있는 것은 더럽힌 핏줄 더럽힌 자식

兵車는 항시 밥상을 에워싸고 떠나지 않고 꿈틀거리는 것은, 물결치는 것은

무거운 솜이불 아, 이 겨울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안개 낀 길을 따라 무더기로 지워지는 나무들

우리의 후회는 눈 쌓인 벌판처럼 끝없고 우리의 피로는

죽음에 닿는 한 끼도 거름 없이 고통은 우리의 배를

채우고 담배불로 지져도, 얼음판에 비벼도 안 꺼지는 욕정

寶石香料로 항문을 채우고서 아, 이 겨울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잠 깬 뒤의 하품, 물 마신 뒤의 목마름

갈 수 있을까

 

언제는 몸도

마음도

 

안 아픈 나라로

 

귓속에

 

복숭아꽃 피고

 

노래가

 

마음이 되는

 

나라로

 

갈 수 있을까

 

어지러움이

 

맑은 물

 

흐르고

 

흐르는 물따라

 

不具의 팔다리가

 

흐르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죽은 사람도 일어나

 

따뜻한 마음 한잔

 

권하는 나라로

 

, 갈 수 있을까

 

언제는

 

몸도

 

마음도

 

안 아픈

 

나라로

 

6

그리고 어느 날 첫사랑이 불어 닥친다

그리고 어느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온다

무더진 담벽, 늘어진 꿈과 삐죽 솟은

가뿐히 타넘고 온다 아직 눈 덮인 텃밭에는

싱싱한 파가 자라나고 동네 아이들은

지붕 위에 올라가 연을 날린다 땅에 깔린다

노래는 땅에 스민다 그리고 어느 날 집들이

하늘로 떠오르고 고운 바람에 실려 우리는

멀리 간다 창가에 서서 빨리 바뀌는

風景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상상도 못할 졸렬한 인간들을 그곳에서

만났다고......그리고 어느날 다시 흙구덩이 속에

추락할 것이다 뱃가죽으로 기어갈 것이다

사랑해, 라고 중얼거리며 서로 모가지를 물어

뜯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 것도 다시는

불어닥치지 않고 기다림만 남아 흐를 것이다

 

 

모래내, 1978

 

1

하늘 한 곳에서 어머니는 늘 아팠다

밤 으슥하도록 전화하고 깨자마자

누이는 또 전화했다 혼수婚姻날이 멀지 않은 거다

눈 감으면 노란 꽃들이 머리 끝까지 흔들리고

시간은 모래 언덕처럼 흘러내렸다

, 잤다 잠 속에서 다시 잤다

보았다, 달려드는, 눈 속으로, 트럭, 거대한

 

무서워요 어머니

-얘야 나는 아프단다

 

2

어제는 먼지 앉은 기왓장에

하늘색을 칠하고

오늘 저녁 누이의 결혼 얘기를 듣는다

꿈 속인 듯 멀리 화곡동 불빛이

흔들린다 꿈 속인 듯 아득히 기적이 울고

웃음 소리에 놀란 그림자 벽에 춤춘다

노새야, 노새야 빨리 오렴

어린 날의 내가 스물여덟 살의 나를 끌고 간다

산 넘고 물 건너 간다 노새야, 멀리 가야 해

 

3

거기서 너는 살았다 선량한 아버지와

볏짚단 같은 어머니, 티밥같이 웃는 누이와 함께

거기서 너는 살았다 기차 소리 목에 걸고

흔들리는 무우꽃 꺾어 깡통에 꽂고 오래 너는 살았다

더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연히 스치는 질문-새는 어떻게 집을 짓는가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풀잎도 잠을 자는가

대답하지 못했지만 너는 거기서 살았다 붉게 물들어

담벽을 타고 오르며 동네 아이들 노래 속에 가라앉으며

그리고 어느날 너는 집을 비워 줘야 했다 트럭이

오고 세간을 싣고 여러번 너는 뒤돌아 보아야 했다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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