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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설
01/04/201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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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설  -  양주동(梁柱東)  

   백 사람이 앉아 즐기는 중에 혹 한 사람이 모퉁이를 향하여 한숨지으면 다들 마음이 언짢아지고, 그와 반대로 여러 사람이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어느 한 사람의 화창한 웃음을 대하면 금시 모두 기분이 명랑해짐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웃음'에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란  공리적인 속담이 있고,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타산적인 잠언도 있고, 또 누구의 말인지는 잊었으나 '웃음은 인생의 꽃'이라는 사뭇 시적인 표어도 있다. 사람과 동물과의 구별이 연모사용 여부에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거니와, 그것보다 차라리 '웃음의 능부'에 달렸다(소가 웃음이 약간 문제이나) 함이 더 문학적이라 할까. 또한 문학이나 정치의 요(要)는 결국 전자는 독자로 하여금 입가에 은근한 회심의 미소를 발하게 하고, 후자는 민중으로 하여금 얼굴에 명랑한 안도의 웃음을 띠게 함에 있다 하면 어떠할까.

  '웃음'의 능력 ― 그 양과 질에 있어서 나는 선천적으로, 또는 여간한 '수양'의 덕으로 남보다 좀더 은혜를 받았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우리 겨레가 워낙 옛날부터 하늘만 쳐다보는 낙천적인 농업 국민으로서 좋은 일에나 궂은 일에나 노상 '웃음'을 띠는 갸륵한 민족성을 가졌거니와, 나는 그러한 겨레의 후예로서도 특히 풍요한 '웃음'을 더 많이 물려받아, 내 자신 웃기를 무척 좋아하고, 또한 남이 웃는 것을 사뭇 즐기고 축복하는 자이다. 그것도 결코 '조소(嘲笑)'나 '빈소(嚬笑)'나 '첨소(諂笑)'나 '고소(苦笑)'가 아닌―작으면 '미소(微笑)', 크면 '가가대소(訶訶大笑)', 어디까지나 '해해·호호' 류(流)가 아닌, 당당한 '하하·허허' 식의 무릇 남성적인, 쾌활·명랑하고 솔직한 웃음인 것이다.

  이러한 나의 '웃음'이고 보매, 결코 남에게 비웃음, 빈정 웃음, 또는 부자연·불성실한 웃음으로 오해 혹은 간주되어 비난받을 까닭은 없다. 하기는 극단의 독재 국가에서는 웃음의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애초부터 그것을 악의로 해석하여 형법 제 몇 조에 '웃음의 죄'를 규정할는지도 모르며, 고사(古史)를 정밀히 조사한다면, 동·서의 폭군으로서 신하의 무허가 웃음'을 일체 금지하여 무단히 이를 드러내어 웃는 자를 극형에 처한 예가 적지 않게 발견되리라.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내가 아는 '웃음의 죄'로서는 독재 국가나 폭군 치하의 그것 외에 시골 천진한 색시에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민요 시인의 단시(短詩)에 바로 '웃은 죄'라 제(題)한 한 편이 있지 않는가.

                 지름길을 묻길래
                 웃고 대답하고,
                 물 한 모금 달라기 웃고 떠 주었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산촌의 어느 집 며느리가 시냇가 버들나무 밑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마침 하이킹 온 젊은 대학생이 지나다가 길을 물었겄다. 쳐다보니, 제 어린 남편인 '노랑 대가리, 범벅 상투'와는 아주 딴판인 '핸섬 나이스 보이', 얼굴을 잠깐 붉혔다가 살며시 웃으며 여린 손끝으로 묻는 길을 가리켜 주고, 조그만 바가지에 정성스레 물을 떠서 두 손으로 받들어 드렸다. 이야기는 이뿐이었는데, 그 장면을 누가 어디서 본 사람이 있었던지, 색시가 젊은이와 남몰래 정을 주었다는 소문이 동리에 퍼져서 시어머니가 불러다 사실을 문초하니, 그녀가 공술(供述)하는 말…….

  이러한 정도의 '웃은 죄'라면 참으로 달가운 '오해(誤解)'요 '간주(看做)'이겠지마는, 나는 전술한 바와 같은 쾌할·솔직·자연스러운 당당한 남성적 '웃음'임데 불구하고 생애에 여러 번 남에게 '죄'를 당한 적이 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그런 얄굿은 경험은, 내 기억에 의하면 무릇 다음과 같은 세 번의 '케이스'가 있다.

  첫 번 일은 어려서 시골서 어느 상가에 갔더니, 상주가 '스틱'을 양손에 맞쥐고 서서 소위 '곡(哭)'을 하는데, 그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울음이 아니라 단조로운 '베이스'의 유장한 '노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조상을 받으며, 한편으로 부의금(賻儀金) 수입 상황을 집사자(執事者)에게 물어 보며, 또 가인(家人)들에게 잔일 기타 무엇을 지휘하며,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또 '아이고, 아이고', 끝날 줄 모르는 경음악이다. 내가 그것이 하도 우스워서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만당(滿堂)의 조객이 모두 침통한 얼굴로 묵묵히 앉아 있는 중에, 돌연히 '하하하하'―한자로 번역하자면 '가가대소(呵呵大笑)'를 그대로 발한 것이다. 그래 동리 늙은이에게 단단히 꾸중을 듣고 자리를 쫓겨나와 뒷산에 올라 또 한바탕 남은 웃음을 실컷 웃은 기억이 있다. 뒤에 문학서를 보다가 중국 진대(晉代)에도 완적(阮籍)·계강(稽康) 등이 이른바 청담자류(淸談者流)들이 이 비슷한 언동을 한 것을 알았고, 그 사상이 멀리 노장(老.莊)의 무리에 속함을 알았다.

  둘쨋번의 경험은 8·15 해방 직후, 그러니까 약 10여 년전, 한창 정치적·사회적으로 혼돈·다난하였던 시기. 아마 그 때 사상적으로 좌·우의 심각한 대립이 있고, 학계에도 '국대안(國大案)'이니 무어니 시끄러운 문제가 겹쳐서, 양편의 상황이 모두 '시리어스'하였던 때라 기억한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나가다가 길가에서 지우(知友) C군을 만났다. 내가 느닷없이 예의 쾌활한 웃음을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을 맞쥐지 않고 대뜸 하는 말―,

    "자네, 웃긴 왜 웃나?"
    "반가워서, 웃으면 안 되나?"
    "무엇이 좋아서 밤낮 싱글벙글 웃고 다니느냐 말야."

  대화는 이에 그쳤다. 그는 그 때 아마 그 국대안 찬·부(國大案贊.否) 어느 한 편에 심각한 관심을 걸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 내가 그저 책가방이나 들고 싱글벙글 웃고 다니는 것이 불성실, 내지 비학자적인 '태도'로 보여 사뭇 증오를 느꼈던 모양이다. 그로서야 내 '웃음'이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지마는, 아침에 무심코 등교하다가 지우를 만나 반가운 인사로 쾌활히 웃는 나를 그다지 너무나 지나치게 시리어스하게 '평정(評定)'하여 백안(白眼)과 야유로 대하다니! 그의 논대로 따른다면, 애국자·사상인·혁명가 등등은 노상 '웃음'도 아니 웃는가? 때로 웃지도 못하는가? '웃음의 자유'도 없는가? 그의 벼락같이 대들던 '진지'한 태도와 창처럼 찌르던 날카로운 질문은 미상불 그 뒤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아니, 폐부 안에 깊이 남았었지마는, 나는 역시 나대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그리고 역시 시어머니에게 문초받는 촌색시와 함께 혼자서 전인(前引) '웃은 죄'란 민요시 한 절을 중얼거리며 읊조릴 수밖에.

  세 번째는 몇 해 전, 어느 현상(懸賞) 한시(漢詩) 백일장회에서. 몇 천 수(千首)나 모인 응모시를 책상 위에 놓고 여러 '시관(試官)'들이 고선(考選)하는데, 내가 왠 셈인지 흥이 나서 시권(試卷)들을 별불처럼 휘넘기며, 연신 "걸작이다! 낙방이다!" 외치며 곁에 있는 모 젊은 동관을 향하여 껄껄거리며 웃어댔겄다! 이것을 본, 나와 초면인 모 늙은 '시관감'이 문득 정색하고 나를 향하여,

  "여보! 모(某) 선생, 웃지 마시오!"

  물론 '시감(試監)'님의 뜻은, 선의로 해석하면, 내가 혹시 웃어 대며 경솔히 시권을 되는 대로 넘기다가 고선을 소흘히 하거나 잘못하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친절한 '파심(婆心)'이나 '기우(杞憂)'요, 또 어찌 보면 연소한 시관이 방약무인(傍若無人)으로 웃고 떠드는 것이 불쾌하거나 괘씸스러웠을 것이요, 또는 단순히 남들이 모두 조용히 무언 중에 고선을 하는데 자꾸 시끄럽게 웃어 대니 그 진지한 '사업'에 방해된다 하여서 그랬을 것이나, 나로서는 그의 '꾸중'이 자못 불쾌하게 들려서 또 한 번 더 크게 웃는 무례를 감행하고야 말았다. 깃동 철늦은 '백일장'이 대관절 무엇이며, 그까짓 고시(考試)가 모슨 그리 지난(至難)한 '사업'이며, 시관 내지 '시감'이 또 무슨 그리 높·귀한 '지위'이길래 '웃음'조차 일체 금단(禁斷)되어야 하며 '웃음 금지령'을 발하는가 하는 심사이었다. 물론 나는 뒤에 그의 명령대로 '웃음'을 꾹 참고 그 거창한 '사업'에 웃음의 자유도 없이, 또 보수도 없이(고시료는 없었다) 묵묵히 종사할 만한 아량과 수양을 가졌었느나, 그 노(老)선비의 "웃지 마시오!"란 한 말씀은 여러 가지 의미로 나를 두어 밤 불면증에 빠뜨렸다.

  상기 '웃음의 죄' 세 건에 있어서 나는 어지간히 '웃음의 자유'와 그 '무죄성'을 역설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권(笑權)' 옹호론자인 나로서도 코웃음, 알랑웃음, 더구나 조조(曺操)·이임보(李林甫) 류의 간소(奸笑·검소(劍笑) 따위는 단언 증오·거척(拒斥)함이 물론이요, 한 걸음 나아가 일체의 작위(作爲)·허구(虛構)의 웃음―기실 '웃음 아닌 웃음'에 대하여는 결정적으로 '보이콧'의 태도로 임함이 나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 중에도 두드러진 한 가지 예는―맘 속에는 모두 딴 생각, 딴 배짱으로 서로 해칠 적대적인 의사를 품고도 한 자리에 모여 앉으면 사뭇 형제―지기(知己)인 양 '하하―허허―호호―후후' 내지 '흐흐―히히―해해―헤헤' 또는 급기야 '하하―히히' 등 우리말 후기음(喉氣音) 한 자음에 온갖 모음을 모조리 돌려 가며 배합―발음하여서, 드디어 시비(是非)―곡직(曲直)―선악―흑백을 모두 뒤범벅으로 섞어 반죽하고, 간물(奸物)―호걸, 소인―군자를 뽀얗게 분간치 못하도록 애매한 '웃음'으로써 모든 '사실'을 호도(糊塗)·미봉(彌縫)하려는, 소위 당좌적(當座的)·사교적인 '떼거리 웃음'을 일삼는 일이다.

   이 풍습은, 내가 알기에는 요즘 문단·학계·정치·사회 온갖 계층을 휩쓸고 있거니와, 그 유래는 이 겨레에 있어서 그리 오랜 것은 아니나 어떻든 전통적인 듯싶다. 왜냐 하면 이러한 '풍습'이 진작 한양조 후엽 사색 당쟁의 와중에 있던 상류 사회에서 남상(濫觴), 유행되었기 때문이다.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誌)] 중 '인심조(人心條)'에서 그는 당시 경향 '사대부' 간의 사색분파의 '괴패상(乖敗相)'을 통론(痛論)하면서 특히 이 유풍(流風)에 언급하고 있다. 다음 그 주요한 몇 단을 인용한다.

  무릇 사대부가 있는 곳에 인심이 모두 피패하여서…… 붕당(朋黨)을 세워 패거리를 만들고 권리를 벌여 백성들을 침노하며, 이미 제 행실을 단속지 못하매 남이 자기를 의논할까 싫어하여 다 저 혼자 한쪽에서 전체하기를 좋아한다.……조정에서는 노론…소론…남인 세 '색'의 원수가 날로 깊어 심지어 역명을 덮씌우며…… 사대부의 인품이 높낮음이 다만 자기 '색' 중에만 행세되고 다른 '색'에는 통용되지 않아, 갑색 사람이 울색에게 배척을 당하면 갑색에서는 더욱 그를 존중히 여기며, 울색도 마찬가지다. 또 그와 반대로 비록 극악의 죄가 있더라도 그가 일단 다른 '색'의 공격을 받으면 시비…곡적을 물론하고 떼를 지어 일어나 붙들어서 도리어 허물없는 사람을 만들며, 비록 훌륭한 행실이나 덕이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면 먼저 그 옳지 못한 점을 찾아낸다…….

  요즘에 와서는 네 '색'이 다 나와서 오직 벼슬만 취하는데……기를 쓰고 피투성이로 쌈하는 버릇은 전보다 좀 덜하여졌으나, 그런 풍속 중에 나른하고, 게으르고, 말씬말씬하고, 매끄러운 새 병을 더하여, 그 속마음은 워낙 다르면서도 밖으로 입에 나타낼 때에는 모두 한 '색'인 듯하다. 그래서 공석인 회합에 조정간(朝廷間)의 이야기가 나오면 일체 모난 말을 하지 않고 대답하기 어려우면 곧 익살과 웃음으로 얼버무려 버린다. 그러므로 상류 인사들이 모인 곳에는 오직 '당(堂)에 가득한 홍소(哄笑)가 들릴 뿐이로되, 정작 정치·법령·시책을 할 때에는 오직 이기(利己)만을 도모하고 참으로 나라를 근심하며 공공에 봉사하는 사람은 적다. 재상은 중용을 어질다 하고, 삼사(三司)는 말없음을 높다 하고, 외관(外官)은 청검(淸儉)함을 바보라 하여, 끝내는 모두 차츰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젖고 만 것이다.

  대저 천지가 생긴 이후 천하 만국 중에 인심이 괴패(乖敗)하고 타락하여 제 본성을 잃은 것이 지금 세상 같이 적이 없으니, 붕당(朋黨)의 병통이 이대로 나가 고침이 없다면, 과연 어떠한 세상이 될 것인가. ……슬픈 일이다.

   붕당(朋黨)의 폐(弊)를 논한 점이 이즈음의 시국과 비슷하여 자못 '타산의 돌'이 될 만도 하나, 내가 여기 이 긴 설을 인용한 주요한 목적은 그것에 있음이 아니라, 실은 인문(引文) 중간의 '만당 홍소(滿堂哄笑)'의 일절―곧 상인문(上引文) 중 내가 일부러 방점·권점(傍點圈點)을 더한 대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풍습은 지금이 또 당시보다 몇 배나 더 널리 유행하니, 원론자가 오늘날의 사회·문단 기타의 공사 회석에 참석한다면 그 소감이 과연 어떠할까.

   돌이켜 나는 본디 '사대부'도 아니요, 또한 공사 요직에도 있지 않은, 이른바 한낱 백면(白面)의 서생(書生)―더구나 몸에 지닌 작은 병양(病恙)과 게으른 천성 때문에 이즈음 워낙 공사·대소의 모임에 나가는 일이 적고, 따라서 그 '만당의 홍소'에 참가할 '영광'스러운 기회가 애초부터 드물거니와, 설령 정단·상계의 무슨 크나큰 잔치가 아닌 단순한 시인·묵객들의 조그마한 사석에서라도, 진지한 의논과 다툼이 있어야 할 곳에 모든 것을 '익살'과 '농담'과 '장난의 말'로써 호도·범벅하려는 '웃음'. 정체 모를 것은 비슷하나 그 의도가 본질적으로 다른 사이비 '모나리자의 웃음' 및 그것들과 병창(竝唱)되는―속살론 딴판인 것을 거죽으로만 허화(虛華)롭게 얼버무려 떠드는, 기실 텅 빈 '만당의 홍소'를 배청(拜聽)할 때에는, 나는 그만 일종의 면상키 어려운 '분노'에 휩쓸려, 나만은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웃음'을 잔인스럽게 압살(壓殺)하고 만다.

웃음설, 양주동, 명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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