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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강의 (2)-(9)
02/07/20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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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조 교수 금강경 강의) (2)

누구나 불교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 부재


왜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나서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불교에 관한 한 저는 아마추어입니다. 불교학생회나 수련회에도 나간 적이 없고, 불교에 관한 전문적 커리큘럼을 거친 적도 없으며, 더구나 염불이나 참선을 본격 수련해 깨달음이란 것을 얻은 바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불교를 아는 데는 그런 준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육조 혜능은 그런 정규 커리큘럼이나 경전 지식의 권위가 오히려 불교를 아는데 방해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다만 한 가지 조건만이 필요한데, 그건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없는 사람이 없으니 누구든 불교를 알 수 있고, 누구든 불교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돈교(頓敎)의 뜻입니다. 육조 혜능은 이 마음을 알고 닦는데 있어, 재사(在寺)와 재가(在家)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아마추어가 외람되이 나선 것은 전문가의 불교가 너무 어려워서입니다. 지금 불교는 너무 높고 험준해서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듭니다. 그런데다 그것을 말하는 전문가들의 말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가 버겁습니다. 이렇게 난해와 모호에 지친 사람들을 향해 이번에는 너무 격이 낮고 곁가지인 지루한 이야기들이 번지고 있습니다.


요컨대 한편에서는 한문 경전의 용어와 어투를 그대로 외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화두선을 중심에 세워 일상의 대화와 상식의 접근을 근본 차단하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가 이 소통의 부재입니다. 스님들과 재가 신도들 사이에도 그렇고, 불교학자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그렇습니다.

 

최근 그 틈을 메워보려는 노력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불교를 두고 대학에서의 강독이나 대중 상대의 문화강좌가 많이 생기고 있고, 사설 참선 단체들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런 벤처의 노력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절간에서도 최근에는 템플스테이를 정착시키고, 논강 등을 열어 대중과의 적극적 소통을 모색하게 된 것은 크게 고무적인 일입니다. 제 소견에, 참선지도나 템플스테이 등 실참 지도나 문화체험 등은 아주 훌륭하고 앞으로 한국불교의 큰 밑천이자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불성은 잊고 있던 옛 추억과 같은 것”


행입(行入)이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니, 제가 힘을 보탤 곳은 아무래도 이입(理入)쪽입니다. 저는 불교의 이치를 다루되, 그것도 ‘아주 낮게’, 어디까지나 일상의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설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너무 수준 높은 논의에, 옛 한문의 거친 어법을 견디느라 고생이 많았을 대중들에게 작은 위로와 이해의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강의를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불교가 너무 어렵다는 소문에 겁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불교가 가르치는 마음의 진실은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한걸음 더 내딛자면, 그 마음은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에 새삼 알 필요도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 구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새로이 알 수는 없습니다. 만일 안다면, 그것은 마군임에 틀림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상대방이 모르고 있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없습니다. 가르침이란 본시 내 속에 있던 어떤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켜 주는, 선가의 말을 빌면 지시(指示)일 뿐입니다. 그래서 옛 선지식들이 하나같이 “나는 네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의발을 찾아 천리 먼 길을 쫓아온 혜명에게 육조 혜능 스님은 분명히 일렀습니다. “비밀은 이미 너에게 있다.”


저는 이런 비유를 들곤 합니다. “마음의 소식은 흡사 방 한 구석에 먼지 덮여 있는 어릴 때의 장난감 같은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그것을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시선은 세상사는 일에 고착되어 있어, 한때 순수한 기쁨이었던 그 물건을 더 이상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장난감은 늘 그곳에 있었다. 아련한 향수가 밀려들거나, 누군가가 일깨워줄 때, 그는 거기 그 장난감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된다. 우리의 불성 또한 그와 같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그 비밀은 우리 자신에게 미리 알려져 있는 것들입니다. 혜능 스님의 권위를 빌리면, “보리 반야의 지혜는 본래 세인들에게 갖추어져 있습니다(菩提般若之智 世人本自有之).” 저는 불교가 노리고 있는 그 지식이, 비록 비밀스럽다고들 말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특별한 오랜 수련을 통해, 그동안 꿈도 꾸어보지 못한 어떤 것들이 비로소 완전히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깨달음은 우리에게 언제나 알려져 있습니다. 그 깨달음은 마음의 밝음으로서, 욕망과 분노와 무지의 먹구름 틈 사이에서 늘 빛나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깨달음 이후 지속적 실천 과정이 중요


저는 그것을 일별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심에 찌든 마음이 잠시 숨을 죽이고, 자비와 동정과 기쁨과 공정함 등의 무량한 네 마음들이 문득 피어날 때, 저녁 고요 속에서 들뜬 마음을 참선을 통해 가라앉히고, 그날 지은 죄가 무겁게 가슴을 치며 참회하는 마음이 먹먹히 일 때, 그때 우리 마음의 본래의 빛이 환하게 떠올라 옵니다. 문제는 그 마음의 빛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깊은 평화와 만족 속에서 더욱 더 선명하고 뚜렷하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돈오점수(頓悟漸修) 쪽에 기웁니다. 돈오(頓悟)는 쉬운데 정말 점수(漸修)가 어렵습니다. 불교의 이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되, 그 이치를 진정 믿기가 어렵고, 또한 그 가르침대로 살기가 어렵습니다. 돈오를 이렇게 가볍게(?) 해석하는데 대해 눈을 흘기시는 분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방패막이 삼자면, 이 또한 제 독단이나 창안이 아니라 옛적 지눌 스님께서 돈오를 해석하신 그대로입니다. 스님은 돈오란 다름 아니라 “마음의 실상에 대한 지적(知的) 이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돈오(頓悟)를 살아가는 것이 점수에 속합니다. 그것은 끝이 없는 심화와 지속의 실천적 과정입니다. 깨달음 한 번에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마치겠다는 턱없는 과욕과 오만을 버리십시오. 그럴 수는 천만 없습니다. 술과 고기를 마음대로 먹는 경허 대사께 진응 스님이 그 방광색의 연유를 묻자, 대사께서는 천연스레 옛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돈오했으니 나 이제 부처와 같지만, 다생의 습기가 깊어서... 바람은 멎었으나 물결은 아직 일렁이고, 진리를 알았지만 상념과 정념이 여전히 침노한다(頓悟雖同佛,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요컨 대 불교의 이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하등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이 연재는 불교에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여는 괜한 야단에 법석입니다. 팔만 사천 법문이 그런 점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어느 이야기를 골라볼까 하다가 <금강경>을 골랐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 그러면서도 가장 알고 싶은 이야기가 이 <금강경>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형조 교수 금강경 공부) (3)

왜 <금강경>을 골랐나

 

선의 소의경전, 혹은 교와 선의 접점


<금강경>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경전입니다. 조계사 근처를 오가는 길에, 혹은 문득 들른 산사에서, 불교신도라면 불교방송에서 새벽을 열고 밤을 닫을 때 유장하고 낭랑하게 울리는 이 경전의 독송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적, 잠결에 어머님이 새벽마다 예불하며 낮게 읊조리는 이 경전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때는 내용을 전혀 몰랐지요. 무슨 주문처럼 기이하고 낯설어서 거 좀 그만하시라고 어머님께 역정을 내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 는 그때 짓궂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 그거 무슨 소린지나 알고 따라하는 거유?” 이런 당돌하고 불경스런 질문에 어머님은 정색을 하고 자리를 고쳐 잡으며 일장 법문을 펼쳐놓으시곤 했습니다. 어머님은 <금강경>의 이름으로, 다니던 절에서 듣던 스님들의 말씀, 이런 저런 책에서 읽은 지식, 당신의 삶에서 겪은 경험들이 뒤섞인 교훈적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어 린 마음에 저는 그게 좀 억지스럽고 견강부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금강경>의 문자는 대학을 나온 내가 뜯어보아도 모를 소리뿐인데, 어머님은 그 모든 세부 곡절을 무시하고, 전체를 휘몰아 “바로 이것이 <금강경>”이라고 단정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압니다. “아하, 그 총지(摠持)가 진정 <금강경>이었구나!”라고요.


그러니 문자를 몰라도 <금강경>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문자를 몰라야 <금강경>을 알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가에서 늘 말하듯이 말이죠. 둘 다 맞는 말이라면, 문자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 <금강경>을 알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방편적으로도 <금강경>은 문자를 ‘통한’ 불교와 문자를 ‘떠난’ 불교 사이에 걸쳐 있습니다. 교와 선의 접점이 바로 이 경전입니다. 이 경전이 대승의 중심이면서 선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선에 무슨 소의경전이 있는가 하는 분도 있겠군요. 불립문자라는데 말입니다. 선의 실질적 창시자인 육조 혜능은 주지하다시피 남방 벽지 시골에서 어느 스님이 지나가며 읊조리는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듣고 불법의 소식을 얻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그는 나중 <금강경>의 가장 빛나는 주석이면서 또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육조 구결(口訣)>을 남겼습니다.


그 첫머리에 그는 <금강경>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선이 깨닫고자 하는 핵심이 <금강경>에 잘 표명되어 있다는 말씀이겠습니다. 이 뜻을 조선의 선종에서도 받아들였습니다.

서 산대사께서는 “굳이 소의경전이 필요하겠느냐”고 썩 내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내치신 까닭이 선이 표방한 불립문자의 방법에 더욱 철저하자는 뜻이었지, <금강경>의 취지가 선의 목표와 어긋난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강의에서 문자를 ‘통해’ <금강경>에 접근하고자 합니다. 문자는 결국 쓰러뜨려야 하는 것이지만, 그 전에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 이해가 깊어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문자 밖에 서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금강경>이 과연 불교의 중심인가


누 가 이렇게 묻습니다. “<금강경>이 대승 중관의 대표이고, 또 선과 교의 접점이긴 하겠지만, 그것이 과연 불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 물음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불교의 중심이 무엇이냐에 대해 수많은 논란과 견해차가 있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팔만사천의 법문들이 시간적 순서를 따라, 학파의 발전에 따라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이 중구난방의 한역 경전들을 놓고, 그 가치와 위계를 따지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유행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천태와 화엄의 것이 유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구분을 그대로 따르지 않습니다.


영미어 권에서도 이 문제를 보는 시각과 판단이 제각각입니다. 원시불교에 초점을 두어 대승의 전통을 무시하는 사람, 대승 가운데서도 유식이 정통이라는 사람, 반야가 붓다의 관점을 가장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사람, 화엄이 불교적 깨달음의 최고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천태를 불교적 선교방편(善巧方便)의 모델이라고 말하는 사람, 정토야 말로 종교로서의 불교를 성립시키는 토대라고 말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교학을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어리석음”으로 쓸어버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직지인심(直指人心)을 통해 불교의 취지에 직접 닿겠다는 선의 주장이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원효 스님의 말씀처럼 불교는 능소능대, 한 마디로 끝낼 수도 있고, 팔만 사천 법문으로도 다할 수 없습니다. 근기와 인연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전과 방법을 골라야 합니다. 위의 분류와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의 성향과 근기에 맞는 방편을 찾아 나설 일입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설화적이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법화경>이나 <화엄경>이, 일상적이고 교훈적인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법구경>이나 <수타니파타>를 읽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꼼꼼하고 치밀한 사람들은 아비달마나 유식이 맞겠고, 직접적이고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의 문헌을 읽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잡담 제하고, 핵심만 추려, 불교의 체계와 골격을 알고 싶은 사람은 이를테면 <대승기신론>이 제격입니다. 이도 저도 번잡하고 곧바로 핵심에 닿겠다는 분들은 화두를 들 만합니다. 그러나 이 돈초가(頓超家)의 방법은 보통의 근기에 권할 사항은 아닙니다.


불교의 비밀 늘 삶 가까이에 존재


이 가운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경전은 <대승기신론>입니다. 다들 원효 스님의 소와 별기를 더 중시하지만 저는 그 짧고 간결한 대승기신론의 본문을 들여다보기를 더 좋아합니다. 낯선 구절이나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원효 스님의 주석과 스즈키의 영역을 참고로 들추어 봅니다. 처음에는 이 강좌를 <대승기신론>을 읽고 해설하는 자리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신문의 처음 공지도 그렇게 나갔습니다만, 결국 <금강경>으로 낙착시킨 것은, 이 경전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입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 친숙한, 그러면서도 낯설고 어려운 경전이 바로 <금강경>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제가 불교를 말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팔만사천의 법문을 모두 알아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십시오. 불교의 비밀은 여러분이 늘 말하는 그 익숙한 불교용어와, 늘 독송하는 사구게 속에 있습니다. 그 뻔한 구절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눈에 밟힐 듯 선명하게 다가올 때, 그때 여러분은 불교와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법문이란 누구나 아는 공이니, 무아니, 법계니, 사성제니를 우리네 삶의 구체적 정황 속에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겁먹지 마십시오. 저는 이 강의에서 여러분이 모르는 불교 용어나 수많은 주석의 주석들은 가급적 쓰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낮고 쉬운 언어로도 우리는 충분히 불교를 말할 수 있습니다.

 

 

(한형조 교수 금강경 강의) (4)

단연 빛나는 육조 혜능의 <금강경>구결

 

<대승기신론>의 한역(漢譯) 둘과 영역 둘


대장경 가운데 중요한 경전들은 두 번 이상 번역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대승기신론>이 그렇습니다. 6세기의 진제(眞諦) 스님이 해 놓은 것과 8세기 실차난타가 해 놓은 것, 두 개가 있는데요, 7세기에 살았던 원효 스님은 당연히 첫 번째 진제의 역본을 두고 여러 번 주석을 가했습니다. 지금은 소와 별기만 남아 있습니다.


영역은 나중 실차난타의 것이 먼저 되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쯔가 실차난타의 번역을 토대로 1900년에 처음 이 경전을 영역한 이후, 여러명이 영역에 손을 댔습니다. 지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하케다 요시토가 1967년대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출판한 것인데요, 대본부터 진제의 것을 택하는 등, 스즈키의 작업과 차별화하려고 여러모로 애를 썼습니다. 스타일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스즈키가 <대승기신론>의 취지에 초점을 둔 개성적이고 자유로운 문체를 구사하는데 비해, 하케다는 경전의 ‘문자’에 보다 충실해 어색한 표현이나 불분명한 대목을 그냥 감수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저는 스즈키의 번역을 더 좋아합니다. 한역은 둘 다를 좋아하는데요, 두 판본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에 투덜거리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거기에 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편차와 어긋남이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여 <대승기신론>을 더 분명하고 풍부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선택한 구마라습의 <금강경>


이 야기가 곁으로 흘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으려는 <금강경>은 두 번도 아니고, 무려 여섯 번이나 다시, 거듭 번역되었습니다. 이 횟수가 이 경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관 반야의 대가인 에드워드 콘즈는 이렇게 찬탄하고 있습니다.

“반야 바라밀다 문헌은, 기원전 100년에서 기원후 600년 사이에 걸쳐 인도에서 이루어진, 38개의 서로 다른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국 일본 티벳 몽고의 불교도들은 30세대에 걸친 판단으로 이 가운데서 둘을 골라냈습니다. 성스러운 중에도 가장 성스러운 둘,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둘 다 아마 기원후 4세기쯤에 성립된 듯합니다. 처음 것은 산스크리트어로 <바즈라 체디카 프라즈나 파라미타Vajra cchedika Prajnaparamita>, 즉 ‘벼락처럼 짜르는 지혜의 완성’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나중 것은 지혜의 완성의 심장, 핵심, 정수를 정식화하려는 시도로, 티벳의 라마사원에서 일본의 선방에까지 힘써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수지 독송하는 판본은 아이러니칼하게도 맨 처음에 번역한 것, 즉 A.D. 402년에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번역은 나중 것이 처음의 실수도 고치고, 표현도 가다듬고 해서 처음보다 훨씬 좋아지고, 이렇게 좋아진 업그레이드판을 대중들이 선호하는 법인데, <금강경>의 경우는 오히려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저 는 다섯 번째 번역에 해당하는, 7세기 중엽 삼장법사 현장의 번역본을 대강 훑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번역이 영 딱딱하고 전문적이었습니다. 정확한 불교를 알기 위해 인도까지 목숨을 건 여행을 다녀온 사람답게, 현장의 <금강경> 번역은 어디까지나 원문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읽기 힘든 번역을 만들었고, 결국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지금 다른 외국어, 가령 영어문장을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면 의미의 왜곡은 최소화하겠지만, 읽기에는 아무래도 거칠고 불편한 글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럴 땐 참고 읽기도 하지만, 아차 책을 잘못 샀다 싶어 후회하게도 됩니다.


구마라습의 번역은 이방인인 중국의 독자를 우선 배려한 번역입니다. 그래서 정확성보다는 이해와 소통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구마라습은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인도어를 한문으로 옮기는 것, 그것은 흡사 엄마가 갓난애를 위해 밥을 씹어 먹여 주는 일과 같다.” 아무리 음식이 기름져도 그것을 ‘소화’시킬 수 없다면 음식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금강경>을 중국인들에게 ‘소화’시켜 주기 위해서는 맛과 풍미, 즉 경전의 정확성을 어느 정도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배려,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 그의 번역을 1500년 너머, 후발 다섯 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만세의 표준 번역으로 우뚝 서게 했습니다. 지금의 한국 불교는 이 구마라습의 번역 정신을 깊이 벤치마킹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강경>의 五家解 가운데 단연 빛나는 육조 혜능의 구결


그 래도 <금강경>은 읽기 힘듭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옛적 대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을 씹어 대중들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혜능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이미 800가에 이르는 해석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의 주석까지 합하면 한우충동(汗牛充棟), 그 볼륨이 작은 도서관을 채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개장(開張) 다음에는 촬략(撮略)이라, 그렇게 주석이 많아지면 또 골라내는 손이 개입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가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 다섯을 골랐습니다. 필자들은 쌍림 부대사, 육조 혜능, 규봉 종밀, 야부도천, 예장 종경으로, 각기 일세를 풍미한 선장(禪匠)들입니다. 조선조의 건립 초기 함허득통이라는 스님이 이 선집의 틀린 글자를 바로잡고 자신의 해설을 덧붙여 간행했는데, 이것이 지금 <금강경>의 유통본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금강경오가해>입니다.


다들 생각이 다르시겠지만, 저는 그 가운데서도 단연 육조 혜능의 구결(口訣)을 꼽습니다. 스님의 <금강경 구결>은 불교에의 접근을 가로막는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용어들을 배제하고, <금강경>의 취지를 우리네 ‘마음’의 실제와 구체적으로 연관된 지평 위에서 깨우쳐 주고 있는 과시 걸작입니다.


이어질 제 강의는 <금강경>을 두고, 불교 안과 밖에서 제가 들은 이야기들, 때로는 모르는 이야기까지 흩어 놓겠지만, 주석이 필요할 때는 육조 혜능 스님의 친절에 기대겠다는 말씀을 미리 드려둡니다. 한 사람을 더 꼽으라면 <금강경>의 취지를 격외의 시(詩)로 부수어 나간 야부도천을 꼽겠습니다. 제 이야기가 늘어지고 지루하여 조는 분들이 많다 싶을 때, 가끔 그의 시를 불각시의 얼음조각처럼 등 뒤에 넣어 드리겠습니다.


제 가 갖고 있는 <금강경오가해>는 경서원에서 10년 전에 영인한 목판본입니다. 이 책을 발견하고는, 누가 집어갈세라, 얼른 두 권을 샀습니다. 한 권에는 내키는 대로 밑줄과 노트가 그려져 있고, 다른 한 권은 고이 모셔 두었습니다. 아, 이 책을 꼭 구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유용하기는 오히려 한글 번역이 붙은 <금강경오가해>일 것이니, 하나쯤, 가령 무비 스님의 <금강경오가해>를 구해 곁에 두시면 좋겠다 싶습니다.



(한형조 교수 금강경 강의) (5)

금강(金剛), 다이아몬드 혹은 벼락에 대하여

 

제가 쓰는 글이, 단도직입,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창 뜸을 들이거나, 괜스레 에두른다는 핀잔을 자주 듣습니다. 선사(禪師)인 함허가 <금강경>의 주석을 모으고, 거기다가 자신의 장황한 해설(說誼)까지 덧붙이는 그 지극히 반정통적(?) 작업을 두고, 한 말씀 더 해 두려다가, 나중으로 미루고, 그만 <금강경>의 세계로 들어갈까 합니다.


당장 마주치는 것이 제목입니다. 제목의 뜻부터 살펴보겠는데, 그런데 사실이지 제일 어려운 곳이 이곳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제목의 짧은 몇 마디에는 경전의 전 내용과 취지가 압축 파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보고, 아하, 하는 사람은 더 이상 경전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목을 알기 위해서는 본문을 더듬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책을 펴면 본문부터 코를 박습니다. 그러나 때로 본문을 일일이 더듬어 놓고도 제목의 취지가 사무치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아직 책을 충분하고도 완전히 읽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어려운 책일수록 그렇습니다. 저는 해설서들이 서문이나 개요에서 이 지점을 적절히 찌르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아서, 저자의 안목과 책의 가치를 따져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 또한 원효 스님이 <대승기신론소>에서 지적하듯, ‘잎을 따느라 줄기를 놓치는(把葉而亡幹)’ 우를 범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승이 기신한다?


지난해 원효 스님의 저술 영역 사업의 중간보고를 겸한 학술발표가 있었습니다. 아니, 지지난해 11월이군요. 뉴욕 스토니부룩의 박성배 교수님께서 하신 일갈, 사자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씀인즉슨, 수많은 석학 교수들과 스님 선지식들이 원효 스님의 <대승기신론>을 해석하고 해설해 왔는데, 정작 ‘대승(大乘)’이 무엇인지를, 그 당체(當體)를 아무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마추어라 반쯤만 얼굴이 따가웠는데,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신 분들이 많았을 것으로 압니다. 역시 근본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 말이 나온 김에 외람되이 한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박 교수님께서는 이어, 그 ‘대승’의 진면목을 ‘깨닫는’ 정도로는 안 되고, ‘깨쳐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저는, 순전히 제 식으로, 아마도 지눌 스님이 말씀하신 해오(解悟)와 증오(證悟)의 간격을 강조하시나 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대승기신론>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달리, 파격적으로, “대승이 믿음을 일으킨다”로 읽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아마도, 대승기신을 “대승‘에 대한’ 믿음을 일으킨다”로 읽게 되면, 자연히 능소(能所), 즉 주관과 객관의 구분이 생기게 되고, 이것은 안팎도 너와 나도 없는 소식인 ‘깨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십분 고려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 딜레마의 해법으로 그분은 대승(大乘)과 기신(起信)을 체용(體用)으로, 다시 말하면 기신을 대승이라는 본체의 ‘자연적 활동’으로 읽으셨습니다. 이 해석은 그러나, 용서하십시오, 후학의 눈에는 정말 지나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석하시면, ‘논(論)’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대승이 ‘중생들의 마음’이라고는 하나, 다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생사(生死)의 바다를 부침 윤회하고 있기에, 그 진실을 일깨우고 믿음을 증장(增長)시켜 주기 위해 이 ‘논’이 있게 된 것입니다.


원 효 스님 자신이 분명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논문에 의지하여 중생들의 믿음을 일으킨다(依此論文 起衆生信)”라고요. 박 교수님은 구경(究竟)에 초점을 맞추느라 <대승기신론>을 위시한 경전들이 갖고 있는 방편(方便)의 역할을 너무 도외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문제는 강의 도중 본격 다룰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금강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벼락을 가리킨다?


얘 기가 곁가지로 흘렀습니다. 제목과의 대결을 피해가지 말라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지요. <금강경>은 약칭이고, 정식명칭은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여기 능단(能斷)을 덧붙여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하기도 합니다. 제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금강’, ‘반야’, ‘바라밀’, ‘경’이 그것입니다. 첫 항목부터 차례차례 살펴보기로 합시다.


금강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는 <금강경>을 영역하면서 ‘Diamond Sutra’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 번역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다이아몬드를 다들 금강석(金剛石)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과시 금중최강(金中最剛), 무엇이든 부수지만, 그 자신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금강석의 속성이 지금 이 경전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금강이, 즉 산스크리트어의 ‘바즈라(Vajra)’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바즈라는 인드라 신이 갖고 다니는 무기인데, 이것은 다름 아닌 ‘벼락’을 의미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금강저(金剛杵)입니다. 이 물건을 한번씩 보신 적이 있을 줄 압니다. 손잡이 양끝에 예리한 칼날이 달려있는 방망이로, 둘레에 연꽃과 금강역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밀교에서 특히 중시한 의식용 도구인데, 지금도 호신부로 팔고 있습니다. 전재성 교수님의 대역본 <금강경>은 이 견해에 입각해 ‘번개처럼 자르는 지혜의 완성’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는 이 책 안에서 위대한 찬불시인이었던 마뜨릿체따가 금강을 두고 “무지의 어둠을 쫓아버리는 태양, 교만의 산맥을 부수는 인드라신의 무기”라고 읊은 노래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부수면서 동시에 세워야 한다


둘 가운데 어느 해석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둘 다 “일거에 깨뜨린다”는 속성을 갖고 있으니, 어느 편이냐를 굳이 따지지 말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러나 경전이 이들을 비유로 쓸 때, 단순히 ‘자른다’는 한 가지 특성에만 유의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이들의 다른 측면까지를 살펴야 합니다. ‘다이아몬드’와 ‘벼락’ 사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깨뜨리는 기능을 제하고도 남는 무엇이 있지요. 긁어 흠집 하나 가지 않는 값비싼 보석이고, 또 오랜 시간을 변하지 않는 빛과 광택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벼락은 칠흑의 어둠을 일거에 몰아내고, 고목을 한방에 박살내는 희유(稀有)한 기능을 발휘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순간적 일회적이고, 이윽고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 벼락으로는 집을 살 수도 밥을 사먹을 수도 없습니다.


제가 이런 억지를 부리고 지나치게 천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짐짓 원효 스님의 어법을 빌리자면, 불교는 ‘부수기’도 해야 하지만, ‘세우기’도 해야 합니다. 벼락은 부수는 쪽의 비유로는 적절하지만, 세우는 쪽의 비유로는 걸맞지 않습니다. 부수고 세우는 양면을 포괄하기로는 역시 ‘다이아몬드’가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 어원은 어떤지 몰라도, ‘한문 불교’의 전 번역과 주석이 금강을 ‘다이아몬드’로 읽고 해석해 나간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형조 교수 금강경 강의) (6)

불교는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금강이 이어지는 ‘반야’를 가리킨다는 거야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다음 강의에서, 그 반야가 대체 무엇인지, 어떤 점에서 금강의 특성을 갖고 있는지 차분히 짚어가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좀 다른 견해부터 살펴볼까 합니다. 혜능 스님은 이 ‘금강’이 가리키는 바가 ‘반야’라기보다 오히려 ‘불성’이라고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예 금강불성(金剛佛性)이라는 말씀까지 하십니다.


*금강이 불성을 가리킨다?


아, 이 새로운 견해에, 또 분별심을 내서 시비를 가리려는 분이 있군요. 둘은 서로 배치되지 않습니다. 다만 강조점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보기에는 불성 쪽이 반야보다 더 크고 포괄적이며 적극적 선택인 듯싶습니다. 포괄적이라 함은, 반야가 불성의 한 부분적 ‘기능’이라는 뜻에서이고, 적극적이라 함은, 반야가 ‘짜르는’ 부정적 기능에 주목한 말인데 비해, 불성은 자체 내의 ‘영속적’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혜능 스님도 구결의 서문에서 “佛性의 보물 가운데 지혜 공장(智慧 工匠)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도 많겠습니다. 근본적인 반론을 예상할 수 있는데요, 불성의 ‘건립’이 불교용어로 상견(常見)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가 본시 무아(無我)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자성(自性)이라는 그릇된 사고습성을 부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는데, 왜 또 뒷문으로 불성(佛性)이라는 것을 끌어들여 불교의 근본을 훼손하고 있느냐는 힐난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심각하게 전개되어 왔고, 또 일본에서 특히 비판불교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5세기 중엽 중관학파 안에서도 프라상기카와 스바탄트리카가 서로 갈라져, 인간의 이기적 판단과 상대적 인식에 대한 근본적 부정을 하고 난 다음에 과연 ‘무엇인가’ 적극적 가치가 남아있느냐를 두고 격렬하게 부딪쳤다는 것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는 단연 스바탄트리카의 견해에, 즉 인간의 삶에 희망이 있으며, 불교가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편에 기웁니다.


여러분, 불교는 결코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염세주의는 불교와 가장 멀리 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일러주기 위해서라도 혜능의 불성론(佛性論)이나, ?대승기신론?의 적극적 희망의 목소리가 더 뚜렷하게 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참에 말씀인데, 그동안 너무 불교가 ‘부정적’ 언사로 도배되어 있었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요새 젊은이들이 절간을 꺼리고 어려워하고 있다는데, 불교의 말과 절의 분위기에서 느끼는 어두운 색조가 한창 파릇하고 통통 튀는 그들에게 어필하지 못한데도 큰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반야의 칼날 vs. 불성의 봄바람


저는, 어느 편이냐 하면, ‘불성’쪽에 기웁니다. 실체화할 위험이 반야보다는 더 커 보이나, 반야가 갖고 있는 차가운 칼날의 이미지보다, 자기 존재의 긍정과 이웃을 향한 공동체적 자비의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는 불성쪽이 훨씬 낫고 눈물겹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설이 길었습니다. 혜능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기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그것을 지혜의 불로 제련하여, 세상에 다시 없는 부자가 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所冀, 學者同見 鑛中金性 以智慧火鎔煉, 鑛去金存. “바라건대, 모든 중생 수행자들이, 철광 더미 속에 금강이 있는 줄을 알아, 지혜의 불로 녹이고 제련하여, 잡된 쇠찌끼는 떨어내고, 순수 금강만 남기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인간 내부에 견고한 불성이,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견고한 불성을 위협하는 물건이 있으니, 바로 산양의 뿔, 영양각입니다. 스님은 “영양각이 금강을 깨듯이, 번뇌가 불성을 ‘흐트린다(亂)’”고 하십니다. 아마도 혜능 스님은, 금강이란 물건을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금중최강(金中最剛), 즉 ‘강철’같은 것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대개 짐승의 뿔은 단단하여 한약재로 쓸 때도 톱으로 썰어 쓴다고 하는데, 이 산양의 뿔은 그 중 단단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금강을 깨는 이 영양각은 다시 빈철(賓鐵)에 맞으면 부서집니다. 즉, 그렇게 단단하고 뿌리깊은 번뇌도 반야 지혜의 칼에 부서지고 그 불길에 녹는다는 말씀입니다. 스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봅시다.


*마음의 기적, 그 불가사의


“왜 이 경의 이름에 ‘금강반야바라밀’을 붙였는가. 금강은 세상에서 귀한 보물이다. 그 특성은 지극히 날카로와 온갖 물건을 다 부순다. 금강이 지극히 견고하다고는 하나 영양각이 깰 수 있다. 여기 금강은 ‘불성’에, 그리고 영양각은 ‘번뇌’에 비유된다. 요컨대 금강이 비록 견고하나, 영양각이 능히 부수고, 불성이 비록 견고하나, 번뇌가 능히 교란시킬 수 있다. 번뇌가 비록 견고하지만, 그러나 반야지가 능히 깨부술 수 있다. 이는 영양각이 비록 단단하나 빈철이 깨부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셋의 서로 물린) 이치를 깨닫는 자, 불성을 선명히 이해했다 하겠다.” (如來所說金剛般若波羅蜜, 與法爲名, 其意謂何. 以金剛世界之寶, 其性猛利, 能壞諸物. 金雖至堅, ?羊角能壞, 金剛喩佛性, ?羊角喩煩惱. 金雖堅剛, ?羊角能碎, 佛性雖堅, 煩惱能亂. 煩惱雖堅, 般若智能破, ?羊角雖堅, 賓鐵能壞. 悟此理者, 了然見性.)


역시 번뇌도 단단하고 불성도 단단합니다. 그럼에도 불성이 더 단단합니다. 앞에서 말하듯이, 번뇌는 반야에 의해 단번에, 그리고 때로 영구히, 부서질 수 있지만, 불성은 번뇌에 의해 교란되고 흐트러지긴 하지만, 영영 바수어지거나 사그라질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잘 믿지 않을 것입니다. 108번뇌, 살아 견뎌야할 고해(苦海)의 세상은 이리도 팍팍하고 끈질겨, 우리 모두가 크든 작든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잘 보이지도 않는 불성이 무시이래의 번뇌의 침범과 교란 속에서도 끝끝내 자약(自若)하다는 이 말씀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 렇지만, 다시 생각해 봅시다. 우리 각자는 크고 작은 삶의 굴곡을 거치며 때로 절망적 고통과 부당한 악의를 거쳐 나갑니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있지 않을까요. 이런 불리한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인간은 늘 자신의 본래 힘과 존엄을 ‘회복’해 나가는 ‘기적’을 연출합니다. 나아가, 시련을 거치면서 그는 오히려 더 깊고 형형한 안목을 지니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공동운명으로 돌아보게 되지요. 불성이란 다름 아니라, 이렇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수많은 적들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회복’하며, 동시에 ‘성장’하는 그 불가사의한 힘을 단적으로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힘은 우리 모두에게, 누구나 예외없이, 평등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한형조 교수 금강경 강의) (7)

만공 스님의 음담패설 법문

 

“불성안에 지혜 공장(工匠) 있다”


불성이란 말에 겁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성이란 바로 지금 역력한 ‘생명’의 불가사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빛나고 있는 단순한, 그러면서도 신비한 사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는 사태이므로, 하등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너무나 뻔한 사태인데, 그런데, 우리는 이 ‘살아있음의 기적과 그 의미’를 모르고 삽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불성은 내 생명의 등불


제 가 불성이라는 위대하고 초월적인 물건을 지금 턱없이 뻔한 일상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다고 화를 내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듣기로는 견성(見性), 즉 ‘불성을 본다’는 것은, 수억겁에 걸친 윤회를 거치며 수행을 하거나, 또 아니면 수십년을 토굴에서 화두를 들고서야 겨우 열리는 희귀한 소식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하셔야 할 것은, 돈교(頓敎)는 이런 타성적 ‘엄숙주의’에 대한, 그리고 이런 ‘점진주의’에 대한 벽력같은 고함소리로 출발했습니다. 돈교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너머에, 깨달음이니, 구원이니, 법계니, 정토니가 결코 없다는 사자후입니다. 돈교는 지금 있는 그대로, 여러분 자신이 바로 ‘절대’임을 그토록 간절히, 친절하게 일깨워 주려 합니다. 그래서 입만 열면 왈, “깨달을 바도, 얻을 바도, 설할 바도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눈을 들어 ‘쳐다보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태’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우리는 ‘그 밖에’ 더 크고 위대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목을 길게 뺍니다. 여기 함정이 있습니다.


왜 반야와 화엄과 기신, 그리고 선사들의 ‘한결같은’ 말씀을, 그 고구정녕의 지시(指示)를 곧이 들으려 하지 않는지, 저는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선사 조주가 “차 한잔 들게”라고 한 말에는 아무런 신비나, 형이상학이나, 배면에 숨긴 함축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액면 그대로입니다. 우리 모두 차를 끓이고, 따르고 마십니다. 그게 ‘있어야 할’ 전부입니다.


그게 전부라면, 우리는 따로 ‘의도적으로’ 할 일도 없고, 따라서 ‘성취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남도 또한 ‘이 모두’를 이미 갖고 있으니, 새삼 설파해 줄 것도 없습니다.( 不可知, 不可得, 不可說)!


저 산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뚫는데


너무 앞질러 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보다 상세한 이야기는 다음 ‘반야’를 다루는 강의에서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떠오르는 얘기 한 자락은 해 놓고 가려 합니다.


현 대불교신문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코너는 조태호씨의 ‘주장자따라’라는 만화입니다. 어느날 여기 음담패설이 하나 실렸습니다. 드물게 스크랩해둔 컷인데요, 만공스님(1871~1946)의 일화입니다. 때는 한말에서 일제 초기, 몰락한 궁중의 상궁 나인들이 스님을 찾아와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법문은 않고 뜬금없이, 노래 한 자락을 읊었습니다. “저 산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도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어허, 이런 해괴한….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여인네들이 구석구석에서 킥킥거리고 쑥덕거렸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웃고 계십니까. 저는 아직 이처럼 기가 막힌 절창, 독창적인 법문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간절한 마음으로 진리의 조갯살을 열어보여 주셨는데, 그런데 여인네들은 안타깝게도 그것을, 늙은 스님이 하시는 아슬아슬한 음담패설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생나무를 따로 다시, 힘겹게 뚫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있는 구멍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너무 쉽겠지요. 그런데 정말이지, 이게 어렵습니다.


왜 눈 앞에 역력(歷歷)한 이 단순한 ‘생명’의 적나라(赤裸裸)를 바로 보기 어려울까요. 그 장애는 밖이 아니라 바로 안에 있습니다. 불교란 다름 아니라, 바로 이 ‘안의 적’을 대적하고 물리쳐 실제(實際)를 만나게 해 주려는 방법적 장치들이자, 그들을 가득 쌓아 둔 곳간(藏)입니다!


여기서 ‘안의 적’이란 바로 ‘번뇌’와 ‘무지’를 가리킵니다. 이 장애를 부수는 것이 반야인데, 반야를 말하기 전에 이들의 본색을 알아야겠지요. 지금부터 몇 회에 걸쳐 이 문제를 본격 다루겠습니다.


철광을 제련하여 순금을 얻는다


앞 에서 영양각으로 비유된 바 있듯이, 이 장애물들은 인간 속에 완강히, 그리고 단단히 박혀 있습니다. 얼마나 뿌리 깊은지, 금강이란 바로 이 장애물의 견고함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불교 중에서도, 이 번뇌와 무지의 성격과 특성, 그리고 그 형성과 작동의 메카니즘을 본격 다루는 학파가 아비달마와 유식입니다. 반야 중관은 이 문제를 꼼꼼히 분석적으로 다루려 하지 않지요. 아무래도 ‘부수어야 할 물건’을 따지느라고 힘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원효는 아비달마와 유식이, “세우느라 부수지 못한(立而不破)” 폐단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염된 마음’의 분석과 분류에 치중하느라 ‘번뇌와 무지의 소멸’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놓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그 러나, 저는 이 문제를 피해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강의에서 이 문제를 집중 다루고자 합니다. 아쉽게도 이 문제를 <금강경>은 직접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강의 얼개는 <대승기신론>에 의지하고, 그리고 그 실상을 지금 우리들의 일상적 경험에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겠습니다! 대체 ‘번뇌’와 ‘무지’의 실상을 알아야, ‘반야’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요컨대 불교의 기획은 ‘불성’과 ‘번뇌’, 그리고 ‘반야’의 삼각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육조 혜능은 이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비유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금 은 산중에 있다. 그러나 산은 제 속에 이런 보물이 있는 줄을 모른다. 보물도 이게 산인 줄 모른다. 왜냐. 불성(佛性)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불성이 있어, 그 보물을 이용한다. 금의 전문가를 만나 산을 뚫고 깨서, 광석을 캐내, 그것을 제련하여, 순금을 얻어, 이것을 자유롭게 처분하여 가난과 궁상을 면한다. 사대(四大)로 된 우리 몸 안에 있는 ‘불성’ 또한 그러하다. 여기 ‘몸(身)’은 세계(世界)에, 인아(人我)는 산(山)에, 번뇌는 광석찌끼에, 불성은 금에, 지혜는 제련공(工匠)에, 정진용맹은 (그 광석을) 뚫고 깨는 일에 비유된다. 몸(身)의 세계 (世界) 가운데 인아(人我)의 산(山)이 있고, 인아의 산 가운데 번뇌의 광석이 있다. 번뇌의 광석 가운데 불성의 보물이 있고, ‘불성의 보물 가운데 지혜의 제련공(智慧工匠)이 있다!’ 지혜의 제련공을 써서, 인아의 산을 깨고 뚫어, 거기서 번뇌 광석을 보고, 이를 깨달음의 불로 제련하여, 거기 금강불성(金剛佛性)이 분명히 명정(明淨)하게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이 경(經)의 이름을 금강에 빗대어 짓게 되었다.”

 


(한형조 교수 금강경 강의) (8)

내탓이오 작지만 위대한 각성

 

지난 호 마지막에 소개한 혜능 스님의 비유를 다시 한 번 현대적으로 다듬어 봅니다.


“산 속에 금이 묻혀 있다. 그러나 산은 금을 몰라보고, 금 또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산인 줄 모른다. 의식이나 자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각할 줄 알아 이 보물이 귀한 것을 안다. 그래서 전문가를 시켜 산을 뚫고 원광을 캐낸다. 그것을 불에 녹여 찌끼를 떨어내어 순금을 얻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 큰 부자가 되어 오랜 가난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귀한 불성이 우리 몸 안에 숨어있는 사정도 이와 같다. 이를테면 덧없는 몸이 세계(世界)라면, 나와 남을 갈라보는 뿌리 깊은 습관(人我)은 산(山)이라 할 수 있고,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번뇌는 금을 덮고 있는 광석찌끼에 비유된다. 불성은 금이고, 그것을 되찾는 반야지혜는 전문제련사(工匠)이며, 정진용맹은 그 광석찌끼를 뚫고 깨는 일에 해당한다. 정리하자면, 몸이라는 세계(世界) 속에 인아(人我)의 산이 있고, 인아(人我)의 산 속에 번뇌의 광석찌끼가 있다. 번뇌의 광석찌끼들 속에 그러나 불성의 보물이 숨어 있고, 그 불성의 보물 가운데 반야 지혜의 제련사가 있다. 지혜의 제련사를 시켜 인아의 산을 깨고 뚫어, 거기서 번뇌 광석을 확인하고 이를 깨달음의 불로 제련하면, 거기 금강처럼 빛나고 영원한 불성(金剛佛性)이 분명히 명정(明淨)하게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경의 이름에 금강을 붙였다.”


비유가 절실하고 친절합니다. 인간의 몸이 세계라면, 그 세계의 중심에 큰 산이, 즉 ‘나와 남을 갈라보는’ 뿌리 깊은 습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번뇌의 원인이자 결과이지요. 이 벌떼들의 웅웅거림 속에 그러나 고요와 행복의 중심인 불성이 있습니다. 사람의 일은,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은, 지혜의 망치로 그 인아(人我)의 산을 깨고, 깨달음의 불로 그 번뇌를 녹여 없애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본래 모습인 금강의 불성에 숨통을 틔워주고, 그 활동을 자유롭게 해 주려는 것입니다.


불성과 무지, 그리고 반야의 삼각 구도


불교의 프로젝트는 ‘불성’, ‘번뇌와 무지’, 그리고 ‘반야’의 삼각 구도로 되어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불성은 ‘목표’, 번뇌와 무지는 ‘문제’, 반야는 ‘방법’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대승기신론>은 이 세 축을 각기 본각(本覺), 불각(不覺), 시각(始覺)으로 설정하여 불교의 길을 보여줍니다.


이 삼각 구도에서 관건은 ‘문제’입니다. 이를 좀 부연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바세계의 삶은 비유하자면 파도가 일고 흙탕물이 뒤섞이는 혼란과 고통이라 하겠는데, 이 고(苦)의 현실을 만든 것은 무시이래 계속 불고 있는 ‘무지의 바람’, 즉 무명풍(無明風)입니다!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불교는 고통과 번뇌의 근본 원인이 ‘외부의 조건이나 환경’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우리가 삶에서 맞닥뜨리는 가난과 역경, 전쟁과 기아같은 외적 환경을 개선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을 부차적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불행과 비참의 근본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 있다고, 즉 주변의 여건이나 타인의 악의가 아니라, 내 마음 속의 독소 때문에 야기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특이한 발상이 상식에 젖은 세속의 우리들을 곤혹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모든 문제를 ‘바깥’에 돌리고, 남의 탓을 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려!”라거나, “엄마 아빠가 해 준게 뭐가 있어!”에서 시작하여, 일마다 건수마다 남을 비난하고 세상을 불평합니다. 부하는 상사가 성격이 괴팍하고 공적을 가로챈다고 불평이고, 상사는 부하들이 무능하고 비협조적이라고 불만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일에 빠져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한숨쉬고, 남편은 집 나서면 전쟁터인 이 험한 세상을 힘겹게 건너는 자신을 몰라준다고 술잔을 기울입니다.


불교는 밖을 향한 습관적 쇳소리를 그만 그치고, 문제를 자신 속에서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합니다.


시작은 “내 탓이오”의 참회로부터


“혹 시, 내게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바로 그 ‘작은 전향’, 조고각하(照顧脚下)로부터 불교가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러나 이 회향(廻向)을 주저합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큰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 아니기에, 그 당당함이 스스로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다른 사람들과 주변 여건을 비난하는 권리를 줍니다. 이 합리화 과정은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나기에 거의 ‘의식’조차 되지 않습니다. 만일, 의식이 된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보듯이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오히려 불교의 가르침에 더 깊이 회향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근세의 큰 스님들 가운데도 ‘내부를 향한 깊은 자책’이 큰 서원과 발심으로 이어진 분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정말 죄가 없을까요. 혹시 우리 자신이 우리가 늘 문제삼는 그 혼란과 분열, 비참과 부조리를 몰고 온 장본인은 아닐까요.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합니다. “우리 각자는 모든 형태의 전쟁에 대해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전쟁은 우리가 지닌 삶의 공격성, 그리고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편견과 관념으로 인해 발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 세계에 기여했으며, 전쟁, 분열, 추악함, 그리고 탐욕으로 얼룩진 이 기괴한 사회의 일부이다.” (크리슈나무르티, 정현종 역,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21쪽)


둘러보십시오. 나만 남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도 또한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이때 대부분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반응하지만, 그래서 싸움이 그칠 날 없지만, 그러나 남이 하는 손가락질과 비난이 정말 전적으로 틀렸겠습니까. 혹시 우리는 “남이 하면 불륜이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편리한 이중 잣대를 무의식적으로 달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내 잣대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의 생생한 현실 앞에서 옳고 그르다는 이분법이 도끼날식으로 적용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없습니까.


불교는 “그 모든 것이 내탓”이라는 작지만 위대한 각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참회게>를 한번 독송해 봅니다.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嗔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그동안 내가 지어온 그 수많은 악업은 나도 모르게 뿌리박힌 삼독, 그 탐욕과 질투와 어리석음 때문이었어라. 몸으로, 입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낳은 그 모든 잘못을 나 이제 깊이 참회하나이다.

 


(한형조 교수 금강경 강의) (9)

이방의 포교사들-현각 틱낫한 그리고 달라이 라마

 

익기 전에 곯아서야


불교의 기획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성, 번뇌, 반야의 삼각 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불교의 역사는 그러나 이 삼각 항목을 두고 접근법과 강조점을 달리 해 왔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다양해 졌지요.


아 시다시피 붓다 초기에는 두 번째 ‘문제’에서 출발해 세 번째 ‘방법’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비달마와 유식은 두 번째 항목인 ‘문제’의 분석에 치중했고, 중관은 세 번째 ‘방법’으로서 ‘지식’의 성격과 발휘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원효 스님이 <대승기신론>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보다, 이 짧고 간결한 저작이 위의 세 항목 전체를 유기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이 경전에 여러 차례, 여덟 번이라 했던가요, 주석하고 해석하셨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소(疏)>와, <별기(別記)>뿐입니다만…. 그런데, 좀 아쉬웠던가 봅니다. 두 번째 ‘문제의 분석’쪽에 더 깊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이장의(二障義)>라는 책을 따로 쓰셨습니다. 여기에는 <대승기신론>이 ‘오염된 마음(不覺染心)’의 양상이라고 지적한 ‘번뇌와 지적 장애(煩惱碍+智碍)’에 대해 더욱 상세하고 깊은 설명이 독창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목록으로만 전해졌는데요, 일본의 오오쵸오 에니치(橫超慧日) 교수가 1939년 무렵에 오오타니(大谷)대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거기 서문을 붙여 1979년에 간행했습니다. 지금 그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꼼꼼하게 읽기가 만만치 않은 저작이라 나중을 벼르고 있습니다.


이병주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의 풍자


이런 정황을 보면서 드는 생각인데요, 지금 불교를 말하시는 선지식들이 대체로 대승, 그 중에서도 가운데 반야의 ‘칼날’과 그리고 선의 ‘단도직입’을 말하고 계십니다. 아니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법계의 여여(如如)한 실상을 노래하거나, 다음 생에 있을 정토와 니르바나의 축복을 약속해 주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길을 나서기도 전에 벌써 목적지에 다 온 듯한 착각을 주기 쉽습니다. 이병주의 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는 이런 ‘도통한 체’를 두고, “익지는 않고 곯았다!”라고 익살스레 풍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치며 공감했는데요, 어디 남의 일이겠습니까. 저 또한 이 강의에서 그 유혹과 싸우느라 고생하고 있다는 고백을 해 둡니다.


그러니 이제 불교가 성급하게 ‘해답’부터 늘어놓을 것이 아니다 싶습니다. 그 전에 중생들이 처한 ‘상황’의 성격과, 겪는 ‘문제’의 실상부터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근본이 회향(廻向)되면, 나머지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포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그 이유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살피지 않고, 무턱대고 주려고만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작은 문제나 큰 문제나 간에, 심지어 철장 안에 갇힌 실험용 쥐도, ‘문제’를 알면, 시키지 않아도 ‘길’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단박에, “아니, 문제야 자기 자신들이 가장 잘 알겠지. 그런데 뭘 새삼 가르쳐 주고 말고 해?”라고 타박하는 선지식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손가락에 난 생채기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마는, 그러나, 그 ‘문제’를 당사자는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불교가 제기하는 ‘문제’는 아주 미묘하고 은밀해서 당사자에게 알려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남보기에는 다 갖춘 듯한데도 “이게 아닌데”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그 문제의 정체가 무엇인지 무슨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지요.


세계 혹은 매트릭스를 벗어나야


이 중생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스님네들과 선지식들이 이제까지 익숙했던 그 ‘울타리’, 제가 요즘 자주 쓰는 말로 매트릭스를 좀 벗어나 주셨으면 합니다. 매트릭스를 불교 전문 용어로는 세계(世界)라고 하지요. 여기에는 한 개인이 익숙하게 보고 들은 정보, 그가 속한 그룹 안에서의 관행과 어법, 그가 의존하는 세계관과 가치관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세계를 타파하기 위해서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얘기를 하자면 길어지는데요. 기회가 많을 테니, 다른 것은 그만 두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려 합니다. 바로 ‘언어’입니다!


스님 네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대중들이 불교에 접근하는데 가장 큰 장애가 바로 ‘언어’입니다. 저는 어느 편이냐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불교를 미래의 대안이라고 우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의 전통조차 지켜내기 어렵다는 파천황의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이방의 선지식들을 들자면, 현각 스님, 틱낫한 스님, 그리고 달라이 라마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현각 스님의 설법을 두어 차례 불교방송에서 본 적이 있고, 틱낫한 스님은 그분이 폭발적인 붐을 이루기 전에, 장경각에서 처음 나온 <삶에서 깨어나기>를 보며 곧, (용서하십시오) ‘엄청 뜰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무엇보다 그 일상적인 대화체의 비권위적인 자세에 깊이 경복했습니다.


이 세 분 선지식들이 한국의 불교계를 강타한 현상을 벤치마킹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들이 뜨는가. 한국불교가 수천년의 유구한 전통과 전국 곳곳의 수많은 사찰들, 심산 토굴의 무문관과 일초직입의 화두를 끌어안고 용맹정진하고 있는데, 왜 대중적 포교의 주도권은 이들 이방의 포교사들에게 내 주고 있는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불교계의 반응은 양면적입니다. 이방인들의 포교가 불교 인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 고마워하지만, 그런데 또 한편, 그 역할을 정작 엉뚱하게 객이 와서 대신 해주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시앗(첩)에게 안방을 내준 마나님같은 뿌루퉁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들이 뜬 이유는, 그들의 ‘불교’보다 그들의 ‘배경’탓”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계십니다.


저도 그들이 그토록 유명하게 된 것이 어느 정도는 그들의 ‘이력’이나 ‘배경’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현각 스님은 한국인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하버드 대학을 나왔고,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의 오랜 전쟁을 몸으로 겪고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의한 무력 침공으로 식민지가 되어버린 티베트의 고난과 독립을 상징하는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가 택한 저항의 수단이 무력과 피가 아니라 불교적 관용과 타협, 그리고 끈기와 상식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유행’하는 근본 이유는 이런 배경 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밀은 바로 그들이 쓰는 ‘언어’에 있습니다. 아무려면 우리 스님네들과 선지식들의 수행력이 그들보다 모자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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