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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락하는 동두천
06/18/20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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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나는 미국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도봉구 방학동의 연구원 사택에서 살았다. 강원도 감자의 원형질을 지닌 나로서는 북한산 도봉산이 바로 지척에 있어 더 이상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또한 한 시간 가량의 운전으로 미루나무와 코스모스가 계절을 바꾸어 도열해 있는 한적한 접경지역의 국도를 드라이브할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유난히 내가 많이 갔던 곳은 동두천이다. 그곳에는 소요산이 있어 소요학파처럼 소요할 수 있었다. 휴일이면 동두천 미군부대 앞으로 달려가 버거킹을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역으로 생기는 미국에 대한 그리움을 동두천에서 달랬던 것이다. 


어저깨 저녁에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동두천의 최근 모습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미군이 떠나면서 퇴락하고 폐허로 변해가는 동네를 보면서 아름다운 추억의 한켠이 무너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김명인의 '동두천'이라는 시도 생각이 났다. 



동두천 1 / 김명인


기차가 멎고 눈이 내렸다 그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신호등
불이 켜지자 기차는 서둘러 다시 떠나고
내 급한 생각으로는 대체로 우리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리라 혹은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
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에 파묻혀 흐려지면서

우리가 내리는 눈일 동안만 온갖 깨끗한 생각 끝에
驛頭의 저탄더미에 떨어져
몸을 버리게 되더라도
배고픈 고향의 잊힌 이름들로 새삼스럽게
서럽지는 않으리라 그만그만했던 아이들도
미군을 따라 바다를 건너서는
더는 소식조차 모르는 이 바닥에서

더러운 그리움이여 무엇이
우리가 녹은 눈물이 된 뒤에도 등을 밀어
캄캄한 어둠 속으로 흘러가게 하느냐
바라보면 저다지 웅크린 집들조차 여기서는
공중에 뜬 신기루 같은 것을
밭 밑에서는 메마른 풀들이 서걱여 모래 소리를 낸다

그리고 덜미에 부딪쳐와 끼얹는 바람
첩첩 수렁 너머의 세상은 알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더 이상 알 필요도 없으리라
안으로 굽혀지는 마음 병든 몸뚱이들도 닳아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 이제 벗어날 수 없어도
나는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을 지나
떠나야 되돌아올 새벽을 죄다 건너가면서



동두천 4김명인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그 아이 혼혈아인

엄마를 닮아 얼굴만 희었던

그 아이는 지금 대전 어디서

다방 레지를 하고 있는지 몰라 연애를 하고

퇴학을 맞아 고아원을 뛰쳐 나가더니

지금도 기억할까 그 때 교내 웅변 대회에서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일곱 살 때 원장의 姓을 받아 비로소 李가든가 金가든가

朴가면 어떻고 브라운이면 또 어떻고 그 말이

아직도 늦은 밤 내 귀가 길을 때린다

기교도 없이 새소리도 없이 가라고

내 詩를 때린다 우리 모두 태어나 욕된 세상을


이 강변(强辯)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얼마만큼의 거짓으로나 매겨지는지

몸을 던져 세상 끝끝까지 웅크리고 가며

외롭기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욱 괴로운 너의 모습 너의 말


그래 너는 아메리카로 갔어야 했다

국어로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 네 모습이 주눅들 리 없는 合衆國이고

우리들은 제 상처에도 아플 줄 모르는 단일 민족

이 피가름 억센 단군의 한 핏줄 바보같이

가시같이 어째서 너는 남아 우리들의 상처를

함부로 쑤시느냐 몸을 팔면서

침을 뱉느냐 더러운 그리움으로

배고픔 많다던 동두천 그런 둘레나 아직도 맴도느냐

혼혈아야 내가 국어를 가르쳤던 아이야



(해설)


이 시는 특별한 지명의 의미를 전면에 내세운다. 동두천이라는 도시가 갖는 현대사적 의미, 자세히 말하자면 1970년대적 의미를 모른다면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19세기의 동두천은 이 시의 동두천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21세기의 동두천은 이 시의 동두천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그만큼 이 시는 당대적 현실과 밀접하다. 특히 1970년대에 쓰여진 김명인의 시는 대부분 이 무렵의 시대가 갖는 역사적인 대목을 가까이 의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독자를 압도하거나 끌고다니지 않고, 시인과 함께 그 시대를 또는 그 현장을 바라보게 하며, 함께 번민하고 함께 슬퍼하게 한다. 이는 서정시적 자질들을 소중히 다룸으로써 얻게 되는 흔치 않는 문학의 미덕인 것이다.


동두천은 미군의 도시. 그래서 서글프지만 자연스럽게 양공주의 도시, 혼혈아의 도시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1970년대적 공식이다 「동두천」 연작은 시인이 바로 이 도시에서 중학교 교사로 지냈음을 알려준다. 이 시는 이 연작의 서(序)에 해당하는데, 시의 풍경 속에는 어떤 곡절 많고 고통스런 경험을 한 사람이 어떤 일을 우울하고 처연한 태도로 되새기고 있다. 그는 눈 내리는 역에 서 있다. 순결한 눈은 검은 석탄 더미 위로 내려 쌓여 제 색을 잃는다. 그것은 곧 온전한 원형적 삶의 순수와 이를 더럽히는 현실의 파괴적 위력의 대조를 대신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증오하거나 공격하지 않으면서, 사라져가고 더럽혀져 가는 정결하고 온전한 삶의 원형을 그리워한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사실 사라지게 한 것들에 대한 증오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의 감동은 `첩첩 수렁 너머의 알 수 없는 세상', `맨살로 끌려가는 진창길 같은 삶'을 넘어서, `나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으로 상징되는 뼈아픈 내면화에 능동적으로 가 닿으려는 몸짓에서 온다. 그것은 현실의 고통을 `떠나야 되돌아올 새벽'으로 보는, 그래서 그것을 `죄다 건너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식에서 새롭게 힘을 얻는다.


나는 스무살 때 「동두천」 연작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시에서 살갗에 소름이 돋고 목이 메는 감동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 그와 같은 질의 감동은 소설의 몫이기 쉽고, 시의 감동은 조용한 명상, 혹은 은은한 미소에 가깝지 않을런지. 어쨌거나 나는 그 특별한 감동을 여기에 특별하게 기록하고 싶다. [이희중]



(아래 동영상들을 볼려면 세모 시작버튼을 누른 후, 

화면이 바뀌면 'Watch this video on YouTube'를 클릭할 것)











동두천, 소요산, 김명인, 턱거리마을, 폐가, 미군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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