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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해설하는 금강경 (2)
09/17/20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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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해설하는 금강경 (2)

(구슬놀이 해설)


第八 依法出生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하야 以用布施하면 是人의 所得福德이 寧爲多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다 世尊하 何以故오 是福德은 卽非福德性일새 是故로 如來說福德多니이다 若不有人하야 於此經中에 受持乃至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勝彼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一切諸佛과 及諸佛의 阿 多羅三 三菩提法이 皆從此經出일새니라 須菩提야 所謂佛法者는 卽非佛法이니라

 

(영문)

 

Section . The Fruits of Meritorious Action

 

Subhuti, what do you think? If anyone filled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with the seven treasures and gave all away in gifts of alms, would he gain great merit?

Subhuti said: Great indeed,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merit partakes of the character of no-merit, the Tathagata characterized the merit as great.

Then Buddha said: On the other hand, if anyone received and retained even only four lines of this Discourse and taught and explained them to others, his merit would be the greater. Wherefore? Because, Subhuti, from this Discourse issue forth all the Buddhas and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teachings of all the Buddhas.

Subhuti, what is called "the Religion given by Buddha" is not, in fact, Buddha-Religion.

 

(한글)

 

8법에 의해 다시 태어나라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서 보시한다면이 사람이 얻을 복덕이 얼마나 많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습니다세존이시여왜냐하면 이 복덕은 복덕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타인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이 저 앞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어찌하여 그런가 하면수보리야일체의 모든 부처와 모든 부처의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법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기 때문이다수보리야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다.”

 

(해설)

 

여기서 의법출생(依法出生)’이란 모든 부처와 부처의 깨달음이 금강경의 가르침즉 상()이 없는 반야지혜에서 나오고 비롯되었다는 말이다더 나아가 우리 중생들 역시 금강과도 같은 반야지혜를 얻어 새로 태어나고 열반의 강 건너로 건너가야 한다는 뜻이다.

 

부처는 금강경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 과장법을 써서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금강경의 한 구절을 지녀서 외우고 남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무한대의 7보 보시보다 그 복덕이 클 것이라고 한다왜냐하면, 7보보시(七寶報施)는 물질적인 보시에 따라 세상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겠지만 반야지혜로 인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복덕의 본성이 결여된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문장에서 부처는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다시 한 번 법과 법의 가르침에 대해 상()을 짓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금강경과 금강과도 반야지혜가 아무리 위대한 가르침이라 해도 쓸데없이 상을 짓고 그 내용을 왜곡하여 이해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에둘러 이야기 하고 있다너희들 방식대로 이해하는 금강경은 불법(佛法)이 아니라고 경고하고 있다.


第九 一相無相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須陀洹이 能作是念하되 我得須陀洹果不아 須菩提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須陀洹이 名爲入流로되 而無所入이요 不入色聲香味觸法일새 是名須陀洹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斯陀含이 能作是念하되 我得斯陀含果不아 須菩提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斯陀含이 名一往來로되 而實無往來일새 是名斯陀含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阿那含이 能作是念하되 我得阿那含果不아 須菩提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阿那含이 名爲不來로되 而實無不來일새 是故로 名阿那含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阿羅漢이 能作是念하되 我得阿羅漢道不아 須菩提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實無有法하야 名阿羅漢이니 世尊하 若阿羅漢이 作是念하되 我得阿羅漢道라하면 卽爲着我人衆生壽者니이다 世尊하 佛說我得無諍三昧人中에 最爲第一이라 是第一離欲阿羅漢이라하시오나 世尊하 我不作是念하되 我是離欲阿羅漢이니이다 世尊하 我若作是念하되 我得阿羅漢道라하면 世尊하 卽不說須菩提-是樂阿蘭那行者라하시련만 以須菩提-實無所行일새 而名須菩提是樂阿蘭那行이니이다

 

(영문)

 

Section . Real Designation is Undesignate

 

Subhuti, what do you think? Does a disciple who has entered the Stream of the Holy Life say within himself:

Subhuti said : No,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stream-entrant" is merely a name. There is no stream-entering. The disciple who pays no regard to form, sound, odor, taste, touch, or any quality, is called a Stream-entrant.

Subhuti, what do you think? Does an adept who is subject to only one more rebirth say within himself: I obtain the fruit of a Once-to-be-reborn?

Subhuti said: No,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Once-to-be-reborn" is merely a name. There is no passing away nor coming into existence. [The adept who realizes〕 - this is called "Once-to-be-reborn."

Subhuti,what do you think? Does a venerable one who will never more be reborn as a mortal say within himself: I obtain the fruit of a Non-returner?

Subhuti said: No,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Non-returner" is merely a name. There is no non-returning; hence the designation "Non-returner."

Subhuti, what do you think? Does a holy one say within himself: I have obtained Perfective Enlightenment?

Subhuti said: No,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there is no such condition as that called "Perfective Enlightenment" World-honoured One, if a holy one of Perfective Enlightenment said to himself "such am I," he would necessarily partake of the idea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World-honoured One, when the Buddha declares that I excel amongst holy men in the Yoga of perfect quiescence, in dwelling in seclusion, and in freedom from passions, I do not say within myself: I am a holy one of Perfective Enlightenment, free from passions.

World-honoured One, if I said within myself: Such am I; you would not declare: Subhuti finds happiness abiding in peace, in seclusion in the midst of the forest. This is because Subhuti abides no where: therefore he is called, "Subhuti, Joyful-Abider-in-Peace, Dweller-in-Seclusion-in-the-Forest."

 

(한글)

 

9어느 상도 상이 아니다

 

수보리야네 생각은 어떠하냐수다원이 생각하기를 나는 수다원과를 증득했노라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아닙니다세존이시어왜냐하면 수다원은 들어간 자라는 말이지만 실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그는 색법 등에 들어간 것이 아닌데 이름을 수다원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네 생각은 어떠하냐사다함이 생각하기를 나는 사다함과를 증득했노라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아닙니다세존이시어왜냐하면 사다함은 한번 갔다 온다는 말이지만실은 가고 옴이 없는 것을 사다함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네 생각은 어떠하냐아나함이 생각하기를 나는 아나함과를 증득했노라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아닙니다세존이시어왜냐하면 아나함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지만실은 오지 않는 것도 없으므로 이름을 아나함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네 생각은 어떠하냐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나는 아라한도를 증득했노라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아닙니다세존이시어왜냐하면 실로 아라한이라 할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세존이시어만약 아라한이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그것은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어부처님께서는 제가 무쟁삼매의 사람 중 제일이라 하시니이는 욕심을 떠난 제일의 아라한이라는 말씀이십니다그러나 저는 제가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어제가 만약 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라는 생각을 했다면세존께서는 수보리야말로 아란나의 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수보리는 실제로 행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아란나의 행을 즐긴다고 이르신 것입니다.”

 

(해설)

 

금강경이 쓰여 질 당시 수행자들은 수행의 기간과 성취도에 따라 4가지 단계로 분류되어 각각 다르게 호칭됐다소위 4(四位), 또는 4(四果)라고 하는 것으로서유식론(唯識論)에서 유식수행 5(자량위가행위통달위수습위구경위)와 유사하다여기서 4위는 차례로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多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등이다가령 태권도에서 훈련을 거듭함에 따라 백띠에서 시작하여 흑띠가 되는 것과 같다금강경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르침은 상()을 짓지 않는 일이므로 수행 4과는 상을 짓는 일에서 벗어난 정도에 따라 수행의 성과를 인정해 주는 제도와 관습이었다.

 

수단원이란 상을 타파하는 훈련의 흐름에 들어간 초입자(初入者)를 말한다사다함은 한 번 오는 자라는 의미로 한 번은 다시 상을 짓고 번뇌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는 수행자 그룹이다담배를 끊었지만 아차 하는 순간을 맞아 담배를 다시 피게 되는 사람과 같다아나함은 돌아오지 않는 자로서 두 번 다시 상을 짓지 않고 진리를 보게 되어 열반에 가깝게 가는 사람들이다담배를 다시는 피지 않게 되는 자들이다마지막으로 아라한은 수행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다그러나 부처보다는 깨달음의 성취정도가 아래인 자들이다.

 

이와 같은 수행4과는 편의적으로 수행자들을 구분하고 호칭하는 것에 불과한 관행이고 제도였다따라서 수행4과와 관련하여 그것에 큰 의미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자만심이나 망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상무상(一相無相)’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언어를 통해 상상하고 인식하는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은 없는 것이고 버려야 하는 것과 같이 승단의 관습과 호칭에도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상()이 깃들어 있으므로 모두 불식해야 하는 것들이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드는 그 어느 상도 진실한 상이 아니다가 일상무상(一相無相)의 뜻이다.

 

第十 莊嚴淨土分

 

佛告須菩提하사대 於意云何오 如來昔在然燈佛所하야 於法에 有所得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在然燈佛所하사 於法에 實無所得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菩薩이 莊嚴佛土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이니 是名莊嚴이니이다 是故로 須菩提야 諸菩薩摩訶薩은 應如是生淸淨心이니 不應住色하고 生心하며 不應住聲香味觸法하고 生心이요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라 須菩提야 譬如有人이 身如須彌山王이면 於意云何오 是身이 爲大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大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佛說非身이 是名大身이니이다.

 

(영문)

 

Section . Setting Forth Pure Lands

 

Buddha said: Subhuti, what do you think? In the remote past when the Tathagatg was with Dipankara Buddha, did he have any degree of attainment in the Good Law?

No,World-honoured One. When the Tathagata was with Dipankara Buddha he had no degree of attainment in the Good Law.

Subhuti, what do you think? Does a Bodhisattva set forth any majestic Buddha-lands?

No,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setting forth majestic Buddha-lands is not a majestic setting forth; this is merely name.

Then Buddha continued:〕 Therefore, Subhuti, all Bodhisattvas, lesser and great, should develop a pure, lucid mind, not depending upon sound, flavour, touch, odour or any quality. A Bodhisattva should develop a mind which alights upon no thing whatsoever; and so should he establish it. Subhuti, this may be likened to a human frame as large as the mighty Mount Sumeru.

What do you think? Would such a body be great?

Subhuti replied: Great indeed, World-honoured One. This is because Buddha has explained that no body is called a great body.

 

(한글)

 

10정토를 장엄하게 하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네 생각은 어떠하냐여래가 옛적에 연등부처님이 있던 곳에서 법에 얻은 것이 있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어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이 있던 곳에서 법에 보로서 얻은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야네 생각은 어떠하냐보살이 불토를 장엄하게 하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왜냐하면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것은 장엄하게 함이 아니고 그것을 다만 장엄하다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수보리야모든 보살과 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마땅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 것이며또한 마땅히 성법에 머물러 그 마음을 내지 말 것이다반드시 머무는 바가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수보리야비유하건대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왕만 하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 몸이 크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큽니다세존이시여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몸이 아닌 것을 말씀하시고 이를 큰 몸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해설)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는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육조대사 혜능(惠能)의 일화가 유래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유명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일자무식 나무꾼이 이 구절의 독송소리를 듣고 불교의 핵심내용을 돈오(頓悟)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은 지금까지 강조되어 온 일체의 거짓된 상()을 타파함으로써 망상과 미혹에서 벗어나 연기법에 의한 우주의 진실을 알게 되고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응축하여 설명하는 구절이다.

 

장엄정토분에서는 인식대상으로서 육경(六境)은 모두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그런 것에 꺼둘리어 망상과 미혹의 상을 짓지 말 것을 강조하면서 그 대상을 불토를 장엄하게 한다는 생각에까지 확대하고 있다.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시명장엄(莊嚴佛土者 卽非莊嚴 是名莊嚴)’는 보살의 공덕으로 이 세상을 불법이 충만한 불토로 만들겠다는 것은 자칫 상()에 불과한 생각일 수 있으므로그러한 장엄은 진정한 장엄의 행위가 아니고 이름에 불과한 장엄일 것이라는 뜻이다어떤 사람의 몸이 비유로 수미산왕 만하다고 한다면비유된 그 몸은 이미 진정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인식과 판단으로 크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모든 것에 자의적인 인식과 판단으로 사상(四相)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第十一 無爲福勝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如恒河中所有沙數하야 如是沙等恒河하면 於意云何오 是諸恒河沙-寧爲多不아 須菩提言하되 甚多니이다 世尊하 但諸恒河도 尙多無水온 何況其沙리잇가 須菩提야 我今實言으로 告汝하노니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七寶로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하야 以用布施하면 得福이 多不아 須菩提-言 하되 甚多니이다 世尊하 佛告須菩提하사되 若善男子善女人이 於此經中에 乃至 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設하면 而此福德이 勝前福德이니라

 

(영문)

 

Section XI. The superiority of Unformulated Truth

 

Subhuti, if there were as many Ganges rivers as the sand-grains of the Ganges, would the sand-grains of them all be many?

Subhuti said: Many indeed, World-honoured One! Even the Ganges rivers would be innumerable; how much more so would be their sand-grains?

Subhuti, I will declare a truth to you. If a good man or good woman filled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as many as the number of sand grains of all those Ganges rivers with the seven treasures, and gave all away in gifts of alms, would he gain great merit?

Subhuti answered: Great indeed, World-honoured One!

Then Buddha declared: Nevertheless, Subhuti, If a good man or good woman studies this Discourse only so far as to receive and retain four lines, and teaches and explains them to others, the consequent merit would be far greater.

 

(한글)

 

11무위의 복이 가장 뛰어나다

 

수보리야항하에 있는 모래의 수만큼 항하가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이 모든 항하에 있는 모래가 얼마나 많겠느냐?”

매우 많습니다세존이시여그 모든 항하만이라도 무수히 많거늘하물며 그 모래의 수이겠습니까?”

수보리야내가 이제 진실한 말로 너에게 이르노니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칠보로써 저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채워 보시한다면 얻을 복이 많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습니다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그 복덕은 앞서 칠보로 보시한 복덕보다 뛰어나리라.”

 

(해설)

 

이번 본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남에게 가르쳐주는 법보시(法布施)의 무한한 공덕(功德)을 과장에 과장을 더하여 강조하고 있다여기서 무위(無爲)란 문맥상 법보시를 지칭하는 것으로물질을 보시하는 유위의 보시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불교와 금강경의 핵심적 가르침은 번뇌와 망상무명을 벗어나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에 실체가 없다는 우주의 존재원리를 깨닫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다고통을 벗어나 무한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상을 만들어 모든 것을 잘못 보지 말라는 것이다.

 

물질의 보시는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하더라도 그 결과로 나타나는 복덕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왜냐하면 보시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상(四相)을 짓기가 쉬워 사상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원래의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한편 보시를 받는 입장에서는 보시의 효과가 물질에 머물고 반야지혜를 얻어 행복해지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위의 보시가 가장 뛰어나다고 할 때 무위란 법보시를 의미할뿐더러 제4분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에서와 같이 상을 짓지 않고 하는 보시를 의미한다물질의 보시라도 상이 없는 무위의 보시라면 그 공덕이 매우 큰 것인 반면반야지혜를 가르치는 법보시의 경우라도 상에 얽매어 하는 유위의 보시는 그 공덕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상이 없는 법보시의 공덕이 제일 크다.


第十二 尊重正敎分

 

(한문원문)

 

復次 須菩提야 隨說是經하되 乃至四句偈等하면 當知此處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을 如佛塔廟어든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이리오 須菩提야 當知是人은 成就最上第一稀有之法이니 若是經典所在之處는 卽爲有佛과 若尊重弟子니라

 

(영문)

 

Section XII. Veneration of the True Doctrine

 

Furthermore, Subhuti, you should know that wheresoever this Discourse is proclaimed, by even so little as four lines, that place should be venerated by the whole realms of Gods, Men and Titans, as though it were a Buddha-shrine. How much more is this so in the case of one who is able to receive and retain the whole and read and recite it throughout!

Subhuti, you should know that such an one attains the highest and most wonderful truth. Wheresoever this sacred discourse may be found there should you comport yourself as though in the presence of Buddha and disciples worthy of honour.

 

(한글)

 

12바른 가르침을 존중하라

 

그리고 또 수보리야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사구게만이라도 설한다면마땅히 알라그 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 같은 곳이 되리라어찌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전체를 수지하고 독송함에 있어 서랴!”

수보리야마땅히 알라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법을 성취한 것이니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고 존경 받는 제자가 있는 곳이 된다는 것을.”

 

(해설)

 

존중정교분(尊重正敎分)에는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특징으로서 법신불사상(法身佛思想)과 삼귀의(三歸依)의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다대승불교에서는 역사적 부처를 그의 가르침과 동일시함으로써부처는 그의 가르침의 형태로 영원히 우리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즉 부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금강경과 같은 그의 가르침 속에 계속 존재하는 사람이다부처의 가르침즉 불경이 있는 곳에는 부처 역시 살아 있는 것처럼 함께 있다는 것이 법신불사상이다환언하면법의 형태로 변하여 존재하는 부처가 법신불이다이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 속에 동위격인 역사적 예수가 함께 있다는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과 유사하다 하겠다.

 

탑묘는 부처의 불상과 사리탑이 있는 곳으로 역사적 부처가 상징의 형태로 존재하는 장소이다그러나 부처의 가르침은 곧 부처이므로 사구게를 설하는 장소에도 부처가 있기는 매마찬가지이다따라서 사구게를 설하는 장소는 일체세간이 공양하는 탑묘와 같은 장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삼귀의는 불(), (), (등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의미로서 반야지혜의 법에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와 승단에도 함께 귀의하겠다는 뜻이다부처는 법 그 자체이고승단은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고자 하는 불자들을 도와주는 집단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바로 부처님이 계신 곳이고 존경 받는 제자가 있는 곳이다라는 말에서 삼귀의 논리가 비롯되었을 것이다.

 

第十三 如法受持分

 

(한문원문)

 

爾時에 須菩提白佛言하사대 世尊하 當何名此經이며 我等이 云何奉持리잇고 이 告須菩提하사대 是經은 名爲金剛般若波羅密이니 以是名字로 汝當奉持하라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佛說般若波羅蜜은 卽非般若波羅蜜이니 是名般若波羅蜜이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所說法不아 須菩提白佛言하되 世尊하 如來無所說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三千大天世界所有微塵이 是爲多不아 須菩提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하 須菩提야 諸微塵은 如來說非微塵이라 是名微塵이며 如來說世界도 非世界라 是名世界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見如來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不可以三十二相으로 得見如來니 何以故오 如來說三十二相이 卽是非相일새 是名三十二相이니이다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以恒河沙等身命으로 布施어든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乃至受持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其福이 甚多이니라

 

(영문)

 

Section XIII. How this Teaching should be Received and Retained

 

At that time Subhuti addressed Buddha, saying. World-honoured One, by what name should this Discourse be known, and how should we receive and retain it?

Buddha answered: Subhuti, this Discourse should be known as "The Diamond of the Perfection of Transcendental Wisdom" - thus should you receive and retain it.

Subhuti, what is the reason herein? According to the Buddha-teaching the Perfection of Transcendental Wisdom is not really such. "Perfection of Transcendental wisdom" is just the name given to it. Subhuti,what do you think? Has the Tathagata a teaching to enunciate?

Subhuti replied to Buddha: World-honoured One, the Tathagata has nothing to teach.

Subhuti, what do you think? Would there be many molecules in the composition of〕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Subhuti said: Many, indeed, World-honoured One!

Subhuti, the Tathagata declares that all these molecules are not really such; they are called "molecules." [Furthermore,] the Tathagata declares that a world is not really a world; it is called "a world."

Subhuti, what do you think? May the Tathagata be perceived by the thirty-two physical peculiaritiesof an outstanding sage

No, World-honoured One, the Tathagata may not be perceived by these thirty-two marks. Wherefore? Because the Tathagata has explained that the thirty-two marks are not really such; they are called "the thirty-two marks."

Subhuti, if on the one hand a good man or a good woman sacrifices as many lives as the sand-grains of the Ganges, and on the other hand anyone receives and retains even only four lines of this Discourse, and teaches and explains them to others, the merit of the latter will be the greater.

 

(한글)

 

13법에 따라 받아 지녀라.

그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이 경전을 마땅히 무엇이라 이름하며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은 이름하여 금강반야파라밀이니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니라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수보리야부처님이 설한 반야파라밀은 곧 반야파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파라밀이니라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여래께서는 설한 바가 없습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삼천대천세계의 티끌이 많다 하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습니다세조이시여!”

수보리야모든 티끌을 여래가 설하되 티끌이 아니라 그 이름이 티끌이고여래가 설한 세계도 세계가 아니라 그 이름이 세계이니라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삼십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갠지스 강의 모래 수와 같은 많은 목숨을 다 바쳐 보시를 했을 지라도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에게 설한다면 이 복은 저 복보다 더 많으리라.”

 

(해설)

 

이번 분에서도 일체의 상()을 없애야 한다는 차원에서 우리의 말과 언어에서 발생하는 인식상의 왜곡문제를 다시 강조하고 있다이와 관련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고 규정하는 금강반야파라밀경부처의 설법 중 법에 관한 것세상의 티끌과 세계 그 자체그리고 부처의 32상 등을 예로 들어 그것들을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금강경과 부처의 설법은 분명히 있는 것이지만그것들이 우리가 자의식으로 오염된 언어로서 규정하는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인 김춘수는 사물과 객관세계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하여 사물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어야 그것이 비로소 존재자로 탈바꿈한다고 하였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김춘수는 인식과정에서 언어의 한계를 크게 깨닫고 일체의 감성적인 묘사나 진술이 배제된즉 금강경에서 강조하듯이 상을 배제하면서 무의미(無意味시를 쓰기 시작했었다.

 

김춘수의 시작방법의 전환은 이번 분에서 말하고 있는 상의 배제와 완전 일치하는 논리이다불교가 이야기하는 반야지혜의 증득과 열반의 성취는 분명 있는 것이지만그것은 오로지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상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전제조건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여법수지(如法受持)라는 말은 철저히 상을 없애고 머무는 바가 없이 생각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금강반야파라밀경을 받아서 지니고 옆에 사람들에게 알려주라는 뜻이다.

 

第十四分 離相寂滅

 

(한문원문)

 

爾時에 須菩提-聞說是經하시고 深解義趣하야 涕淚悲泣하사 而白佛言하사대 希有世尊하 佛說如是甚深經典하심은 我從昔來의 所得慧眼으론 未曾得聞如是之經이니이다 世尊하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信心淸淨하면 卽生實相하리니 當知是人은 成就第一希有功德이니 世尊하 是實相者는 卽是非相이니 是故로 如來說名實相이니이다 世尊하 我今得聞如是經典하고 信解受持는 不足爲難이어니와 若當來世後五百歲에 其有衆生이 得聞是經하고 信解受持하면 是人은 卽爲第一希有니 何以故오 此人은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이니 所以者何오 我相이 卽是非相이며 人相衆生相壽者相도 卽是非相이라 何以故오 離一切諸相이 卽名諸佛이니이다 이 告須菩提하사대 如是如是니라 若復有人이 得聞是經하고 不驚不怖不畏하면 當知是人도 甚爲希有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如來說第一波羅蜜이 卽非第一波羅蜜일새 是名第一波羅蜜이니라 須菩提야 忍辱波羅蜜도 如來說非忍辱波羅蜜일새 是名忍辱波羅蜜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如我昔爲歌利王에 割截身體로되 我於爾時에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이니라 何以故오 我於往昔節節支解時에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應生瞋恨이니라 須菩提야 又念過去於五百世에 作忍辱仙人하야 於爾所世에 無我相하며 無人相하며 無衆生相하며 無壽者相이니라 是故로 須菩提야 菩薩이 應離一切相하고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이니 不應住色하고 生心이며 不應住聲香味觸法하고 生心이요 應生無所住心이니라 若心有住면 卽爲非住니라 是故로 佛說菩薩은 心不應住色하고 布施라하니라 須菩提야 菩薩이 爲利益一切衆生하야 應如是布施니 如來說一切諸相이 卽是非相이며 又說一切衆生이 卽非衆生이니라 須菩提야 如來는 是眞語者며 實語者며 如於者며 語者며 不異語者니라 須菩提야 如來所得法은 此法이 無實無虛하니라 須菩提야 若菩薩이 心住於法하야 而行布施하면 如人이 入闇하야 卽無所見이요 若菩薩이 心不住於法하야 而行布施하면 如人이 有目하야 日光明照에 見種種色이니라 須菩提야 當來之世에 若有善男子善女人이 能於此經에 受持讀誦하면 卽爲如來-以佛智慧로 悉知是人하며 悉見是人하나니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하리라

 

(영문)

 

Section XIV. Perfect Peace Lies in Freedom from Characteristic Distinctions

 

Upon the occasion of hearing this Discourse Subhuti had an interior realization of its meaning and was moved to tears. Where upon he addressed Buddha thus: It is a most precious thing, World-honoured One, that you should deliver this supremely profound Discours. Never have I heard such an exposition since of old my eye of wisdom first opened. World-honoured One, if anyone listens to this Discourse in faith with a pure, lucid mind, he will there upon conceive an idea of Fundamental Reality. We should know that such an one establishes the most remarkable virtue. World-honoured One,

such an idea of Fundamental Reality is not, in fact, a distinctive idea; therefore the Tathagata teaches: "Idea of Fundamental Reality" is merely a name. World-honoured One, having listened to this Discourse, I receive and retain it with faith and understanding. This is not difficult for me, but in ages to come-in the last five hundred years, if there be men coming to hear this Discourse who receive and retain it with faith and understanding, they will be persons of most remarkable achievement. Wherefore? Because they will be free from the idea of an ego-entity, free from the idea of a personality, free from the idea of a being, and free from the idea of a separated individuality. And why? Because the distinguishing of an ego-entity is erroneous. Likewise the distinguishing of a personality, or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is erroneous. Consequently those who have left behind every phenomenal distinction are called Buddhas all.

Buddha said to Subhuti: Just as you say! If anyone listens to this Discourse and is neither filled with alarm nor dread, be it known that such an one is of remarkable achievement.

Wherefore? Because, Subhuti, the Tathagata teaches that the First Perfectionthe Perfection of Charityis not, in fact, the First Perfection: such is merely a name.

Subhuti, the Tathagata teaches likewise that the perfection of Patience is not the perfection of Patience: such is merely a name. Why so? It is shown thus, Subhuti: When the Rajah of Kalinga mutilated my body, I was at that time free from the idea of an ego-entity,a personality, a being, and a separated individuality. Wherefore? Because then when my limbs were cut away piece by piece, had I been bound by the distinctions aforesaid, feelings of anger and hatred would have been aroused within me. Subhuti, I remember that long ago, sometime during my last past five hundred mortal lives, I was an ascetic practising patience. Even then was I free from those distinctions of separated selfhood. Therefore, Subhuti, Bodhisattvas should leave behind all phenomenal distinctions and awaken the thought of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by not allowing the mind to depend upon notions evoked by the sensible world-by not allowing the mind to depend upon notions evoked by sounds, odours, flavours, touch-contacts or any qualities. The mind should be kept independent of any thoughts which arise within it. If the mind depends upon anything it has no sure haven. This is why Buddha teaches that the mind of a Bodhisattva should not accept the appearances of things as a basis when exercising charity. Subhuti, as Bodhisattvas practise charity for the welfare of all living beings they should do it in this manner. Just as the Tathagata declares that characteristics are not characteristics, so He declares that all living beings are not, in fact, living beings.

Subhuti, the Tathagata is He who declares that which is true; He who declares that which is fundamental; He who declares that which is ultimate. He does not declare that which is deceitful, nor that which is monstrous. Subhuti, that Truth to which the Tathagata has attained is neither real nor unreal.

Subhuti, if a bodhisattva practises charity with mind attached to formal notions he is like unto a man groping sightless in the gloom; but a Bodhisattva who practises charity with mind detached from any formal notions is like unto a man with open eyes in the radiant glory of the morning, to whom all kinds of objects are clearly visible.

Subhuti, if there be good men and good women in future ages, able to receive, read and recite this Discourse in its entirety, the Tathagata will clearly perceive and recognize them by means of His Buddha-knowledge; and each one of them will bring immeasurable and incalculable merit to fruition.

 

(한글)

 

14상을 떠나 적멸에 이르라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그 뜻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정말 드문 일입니다세존이시어부처님께서 이렇게 심히 깊은 경전을 설하신다는 것은저는 예로부터 얻은 혜안으로는 이와 같은 경을 얻어듣지 못했습니다세존이시어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얻어듣고믿는 마음이 깨끗하면 곧 실상을 깨달을 것입니다이 같은 사람은 제일로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사람임을 알겠나이다세존이시어이 실상이란 곧 상이 아니므로 여래께서 실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어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듣고믿어 깨닫고이를 받아 지니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지만만약 먼 훗날 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얻어듣고믿어 깨달아 받아 지닌다면이 사람은 곧 제일로 희유한 사람이라 하겠나이다왜냐하면이 사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아상은 곧 상이 아니며인상중생상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일체의 모든 상을 떠난 자를 곧 이름하여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렇다그렇다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얻어듣고놀라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면마땅히 알라이 사람은 심히 희유한 사람이다왜냐하면수보리야여래가 설한 제일파라밀이란 곧 제일파라밀이 아니고 다만 그 이름이 제일파라밀이다수보리야여래가 설한 인욕파라밀도 인욕파라밀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인욕파라밀이다.

어째서 그러한가수보리야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신체를 낱낱이 베일 때에 나는 아상인상이 없었으며중생상수자상도 없었다왜냐하면내가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베일 때에 만약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었으면 응당 성내고 원망했으리라.

수보리야나는 또 과거 오백세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던 일을 기억하노니그때의 세상에서도 아상인상중생상도 없었고수자상도 없었느니라그러므로 수보리야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을 낼지니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마땅히 성법에 머물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고응당 머문 바 없는 그 마음을 낼지니라만약 마음에 머무는 바가 있다면그 머묾을 머묾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부처는 보살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마음을 색에 머물게 하지 말고 보시하라고 했던 것이다.

수보리야보살은 일체 중생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느니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상이 아니고또한 일체의 중생도 중생이 아니니라수보리야여래는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사실과 같이 말하는 자며거짓이 없는 말을 하는 자이며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다.

수보리야여래가 얻은 바의 법그 법은 실하지도허하지도 아니하니라수보리야만약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물러 보시하면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가 아무 것도 보는 바가 없는 것과 같고만약 보살의 마음이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그것은 마치 그 사람의 눈이 또렷하고 햇빛도 밝게 비쳐서 온갖 형체를 보는 것과 같으리라.

수보리야오는 세상에서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있어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여래가 부처님의 지혜로써 이 사람들을 다 알고 다 보아서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하리라.”

 

(해설)

 

14분 이상적멸(離相寂滅)’에서는 13분까지의 내용이 요약정리되고 있다주로 사상(四相)을 짓지 말고머묾이 없이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을 후렴처럼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서 부처와 수보리 간의 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부처와 수보리가 말하는 언어와 논리의 구조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상을 지을 경우 상에 따른 인식의 왜곡에 따라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하면서, ‘이름이 그러할 뿐이다(是名)’라는 문장을 반복하여 삽입하고 있다.

 

가령, ‘제일파라밀은 여래가 설하기를 제일파라밀이 아니다이름 하여 제일파라밀이다(第一波羅蜜 如來說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라고 한다이는 환언하여, ‘A는 A가 아니다이름 하기를 A라고 한다.’이다여기서 ‘A는 A가 아니다라고 할 때 앞의 A와 뒤의 A는 성격이 전혀 다른 A이다앞의 A는 참모습의 A가 아니고 인식하는 사람의 자의식과 편견사용되는 언어의 부정확성 등에 따라 상()이 개재되어 인식되고 잘못 판단된 A이다반면 뒤의 A는 참모습의 A이다따라서 앞의 A와 뒤의 A는 전혀 다른 A이고이런 사실을 진술하는 것이 ‘A는 A가 아니다이다한편 참모습의 A를 규정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식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그러나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된 A는 자의적인 생각과 언어의 한계성 때문에 진정한 참모습의 A가 아니다. ‘이름 하기를 A라고 한다는 것은 언어의 한계성과 폐단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규정하고 이름 붙인 것이 앞의 A이라는 말이다.

 

금강경에서는 일관성 있게 사상(四相)을 없애고 진리에 다가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름 하기를 A라고 한다는 말은 모든 존재와 현상에 부처든 중생이든 누구든 이름을 붙일 경우그 이름은 진정한 참모습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부처가 가르친 각각의 내용과 사용된 언어에 나름대로 집착하고 상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어느 유명 불교해설자가 제일파라밀은 제일파라밀이 아니다그래서 비로소 제일파라밀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는데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넌센스다(콘체의 영문번역: the Tathagata teaches that the First Perfectionthe Perfection of Charity〕 is not, in fact, the First Perfection: such is merely a name). ‘A는 A가 아니다라는 사실이 논리적인 이유와 배경이 되어그 결과로서 비로소 A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또 일부에서 A가 아님을 부정하고그렇게 부정된 A를 이름 붙여 대긍정의 방향으로 나가는 불교의 사상은 대단히 심오하다고 강변하는 것 역시 큰 넌센스다.

 

부처의 깨달음은 너무도 위대했으므로 이에 걸맞게 부처는 신화화되었고부처의 본생담들이 민간설화를 각색하여 만들어졌다가공된 본생담의 일관된 주제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사상이다부처는 전생에서 수메다라는 인물로 오랜 기간 살면서 갖가지 보살행을 한 결과 연등부처의 수기를 받고 이생에서 석가모니 부처로 태어났다고 한다부처가 전생에서 가리왕에게 온몸을 베임을 당한 이야기도 이와 같은 본생담 중의 하나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생담의 설화 이야기가 아니고사상(四相)이 모두 제거되어 나라는 실체가 없었음으로 온몸을 베이고도 성내지 않고 원망함도 없었다는 사실과그것의 의미이다상이 없는 한에서는 온몸을 베이는 고통도 없다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중요하다.

 

第十五 持經功德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若有善男子善女人이 初日分에 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中日分에 復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며 後日分에 亦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여 如是無量百千萬億劫에 以身布施어든 若復有人이 聞此經典하고 信心不逆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何況書寫受持讀誦하야 爲人解說이리오 須菩提야 以要言之컨댄 是經이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量無邊功德하니 如來爲發大乘者說이며 爲發最上乘者說이니라 若有人이 能受持讀誦하야 廣爲人說하면 如來-悉知是人하며 悉見是人하야 皆得成就不可量不可稱無有邊不可思議功德하리니 如是人等은 卽爲荷擔如來阿 多羅三 三菩提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樂所法者는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卽於此經에 不能聽受讀誦하야 爲人解說하리라 須菩提야 在在處處에 若有此經하면 一切世間天人阿修羅의 所應供養이니 當知此處는 卽爲是塔이라 皆應恭敬하야 作禮圍繞하야 以諸華香으로 而山其處하리라

 

(영문)

 

Section XV. The Incomparable Value of This Teaching

 

Subhuti, if on the one hand, a good man or a good woman performs in the morning as many charitable acts of self-denial as the sand-grains of the Ganges, and performs as many again in the noonday and as many again in the evening, and continues so doing throughout numberless ages, and on the other hand, anyone listens to this Discourse with heart of faith and without contention, the latter would be the more blessed. But how can any comparison be made with one who writes it down, receives it, retains it, and explains it to others!

Subhuti, we can summarise the matter by saying that the full value of this Discourse can neither be conceived nor estimated, nor can any limit be set to it. The Tathagata has declared this teaching for the benefit of initiates of the Great Way; he has declared it for the benefit of initiates of the Supreme Way.

Whosoever can receive and retain this teaching, study it, recite it and spread it abroad will be clearly perceived and recognized by the Tathagata and will achieve a perfection of merit beyond measurement or calculation-a perfection of merit unlimited and inconceivable. In every case such an one will exemplify the Tathagata-Consummation of the Incomparable Enlightenment. Wherefore? Because of doctrines involving the conception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are unable to accept, receive, study, recite, and openly explain this Discourse.

Subhuti, in every place where this Discourse is to be found the whole realms of Gods, Men and Titans should offer worship; for you must know that such a place is sanctified like a shrine, and should properly be venerated by all with ceremonial obeisance and circumambulation and with offerings of flowers and incense.

 

(한글)

 

15경을 지니는 공덕

 

수보리야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고또 점심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보시하고또 저녁때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몸을 바쳐 보시하여이와 같이 무량한 백천만억 겁 동안을 몸으로 보시하더라도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 복이 저 몸을 보시한 복보다 뛰어나리니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설해 줌이겠느냐?

수보리야요약해서 말하건대이 경은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끝없는 공덕을 지니고 있으니여래는 대승(大乘)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최상승(最上乘)에 발심한 자를 위해 이 경을 설하느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널리 사람들을 위해 설한다면여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다 보나니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끝이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모두 성취하게 되리라이런 사람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짊어지게 되리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수보리야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들은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게 되어 곧 이 경을 능히 받아들고 읽고 외우며 남을 위해 설하지 못하느니라.

수보리야어느 곳이든지 이 경이 있는 곳이면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가 기꺼이 공양하는 곳이 되리니마땅히 알라이곳은 탑이 되리라모두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주위를 돌면서 여러 가지 꽃과 향으로써 그 곳에 뿌리리라.”

 

(해설)

 

불교의 목적은 절대 진리인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아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데 있고이를 위해 시간을 아껴 경전을 읽고참선 수행할 것을 권하고 있다우리는 이를 통해 우주와 인생의 기본 뜻을 깨달아 마음의 안정을 얻고 진실된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불교의 자비심과 보시는 견성성불에 어떻게 도움이 되고 연결되는가견성성불이라는 종교행위와 보시를 통한 도덕성윤리성의 제고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불교에서 보시를 가장 중요시 하는 이유는 자의식과 사상(四相)을 없애는 수행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보시를 할 때는 나의 희생이 따르고 이기적인 자의식이 고조된다자의식과 상을 버리지 않고는 보시할 수 없다이것이 바로 육파라밀의 제일파라밀로서 보시할 것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아침점심저녁으로 갠지스강가의 모래 수만큼의 보시를 백천만억 겁 동안 한다 해도 이것은 차라리 금강경 한 줄을 듣고 믿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보다 그 공덕의 크기가 훨씬 못하다고 한다여기서 백천만억 겁 동안의 보시란 암묵적으로 상을 가지고 하는 보시라는 뜻이 전제되어 있으며그럴 경우 그 보시행위는 깨달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공덕 역시 아주 작은 것이라는 말이다앞의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에서는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도록 크리라고 했다보시를 하면서도 상을 짓지 않았다면분명 깨달음에 다가간 것이 되어 그 복덕은 무한히 큰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남을 도와주어 복덕이 그렇게 큰 것이 결코 아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 경이 있는 곳은 탑과 절간이 되어 일체 세간의 모든 것들이 공양하는 곳이 될 것이라 했다법신불 사상에 의해 경은 바로 부처이므로 경이 있는 곳에는 부처도 있게 된다따라서 부처가 상징적으로 있는 탑과 절에서 부처를 공양하듯이 경이 있는 곳에서도 부처를 공양하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第十六 能淨業障分

 

(한문원문)

 

復次須菩提야 善男子善女人이 受持讀誦此經하야 若爲人輕賤이면 是人이 先世罪業으로 應墮惡道언마는 以今世人이 輕賤故로 先世罪業이 卽爲消滅하고 當得阿 多羅三 三菩提하리라 須菩提야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하니 於然燈佛前에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하야 悉皆供養承事하야 無空過者니라 若復有人이 於後末世에 能受持讀誦此經하면 所得功德이 於我所供養諸佛功德으로 百分不及一이며 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로 所不能及이니라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於後末世에 有受持讀誦此經하야 所得功德을 我若具說者댄 或有人聞하고 心卽狂亂하야 狐疑不信하리니 須菩提야 當知是經은 義不可思議며 果報도 亦不可思議니라

 

(영문)

 

Section XVI. Purgation through Suffering the Retribution for Past Sins

 

Furthermore, Subhuti, if it be that good men and good women, who receive and retain this Discourse, are downtrodden, their evil destiny is the inevitable retributive result of sins committed in their past mortal lives. By virtue of their present misfortunes the reacting effects of their past will be thereby worked out, and they will be in a position to attain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Subhuti, I remember the infinitely remote past before Dipankara Buddha. There were 84,000 myriads of multi-millions of Buddhas and to all these I made offerings; yes, all these I served without the least trace of fault. Nevertheless, if anyone is able to receive, retain, study, and recite this Discourse at the end of the last500-yearperiod he will gain such a merit that mine in the service of all the Buddhas could not be reckoned as one-hundredth part of it, not even one-thousandth part of it, not even one thousand myriad multi-millionth part of it-indeed, no such comparison is possible.

Subhuti, if I fully detailed the merit gained by good men and good women coming to receive, retain, study, and recite this Discourse in the last period, my hearers would be filled with doubt and might become disordered in mind, suspicious and unbelieving. You should know, Subhuti, that the significance of this Discourse is beyond conception; likewise the fruit of its rewards is beyond conception.

 

(한글)

 

16능히 업장을 깨끗이 하다

 

수보리야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울 때에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한 다면이는 전생에 지은 죄업으로 응당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의 사람들이 업신여기기 때문에 전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리라.

수보리야내가 과거 무량의 아승지 겁을 생각하니 연등불을 뵙기 전에 팔백사천만억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들을 만나서 모두 다 공양하고 받들어 섬김에 헛되이 지내지 않았느니라만약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면내가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그가 얻는 공덕의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하리라.

수보리야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이 경을 받아 지니며 읽고 외워서 얻는 공덕을 내가 자세히 다 말한다면어떤 사람은 그것을 듣고 마음이 미쳐서 흐트러지고 믿지 않으리라.

수보리야마땅히 알라이 경의 뜻도 가히 생각할 수 없으며 그 과보 또한 가히 생각할 수 없느니라.”

 

(해설)

 

16분에서 해석이 가장 까다롭고 미묘한 부분은 금생의 사람들이 업신여기기 때문에 전생의 모든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이다.

 

불교에서 인과응보(因果應報)의 필연은 격세를 두고 윤회의 형태로 나타난다전생에 악업을 지었으면 내생에서는 반드시 상응하는 업보(業報)가 있다반야지혜를 얻을 수 있는 위대하고 위대한 금강경을 수지독경하는 데 있어서사람들이 그것을 경시하고 핍박한다면 수지독경의 당사자로서는 여간 큰 일이 아니다업신여김을 당하고 핍박받는 것은 지옥 불에 떨어지는 최악의 과보와 징벌에 상응하는 것이다따라서 금강경을 수지독송함에 있어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과보는 지옥과 아수라에 떨어지는 것 이상으로 전생의 죄업을 충분히 씻고도 남을만한 과보이다이러한 맥락이 금생의 사람들이 업신여기기 때문에 전생의 모든 죄업이 모두 소멸되고...’의 뜻이고 해석이다.

 

한편 금생의 능정업장(能淨業障)과 전생의 죄업소멸(罪業消滅)의 개념차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죄업은 전생에 저지른 악업이고업장은 악업에 따른 금생의 과보이다금강경을 수지독송함에 있어 업신여김을 당한다면전생의 죄업이 소멸된다고 했다전생의 죄업이 소멸되면이에 따라 자동적으로 금생의 업장은 없는 것인데분의 제목에서 죄업소멸이라 하지 않고 능정업장이라고 했다.

 

第十七 究竟無我分

 

(한문원문)

 

爾時에 須菩提白佛言하사되 世尊하 善男子善女人이 發阿 多羅三 三菩提하면 云何應住하며 云何降伏其心하리이까 佛告須菩提하사되 若善男子善女人이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는 當生如是心이리니 我應滅度一切衆生하리라 滅度一切衆生이되 而無有一衆生도 實滅度者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菩薩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면 卽非菩薩이니라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實無有法이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니라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於燃燈佛所에 有法하야 得阿 多羅三 三菩提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하여는 佛於燃燈佛所에 無有法하야 得阿 多羅三 三菩提하니이다 佛言하사되 如是如是니라 須菩提야 實無有法하야 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니라 須菩提야 若有法하야 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者일댄 燃燈佛이 卽不與我授記하사되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號釋迦牟尼련마는 以實無有法하야 得阿 多羅三 三菩提일새 是故로 燃燈佛이 如我授記하사 作是言하시되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야 號釋迦牟尼라하시니라 何以故오 如來者는 卽諸法如義니라 若有人言하되 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라면 須菩提야 實無有法하야 佛得阿 多羅三 三菩提니라 須菩提야 如來所得阿 多羅三 三菩提는 於是中에 無實無虛하니라 是故로 如來說一切法이 皆是佛法이니라 須菩提야 所言一切法者는 卽非一切法이라 是故로 名一切法이니라 須菩提야 譬如人身長大이니라 須菩提言하되 世尊하 如來說人身長大는 卽爲非大身이요 是名大身이니이다 須菩提야 菩薩도 亦如是하야 若作是言하되 我當滅度無量衆生이라하면 卽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實無有法이 名爲菩薩이니 是故로 佛說一切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라하니라 須菩提야 若菩薩이 作是言하되 我當莊嚴佛土라하면 是不名菩薩이니 何以故오 如來說莊嚴佛土者는 卽非莊嚴이요 是名莊嚴이니라 須菩提야 若菩薩이 通達無我法者면 如來說名眞是菩薩이니라

 

(영문)

 

Section XVII. No One Attains Transcendental Wisdom

 

At that time Subhuti addressed Buddha, saying: World-honoured One, if good men and good women seek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by what criteria should they abide and how should they control their thoughts?

Buddha replied to Subhuti: Good men and good women seeking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must create this resolved attitude of mind: I must liberate all living beings, yet when all have been liberated, verily not any one is liberated. Wherefore? If a Bodhisattva cherishes the idea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he is consequently not a Bodhisattva, Subhuti. This is because in reality there is no formula which gives rise to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Subhuti, what do you think? When the Tathagata was with Dipankara Buddha was there any formula for the attainment of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No, World-honoured One, as I understand Buddha`s meaning, there was no formula by which the Tathagata attained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Buddha said: You are right, Subhuti! Verily there was no formula by which the Tathagata attained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Subhuti, had there been any such formula, Dipankara Buddha would not have predicted concerning me: "In the ages of the future you will come to be a Buddha called Shakyamuni"; but Dipankara Buddha made that prediction concerning me because there is actually no formula for the attainment of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The reason herein is that Tathagata is a signification implying all formulas. In case anyone says that the Tathagata attained the Consummation of Incoparable Enlightenment, I tell you truly, Subhuti, that there is no Formula by which the Buddha attained it. Subhuti, the basis of Tathagata`s attainment of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is wholly beyond; it is neither real nor unreal. Hence I say that the whole realm of formulations is not really such, therefore it is called "Realm of formulations."

Subhuti, a comparison may be made with the idea ofa gigantic human frame.

Then Subhuti said: The World-honoured One has declared that such is not a great body; "a great body" is just the name given to it.

Subhuti, it is the same concerning Bodhisattvas. If a Bodhisattva announces: I will liberate all living creatures, he is not rightly called a Bodhisattva. Wherefore? Because, Subhuti, there is really no such condition as that called Bodhisattvaship, because Buddha teaches that all things are devoid of selfhood, devoid of personality, devoid of entity, and devoid of separate individuality. Subhuti, if a Bodhisattva announces:

I will set forth majestic Buddha-lands one does not call him a Bodhisattva, because the Tathagata has declared that the setting forth of majestic Buddha-lands is not really such: "a majestic setting forth" is just the name given to it.

Subhuti, Bodhisattvas who are wholly devoid of any conception of separate selfhood are truthfully called Bodhisattvas.

 

(한글)

 

17궁극의 경지에는 내가 없다

 

그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어떻게 머물며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니, ‘나는 일체중생을 멸도 한다고 하였으나 일체중생을 다 멸도하고 보니 실로 멸도한 중생이 아무도 없었다.’라고.

어째서 그러한가수보리야만약 보살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수보리야실로 아뇩다라삼막삼보리의 마음을 낸다는 법이 실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제가 부처님이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이 연등불 처소에서 법이 있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그렇다그렇다수보리야실로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니라수보리야만약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면연등불이 곧 나에게 수기를 주면서 너는 내세에 마땅히 석가모니라는 이름의 부처가 되리라고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실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므로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를 주시면서 너는 내세에 마땅히 석가모니라는 이름의 부처가 되리라.’고 말씀한 것이다어째서 그러한가여래라 함은 곧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길 여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고 한다면수보리야실로 법이 있어서 부처님이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니라수보리야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실다움고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그러므로 여래가 설하되 일체의 법이 모두 부처의 법이라 한 것이다.

수보리야내가 말한 바 일체법이란 곧 일체법이 아니고다만 일체법이라 고 부르는 것이다수보리야비유하건대 사람의 몸이 장대함과 같느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세존이시여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고 하신 것은 곧장대한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대한 것입니다.”

수보리야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보살이 나는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멸도하리라.’고 한다면 곧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어째서 그러한가실로 법이 있어서 보살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일체법은 아도 없고인도 없고중생도 없고수자도 없다라고.

수보리야만약 보살이 내가 반드시 불토를 장엄케 하리라.’고 말한다면그를 보살이라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어째서 그러한가여래가 불토를 장엄케 한다고 말한 것은 장엄케 함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케 함이니라.

수보리야만약 보살이 무아의 법에 통달한 자이면 여래는 그를 참다운 보살이라고 이름하리라.”

 

(해설)

 

여기서는 선현기청분(善現其請分)에서 수보리가 부처에게 했던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아뇩다라삼막삼보리)을 얻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어떠한 마음자세로 살아가야 하며또한 이미 잘못된 마음과 생각은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질문과 대답의 요지를 다시 한 번 더 정리하여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17분의 내용을 더 설명하기 전에 금강경에 나오는 기본적인 단어와 개념그리고 논리의 구조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분의 제목인 구경무아(究竟無我)에서 공()의 개념과 매우 유사한 무아(無我)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다또한 유명 불교해설자와 스님들의 서로 다른 17분 해설에 따라 보통사람들로서는 개념이해의 혼란이 극도에 달하기 때문이다.

 

17분까지 금강경의 주 핵심의 내용과 가르침에 따르면 금강과 같은 반야지혜를 증득하여 상()을 없앰으로써 우주만물의 존재와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으며이를 통해 온갖 고통에서 해방되는 열반의 길에 들 수 있다 하였다그러나 인간은 유식학(唯識學)에서처럼 말라식(末羅識)과 같은 자의식또는 사상(四相)과 같은 편견과 아집즉 변계소집(遍計所執)에 따라 객관적 진실을 보지 못한다한편 인식대상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우주만물의 존재와 현상에는 제행무상제법무아로 대변되듯이 영원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결론적으로 나를 포함하여 삼라만상에는 실체가 없는데이것들을 인식할 때 여러 가지 상을 지음으로써 실체가 무()하고 공()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잘못 알아차리는 대상으로는 보살의 중생을 위한 멸도무상정등각을 얻는 법일체의 법불토의 장엄화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몸집이 크다는 사실 등이다이러한 인식 대상들은 실제로 공()한 성격을 가지면서 실체가 없는 것들이지만사람들은 그것들을 잘못 인식하는 것에 더하여 잘못 말하고잘못된 이름을 붙여 잘못 규정하고 있다잘못 인식하고 잘못 말하고 있는 일체의 불법(佛法)은 없는 것들이다(唯識無境). 

 

따라서 17분에서는 우리가 의사소통용으로 규정하고 있는 일체의 불법들은 이미 타자의 자의식과 편견으로 오염된 것들이므로 잘못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이에 더하여 타자에 의해 왜곡된 불법에 대해 나의 잘못된 인식의 결과를 추가하여 인식의 결과를 더 크게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함축하고 있다우리가 삼라만상을 어떻게 인식하든최종적으로 엄연한 사실은 모든 인식대상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 구경무아(究竟無我)의 근본 뜻이다.

 

第十八 一體同觀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於意云何오오 如來有肉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有肉眼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天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有天眼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慧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有慧眼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法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有法眼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有佛眼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有佛眼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恒河中所有沙를 佛說是沙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如來說是沙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一恒河中所有沙히 有如是沙等恒河하고 是諸恒河所有沙數로 佛世界-如是하면 寧爲多不아 甚多니이다 世尊하 佛告須菩提하사되 爾所國土中에 所有衆生의 若干種心을 如來悉知하나니 何以故오 如來說諸心이 皆爲非心이요 是名爲心이니 所以者何오 須菩提야 過去心不可得이며 現在心不可得이며 未來心不可得일새니라

 

(영문)

 

Section XVIII. All Modes of mind are Really Only Mind

 

Subhuti, what do you think? Does the Tathagata possess the human eye?

Yes, World-honoured One, He does.

Well, do you think the Tathagata possesses the divine eye?

Yes, World-honoured One, He does.

And do you think the Tathagata possesses the gnostic eye?

Yes, World-honoured One, He does.

And do you think the Tathagata possesses the eye of transcendent wisdom ?

Yes, World-honoured One, He does.

And do you think the Tathagata possesses the Buddha-eye of omniscience?

Yes, World-honoured One, He does.

Subhuti, what do you think? Concerning the sand-grains of the Ganges, has the Buddha taught about them?

Yes, World-honoured One, the Tathagata has taught concerning these grains.

Well, Subhuti, if there were as many Ganges rivers as the sand-grains of the Ganges and there was a Buddha-land for each sand-grain in all those Ganges rivers, would those Buddha-lands be many?

Subhuti replied: Many indeed, World-honoured One!

Then Buddha said: Subhuti, however many living beings there are in all those Buddha lands, though they have manifold modes of mind, the Tathagata understands them all. Wherefore? Because the Tathagata teaches that all these are not Mind; they are merely called "mind".

Subhuti, it is impossible to retain past mind, impossible to hold on to present mind, and impossible to grasp future mind.

 

(한글)

 

18모든 것을 동일하게 보아라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는 육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여래는 육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는 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여래는 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는 혜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여래는 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는 법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여래는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는 불안이 있느냐.”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여래는 불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저 갠지스 강에 있는 저 모래를 부처님이 설한 적이 있느냐.”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여래께서는 그 모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저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 수와 같이 이렇게 많은 갠지스 강들이 있고 이 모든 갠지스 강들에 있는 모래 수만큼의 불세계가 있다면 이는 얼마나 많음이 되겠느냐.”

심히 많습니다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저 국토 가운데 있는 중생의 갖가지 마음을 여래는 다 아느니라무슨 까닭인가여래가 설한 모든 마음은 다 마음이 아니요 그 이름이 마음이기 때문이니라까닭이 무엇인가하면 須菩提지나간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現在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未來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해설)

 

일체동관(一體同觀)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한 몸이 되어 동일하게 바라본다.’, 또는 한 몸으로 동일하게 바라본다.’이다전자의 경우는 바라보는 주체 간에 이견이 없이 바라본다는 뜻이고후자의 경우는 바라보는 대상을 분리할 수 없는 통합체로 생각하고 동일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서 바라보는 대상은 무엇이고바라보는 주체는 누구인가금강경은 부처가 수보리를 대상으로 불경을 설하고 있으므로수보리(또는 일반 중생)가 권유를 받는 입장에서 행위의 주체가 될 것이 분명하다한편 18분의 핵심내용은 모래 수와 같은 불국토의 모래 수 같이 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마음을 부처가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이므로바라보는 대상은 부처의 초능력 내지는 중생의 서로 다른 각양각색의 마음들일 것이다여기서 부처가 5안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각양각색의 구체적인 마음들이 아니고그렇게 서로 다른 마음들은 실체가 없고 허망하다는 사실 뿐이다또한 부처가 중생의 마음 중 알 수 있는 것은 중생이 거짓 마음을 만들지 않고 본래의 청정한 마음만을 유지할 경우 그런 중생은 부처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일체동관(一體同觀)이란 헛된 상()을 짓지 않고 헛된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그런 중생은 부처와 다를 바가 없으므로중생과 부처를 차별 없이 동일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사상(四相중 중생상(衆生相)을 타파하는 것과 유사하겠다따라서 일체동관(一體同觀)은 최종적으로 한 몸으로 동일하게 바라본다.’로 풀어 써야 할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일체동관(一體同觀)은 누구나 수행과 정진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성불사상(成佛思想)의 모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第十九 法界通化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有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써 以用布施하면 是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多不아 如是니이다 世尊하 此人이 以是因緣으로 得福甚多니이다 須菩提야 若福德이 有實인댄 如來不說得福德多니 以福德이 無故로 如來說得福德多니라

 

(영문)

 

Section XIX. Absolute Reality is the Only Foundation

 

Subhuti, what do you think? If anyone filled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with the seven treasures and gave all away in gifts of alms, would he gain great merit?

Yes, indeed, World-honoured One, he would gain great merit!

Subhuti, if such merit was Real, the Tathagata would not have declared it to be great, but because it is without a foundation the Tathagata characterised it as "great".

 

(한글)

 

19법계를 모두 교화하라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서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받는 복이 많겠느냐?”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매우 많겠습니다.”

수보리야만약 복덕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여래가 말하지 아니할 것인데복덕이 없으므로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여래가 말하느니라.”

 

(해설)

 

불교를 믿어 수행정진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하고 행복한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는 데 있다인간의 온갖 고통즉 팔고(八苦)는 무명과 망상에 따라 스스로 지어낸 고통이다따라서 금강경은 인간의 객관세계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판단즉 사상(四相)을 타파하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사상의 타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강과도 같은 반야지혜의 증득이 필요하며육파라밀(六波羅蜜)이라는 보살도를 수행해야 한다.

 

육파라밀 중 제1파라밀로서 보시(布施)는 왜 해야 하는 것인가불교에서 보시를 가장 중요시 하는 이유는 자의식과 사상(四相)을 없애는 수행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보시를 할 때는 나의 희생이 따르고 이기적인 자의식이 고조된다자의식과 상을 버리지 않고는 보시할 수 없다따라서 일관성 있는 보시를 통해 마침내는 자의식과 사상을 없애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한편보시를 받는 사람들 역시 보시를 받으면서 보시를 배우게 되고보시를 하는 과정에서 자의식을 없애는 훈련을 할 수 있게 된다보시는 결코 윤리와 도덕에 따라 남을 도와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법계통화(法界通化)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도에 따라 불법의 대상이 되는 온 세상을 깨달음의 세계가 되도록 중생들을 두루두루 교화하라는 말이다보살은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면서 중생의 보시가 어디까지나 상이 없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 문장 중 복덕이 없으므로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여래가 말하느니라.’는 말의 서술구조와 진술방식은 앞의 분()에서도 유사하게 사용된 것이다이는 유주상(有住相칠보보시의 복덕은 진실한 복덕이 아니므로(없으므로), 다만 복덕이라 이름붙이거나 그 복덕이 많다고 말하는 것뿐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第二十 離色離相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을 可以具足色身으로 見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色身으로 이니이다 何以故오 如來說具足色身이 卽非具足色身이요 是名具足色身이니이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如來를 可以具足諸相으로 見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如來를 不應以具足諸相으로 이니 何以故오 如來說諸相具足은 卽非具足이니 是名諸相具足이니이다

 

(영문)

 

Section XX. The Unreality of Phenomenal Distinctions

 

Subhuti, what do you think? Can the Buddha be perceived by His perfectly-formed body?

No, World-honoured One, the Tathagata cannot be perceived by His perfectly-formed body, because the Tathagata teaches that a perfectly-formed body is not really such; it is merely called "a perfectly formed body".

Subhuti, what do you think? Can the Tathagata be perceived by means of any phenomenal characteristic?

No, World-honoured One, the Tathagata may not be perceived by any phenomenal characteristic, because the Tathagata teaches that phenomenal characteristics are not really such; they are merely termed "phenomenal characteristics".

 

(한글)

 

20색과 상을 떠나라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부처님을 가히 구족한 색신으로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여래를 마땅히 구족한 색신으로 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구족한 색신은 곧 구족한 색신이 아니고 그 이름이 구족한 색신입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여래를 모든 상이 구족한 것으로 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여래를 모든 상이 구족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모든 상의 구족함은 곧 구족함이 아니고그 이름이 모든 상의 구족함이기 때문입니다.”

 

(해설)

 

이색이상(離色離相)이란 한마디로 형색과 형상을 떠나야 진정한 부처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여기서 색()은 색즉시공(色卽是空)에서의 색이며진공묘유의 형식으로 존재하지만 영원한 실체가 없는 색이다한편 상()이란 색에 대한 주관적인 이미지이다가령 부처는 이미지 상으로서 32상을 가지고 있다.

 

색이란 덧없이 변해 실체가 없고색에 대한 상은 인신주체의 자의식과 편견에 따라 왜곡된 것이므로참다운 인식과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 색과 마음에 간직한 상을 모두 떠나야 한다.

 

또한 우리가 규정하고 생각하는 부처불상탑 등은 지극히 왜곡된 개념의 단어와 도구들이다따라서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불교는 불교가 아니므로 믿어서는 안 된다이색이상(離色離相)해야 하기 때문이다.


第二十一 非說所說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汝勿謂如來作是念하되 我當有所說法이니 莫作是念하라 何以故오 若人이 하되 如來有所說法이라하면 卽爲謗佛이니 不能解我所說故니라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이 是名說法이니라 爾時에 慧命須菩提白佛言하되 世尊하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聞說是法하고 生信心不이까 佛言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衆生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說非衆生일새 是名衆生이니라

 

(영문)

 

Section XXI. Words cannot express Truth.

 

That which Words Express is not Truth

Subhuti, do not say that the Tathagata conceives the idea: I must set forth a Teaching. For if anyone says that the Tathagata sets forth a Teaching he really slanders Buddha and is unable to explain what I teach.

As to any Truth-declaring system, Truth is undeclarable; so "an enunciation of Truth" is just the name given to it.

Thereupon, Subhuti spoke these words to Buddha:

World-honoured One, in the ages of the future will there be men coming to hear a declaration of this Teaching who will be inspired with belief?

And Buddha answered: Subhuti, those to whom you refer are neither living beings nor not-living beings. Wherefore? Because "living beings", Subhuti, these "living beings" are not really such; they are just called by that name.

 

(한글)

 

21설한 것도 없고 설해진 바도 없다

 

수보리야너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설한 법을 가지고 있노라는 생각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왜냐하면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설한 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자이니라내가 설한 바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법을 설한다 해도 설할 법이 아무것도 없나니이를 이름하여 설법이라 하느니라.”

그 때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어떤 중생이 미래세에 이 법이 설하여지는 것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수보리야그들은 중생도 아니고중생 아님도 아니다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야중생중생이라 함은 여래가 설하되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이 중생이니라.”

 

(해설)

 

비설소설(非說所說)은 설한 것도 없고설되어진바 내용도 없다는 뜻이다()라는 부정사가 설()에도 소설(所說)에도 연결되는 말이다본분의 내용은 7분의 무득무설(無得無說)의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부처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無上正等覺)’의 깨우침을 얻었고그러한 내용을 설법한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나름대로 상을 짓고 짐작하는 대로 부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며우리가 생각하는 대로또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규정하듯이 부처가 무언가를 설법한 것이 있고 설법되어진바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 분에서는 우리가 나름대로 상을 지어서 규정하고 말하는 식으로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인 법을 이해하고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第二十二 無法可得分

 

(한문원문)

 

須菩提-白佛言하되 世尊하 이 得阿 多羅三 三菩提(는 爲無所得耶(이까 佛言하사대 如是如是니라 須菩提야 我於阿 多羅三 三菩提에 乃至無有小法可得이니 是名我 多羅三 三菩提니라

 

(영문)

 

Section XXII. It Cannot be Said That Anything is Attainable

 

Then Subhuti asked Buddha: World-honoured One, in the attainment of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did Buddha make no acquisition whatsoever?

Buddha replied : Just so, Subhuti. Through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I acquired not even the least thing; wherefore it is called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한글)

 

22가히 얻을 법이 없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 하심은 곧 얻은 것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다그렇다수보리야내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음에 작은 법이라도 얻음이 없으므로 이를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 이름하느니라.”

 

(해설)

 

본분에서는 제7분 무득무설(無得無說)’의 주제가 반복되고 있다부처가 법을 얻었다고 말하면이는 부처가 그 법에 대해 상을 짓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집착이 여전한데 어떻게 법을 얻을 수 있는가따라서 진정으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면 법을 얻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깨달음에 대한 능력은 부처나 중생이나 모두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다사상이라는 먹구름이 벗어지면 중생의 깨달음이 본성과 함께 드러난다깨달음이란 얻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이고깨닫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는 것이다.

 

第二十三 淨心行善分

 

(한문원문)

 

復次須菩提야 是法이 平等하야 無有高下하니 是名我 多羅三 三菩提니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로 修一切善法하면 卽得我 多羅三 三菩提하리니 須菩提야 所言善法者는 如來-說卽非善法을 是名善法이니라

 

(영문)

 

Section XXIII. The Practice of Good Works Purifies the Mind

 

Furthermore, Subhuti, This is altogether everywhere, without differentiation or degree; wherefore it is called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It is straightly attained by freedom from separate personal selfhood and by cultivating all kinds of goodness.

Subhuti, though we speak of "goodness" the Tathagata declares that there is no goodness; such is merely a name.

 

(한글)

 

23깨끗한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

 

이제 다음으로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므로 이를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 한 것이다아도 없고인도 없고중생도 없고수자도 없이 일체의 선법을 닦으면곧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리라.

수보리야이른 바 선법이라는 것은 여래가 설하되 곧 선법이 아니고 그 이름이 선법이니라.”

 

(해설)

 

부처가 깨달은 최상의 올바른(無上正等正覺)’ 깨달음은 일체의 상()을 여의여야 얻을 수 있는 지혜이다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에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음에 작은 법이라도 얻음이 없다고 했다부처가 법을 얻었다고 말하면이는 부처가 그 법에 대해 상을 짓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집착이 여전한데 어떻게 법을 얻을 수 있는가따라서 진정으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면 법을 얻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본분에서는 제7분 무득무설(無得無說)’의 주제가 변형되어 반복되고 있다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 등 사상(四相)을 모두 여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선법을 닦을 때 얻을 수 있다고 한다여기서 선법이란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따라서 선법의 수행은 상을 없애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긴 하지만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第二十四 福智無比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若三千大天世界中에 所有諸須彌山王의 如是等七寶聚를 有人이 持用布施라도 若人이 以此般若波羅蜜經으로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야 爲他人說하면 於前福德으론 百分에 不及一하며 百千萬億分乃至算數譬喩로도 所不能及이니라

 

(영문)

 

Section XXIV. The Incomparable Merit of This Teaching

 

Subhuti, if there be one who gives away in gifts of alms a mass of the seven treasures equal in extent to as many mightly Mount Sumerus as there would be in three thousand galaxies of worlds, and if three be another who selects even only four lines from this Discourse upon the Perfection of Transcendental Wisdom, receiving and retaining them, and clearly expounding them to others, the merit of the latter will be so far greater than that of the former that no conceivable comparison can be made between them.

 

(한글)

 

24복덕과 지혜는 비교될 수 없다

 

수보리야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 있는 모든 수미산왕과 같은 칠보 무더기들을 가져다가 보시를 한다 해도또 어떤 사람이 이 반야파라밀경 내지 그 사구게 하나를 받아 지니고 읽고 외워 남을 위해 설한다면앞의 칠보복덕으로는 이에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백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떠한 숫자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하리라.”

 

(해설)

 

복지무비(福智無比)에서 복()은 보시에 따른 복덕을 말하고()는 반야지혜의 지를 말한다본분에서는 제11분 무위복승(無爲福勝)의 내용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삼천대처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하더라도 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그 복덕의 크기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汝等은 勿謂如來-作是念하되 我當度衆生이라하라 須菩提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實無有衆生하야 如來度者니 若有衆生하야 如來度者면 如來卽我人衆生壽者니라 須菩提야 如來說有我者는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하니라 須菩提야 凡夫者도 如來說卽非凡夫요 是名凡夫이니라

 

(영문)

 

Section XXV. The Illusion of Ego

 

Subhuti, what do you think? Let no one say the Tathagata cherishes the idea: I must liberate all living beings. Allow no such thought, Subhuti. Wherefore? Because in reality there are no living beings to be liberated by the Tathagata. If there were living beings for the Tathagata to liberate, He would partake in the idea of selfhood, personality entity, and separate individuality.

Subhuti, though the common people accept egoity as real, the Tathagata declares that ego is not different from non-ego.

Subhuti, whom the Tathagata referred to as "common people" are not really common people; such is merely a name.

 

(한글)

 

25교화함이 없이 교화하라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너희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야이런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된다왜냐하면 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가지고 있음이니라.

수보리야여래가 아가 있다고 한 것은 아가 있지 아니한 것이거늘 범부들은 아가 있다고 한 것에만 집착한다.

수보리야범부라는 것도 여래가 설하되 곧 범부가 아니고 그 이름이 범부이니라.”

 

(해설)

 

여기서도 자의식과 편견에 따라 짓게 되는 사상(四相)과 그로 인한 인식의 오류를 크게 경계하고 있다보살은 육파라밀 수행의 일환으로 중생에게 보시하는 한편그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 제도(濟度)해야 한다이때 보시한다는 생각이 없이 보시하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듯제도의 대상에 관하여 그릇된 사상을 짓지 말고 교화해야 한다내가 나름대로 판단하여 규정한 제도대상으로서의 중생은 본연의 중생이 아니고이 세상에 없는 중생이다가짜의 중생을 대상으로 제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도할 중생이 없다는 사실을 변증하기 위해 와 범부가 있다고 한 것은 사실은 그런 방식으로는 없는 것이고다만 이름을 그렇게 있다고 붙였을 뿐이라는 예를 들고 있다.

 

第二十六 法身非相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可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不아 須菩提言하되 如是如是니이다 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이 하사대 須菩提야 若三十二相으로 觀如來者면 轉輪聖王도 卽是如來로다 須菩提-白佛言하되 世尊하 如我解佛所說義컨댄 不應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니이다 爾時에 世尊이 而說偈言하사대 若以色見我거나 以音聲求我하면 是人은 行邪道라 不能見如來니라

 

(영문)

 

Section XXVI. The Body of Truth has no Marks

 

Subhuti, what do you think? May the Tathagata be perceived by the thirty-two marks of a great man?

Subhuti answered: Yes, certainly the Tathagata may be perceived thereby.

Then Buddha said: Subhuti, if the Tathagata may be perceived by such marks any great imperial ruler is the same as the Tathagata.

Subhuti then said to Buddha: World-honoured One, as I understand the meaning of Buddha`s words the Tathagata may not be perceived by the thirty-two marks.

Whereupon the World-honoured One uttered this verse: Who sees Me by form, Who seeks Me in sound, Perverted are his footsteps upon the Way; For he cannot perceive the Tathagata.

 

(한글)

 

26법신은 상이 아니다

 

수보리야어떻게 생각하느냐가히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어 말씀드리되,

그렇습니다그렇습니다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수보리야만약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이리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제가 부처님의 설하신 뜻을 이제 이해하기에는 응당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해설)

 

법신(法身)이란 부처의 가르침 그 자체로 화한 역사적인 부처를 뜻한다대승불교에서는 역사적 부처를 그의 가르침과 동일시함으로써부처는 그의 가르침의 형태로 영원히 우리 곁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즉 역사적 부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금강경과 같은 그의 가르침 속에 계속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법신(法身), 즉 부처의 가르침이자 그것을 상징하는 부처의 몸은 형상으로 이해하거나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법신비상(法身非相)의 뜻이다가령 부처의 발바닥이 평평하다거나 손가락이 가늘다는 등의 32가지 신체의 특징을 가지고 여래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삼심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다면유사하게 삼심이상을 가지고 있는 전윤성왕 역시 여래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부처를 몸의 외형이나 목소리로는 부처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라 했다환언하면 부처의 가르침과 법신으로서 부처에 대해 어떠한 편견이나 상도 짓지 말라는 것이다.

 

第二十七 無斷無滅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하되 如來-不以具足相故로 得阿 多羅三 三菩提면 須菩提야 莫作是念하라 如來不以具足相故로 得阿 多羅三 三菩提니라 須菩提야 汝若作是念하되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는 說諸法斷滅가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는 於法이 不說斷滅相이니라

 

(영문)

 

Section ⅩⅩⅦ. It is Erroneous to Affirm that All Things are Ever Extinguished

 

Subhuti, if you should conceive the idea that the Tathagata attained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by reason of His perfect form, do not countenance such thoughts. The Tathagata`s attainment was not by reason of His perfect form.

On the other hand〕 Subhuti, if you should conceive the idea that anyone in whom dawns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declares that all manifest standards are ended and extinguished, do not countenance such thoughts. Wherefore? Because the man in whom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dawns does not affirm concerning any formula that it is finally extinguished.

 

(한글)

 

27끊어짐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

 

수보리야네가 만약 여래는 구족상을 쓰지 않음으로써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라고 생각한다면,

수보리야이와 같이 생각하지 말라여래는 구족상을 쓰지 않음으로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고.

수보리야네가 만약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을 낸 이는 모든 법을 단멸하는 것으로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왜냐하면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을 낸 이는 모든 법에 대해 단멸상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해설)

 

깨달음즉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기 위해서는 구족상(具足相)을 버려야 한다그러나 구족상을 버려야 함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이것은 또 다른 상을 짓는 일이 되므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편으로는 구족상을 버리라 하고다른 한편으로는 구족상을 버리는 일에 집착하지도 말라고 하면 법의 원칙에 일관성이 없어마치 법의 효력이 끊어지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다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생각하든지 한쪽으로 지나치게 집착하여 상을 만들지 말라는 뜻일 뿐이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기 위해서는 구족상(具足相)을 버려야 한다.’라는 불법은 여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한 끊어지지도소멸되지도 않는 영원한 진리로서의 불법이다.

 

지난 번 법신비상(法身非相)에서는 여래의 삼십이상으로써 여래를 가히 알 수 없다고 했다우리가 여래를 알아봄에 있어 나름대로 자의적으로 지어 놓은 이미지와 상징물을 통해서는 그 뜻이 왜곡되어 제대로 여래를 바라볼 수 없다고 한 것이다이번 분에서는 여래가 구족상을 쓰지 않음으로써 반야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이는 여래가 일체의 상을 타파함으로써 반야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우리가 여래를 바라보는 것이나여래가 반야지혜를 얻는 것이나상을 짓지 말라는 부탁은 두 가지 경우에서 공통적이다그러나 앞의 경우에는 단순히 상을 없애라는 경고인 반면뒤의 경우에는 상을 없앤다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第二十八 不受不貪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若菩薩이 以滿恒河沙等世界七寶로 持用布施하고 若復有人이 知一切法無我하야 得成於忍하면 此菩薩이 勝前菩薩의 所得功德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以諸菩薩은 不受福德故니라 須菩提白佛言하사대 世尊하 云何菩薩이 不受福德이니잇고 須菩提야 菩薩의 所作福德은 不應貪着이니 是故로 說不受福德이니라

 

(영문)

 

Section ⅩⅩⅧ. Attachment to Rewards of Merit

 

Subhuti, if one Bodhisattva bestows in charity sufficient of the seven treasures to fill as many worlds as there be sand-grains in the river Ganges, and another, realizing that all things are egoless, attains perfection through patient forbearance, the merit of the latter will far exceed that of the former.

Why is this, Subhuti? It is because all Bodhisattvas are insentient as to the rewards of merit.

Then Subhuti said to Buddha: What is this saying, World-honoured One, that Bodhisattvas are insentient as to rewards of merit?

And Buddha answered: Subhuti, Bodhisattvas who achieve merit should not be fettered with desire for rewards. Thus it is said that rewards of merit are not received.

(한글)

 

28받지도 않고 탐내지도 않는다

 

수보리야만약 어떤 보살이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시하더라도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일체의 법에 내가 없음을 알아서 인()을 얻어 이룬다면 이 보살의 공덕은 앞의 보살의 공덕보다 뛰어 나리라수보리야왜 그러냐 하면 모든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받지 않습니까?”

수보리야보살은 자기가 지은 복덕에 탐하여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해설)

 

보살의 수행덕목으로서 인욕(忍辱)은 보시(布施)와 더불어 자의식과 편견을 없애고 상()을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훈련이다인욕의 수행으로 상을 타파하고 깨달음에 이른다면그런 인욕의 공덕은 무한한 것이다.

 

그렇게 인욕으로 상을 여읜 보살은 아상(我相)도 없을 것이므로일체의 보살행위에 대해 대가나 공덕을 탐하거나 바라지 않게 된다.

갠지스강의 모래 수만큼의 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시한 것보다 일체의 법에 내가 없음을 알아서 인()을 얻어 이루는 것이 더 공덕이 크다고 함은 어느 편이 더 깨달음에 가까이 갈 수 있는가라는 기준에 따른 판단이다.

 

第二十九 威儀寂靜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若有人이 하되 如來-若來若去若坐若臥라하면 是人은 不解我所說義니 何以故오 如來者는 無所從來며 亦無所去일세 故名如來니라

 

(영문)

 

Section XXIX. Perfect Tranquility

 

Subhuti, if anyone should say that the Tathagata comes or goes or sits or reclines, he fails to understand my teaching. Why?

Because TATHAGATA has neither whence nor whither, therefore is He called "Tathagata".

 

(한글)

 

29여래의 위엄 있는 모습은 고요하다

 

수보리야만약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여래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고 하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바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도 없으며 어디로 가는 바도 없다그래서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

 

(해설)

 

여기서 위의(威儀)라 함은 부처 또는 보살의 깨끗하고 절도 있는 수행의 모습을 말한다그들의 위의는 만 가지로 짓게 되는 상()이 없고 끄달림이 없으므로 그 모습이 내면적으로또는 외면적으로 갈등과 소란이 없이 매우 고요하다.

 

여래는 오고가고앉고눕는 일에 있어 오고가고앉고눕는 육체적인 일 이외에 어느 한 가지라도 머물러 집착하지 않는다이에 따라 여래는 수많은 행위를 하고도 사실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행을 하는 것이다행이 없는 행을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곳의 여래를 부처가 아니라 부처가 법신화된 불법으로 간주하여 불법이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참으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해석이라고 생각한다금강경에서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그릇된 상을 없애고 진리를 보는 일이다진리를 보는 여래는 일상적인 행위로서 오고가고앉고눕는 일에서조차 집착과 상이 없다는 예를 보여주는 것이위의적정분(威儀寂靜分)의 요지이다.

 

第三十 一合理相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若善男子善女人이 以三千大天世界를 碎爲微塵하면 於意云何오 是微塵衆이 寧爲多不아 甚多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若是微塵衆이 實有者인댄 이 卽佛說是微塵衆이니 所以者何오 佛說微塵衆이 卽非微塵衆일새 是名微塵衆이니이다 世尊하 如來所說三千大天世界도 卽非世界일새 是名世界니 何以故오 若世界-實有者인댄 卽是一合相이니 如來說一合相은 卽非一合相일새 是名一合相이니이다 須菩提야 一合相者는 卽是不可說이어늘 但凡夫之人이 貪着其事니라

 

(영문)

 

Section XXX. The integral Principle

 

Subhuti, if a good man or a good woman ground an infinite number of galaxies of worlds to dust, would the resulting minute particles be many?

Subhuti replied: Many indeed, World-honoured One! Wherefore? Because if such were really minute particles Buddha would not have spoken of them as minute particles.

For as to this, Buddha has declared that they are not really such. "Minute particles" is just the name given to them. Also, World-honoured One, when the Tathagata speaks of galaxies of worlds these are not worlds; for if reality could be predicted of a world it would be a self-existent cosmos and the Tathagata teaches that there is really no such thing. "Cosmos" is merely a figure of speech.

Then Buddha said: Subhuti, words cannot explain the real nature of a cosmos. Only common people fettered with desire make use of this arbitrary method.

 

(한글)

 

30하나의 모습

 

수보리야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티끌로 만든다면어떻게 생각하느냐그 티끌들이 많겠느냐?”

매우 많겠습니다세존이시여무슨 까닭인가 하면만약 이 작은 티끌들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작은 티끌들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무슨 까닭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작은 티끌들은 곧 작은 티끌들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작은 티끌들입니다.

세존이시여여래께서 설하신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을 세계라 하신 것입니다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실로 있는 것이라면그것은 곧 하나의 큰 전체 상일 것입니다그러나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의 큰 전체 상이 아니고그 이름을 하나의 큰 전체 상이라 하신 것입니다.”

수보리야하나의 큰 전체 상이라 하는 것은 곧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다단지 범부들이 그 일에 탐착할 뿐이니라.”

 

(해설)

 

일합이상분(一合理相分)에서는 우리가 상()을 지어 인식의 오류를 초래하는 문제 중 물체의 장단(長短), 대소(大小), 고저(高低등과 관련된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일부의 주장으로는 분명(分名일합이상(一合理相)은 일합이상(一合離相)이 잘못 표기된 것이라 한다일합이상(一合離相)이라 함은 티끌이 모여 형성된 전체의 모습으로서 일합상(一合相)은 전체가 잘게 부수어져 티끌이 된 모습으로서 이상(離相)과 같은 모습이라는 뜻이다.

 

삼천대천세계라는 크나큰 덩어리로 생각하면 자칫 엄청나게 큰 것으로 우리는 판단하는 반면동일한 것이지만 그것을 잘게 쪼개놓으면 티끌같이 작은 것으로 착각한다어떤 것이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며실제로 큼과 작음의 본질과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을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상()을 짓는 일이다.

 

삼천대천세계를 잘게 부순 티끌은 매우 작고 그 숫자는 매우 많은 것이라고 수보리는 대답한다왜냐하면 부처가 말한 작은 티끌들은 곧 실체가 작은 티끌들이 아니고 다만 부르기를 작은 티끌이라 부르기 때문이라 한다티끌이 작을 이유가 근본적으로 없으나그것을 작다고 규정할 경우에는 그 숫자는 많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티끌이 작다고 한 부처의 말이나이에 기초하여 티끌의 숫자가 많다고 대답한 수보리 모두 인식이 잘못되기는 매 마찬가지다.

 

한편 수많은 티끌들이 모여 하나로서 전체가 되는 세계가 하나의 큰 전체상’, 즉 일합상(一合相)이다그러나 일합상이란 여래까지도 이름 지어 부를 뿐이며정확하게 본질을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단지 범부들이 그것에 탐착(貪着)할 뿐이다따라서 삼천대천세계의 일합상이 크다 작다 하는 것은 상()을 짓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하나의 전체가 수많은 티끌로 분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든수많은 티끌이 모여 하나의 전체상즉 일합상이 된다고 생각하든 크다작다많다적다 등의 상을 지어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본분의 내용이다.


第三十一 知見不生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若人이 하되 佛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라하면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是人이 解我所說義不아 不也니이다 世尊하 是人이 不解如來所說義니 何以故오 世尊이 說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은 卽非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일새 是名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이니라 須菩提야 發阿 多羅三 三菩提心者는 於一切法에 應如是知며 如是見이며 如是信解하야 不生法相이니 須菩提야 所言法相者는 如來說卽非法相일새 是名法相이니라

 

(영문)

 

Section XXXI. Conventional Truth Should be Cut Off

 

Subhuti, if anyone should say that Buddha declares any conception of egoity do you consider he would understand my teaching aright?

No, World-honoured One, such a man would not have any sound understanding of the Tathagata`s teaching, because the World-honoured One declares that notions of selfhood, personality, entity and separate individuality, as really existing, are erroneous-these terms are merely figures of speech.

Thereupon Buddha said: Subhuti, those who aspire to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should recognize and understand all varieties of things in the same way and cut off the arising of views which are mere〕 aspects. Subhuti, as regards aspects, the Tathagata declares that in reality they are not such. They are called "aspects".

 

(한글)

 

31알았다는 생각을 내지 마라

 

수보리야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님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을 설했다고 말한다면어떻게 생각하느냐이 사람은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세존이시여그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지 못합니다무슨 까닭인가 하면세존께서 말씀하신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은 곧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 아니고 그 이름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발한 사람은 모든 법에 응당 이와 같이 보며이와 같이 믿어서 법이라는 상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수보리야말한 바 법상이란 여래가 설하되 곧 법상이 아니고 그 이름이 법상이니라.”

 

(해설)

 

여기에서는 계속 사용되던 용어인 사상(四相)을 사견(四見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으로 대체하고 있다()이란 습득된 지식을 바탕으로 대상 세계를 바라보는 견해 또는 생각을 뜻한다오온(五蘊)의 이론에서 마음에 해당하는 것들이 수상행식(受想行識)이다()은 수상(受想)에 해당되고()은 행식(行識)에 해당되므로 상()이 지어지고 다음으로 견()이 생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우리가 객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자의적인 사상을 타파해야 하듯이 사견 역시 타파해야 한다.

 

여래는 수보리에게 어떤 사람이 내가 사견(四見)에 대해 설했다고 말한다면그는 내가 설한 바의 뜻을 이해한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는다이때 부처가 설하고 어떤 사람이 들은 사견(四見)의 내용은 진리가 아니고불가피하게 말하자니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견(四見)이다불가피하게 이름 붙여진 사견(四見)을 진리라 생각한다면 그는 진리의 사견을 이해했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이에 더하여 어떤 사람이 단순하게 이름 붙여진 사견(四見)에 대해 나름대로의 주관적인 지견(知見)을 추가하여 이해할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부처가 말한 법의 상’ 역시 진리의 법상이 아니고할 수 할 수 없이 이름을 붙인 가제(假題)의 상이 법상이므로 이에 대해 집착하거나지견(知見)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지견(知見)을 내지 말라고 설명하면서 그 예로서 사견(四見)을 들고 있어 앞의 견과 뒤의 견이 혼재되는 관계로 이해하기가 매우 혼란스럽다.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한문원문)

 

須菩提야 若有人이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로 持用布施라도 若有善男子善女人이 發菩提心者하야 持於此經하되 乃至四句偈等을 受持讀誦하며 爲人演說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云何爲人演說고 不取於相하야 如如不動일지니 何以故오 一切有爲法이 如夢幻泡影하며 如露亦如電하니 應作如是觀하라 佛說是經已하시니 長老須菩提와 及諸比丘比丘尼와 優婆塞優婆夷와 一切世間天人阿修羅가 聞佛所說하고 皆大歡喜하야 信受奉行하니라

 

(영문)

 

Section XXXII. The Delusion of Appearances

 

Subhuti, someone might fill innumerable worlds with the seven treasures and give all away in gifts of alms, but if any good man or any good woman awakens the thought of Enlightenment and takes even only four lines from this Discourse, reciting, using, receiving, retaining and spreading them abroad and explaining them for the benefit of others, it will be far more meritorious.

Now in what manner may he explain them to others? By detachment from appearances-abiding in Real Truth. -So I tell you-

Thus shall you think of all this fleeting world:

A star at dawn,a bubble in a stream;

A flash of lightening in a summer cloud,

A flickering lamp,a phantom,and a dream.

When Buddha finished this Discourse the venerable Subhuti, together with the bhikshus, bhikshunis, lay-brothers and sisters, and the whole realms of Gods, Men and Titans, were filled with joy by His teaching, and, taking it sincerely to heart they went their ways.

 

(한글)

 

32응화신은 참된 것이 아니다

 

수보리야만약 어떤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무량한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져다가 보시할지라도만약 또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보리심을 발하고 이 경 내지 사구게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워 남을 위해 연설한다면이 복이 저 칠보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

어떻게 남을 위해 연설하는가상을 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어째서 그러한가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볼지어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었다장노 수보리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비구와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리그리고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여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해설)

 

응화신(應化身)은 응신(應身또는 화신(化身)이라고도 하며중생들의 간절한 염원에 따라 육체의 몸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 역사적 부처를 말한다응화신은 외형적인 형체를 가지고 있다는 차원에서 무형의 법신과 그 성격이 대조적이다이와 같은 응화신으로서 부처의 형상과 몸은 진리가 아니므로 집착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한편 진리를 내포하고 이 세상에 물리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화신에는 부처뿐만 아니라 중생과 삼라만상도 포함되어 있는바 이러한 것들 역시 실체가 없는 것들이고 집착할 바가 못 된다.

 

이번 마지막 분에서는 법보시의 위대성을 한 번 더 강조하면서진정한 법보시의 전제조건으로 상을 짓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이어서 법회를 마친 뒤의 경위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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