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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해설하는 금강경 (1)
09/17/201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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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이 해설하는 금강경 (1)

(구슬놀이 해설)

 

1. 금강경은 어떠한 경전인가?

 

부처님은 출가 후 6년 만에 생노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이후 무려 49년에 걸쳐 자신이 깨달은 바를 설법했다. 부처님은 이 기간 중 모든 물질적, 정신적 존재와 현상은 실체가 없다는 공()에 관한 개념을 가장 오래 가르쳤는데 이 기간을 반야시(般若時)라고 한다. ()이란 만물은 연기법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가기 때문에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諸行無常, 諸法無我). 우주만물의 공한 원리를 아는 지혜가 반야이며, 이와 같은 설법의 내용을 모아 엮은 것이 대반야경이다.

 

부처님의 입멸 후 약 500년이 되는 시기(기원후 1세기)를 전후하여 불교계에서는 대승운동이 벌어졌다. 사변적이고 개인적인 소수 엘리트의 출가자 중심의 불교에 반대하고,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성불사상(成佛思想)에 기초하여 재가자 일반인들의 깨달음에 도움을 주자는 운동이었다. 또한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법신불사상에 기초하여 초기경전에 나타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승불교 계의 학승들이 기원 후 1세기경 대반야경을, 그리고 기원 후 2세기경 대반야경에 기초하여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저술한 것으로 추측한다.

 

금강경은 대반야경 600권 중 577권에 해당하는 능단금강분이라고 하나, 대반야경 이전 독립된 경전으로 존재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금강경의 한역(漢譯)으로는 요진시대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반야파라밀경과 당나라 시대에 현장이 번역한 능단금강반야파라밀경이 있다. 이중 주변에 흔한 금강경은 구마라집 번역판이다.

 

금강경은 금강반야파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의 약칭으로서, 금강과도 같이 견고하고 날카로운 금강의 지혜로서 번뇌와 망상을 없애고 해탈의 세상으로 건너가게 하는 경이라는 뜻이다. 금강은 원래 인간의 모든 집착과 무지를 번개처럼 단칼에 자르는 지혜로 비유되었으나, 나중에 콘체(Edward Conze)다이아몬드라는 말로 바꾸어서 영역(英譯)하였다.

 

금강경이 유명한 것은 금강경이 중국의 선종과 깊은 관계가 있고, 한국의 조계종에서는 소의경전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국 선종의 6조 혜능대사가 일자무식의 나무꾼으로서 금강경 제10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독송소리를 듣고 단번에 깨우쳤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혜능은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에서 중국의 남종선(南宗禪)을 이끌었는데, 혜능의 종풍을 한국에서 계승한 종단이 조계종이다. 따라서 선종에서 표방하고자 하는 사상과 내용들이 금강경에 다수 포함되어 있다.


2. 금강경의 주요 내용과 사상

 

1) 공사상(空思想)

 

우주의 만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조건과 원인이 되어 주고받는 영향 하에 존재한다는 것이 연기법의 원리이다. 나에게 영향을 준 조건과 원인이 변하면 나는 방금 전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내가 된다. 이렇게 모든 사물과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논리이다. 변해가는 순간순간의 모습은 우리가 감지할 수 있으나,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공()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잘못된 판단과 생각으로 나 자신을 불변하는 존재, 영원한 존재로 오인하는 데에서 모든 고통이 뒤따르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과정에서 인식의 대상은 실체가 없는 반면, 인식주체의 인식에는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해 인식상의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금강경에서 벼락과 같은, 또는 금강과도 같은 반야지혜란 나를 포함하여 일체만물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지혜다. 이를 위해 금강경에서는 시종일관 자의식과 변계소집에 따른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사상(四相)을 철저히 타파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금강경에서 공()의 개념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사상을 철저히 타파하라는 배경에는 일체 만물이 제법무아, 제행무상이라는 공()의 원리에 따라 존재한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이다.

 

2) 대승사상(大乘思想)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초기단계(AD 150200)에 쓰여 진 경으로서 대승과 소승에 대한 명시적 구분은 없지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보살도를 강조하고 있다. 육파라밀(六波羅蜜)이라는 보살의 수행덕목 중 특히 보시를 중시하고, 무명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들을 위한 법시(法施)를 제일로 치고 있다.

 

금강경에서는 보시한다는 생각이 없이 행하는 보시, 즉 무주상보시(無住상보시)의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했다. 나의 것을 남에게 베풀어 줄 때 아상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하게 형성된다. 타인에게 무언가 보시한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는 일인 바, 나의 희생은 나의 이기심과 자의식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를 되풀이하다 보면 상을 짓지 않는 일들에 익숙해져서 결국에는 상을 짓지 않고 진리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되어 무한의 공덕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보시란 남들을 물적으로 도와주어 공덕이 클 뿐 아니라, 보시를 통해 나의 상을 타파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공덕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보시를 받는 사람의 경우에는 보시를 받으면서 보시행위를 배우게 되고, 그 역시 보시를 행하면서 자신에 대한 집착과 상을 없애는 훈련이 되므로 이 또한 공덕이 있는 것이다.

 

3) 선사상(禪思想)

 

불교의 선종(禪宗)은 자신의 본성을 구명(究明)하여 깨달음을 터득하고, 이러한 깨달음의 내용과 원리를 부처의 교설(敎說) 외에 이심전심의 방식으로 중생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종파이다. 말과 언어의 사용에 따르는 뜻의 왜곡과 상을 짓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언어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 특징이다. ,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등이 그들의 의사소통의 방식이다.

 

금강경에서는 사람들이 상을 짓는 잘못에 빠질까 우려하여 일체의 단어나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 가령, ‘제일파라밀은 여래가 설하기를 제일파라밀이 아니다. 이름 하여 제일파라밀이다(第一波羅蜜 如來說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라고 하였다. 이는 환언하여, ‘AA가 아니다, 이름 하기를 A라고 한다.’이다. ‘이름 하기를 A라고 한다는 것은 언어의 한계성과 폐단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규정하고 이름 붙인 것이 앞의 A이라는 말이다. ‘이름 하기를 A라고 한다는 말은 모든 존재와 현상에 부처든 중생이든 누구든 이름을 붙일 경우, 그 이름은 진정한 참모습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부처가 가르친 각각의 내용과 사용된 언어에 나름대로 집착하고 상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또한 인간언어의 한계성을 자각하여 가급적 언어의 사용을 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금강경은 가장 선적인 불경이고, 선을 표방하는 한국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되었음에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AA가 아니다, 이름 하기를 A라고 한다.’라는 서술구조와 논리는 금강경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 된다. 이를 일본의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스(鈴木大拙)는 금강경의 즉비사상(卽非思想)이라고 했다. 이는 언어표현에 기초하여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념적으로 집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용된 금강경 특유의 논리형식이라고 하였다.

 

3. 금강경의 본문과 해석

 

여기서 인용하는 금강경의 한문원문은 구마라집의 한역판이고, 영문번역은 에드워드 콘체(Edward Conze)의 영역판이다. 한글번역은 본인이 청담스님, 무비스님, 김용옥 등의 한글 번역본을 참고하여 종합 번역했다. 해설 부분은 가급적 일반언어와 논리를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본인이 해설한 것이다. 

 

第一 法會因由分

 

(한문원문)

 

如是我聞하오니 一時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하사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으로 러시니 爾時世尊食時着衣持鉢하시고 入舍衛大城하사 乞食하시되 於其城中次第乞已하시고 還至本處하사 飯食訖하시고 收衣鉢하시며 洗足已하시고 敷座而坐하시다.

 

(영문)

 

Section I. The convocation of the assembly

 

Thus have I heard. upon a time buddha sojourned in anathapindika's park by shravasti with a great company of bhikshus, even twelve hundred and fifty. One day, at the time for breaking fast, the world-honoured enrobed, and carrying his bowl made his way into the great city of shravasti to beg for his food. In the midst of the city, he begged from door to door according to rule. This done, he returned to his retreat and took his meal. When he had finished, he put away his robe and begging bowl, washed his feet, arranged his seat, and sat down.


(한글)

 

1: 법회가 열린 상황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큰 비구들 천 이백 오십 인과 함께 계시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밥 때가 되자, 옷을 입으시고 바리를 들으시고, 사위 큰 성에 들어가시어 성 안에서 차례대로 밥을 비시었다. 그리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오시어 식사를 마치시고는 옷과 바리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펴고 앉으시었다.

 

(해설)

 

금강경 제1의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은 법회가 시작되기 전 부처가 머물렀 던 사찰의 정황과 부처의 극히 일상적인 일과를 사진을 찍듯 소개하는 내용이다. 천 명이 넘는 비구들과 부처의 행동을 무성영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무언정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금강경의 핵심적인 내용은 인식과 사고를 바로잡아 만물에는 실체가 없다는 공()의 도리를 깨달아야 하며, 이를 위해 금강과 같은 반야(般若)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금강과 같은 반야의 지혜를 얻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릇된 인식과 사고를 바로잡아 대상을 잘못 바라보고 상()을 짓는 일에서 탈피해야 한다. 즉 사상(四相)을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상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언어(言語)의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사회적 약속과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와 단어에는 특정의 개념과 이미지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또한 특정 단어의 일상적인 뜻과 그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의 본질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이 아니라 언어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제대로 가리킬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로 달을 설명하면 쳐다보는 사람들이 달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상()을 없애고 반야의 지혜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사용은 절제되어야 한다. 조계종과 선종에서 불립문자, 이심전심, 교외별전 등을 중시하는 까닭이다.

 

금강경 제1법회인유에서 부처와 다수 비구들의 묵언 중의 일상사만을 담담하게 소개한 이유는 언어사용을 통해 상()을 짓는 폐단을 타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 금강경은 가히 선()적인 경전이고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되었던 이유가 있다 하겠다.

 

第二 善現起請分

 

(한문원문)

 

長老須菩堤在大衆中하시다가 卽從座起하사 偏袒右肩하시며 右膝着地하시고 合掌恭敬하사와 而白佛言하사대 希有世尊如來善護念諸菩薩하시며 善付囑諸菩薩하시나니 世尊善男子善女人發阿 多羅三 三菩提心하니는 應云何住云何降伏其心하리잇고 佛言하시되 善哉善哉須菩提如汝所設하야 如來善護念諸菩薩하며 善付囑諸菩薩하나니 汝今諦聽하라 當爲汝說하리라 善男子善女人發阿 多羅三 三菩提心하니는 應如是住하며 如是降伏其心이니라 唯然世尊願樂欲聞하노이다

 

(영문)

 

Section . Subhuti makes a request

 

Now in the midst of the assembly was the venerable Subhuti. Forthwith he arose, uncovered his right shoulder, knelt upon his right knee, and, respectfully raising his hands with palms joined, addressed buddha thus : world-honoured one, it is most precious. How mindful the tathagata is of all the bodhisattvas, protecting and instructing them so well! world-honoured one, if good men and good women seek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by what criteria should they abide and how should they control their thoughts?

Buddha said : very good, subhuti! just as you say, the tathagatha is ever-mindful of all the bodhisattvas, protecting and instructing them well. Now listen and take my words to heart: I will declare to you by what criteria good men and good women seeking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should abide, and how they should control their thoughts. Said subhti: pray, do, world-honoured one. With joyful anticipation we long to hear.

 

(한글)

 

2: 선현이 법을 청함

 

이때 長老 須菩提大衆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한편으로 걸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손을 모아 恭敬스럽게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회유하신 世尊이시여! 如來께서는 뭇 菩薩들을 잘 護念하시며, 菩薩들을 잘 付囑하여 주십니다. 世尊이시여! 善男子 善女人阿 多羅三 三菩提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 어떻게 그 마음을 降伏 받아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좋다! 좋다! 須菩提! 네가 말한 바대로, 如來는 뭇 菩薩들을 잘 護念하며, 菩薩들을 잘 付囑해 준다. 너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하여 이르리라. 善男子 善女人阿 多羅三 三菩提의 마음을 냈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살 것이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降伏 받아야 하리라."

"그러하옵니다. 世尊이시여! 즐겁게 듣고자 원합니다."

 

(해설)

 

금강경에서 부처의 설법은 해공제일(解空第一)로 간주되는 수보리가 질문하고 부처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제2분의 이름도 선현(善現; 須菩提)이 설법을 청한다는 의미에서 선현기청(善現起請)’으로 되어 있다. 심포지엄이나 대토론회에서 학식이 높은 사람을 지정 질문자, 또는 토론자로 지정하는 것과 유사하다.

 

수보리가 제기하는 질문의 핵심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마음의 항복을 받아, 어떤 마음을 유지하고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우주만물에 실체가 있다는 망상과 집착에서 벗어나 본래면목의 청정심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며, 그러한 불심을 계속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자세로 살아갈 것인가를 수보리는 부처에게 묻고 있다.

 

응운하주(應云何住)에서 주()는 살아간다는 뜻보다는 무명에 빠지지 않는 청정한 마음을 머물게 하여 유지한다는 뜻이 강하다. 한편 6조 혜능이 듣고 단번에 깨우쳤다는 금강경 구절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에서의 주()는 편견과 자의식, 그리고 무명에 의해 왜곡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유지하되 좋은 마음이냐, 삿된 마음이냐에 차이가 있다.

 

第三 大乘正宗分

 

(한문원문)

 

佛告 須菩提하사되 諸菩薩摩訶薩應如是降伏其心이니 所有一切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非無想我皆令入 無餘涅槃하야 而滅度之하리니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하되 實無衆生得滅度者何以故須菩提若菩薩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하면 卽非菩薩일세라

 

(영문)

 

Section III. The real teaching of the great way

 

Buddha said: subhuti, all the bodhisattva-heroes should discipline their thoughts as follows:

All living creatures of whatever class, born from eggs, from wombs, from moisture, or by transformation, whether with form or without form, whether in a state of thinking or exempt from thought-necessity, or wholly beyond all thought realms-all these are caused by me to attain unbounded liberation nirvana. yet when vast, uncountable, immeasurable numbers of beings have thus been liberated, verily no being has been liberated. Why is this, Subhuti? It is because no bodhisattva who is a real bodhisattva cherishes the idea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한글)

 

3: 대승의 바른 종지(宗旨)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모든 보살 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 중생의 종류로서 알에서 태어난 것, 태에서 태어난 것, 물에서 태어난 것, 변화하여 태어난 것, 형태가 있는 것, 형태가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 이 모든 것들을 내가 온전한 열반에 들게 하여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셀 수 없고, 끝이 없는 중생들을 내가 제도한다 했으나, 실제로 제도를 받은 중생은 아무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사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해설)

 

대승의 바른 종지에서 대승이란 종파적인 견지에서 소승에 대비되는 대승의 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대승이란 누구나 탈 수 있는 큰 수레의 의미이며, 여기서 설하는 가르침은 깨닫고자 하는 모든 중생까지도 차별 없이 대상이 되어 수레에 올라 탈 수 있다는 말이다. 설법의 대상에 선남선녀 중생들까지 포함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구류중생(九類衆生)을 상징적, 비유적으로 예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생각이 없는 존재까지 부처가 제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소승불교에서 깨달음과 열반은 근기와 수행이 출중한 아라한들에게만 가능했던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에 반발하여 누구나 노력여하에 따라 성불할 수 있으며, 우매한 중생을 도와 모두 함께 깨닫자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개혁운동이 일어났다. 대승반야 운동은 금강경 제3분의 대승이라는 개념과 가르침에서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논리와 가르침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하다. 논리를 이해하고 돈오(頓悟)하기는 쉽다. 이 세상 인간들은 자기 위주의 인식과 판단, 그에 따른 끈질긴 편견과 변계소집(遍計所執)의 병폐에 따라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 원리와 이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그에 따른 온갖 불행과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때 만물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지혜와 능력을 구비해야 하는 바 이러한 지혜를 반야라고 한다. 반야에는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변계소집의 병폐를 벼락 치듯 단칼에 교정할 수 있는 반야가 금강반야이다.

 

금강반야을 얻기 위해서는 사상(四相)이라는 잘못된 인식상의 오류와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한다. 아상(我相; atman), 인상(人相; pudgala), 중생상(衆生相; sattva), 수자상(壽者相; jiva) 등 사상의 타파가 반야와 깨달음을 얻는 열쇠이다.

 

아상(我相)은 말라식(末羅識)과 같은 자의식에 의해 형성되는 상으로서, 나의 실체가 있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나라고 할 수 있는 오온은 실체가 없어 공()한 것이며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아트만, 즉 자아란 없는 것이다.

 

인상(人相)은 현생에서 내생으로 윤회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기동일체(自己同一體; pudgala), 즉 또 다른 자아가 자신에게 내재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부처는 여기에서 푸드갈라의 존재를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인간이 윤회(輪回)한다는 믿음과 사실도 부정하고 있다. 인간이 윤회한다는 푸드갈라 이론은 인도 전통의 브라만교의 윤회관을 불교에서 수용하면서 발생하는 윤회와 무아(無我)의 모순점을 절충하고자 하는 견강부회의 색채가 강한 주장이다.

 

중생상(衆生相)이란 보살과 중생을 2원적으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관점이다. 중생상을 없애라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발심만 하면 중생이라 하여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것으로서 중생에 대한 부처의 격려의 말씀이다. 수자상(壽者相)이란 나에게 순수한 영혼이 실체로서 존재하여 내생에 이르도록 오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다. 부처는 천국에서 영혼이 다시 태어나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식의 기독교 교리를 정면 부정하고 있다.

 

이상의 사상(四相)은 삼법인의 하나로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가르침에 배치되는 잘못된 생각들이다. 부처는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한 보살이라 하더라도 사상이 있으면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第四 妙行無住分


(한문원문)

 

復次須菩提菩薩於法應無所住하야 行於布施所謂不住色布施不住聲香味觸法布施니라 須菩提菩薩應如是布施하되 不住於相이니 何以故若菩薩不住相布施하면 其福德不可思量이니라 須菩提於意云何東方虛空可思量不不也니이라 世尊須菩提南西北方四維上下虛空可思量不不也니이다 世尊須菩提菩薩無住相布施福德亦復如是하야 不可思量이니라 須菩提菩薩但應如所敎住니라.

 

(영문)

 

Section IV. Even the most beneficent practices are relative

 

Furthermore, Subhuti, in the practice of charity a bodhisattva should be detached. That is to say, he should practise charity without regard to appearances; without regard to sound, odour, touch, flavour or any quality. subhuti, thus should the bodhisattva practise charity without attachment. Wherefore? In such a case his merit is incalculable.

Subhuti, what do you think? Can you measure all the space extending eastward? No, world-honoured one, I cannot. Then can you, Subhuti, measure all the space extending southward, westward, northward, or in any other direction, including nadir and zenith? No, world-honoured one, I cannot.

Well, Subhuti, equally incalculable is the merit of the bodhisattva who practises charity without any attachment to appearances. subhuti, bodhisattvas should persevere one-pointedly in this instruction.

 

(한글)

 

4분 집착이 없는 아름다운 보시(布施)

 

다음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법에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이른바 색에 머물지 말고, 소리, 향기, , 감촉, 법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 복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도록 크리라. 수보리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쪽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남쪽, 서쪽, 북쪽과 사유 상하의 허공을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 그 복덕도 또한 이와 같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리라. 수보리야, 보살은 오직 가르친 대로 머물러야 한다.”

 

(해설)

 

3분에서는 금강반야의 지혜를 얻기 위해 무엇보다 사상(四相)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상에서 가장 벗어나기 힘든 것은 아상(我相)이다. 아상이란 나라는 존재에 실체가 있고, 나에게 영혼이 있어 내생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이기적인 자의식을 말한다.

 

나의 것을 남에게 베풀어 줄 때 아상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하게 형성된다. 타인에게 무언가 보시한다는 것은 나를 희생하는 일인 바, 나의 희생은 나의 이기심과 자의식에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상을 떼어내는 데 가장 힘든 보시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상이 만들어지는 데 원인이 되는 색(), (), (), (), (), () 6(六境)의 인식대상에 지배를 받지 말고 보시하라고 한다. 6경은 실체가 없는 공()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상이 없이 보시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므로, 그것에 대한 복덕과 보답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동서남북 허공보다 클 것이라 한다.

 

아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가 이루어진다면, 상을 짓지 않는 일들에 익숙해져서 나머지 사상의 상에서도 용이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는 사상에서의 탈피에 전제조건이 됨은 물론 필요충분조건이 될 것이다.


第五 如理實見分


(한문원문)

 

須菩提於意云何可以身相으로 見如來不不也니이라 世尊不可以身相으로 得見如來何以故如來所設身相卽非身相일새니이다 佛告須菩提하사되 凡所有相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니라

 

(영문)

 

Section V. Understanding the ultimate principle of reality

 

Subhuti, what do you think? Is the tathagata to be recognized by some material characteristic? No, world-honoured one; the tathagata cannot be recognized by any material characteristic. wherefore? because the tathagata has said that material characteristics are not, in fact, material characteristics.

Buddha said: Subhuti, wheresoever are material characteristics there is delusion; but who so perceives that all characteristics are in fact no-characteristics, perceives the tathagata.

 

(한글)

 

5분 이치대로 실상을 보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몸의 형상으로써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이르신 몸의 형상은 곧 몸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가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은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이 실제의 형상이 아닌 것으로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해설)

 

여리실견(如理實見)이란 우주만물의 연기와 공()의 이치에 따라 인식대상의 실체의 모습을 여실하게 이해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자의식과 편견에 따른 인식과 판단 상의 오류로 인해 삼라만상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한다. 자의식이라는 얼룩무늬 유리를 통해 세상을 주관적으로 왜곡시켜 놓고 바라본다. 인간의 인식에 있어 왜곡된 식()만 있고, 있는 그대로의 실체()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 유식론에서의 유식무경(唯識無境)’이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유식무경의 상태에서 여리실견의 경지로 나가야 한다. 또한 여리실견을 위해서는 앞서 제3분에서와 같이 사상(四相)을 짓는 폐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체적인 부처의 모습, 즉 신상(身相)에는 이미 바라보는 사람들의 잘못된 이미지와 뜻이 깃들어 있다. 이와 같이 왜곡된 신상(身相)을 통해 부처의 본 모습(法身)이나, 부처가 가르치는 진리(如來)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금강경 사구게(四句偈)로서 제1구게에 해당되는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의 형상은 실제의 형상이 아니고 우리가 잘못 지어 논 표상식(表象識)으로서 허망한 가짜의 형상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가짜의 형상을 가짜라고 알아차리게 되면 바로 진리(如來)를 보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第六 正信希有分

 

(한문원문)

 

須菩提-白佛言하사대 世尊頗有衆生得聞如是言說章句하고 生實信不이까 佛告須菩提하사대 莫作是說하라 如來滅後-後五百歲有持戒修福者하야 於此章句能生信心하야 以此爲實하리니 當知是人不於一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根이요 已於無量千萬佛所種諸善根이니 聞是章句하고 乃至一念이라도 生淨信者니라 須菩提如來-悉知悉見是諸衆生得如是無量福德이니 何以故是諸衆生無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며 無法相이며 亦無非法相일새니 何以故是諸衆生若心取相하면 卽爲着我人衆生壽者何以故若取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若取非法相이라도 卽着我人衆生壽者니라 是故不應取法이며 不應取非法이니 以是義故如來常設 汝等比丘하되 知我說法如筏喩者法尙應捨어든 何況非法가하니라.

 

(영문)

 

Section VI. Rare is true faith

 

Subhuti said to Buddha:

World-honoured one, will there always be men who will truly believe after coming to hear these teachings?

Buddha answered:

Subhuti, do not utter such words! At the end of the last five-hundred-year period following the passing of the tathagata, there will be self-controlled men, rooted in merit, coming to hear these teachings, who will be inspired with belief. But you should realize that such men have not strenghtened their root of merit under just one buddha, or two buddhas, or three, or four, or five buddhas, but under countless buddhas; and their merit is of every kind. Such men, coming to hear these teachings, will have an immediate uprising of pure faith. Subhuti; and the tathagata will recognize them. Yes, he will clearly perceive all these of pure heart, and the magnitude of their moral excellences.

Wherefore? It is because such men will not fall back to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They will neither fall back to cherishing the idea of things as having intrinsic qualities, nor even of things as devoid of intrinsic qualities.

Wherefore? because if such men allowed their minds to grasp and hold on to anything they would be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and if they grasped and held on to the notion of things as having intrinsic qualities, they would be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likewise, if they grasped and held on to the notion of things as devoid of intrinsic qualities they would be cherishing the idea of an ego-entity, a personality, a being, or a separated individuality. So you should not be attached to things as being possessed of, or devoid of, intrinsic qualities.

This is the reason why the tathagata always teaches this saying: my teaching of the good law is to be likened unto a raft, the buddha-teaching must be relinquished; how much more so misteaching!

 

(한글)

 

6: 바른 믿음은 드물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많은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가 멸도(滅度)한 뒤 오백세가 지나도 계를 지니고 복을 닦는 자가 있어 이 글귀에 능히 믿는 마음을 내고, 이로써 실다움으로 삼으리라.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비단 하나, , , , 그리고 다섯 부처님께 선근(善根)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이 없는 천만 부처님께 모든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한 번의 생각에 이르러 깨끗한 믿음을 내는 사람이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다 알고 보나니, 이 모든 중생은 이렇게 한량없는 복덕을 얻으리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모든 중생은 다시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으며, 법이라는 상도 없고, 법이 아니라는 상도 또한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이 모든 중생이 만약 마음에 상을 취하면,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만약 법의 상을 취해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며, 만약 법이 아니라는 상을 취해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법이 아님도 취하지 말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는 항상 말하였다. 너희들 비구는 나의 설법이 뗏목으로 비유함과 같음을 아는 자들은 법조차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어찌 하물며 법이 아님에 있어 서랴!”

 

(해설)

 

앞의 분에서는 계속하여 그릇된 사상(四相)을 없애야 반야지혜를 얻어 진리를 바로 보고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신희유분(正信希有分)’에서는 이러한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여 확신이 서지 않는 일반인들을 위해 수보리가 대신하여 추가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많은 중생이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부처의 대답은 확신에 차 있다. 만약 자신과 같은 선근을 쌓고 심는다면 분명코 진리를 깨달아 한량없는 복덕을 모든 중생이 얻을 것이라 했다. 전제조건으로는 역시, 마음으로 사상을 짓는 데서 탈피하는 일이다.

 

마음으로 짓는 주관적이고 왜곡된 상()에는 삼라만상의 존재물에 실체가 있다는 법상(法相)과 함께, 존재물에 실체가 없다는 비법상(非法相)이 포함된다. 따라서 사상을 바탕으로 마음에 상을 취한다는 것(若心取相)은 사상에 영향을 받아 법상과 비법상을 짓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마음에 상을 취하면, 법의 상을 취해도, 아니면 법이 아니라는 상을 취해도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하게 된다는 뜻이다. 쉽게 이야기 하여, 마음에 사상과 같은 잘못된 선입견이나 상이 있으면, 무엇을 생각하고 인식하더라도 그러한 선입견이나 상이 동일하게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상에 바탕 하여 형성된 상은 왜곡된 상으로서 실제의 본질과 다른 것이다. 따라서 사상에 기초한 법상이나 비법상은 공히 인식의 오류에 해당되므로 취할 바가 못 된다. 불응취법(不應取法)과 불응취비법(不應取非法)에서 법과 비법은 인식대상으로서의 존재물에 실체가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실체가 있다는 생각과 실체가 없다는 생각 등 인식주체가 주관적으로 만드는 상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是故 不應取法 不應取非法의 문장은 그러므로 마땅히 법을 취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법이 아님도 취하지 말 것이다.’로 번역하는 것보다, ‘그러므로 마땅히 법상을 취하지 말 것이며, 마땅히 비법상도 취하지 말 것이다.’로 번역해야 한다. 금강경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는 인식 주체가 인식과정에서 만드는 잘못된 사상(四相)이기 때문이다.

 

부처의 가르침 역시 상으로 인한 왜곡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강을 건넌 후 뗏목을 버리듯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물며 잘못된 가르침에 있어서랴!

 

第七 無得無說分

 

(한문원문)

 

須菩提於意云何如來得阿 多羅三 三菩提耶如來有所說法耶須菩提言하사 如我解佛所說義로는 無有定法하야 名阿 多羅三 三菩提오며 亦無有定法如來可說이니이다 何以故如來所說法皆不可取不可說이며 非法이며 非非法이니 所以者何一切賢聖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일새니이다

 

(영문)

 

Section VII. Great Ones, Perfect Beyond Learning, Utter no Words of Teaching

 

Subhuti, what do you think? Has the Tathagata attained the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Has the Tathagata a teaching to enunciate?

Subhuti answered: As I understand Buddha's meaning there is no formulation of truth called Consummation of Incomparable Enlightenment. Moreover, the Tathagata has no formulated teaching to enunciate. Wherefore? Because the Tathagata has said that truth is uncontainable and inexpressible. It neither is nor is it not. Thus it is that this unformulated Principle is the foundation of the different systems of all the sages.

 

(한글)

 

7: 얻을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과연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인가? 여래가 설한 바의 법이 과연 있는 것인가?”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고 이름 할 정해진 법이 없으며, 또한 여래가 설하실 만한 정해진 법도 없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다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며 법이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성현은 함이 없는 무위법으로 범인들과 차별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해설)

 

우리는 세상만사, 삼라만상에 대해 나름대로의 편견과 자의식에 따라 형성된 이미지와 생각을 가지고 잘못된 상()을 짓는 우를 범하고 있다. 상을 짓는 대상에는 우선 일체의 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법()과 진리는 물론, 이러한 법을 설법하는 부처와 설법의 내용도 포함된다.

 

우리가 상을 짓게 되는 것은 자의식과 이기심에 따라 변계소집(遍計所執)하는 데에 원인이 있지만, 일체의 대상과 현상을 언어와 말로서 표현함으로서 발생된다고 볼 수 있다. 언어는 이미 왜곡된 뜻을 내포하고 있어 진리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설명하더라고 오류에 빠지게 된다. 노자의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논리를 두고 한 말이다. 무어라 발설하고 규정하면 그것은 진실로 나타내고자 하는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짐작하고 상을 짓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와 부처의 설법내용도 실제의 것들이 아니다.

 

부처는 아뇩다라삼막삼보리(無上正等覺)’의 깨우침을 얻었고, 그러한 내용을 설법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나름대로 상을 짓고 짐작하는 대로 부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은 것은 아니며,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부처가 무언가를 설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의 설법내용은 없는 것으로서 취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반야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사상을 타파해야 한다.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넘어가는데 뗏목이 되는 부처와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선입견과 자의식으로 상을 짓지 말아야 한다.

 

자고로 모든 성현들은 무위(無爲)함으로써 일반인들과 차별되었듯이 우리 모두는 상을 짓지 않음으로써 차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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