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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사상(唯識思想) 해설
06/19/20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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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사상(唯識思想) 해설

구슬놀이

 

I. 부처의 깨달음과 가르침

 

부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물질적 또는 정신적인 것들을 막론하고 다른 모든 것들이 원인과 조건이 되어 존재한다는 연기의 원리를 깨달았다. 원인과 조건이 변할 경우 모든 것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해 가기 때문에 무상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존재의 실상을 설명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존재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생은 밝지 못한 생각과 판단(無明)에 따라 나라는 존재에 실체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살 것처럼 오판함으로써 온갖 괴로움과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나라고 규정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연기법에 따라 잠시 있다 사라지는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무명이 연쇄적인 고리로 연결되어 결국 우리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는 것이 12지연기설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노병사(生老病死)는 주체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병들고 죽어가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관념이 세워놓은 가짜의 내가 병들고 죽어가는 것이다. 가짜의 내가 죽는다면 거기에는 하등의 고통이 수반될 이유가 없다.

 

부처는 이 세상 모든 만물(諸法, 諸行)이 연기의 원리에 따라 실체와 자아가 없으며 무상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아 고통이 사라진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상태에 들었다. 부처는 우바리와 우바새 등 일반대중도 수행을 통해 탐진치(貪瞋癡)의 무명을 없애고 우주존재의 여실한 운행원리를 깨달아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쳤다.

 

II. 유식사상의 인식론과 전개과정

 

1. 불교와 인식론

 

인간은 탐진치(貪瞋癡)와 무명(無明)에 따른 잘못된 판단으로 인식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인식상의 문제점은 근현대 서양철학에서도 유사하게 제기되었다. 여기에서는 불교와 칸트, 불교와 프로이트의 인식론을 상호 비교, 분석해 봄으로써 인간의 인식상의 한계와 원리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 칸트와 불교의 인식론

 

독일의 임마누엘 칸트는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와 영국의 경험론적 철학을 종합하여 인식론의 지평을 넓혔다. 즉 이성의 만능을 믿는 합리론과 인식의 근원이 경험세계에 있다는 경험론을 종합하여 새로운 인식론을 정립했다. 인간은 대상과 경험을 인식의 재료로 삼아야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타고난 인식능력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알 수 있다 하였다. 여기서 인간의 타고난 인식능력이란 연역적이고 분석적인 판단능력과 귀납적이고 종합적인 판단능력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서 칸트는 이를 선천적 종합판단 능력이라고 했다.

 

칸트는 인식의 합리론과 경험론을 종합하면서 종합의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상과 경험이 없는 사유는 공허한 반면, 사유와 개념이 없는 대상과 경험은 맹목적이다. 다시 말해 대상과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는 사유는 내용이 없어 공허하고, 사유의 능동적 활동에 따른 개념이 없는 대상과 경험은 사유의 형식이 없어 맹목적이라는 것이다.

 

칸트의 인식론에 따르면 인간이 무언가 인식하고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인식의 대상이 있어야 하고, 대상으로부터 얻은 인식내용을 인식주체의 선천적 판단능력을 통해 정리하고 개념화하는 인식주체의 판단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불교에서 인식의 대상 즉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과 함께 인식대상을 느끼고, 상상하고, 판단하고 의식하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주체적인 인식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유사하다. 이것이 소위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등과 관련된 교설이다.

 

칸트는 인식활동은 감성을 통해 감각활동이 이루어진 후 감각을 정리하는 틀로서 나름대로의 범주(範疇)를 통해 종합판단, 개념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대상의 관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진리란 인식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하는 무엇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불교의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는 주장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계는 그 존재하는 모습이 단지 미혹하고 왜곡된 마음이 만들어 낸 표상(表象)에 불과하며, 만들어 낸 표상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칸트와 불교의 인식론은 인식의 왜곡이 어떻게, 어느 과정에서 일어나는가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칸트의 경우에는 인간의 이성이라 할 수 있는 각자의 선천적 종합판단능력이 발휘되는 과정에서 사유의 왜곡이 발생한다. 반면 불교의 경우에는 대상을 인식할 때 탐진치(貪瞋痴)라는 인식주체의 무명(無明)에서 주관적인 인식의 왜곡이 생긴다 하겠다.

 

) 프로이트와 불교의 인식론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의식활동의 이면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규명하여 인간의 심리구조와 정신분석의 해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은 현대의 철학, 심리학, 문화이론, 교육학, 범죄학, 문예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문학의 경우 무의식의 흐름을 기술하는 제임스 조이스와 이상(李箱)의 소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로 구분하였다.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지배하는 원초아(id)는 쾌락의 원리에 지배되는 생물적인 본능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대대로 존립하기 위해 필수적인 성욕(리비도; Libido)과 상대에 대한 공격성이 포함된다. 한편 초자아(super ego)는 인간이 태어난 후 사회의 도덕이나 부모의 교육으로 형성된 것으로 원초아의 무절제한 성욕이나 공격성을 자제시키는 도덕적인 양심이다. 마지막으로 자아(ego)는 원초아(id)의 맹목적인 쾌락추구 유인과 초자아(super ego)의 도덕적인 절제를 조화시켜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의식적인 자아(ego)의 판단과 행동은 의식의 이면에 있는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 즉 원초아(id)에 의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러한 주체(ego)의 인식활동은 이성적, 논리적이라 할 수 없다.

 

이상의 프로이트 이론은 불교의 유식론에서의 인식론과 유사하다.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는 유식학의 팔식(八識)에서 제7식의 말나식(末那識)과 제8식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은 프로이트의 원초아(id)에 해당되는 의식이다. 말나식은 자아의식으로서 아상과 이기심을 일으키는 무명의 뿌리이며 번뇌를 발생시킨다. 아뢰야식은 말라식을 통해 과거에 경험한 인식, 행위, 학습 등의 내용이 누적적으로 저장되어 있는 잠재의식이다. 매번의 말라식에 의한 인식의 결과는 차곡차곡 아뢰야식에 저장되고, 반대로 아뢰야식은 매번의 말라식에 따른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칸트, 프로이드, 또는 불교를 막론하고 인간이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사물을 보고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중심적인 독단과 자아의식에 따른 결과이다. 이에 따라 세상과 우주가 연기법에 따라 공()의 모습으로 여실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부처는 이러한 사실을 칸트나 프로이트보다 수천 년 전에 이미 설파했던 것이다.


2. 유식사상의 대두와 전개과정

 

) 유식사상의 대두

 

대승불교의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사상(唯識思想)은 상호보완적인 불교사상이다.

 

중관사상이란 한 마디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연기법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가므로 실체가 없이 공()한 성격을 갖지만, 시시각각의 모습은 다음 모습으로 변할 때까지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여실하게 존재한다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으므로 그 존재의 성격을 공(), 또는 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는 가운데 그때그때 변해가는 외형의 모습은 진공묘유한다는 차원에서 분명히 있는 것이므로 유()한 성격도 함께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존재는 없으면서(), 동시에 있는 것()으로 존재한다. 실체가 없다는 것을 비유(非有)라 하고, 실체가 없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있는 것을 비무(非無)라 한다. 이것이 바로 용수(龍樹)가 존재의 성격으로서 주장하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논리이다. 용수는 존재의 성격을 규정하면서 무()의 성격에 치우치거나, 반대로 유()의 성격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중도론(中道論)이다.

 

한편 유식사상(唯識思想)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주체가 인식하는가에 관한 인식론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식론에서 사람들은 중론에서의 진공묘유하게 존재하는 본 모습은 보지 못하고, 자신의 무명(無明)과 편견(偏見)을 통해 굴절, 왜곡된 형태로서 대상을 인식한다고 하였다. 인식주체에게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인식상의 오류로 굴절되어 인식된 표상식(表象識)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식주체가 인식한 인식대상의 모습은 진실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고, 다만 인식의 오류가 만들어 낸 표상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을 인식주체의 인식결과에는 존재()의 참다운 모습(; )은 없고(무경; 無境), 오로지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주관적 표상만이 있다(유식; 唯識)고 하여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 했다.

 

불교의 교설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하다. 우주만물의 존재는 연기법에 따라 비유비무(非有非無)하는 형태로 존재하는 바, 그러한 방식대로 살아갈 경우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탐진치(貪瞋癡)가 원인이 되어 진리를 보지 못하므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칸트의 주관적인 인식범주(認識範疇), 또는 프로이드의 원초아(id)에 영향을 받아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유식사상은 중관사상에서의 진리()를 얻기 위해 잘못된 식()을 수도를 통해 바르게 바꿔나간다는 차원에서 대두되었다. 유식사상이란 진리를 진리로서 바라볼 수 있기까지의 마음과 인식의 변화과정을 설명하는 마음의 철학이자 심리학이다. 즉 주관으로 얼룩진 인식의 왜곡에서 시작하여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과정과 훈련에 관한 사상이다.

 

공사상이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치우쳐 가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유식사상이 대두되었다는 논리는 논리자체가 애매모호하고 잘못된 주장이다. 중관사상의 공사상은 깨달음의 목표이고, 유식사상은 그 목표에 도달하고자하는 수단의 내용과 훈련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은 상호보완적이다.

 

) 유식사상의 전개과정

 

인간은 잘못된 인식작용에 따라 삼라만상의 실체를 여실하게 보지 못하고, 번뇌와 고통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나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마음의 안정과 열반적정의 상태로 나갈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불교의 과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교의 심리학, 또는 인식론에 해당되는 유식사상이 대승불교에서 흥기되었다. 즉 마음을 고쳐먹고 올바르게 사물을 인식하여 진리를 성취한다는 전식득지(轉識得智)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었던 것이다.

 

유식학의 명실상부한 개조는 기원 후 3세기 경 남인도 바라나시국에서 활동한 미륵(彌勒)이다. 미륵은 유식학파의 창시자로서 걸출한 학승 무착(無着)을 가르쳤다. 미륵은 유식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필독해야 할 오대부론(五大部論)을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대승장엄경론송(大乘莊嚴經論頌)

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

변중변론(辨中邊論),

금강반야바라밀경론(金剛般若波羅蜜經論)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은 유식수행의 실제경험을 이론화한 내용이며, 이로부터 유식의 소의 경전인 해심밀경(解深密經)이 나오게 되었다. 해심밀경은 유가사지론을 문답형식으로 논한 것이므로 경이라기보다는 논어(論語)와 같이 논서(論書)에 가깝다.

 

무착(無着)은 현재 파키스탄의 페샤와르(Peshawar) 출신으로서, 미륵의 제자가 되어 유식론을 연구하고 유식학파의 대표적인 논사가 되었다. 그는 유식학을 체계화한 섭대승론(攝大乘論)을 저술하고, 미륵의 주요 저서인 오대부론(五大部論)을 편집 출간했다. 그리고 해심밀경(解深密經)과 십지경(十地經) 등 대승경전의 유심사상을 종합해,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만들어 낸 표상으로서 존재할 뿐이라는 유식사상을 확립했다.

 

세친(世親)은 무착의 친동생으로서 무착의 유식학을 계승하여 그 역시 유식학의 대표적인 논사가 되었다. 세친은 부파불교의 논서로서 아비달마구사론(俱舍論)을 지었으며, 미륵에서 무착으로 이어진 유식학을 유식이십론(唯識二十論)과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으로 결집했다. 유식삼십송은 여러 저술에서 언급된 유식설을 30개의 송()으로 집약해 체계화한 것으로서, 미륵(彌勒)과 무착(無着)을 거치면서 틀을 갖춘 유식설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저자 자신의 논리를 가미한 책이다.

 

대승불교의 유식학이 인도 이외의 지역으로 소개된 것은 현장(玄?, 602?~664)에 의해서다. 중국 당나라시대의 승려였던 현장은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을 구하기 위해 인도로 먼 여행을 떠났다가 나란타사(那爛陀寺)에서 계현논사(戒賢論師)의 지도를 받으며 유식학을 배웠다. 그리고 많은 불교 경전을 가지고 귀국했다. 현장은 당() 태종의 후원 아래 여러 불경을 한역함으로써 중국에서 유식학 계통의 법상종을 여는데 기초를 닦았다. 당시 현장의 문하에는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서 현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그의 번역 작업을 돕고 그 문헌들의 주석에 전력을 쏟았던 사람이 규기(窺基, 632~682)였다.

 

규기는 위대한 불교경전의 번역가이자 주석가였다. 그의 작업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여러 유식학설을 한데 모아 집대성한 성유식론>을 번역한 일과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를 직접 쓴 일이다. 이 논서와 그 주석서들에서부터 중국의 새로운 유식학과 법상종이 시작됐으므로 규기를 법상종의 초조로 부르게 되었다.

 

중국의 유식학과 법상종은 7세기경 원광법사(圓光法師, 555638)와 원측법사(圓測法師, 613696)에 의해 신라에 전해졌다. 그 후 신라 말에는 강원도 원주에 법천사(法泉寺)가 세워졌으며,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이 법천사가 한국 법상종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법천사는 현재 원주에 사지로만 흔적이 남아 있다. 법천사지(사적 제466)에는 지광국사 해린(智光國師 海麟)의 흔적을 비롯해 많은 유물 유적이 있다.

 

III. 마음의 구조와 성격

 

유식론에서는 마음의 구조를 단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우주와 나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이유로 왜곡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우선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5개 감각인식의 기관을 통해 외부의 대상을 인식하는데 이를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전오식을 총체적으로 분별, 판단하는 인식과정을 육식(六識)이라 한다. 육식의 뿌리가 되는 것은 7식인 말나식(末那識)으로서 6식의 내용을 왜곡시키는 자의식(自意識)이다. 말나식은자기라는 의식을 낳게 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의 작용이며, 근본적으로 번뇌를 발생시키는 무명의 뿌리이다. 최종적으로 말나식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여 왜곡된 인식의 모든 결과는 차곡차곡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는 8식에 저장됨으로써 사람의 총체적인 무의식과 인격이 형성된다. 아뢰야식은 6식을 왜곡되게 판단하는 매번의 7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서 무명의 궁극적인 원인이 됨은 물론이다.

 

다음에서는 잘못된 인식이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과정을 8식의 설명을 통해 알아본다. 또한 왜곡된 인식행태에서 벗어나 나와 법, 또는 우주의 여실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마음의 변화는 어떠한 논리에 근거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본다.

 

1. 마음의 구조; 8(八識)

 

반야심경에 따르면 관자재보살은 오온이 모두 실체가 없이 공함을 깨달아 일체의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였다(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여기서 오온(五蘊)이라 함은 우리의 몸과 마음, 또는 몸과 정신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의 요소로서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말한다. 색은 우리의 육체이거나 물질적인 외부의 인식대상이고,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외계의 인식대상을 인식하는 일련의 인식과정으로서 나라고 간주되는 나의 정신을 뜻한다. 우리는 나의 몸과 정신이 합쳐져서 나라는 실체가 형성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몸()도 정신(受想行識)도 모두 연기법에 의해 외부의 인연(因緣)이 변하게 되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실체가 없어 공한 것들이다.

 

오온개공(五蘊皆空)은 모든 존재, 즉 인식대상의 물질적, 정신적 것들이 모두 공하다는 인식대상의 존재형식과 방식에 관한 주장이다. 그러나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인식의 주체가 인식대상을 인식해 나가는 절차와 방식이기도 하다. 인식의 첫 번째 단계는 감각기관(眼耳鼻舌身)이 감각대상(色聲香味觸)을 만나 각각의 감각이 우리의 몸에 수용(; feeling)된다. 다음은 수용된 감각들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상상(; perception)하며, 잇따라 의지적인 심리가 생기고(; impulse), 마지막으로 이런 결과들을 종합하여 판단(; consciousness)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수상행식이라는 인식의 절차는 칸트의 인식론에서 일차적으로 감성을 통해 물자체를 지각한 연후에 인식주체가 각자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 즉 범주(範疇)를 통해 최종 인식에 도달한다는 논리와 같다.

 

나라는 존재의 정신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수상행식은 일단 개공(皆空)하여 본래적으로 실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의식(自意識; 末那識)과 장식(藏識; 阿賴耶識)에 의해, 심하게 왜곡된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 유식론의 주장이다. 프로이드 식으로 말하면 무의식(無意識; id)에 의해 의식이 왜곡되게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모든 물질적, 정신적 것들은 실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상을 왜곡되게 판단하고, 또 그렇게 왜곡된 방식으로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초기불교에서는 수상행식의 식만을 마음이라고 했으나, 유식학에서는 말나식과 아뢰야식을 더한 8식을 통해 마음의 구조를 식의심(識意心)으로 정치화(精緻化), 심층화(深層化)하고 프로이드에서처럼 왜 우리의 인식이 굴절되고 왜곡되는지를 밝히려 했다.

 

다음은 인식의 구체적인 여덟 가지 과정과 내용이다.


) 6(六識)

 

인간의 인식은 무엇보다 객체로부터 받는 느낌으로 시작된다. (), (), (), (), (), () 등 여섯 개의 감각기관(六根)을 통해 빛과 색깔(), 소리(), 냄새(), (), 촉감(), 우주의 원리 혹은 법()에 관한 느낌 등(六境)을 수용한다. 인식대상이 발하는 느낌들을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통해 수용함으로써 앎의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섯 가지 각각의 경()과 근()이 만나서 여섯 가지의 판단()이 생겨난다. 이상으로 6(六根), 6(六境), 6(六識)을 합한 것이 소위 18(十八界)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여섯 개의 근과 경의 짝에서 생겨난다는 의미에서 여섯 가지의 6식은 여섯 번째의 근과 경에서 발생한다는 차원에서 6식이라 부르는 6식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점이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안(), (), (), (), () 등의 5근에 따라 생겨나는 식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마지막 의()에 따라 생겨나는 식을 의식(意識), 또는 6(六識)이라 한다. 전오식과 구별되는 여섯 번째의 6식은 전오식에서 발생했던 5식을 총체적으로 종합 판단하는 식이다. 환언하여 여기서의 6식은 이미 머릿속에 형성되어 있는 생각과 판단에 기초()하여 전오식에서 추가적, 충동적으로 생겨난 5(五識)을 경()으로 삼아 재평가, 분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의식(意識)으로서의 6(六識)은 생각과 견해가 끊임없이 바뀌어 나가는 생각의 변화과정이다. 앞생각이 뒤에 오는 느낌이나 생각을 만나면 앞생각은 뒷생각을 감안, 수용하여 미세 조정된다. 유식학이 본격화되기 이전 초기 불교에서는 6근 중 의에 따른 식, 6식만을 마음()이라 간주하였다.

 

6(六識)은 전오식(前五識)과 함께 생긴다 하여 오구의식(五俱意識)이라 부른다. 현상적이고 감감적인 전오식과 동시에 일어나는 6식은 전오식의 식을 종합하고 통일하는 통각작용(統覺作用)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6식은 전5식과 관련된 의식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일어나는 다양한 사고, 기억, 추리, 예상, 판단 따위의 의식에도 관여한다. 이와 같이 제6식은 생각이 깊고 넓으며 모든 것을 고려하여 생각하다는(반연; 攀緣) 차원에서 광연의식(廣緣意識)이라고도 한다.

 

) 7-말나식(末那識, manas)

 

인간은 탐진치(貪瞋痴)로 얼룩진 무명(無明)의 업보로 인해 세상과 우주의 올바른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으로 고해의 일생을 살아간다. 탐진치란 자아의식에서 비롯되는 욕심스럽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이다. 유식학에서는 마음의 심층구조를 밝혀 어떠한 연유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왜곡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즉 마음에 자아의식(7; 말나식(末那識))과 무의식(8; 아뢰야식(阿賴耶識)) 등 심층의식을 추가하여 인간의 인식과 심리구조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우선, 6식에 의한 인식과 심리 활동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제7식은 일종의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잘못된 의식을 뜻한다. 7식은라는 의식을 낳게 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내가 있다’, ‘이것이 나다라는 등의 아상(我相)을 지어내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의식이다. 7식은 본인의 이기심에 따라 헤아리고 계산하여 판단하는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사량식(思量識)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제7식의 자기중심적 자아의식으로 인해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 등의 잘못된 버릇이 생긴다. 아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일이며, 아견은 자기의 견해를 고집하는 일이고, 아만은 자신을 우쭐하게 생각하는 일이며, 아애는 허상으로 설정된 자신을 과도하게 집착하여 사랑하는 일이다.

 

) 8-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nana)

 

6식에 영향을 미치는 제7식보다 더 심층에 숨어 있는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을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한다. 아뢰야(alaya)는 산스크리트어로저장한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과 생각은 빠짐없이 종자로 변해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이러한 종자는 행동과 생각이 남긴 결과이며, 습관적 기운이라는 의미에서 습기(習氣)라고도 한다.

 

6식에 따른 인식은 제7식의 자의식에 의해 주관적으로 왜곡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아뢰야식에 쌓여 무의식으로 형성된다. 반대로 제7식의 인식결과가 누적된 아뢰야식은 다음번의 제7식에 따른 인식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 우리가 행하는 선악 행위의 결과는 없어지지 않고 냄새가 남듯 아뢰야식에 훈습(薰習)으로 남아, 다음번의 행위와 인식에 영향을 미쳐 업보(業報)를 낳게 하는 것이다.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가 그것에 알맞은 생각과 행동을 낳는 것을 현행(現行)이라 한다. 일상생활 중에 악한 생각과 행동은 악한 종자를 낳아 악한 현행으로 이어지고, 선한 생각과 행동은 선한 종자를 낳아 선한 현행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논리이다.

 

2. 마음의 성격; 삼성설(三性說)과 전식득지(轉識得智)

 

우리는 말나식이나 아뢰야식에 따라 나와 우주만물을 왜곡되게 인식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자아와 실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모든 존재를 잘못 인식, 규정하고 그렇게 왜곡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의 성격과 문제점을 철저히 규명하고, 마음을 고쳐먹어 진리의 세계로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식학에서는 어떻게 하여 수행을 통해 미혹한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게 만드는 마음의 본질적 성격은 무엇인지를 전식득지(轉識得智)와 삼성설(三性說)의 논리에서 밝히고 있다.

 

) 삼성설(三性說)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인간은 자아의식과 무의식에 사로잡혀 객관현실을 편벽되게 바라보고, 잘못 인식된 것에 집착한다. 이러한 마음의 성격을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고 한다.‘변계(遍計)’는 진리를 망각하고 주관적인 감정과 욕망에 따라 객관세계를 편협하게 계산하여 판단하는 마음의 성격을 뜻한다. 보고 듣는 것을 액면 그대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계산하면서 보고 들으므로 잘못 보고 잘못 듣는 것이다. 변계(遍計)라는 마음의 특성에 따라 무지와 무명(無明)이 발생하고 번뇌와 망상에 빠지면, 잘못된 것에 집착(소집; 所執)게 된다.

 

인간은 모두 탐(), (), ()의 삼독심(三毒心)에 따른 변계(遍計)와 무명(無明)으로 인해 마음속에서 지어낸 허구적인 대상과 온갖 분별로 얼룩진 차별상을 가지게 된다. 이에 따라 자아(自我)나 객관 대상, 즉 제법(諸法)에 고정불변적인 실체가 있을 것으로 잘못 판단한다. 사실을 이치대로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치우치게 보고 집착하는 것을 다른 말로 정유리무(情有理無)라고 한다. 우리 마음에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판단만 있고 진리를 꿰뚫어보는 이치나 지혜는 없다는 뜻이다.

 

의타기성(依他起性)

 

마음은 물질과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생성소멸(生成消滅)의 과정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마음이란 본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외부 조건과 인연에 따라 변화해 나갈 뿐이다. 마음의 의타기성(依他起性)이란 외부조건, 즉 타()에 의지()해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마음은 외부의 인연 조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므로 본래적으로 자성과 실체가 없다(本無自性).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나는 사람들로 인해 수도 없는 마음이 새롭게 일어나고 사라진다. 외부의 인연으로 새로운 마음이 생길 때, 자아의식과 분별심을 통해 왜곡된 인식과 마음을 가지게 되면, 바로 이것이 변계소집(遍計所執)이 된다.

 

우리의 마음은 변계소집성에 따라 진리를 보지 못하고 무명의 상태에 빠지지만, 의타기성이라는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마음의 외부조건을 바꿈으로써 분별의식과 집착의 마음을 고쳐나갈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진리의 방향으로 나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열쇠가 있는 것이다. 유식론에서는 올바른 마음을 가지기 위한 다양한 수행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원성실성(圓成實性)

 

원성실성이란 망상분별을 떠나 구경(究竟)과 진여(眞如)의 깨달음을 얻은 지혜로운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원성실성은 우주만물의 진공묘유(眞空妙有)와 중도(中道)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경지이다. 마음이 원성실성의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은 우주의 이치를 바로 이해하고 견성(見性)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원성실성이라는 마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함은 누구나 수행과 정진을 통해 연기법에 의한 참다운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견성할 수 있는 소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원성실성은 우리 마음이 가지고 있는 성격 중 하나이므로, 누구라도 집착과 아집으로 가득한 아뢰야식과 무명을 없애기만 하면 견성하여 성불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 전식득지(轉識得智)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는 실체적인 개념, 즉 영원불변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허상과 무명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유식론에서는 영원불변하게 존재한다는 실체적인 개념이 어떻게 마음에서 생겨나는지를 상세히 밝힌 다음, 잘못된 인식과 생각을 바꾸어 모든 존재를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견지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으로 전환해가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 방법과 과정을 제시하였다.

 

우리의 마음이란 물질적인 존재와 마찬가지로 연기법의 원리에 따라 주변의 인연과 조건이 변함에 따라 끊임없이 함께 변화해 감으로 우리 마음의 조건과 인연을 바꾸면 얼마든지 무명의 마음에서 깨달음의 마음으로 전환해 나갈 수 있다. 전식득지(轉識得智)란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식(), 내지 인식(認識)의 상태에서 우주만물을 연기법의 원리에 따라 여여(如如)하게 볼 수 있는 지혜를 얻는 상태로 전환해 나감을 의미한다.

 

앞에서 밝힌바와 같이 우리의 아뢰야식은 자의식으로 왜곡된 말라식의 인식과 판단의 결과가 일생을 통해 겹겹이 쌓인 장식(藏識)이자 우리의 정신적인 인격체에 해당되는 무의식이다. 흙탕물이 계속 유입되어 갖가지로 흙탕이 된 연못이 아뢰야식이다.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과정이란 올바른 말라식을 통해 깨끗한 물을 유입시키는 한편, 이미 흙탕물로 고여 있는 아뢰야식의 연못도 수행과정을 거쳐 흙탕을 침전, 정화시켜야 한다. 아뢰야식 속의 온갖 오염된 종자(種子)를 소멸시키고, 청정한 종자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유식학의 궁극적 목적이다.

 

 

IV. 유식수행(唯識修行)과 전식득지(轉識得智)

 

1. 유식수행 5(唯識修行 五位)


유식불교에서는 전식득지의 지혜를 얻어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을 다섯 가지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유식에서 수행 5(修行五位)<유식30(唯識三十頌)>,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에서 말하는 보살의 수행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눈 것을 말하며, 보살 5(菩薩5), 수도 5(修道5), 수행위차(修行位次), 수행계위(修行階位)라고도 한다. 유식수행의 5위는 다음과 같다.

 

) 자량위(資糧位)

 

자량위는 수행의 첫걸음으로서 수행의 자질과 역량을 키우는 단계이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노자(路資)와 식량(食糧)을 준비하듯 수행에 필요한 지혜와 복덕을 쌓는 준비단계이다. 자량위의 단계를 거치기 위해서는 붓다의 말씀을 깊이 신해(信解)하고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등 삼십심(三十心)을 닦아야 한다. 십주는 열 가지 마음가짐을, 십행은 열 가지 바라밀행을, 그리고 십회향은 십바라밀행을 순서대로 중생에게 회향하여 베풀어주는 것을 말한다. 자량위의 단계는 한마디로 보살이 지켜나가야 하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수행단계를 뜻한다.

 

이러한 초보단계에서는 지엽말단적인 번뇌는 정화할 수 있어도 근본적인 변계소집(遍計所執)과 망상은 근절되지 않아 자기중심적으로 분별하는 마음이 남아 있게 된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벗(선우; 善友)을 만나고, 지혜를 얻고자 하는 자신의 굳은 의지[작의; 作意)가 필요하며, 이러한 여건들을 충분히 갖추어(자량; 資糧), 신해(信解)로서 붓다의 가르침을 굳게 믿고 이해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 가행위(加行位)

 

가행위(加行位)를 가행도(加行道) 또는 방편도(方便道)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가행이란 힘을 더해 더욱 정진한다는 의미이다. 가행위는 실질적으로 유식수행(唯識修行)의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자량위의 단계가 지혜와 복덕으로 내적인 자질과 역량을 키우는 단계라면, 가행위는 본격적으로 노력하는 단계이다. 내가 자의식과 편견에 기초하여 인식한 결과와 방식대로 모든 대상이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는 단계이다.

 

가행위에서는 나와 대상을 상대적으로 분별해서 생각하는 습관을 없애야 하며, 이를 위해 지심(止心, samatha)과 관법(觀法, vipasyana)이라는 수행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마음을 모아 정지시키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본다는 수행법이다. 이러한 수행을 거치면서 심신은 편안하고 맑아지며 난() . () . () .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는 4선근(四善根)도 차례로 생겨 순결택분(順決擇分)에 들게 된다. 순결택(順決擇)이란 결단하고 선택하여 사고한다는 뜻으로 번뇌가 없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의미이다.

 

) 통달위(通達位)

 

통달위(通達位)란 진리, 즉 진여(眞如)로 통한 수행단계이다. 연기법의 원리에 따라 모든 존재가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는 단계이다. 제법의 존재원칙을 알게 되어 기쁘다는 뜻으로 통달위를 환희지(歡喜地)라고도 한다. 환희지는 보살의 수행단계 십지(十地) 중 첫 단계로서 성인의 지위에 든 것을 말한다.

 

통달위에서도 변계소집하는 자의식과 무의식은 여전히 남아있어, 잘못된 인식과 망상으로 인한 번뇌도 남아 있는 상태이다. 각종 종자를 저장하고 있는 아뢰야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분별심은 없어지지만 진여를 완전히 증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근본이 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기 위해서는 수행을 계속해야 한다.

 

) 수습위(修習位)

 

수습위(修習位)는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하며, 통달위에서 아직도 정화하지 못한 부분을 더욱 정화하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그 동안 끊임없는 수행과 그로 인해 체득된 무분별지에 의해 아뢰야식 중에 있는 번뇌가 사라지게 된다. 수습위에서는 나 자신도 없고 법도 없다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원리를 알아 진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에는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이 있다. 번뇌장은 탐. . (貪瞋癡) 등에 의해 수행에 지장을 받는 것이고, 소지장이란 기왕에 조금 알고 있는 얕은 지식 때문에 수행에 장애를 받는 것이다. 번뇌장은 자아가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초한 번뇌이다. 반면에 소지장은 외적인 현상의 존재가 실재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번뇌이다. 수습위는 소지장(所知障)을 없애고, 동시에 번뇌장(煩惱障)이 정화하면서 진여의 깨달음에 다가가는 단계이다.

 

) 구경위(究竟位)

 

구경위는 자량위, 가행위 통달위, 수습위 등 4위의 수행을 통해 8식에서 발생하는 무명과 인식의 오류를 없애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자의식과 아뢰야식 등에 의해 나와 법계에 불변하는 실체가 있다는 미망과 환상에서 벗어나 번뇌가 없어지고 마침내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구경위에서는 아뢰야식에 왜곡된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잠재의식들이 교정되거나 없어짐에 따라, 모든 인식대상은 실체가 없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는 원리에 따라 인식하고 사고하게 된다. 이러한 단계가 바로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의 경지이고 바른 인격이 완성되는 정각성불(正覺成佛)의 단계이다. 구경위를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단계라는 뜻으로 무학도(無學道)라고 부른다.

 

2. 유식사지(唯識四智)와 전식득지(轉識得智)

 

우리가 미혹한 마음과 무명을 없애고 우주만물의 대상과 현상을 공()의 원리에 따라 바라보기 위해서는 8식으로 설명되는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청정한 마음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행 5위를 거쳐 중생의 편벽된 마음은 점차 부처의 마음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전식득지(轉識得智)라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전식득지의 과정에서 아뢰야식, 말라식, 육식, 전오식 등 8식은 각각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 등의 지혜에 따라 바른 식(), 또는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이 왜곡된 각각의 식()들을 올바르게 하는 4가지 지혜를 유식4(唯識四智), 혹은 불과사지(佛果四智)라고 한다. 여기서 유식4지는 8식을 바른 식으로 바꾸는 수단(手段)이면서, 동시에 8식이 바른 식으로 바뀐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마음의 구조는 순차적으로 아뢰야식이 말라식에 영향을 미치고, 자의식으로서 말라식은 육식에 영향을 미치며, 육식은 최종적으로 전오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잠재의식으로서 아뢰야식이 청정하게 되면 나머지 모든 인식활동의 식들이 차례로 청정하게 바뀔 수가 있다. , 아뢰야식이 대원경지로 바뀌면 말라식은 평등성지로 바뀌고, 말라식이 평등성지로 바뀌면 육식은 묘관찰지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육식이 묘관찰지로 바뀌면서 전오식은 성소작지로 바뀌어 모든 8식이 바르게 된다.

 

) 대원경지(大圓鏡智)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인간의식의 심연에 있는 제8식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 무명이 모두 제거되고 진여(眞如)와 참 진리를 바탕으로 청정해 지는 지혜를 말한다. 대원경지에서 ()’는 지혜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뜻이고, ‘()’은 인식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나지 않게 비추어 본다는 뜻이다. 즉 대원경지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우주만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는 거울처럼 인식하고 판단하는 지혜라는 의미이다.

 

대원경지란 한 점의 티끌도 없는 거울에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쳐지듯이 모든 진리를 왜곡됨이 없이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지혜이다. 대원경지의 지혜를 얻게 되면 원만한 덕성도 얻게 되어, 그 공덕을 중생과 보살들에게도 베풀어줄 수 있게 된다.

 

) 평등성지(平等性智)

 

자의식과 이기심을 버린 후 얻어지는 청정한 지혜가 평등성지(平等性智)이다. 이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떠나 나와 대상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자비심을 일으키는 지혜이다. 여기서 평등성이란 진여(眞如)의 본질적 성격을 말하며, 일체의 법과 존재는 평등성의 원칙에 따라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평등성을 깨달아 얻어진 지혜가 평등성지(平等性智)이다.

 

자의식으로 오염된 제7식인 말라식(末那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고뇌와 번뇌가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는 무루(無漏)의 지혜가 평등성지이다. 일체가 구별 없이 평등함을 알게 되므로 자비심이 일어나고 중생교화에 임하게 된다.

 

) 묘관찰지(妙觀察智)

 

오염된 제6식을 청정화하여 모든 사물과 생각을 객관적으로 관찰, 인식하는 지혜가 묘관찰지(妙觀察智)이다. 여기서 묘()라 함은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훌륭하다라는 뜻으로, 묘관찰(妙觀察)이란 물질적, 정신적 인식대상을 변계소집(遍計所執)함이 없이 훌륭하게 관찰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와 대상의 모습과 보편적인 특질을 있는 그대로 관찰,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번뇌와 고통을 발생시키는 유루(有漏)의 제6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말라식과 아뢰야식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제6식을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말라식과 아뢰야식의 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반대로 잘못된 제6식의 결과는 다음 단계인 말라식과 아뢰야식에 누적되므로, 유식4(唯識四智)는 서로 양방향으로 연관되어 있는 지혜들이다.

 

) 성소작지(成所作智)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왜곡된 유루의 전5(前五識)을 청정화하는 지혜이다. , (), (), (), (), () 등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1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인식을 올바로 하는 지혜이다.

 

성소작지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소작; 所作)을 모두 성취(; )하는 지혜라는 뜻이다. 이는 인식하고 사고함에 있어 구체적인 행위가 모두 지혜롭고 이성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유식의 수행5(修行五位)를 통해 유식사지(唯識四智)라는 지혜를 얻게 된다. 유식사지(唯識四智)란 나에게 실체가 있다, 모든 존재에 실체가 있다는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잘못을 타파하는 지혜이다. 다른 말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지혜를 말한다. 이렇게 무명과 망상으로 오염된 8식이 정화되어 4가지 지혜로 전환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마음에 원성실성(圓成實性), 또는 유식실성(唯識實性)이라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우리 모두는 깨달을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VI. 요약 및 이해의 결론

 

중관사상(中觀思想)과 유식사상(唯識思想)은 상호보완적인 불교사상이다. 중관사상은 우주만물이 비유비무(非有非無)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존재방식에 관한 설명이다. 반면 유식사상은 여실한 우주의 존재방식을 변계소집함이 없이 여실하게 깨달아 번뇌와 고통에서 해탈하고자 하는 수행을 강조한 교설이다. 유식사상의 수행에 관한 교리가 있음으로 불교라는 종교는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유식사상의 수행오위(修行五位), 유식사지(唯識四智) 등 수행 단계와 성과에 관한 설명은 재가신도인 우바이 우바새는 물론 불교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의 수행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수행5(修行五位)라는 수행의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유식사지라는 네 가지 지혜를 얻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하였다. 그러나 수행5위에서는 각 단계에서 무엇을 얻고 어느 정도로 깨닫는지에 대에 설명만 있을 뿐, 각 단계에서 차상위의 단계로 어떻게 무슨 방법을 통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등산로가 없고 안내판이 없다. 또한 8식을 정화한다는 유식사지의 지혜들을 구체적으로 어떠한 수행을 거쳐 획득할 수 있는지는 대단히 막연하기만 하다.

 

인간이 자의식을 버리고 우주법계의 연기법과 제법무아의 진리대로 사고하고 행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라는 동물행동학자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퍼뜨리려는 단순한 기계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의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안전하고 최대한으로 후대에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의 지령에 따라 이기적이고 자의적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이기적 자의식과 잠재의식으로 인해 우리의 말라식과 아뢰야식은 정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을 것이다. 번뇌와 망상, 무명을 버리고 열반에 이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러함에도 깨달음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처럼 설법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인간의 행복은 나를 내려놓고 가급적 나의 욕망을 최소화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가진 물질과 수단을 최대화하는 대신 욕심과 탐욕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열반과 견성성불이 아니고 탐진치를 버리고 최소한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불교의 교리와 사상은 아주 적절하고 유효하다. 불교는 과연 행복의 종교임이 분명하다.



(원주 법천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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