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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해설
06/25/201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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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해설

구슬놀이

 

1. 들어가는 말

 

불교는 매력적인 종교다. 불교가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상과 철학이 매력적이고, 마음과 몸의 수련을 통해 일체의 고통에서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러나 고통에서 해탈하는 데 필요한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고, 그 깨달음의 내용을 실생활에서 지켜나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향기가 있어 먹음직스럽지만 먹을 수 없는 과일과 같다. 그래서 혹자는 매우 안타까운 일을 두고 불경과 같이 서럽다고 했다.

 

우리나라 불교계의 학자나 스님들이 설명하는 불교의 내용은 일상인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난삽하여 선문답하는 식이다. 부처님처럼 대기설법을 통해 근기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해야 한다. 중국의 선과 도 교의 분위기와 사상이 접목되어 우리에게 전파된 선종 중심의 우리 불교는 그저 신비한 분위기만 가득하다. 상구보리는 있을지 모르지만 하화중생의 차원에서 매우 불친절한 것으로 느껴진다.

 

일반인이 불교에 접근하지 못하는 제일 큰 이유는 우리 불교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논리구조가 오랜 옛날의 한문 불경과 중국문화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불교서적을 읽어봐도 아리송할 뿐 개념이 명확하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승단과 불교입문자 간의 언어의 소통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불교공부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일반인으로서 가급적 현대적인 시장의 언어와 논리를 가지고 불교경전의 핵심인 반야심경을 해설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본인과 유사한 불도들에게 입문과정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이 글이 토론에서 하나의 발제가 되어 불교사상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바란다.

 

아래의 글은 불교에 관한 학식이 미천하고 여러 가지로 미혹한 하나의 중생이 많은 하자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만용으로 써 보는 것이다.

 

 

2. 반야심경이란 어떠한 경전인가?

 

불교의 사상과 문화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반야심경의 유명한 인용구를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알쏭달쏭하여 의미를 알 수 없는 이 말은 산사의 대웅전 두리기둥에도, 또 넓적한 바위에도 새겨져 있었다. 또한 지식을 뽐내는 대학생의 대화에도 드물지 않게 등장했다. 그만큼 반야심경은 우리와 밀접한 국민경전이다.

 

반야심경은 본문이 한자로 불과 260자밖에 되지 않는 대단히 짧은 불교경전이다. 부처의 가르침과 방대한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오렌지 농축액처럼 엑기스로 응축시켜 놓은 관계로 고도의 상징성이 있다. 길이가 짧아 암송하기가 쉬우므로 기독교의 주기도문처럼 불교의식에서 빠지지 않고 낭송되는 불경이다.

 

반야심경의 본래의 명칭은 마하반야파라밀다심경(摩訶般若婆羅密多心經)‘이며, 이를 줄여서 반야심경이라 하고 더 줄여서 심경이라 부른다. 경의 명칭 중 마하는 절대적, 초월적으로 크다는 뜻이고 반야는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최상의 지혜를 뜻한다. ’파라밀다는 저쪽 언덕으로 건너간다라는 뜻이며, ‘심경이란 핵심이 되는 경전, 또는 요약된 경전이라는 뜻이다. 이를 모두 합하여 해석하면 마하반야파라밀다심경큰 지혜를 갖추어 저쪽 언덕, 즉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데 핵심이 되는 경전이라고 풀이된다. 환언하면 고통의 이 땅에서 열반의 강 건너로 건너가는 데 필요한 위대한 지혜를 담고 있는 경전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출가 후 6년 만에 생노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이후 무려 45년에 걸쳐 자신이 깨달은 바를 설법했다. 장기간의 설법 내용을 시기별로 차례별로 분류한 것을 오시교(五時敎)라고 한다.

 

부처님은 이 세상 모든 물질적, 정신적 존재와 현상은 실체가 없다는 공()에 관한 개념을 가장 오래 가르쳤는데 이 기간을 반야시(般若時)라 한다. ()이란 만물은 연기법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가기 때문에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諸行無常, 諸法無我). 이와 같은 설법의 내용을 모아 엮은 것이 대반야경이다. 반야경으로부터 금강경이 도출되었고, 반야경 중 공사상에 대한 핵심적 가르침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 반야심경이다.

 

부처님의 입멸 후 약 500년이 되는 시기(기원후 1세기)를 전후하여 불교계에서는 대승운동이 벌어졌다. 사변적이고 개인적인 소수 엘리트의 출가자 중심의 불교에 반대하고,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성불사상(成佛思想)에 기초하여 재가자 일반인들의 깨달음에 도움을 주자는 운동이었다. 또한 대승불교는 부처님의 말씀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법신불사상에 기초하여 초기경전에 나타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하였다. 예수의 가르침, 즉 복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독교의 복음주의와 유사한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대승불교 계의 학승들이 기원 후 1세기경 대반야경을, 그리고 기원 후 2세기경 대반야경을 요약하여 반야심경을 저술한 것으로 추측한다. 이후 제2의 석가라고 불리는 학승 용수(龍樹; AD150250)는 반야경의 중심 내용으로서 공의 개념과 공에 대한 바른 이해로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반야파라밀다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그 의미를 체계화하였다.

 

우리가 흔히 암송,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산스크리트원전을 현장(玄?; AD 602664)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현장은 불교경전을 구하러 인도에 갔던 법사로서 소설 서유기(西遊記)에 손오공과 함께 등장하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통상적으로 반야심경을 대승불교의 특별하고 고유한 사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반야심경의 공()과 반야파라밀다의 내용은 이미 부처님이 설교했던 내용이지 보살도와 하화중생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의 이념을 위해 새로 창안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은 다만 대승불교 계에서 저술된 것일 뿐이다.



3. 반야심경의 중심사상


1) 불교사상의 개요

 

불교의 논리와 주장은 아주 심플하다. 세상의 만물과 현상은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잠시도 쉬지 않고 변하여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잘못된 판단과 생각으로 그것들을 불변하는 존재, 영원한 존재로 오인하는 데에서 모든 고통이 뒤따른다고 한다. 즉 인간의 인식과정에서 인식의 대상은 실체가 없는 한편 인식주체의 인식에는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해 인식상의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식론에서 인식의 대상도 문제이고 인식의 주체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부처님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와 고통으로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풀고자 했다. 부처님은 각고의 수행을 거쳐 생노병사의 현상과 고통은 원래가 없는 것이며, 인간 스스로 만들어 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12지연기). 사람의 존재, 즉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은 기실 알고 보면 실체가 없는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고정불변한 존재로서 내가 태어나고 죽는다고 잘못 판단한다고 하였다. 내가 없고 나의 존재가 부정되는 상황에서 병들고 죽는 문제는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내가 없고 만물이 실체가 없다는 실상을 아는 일이 깨닫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안전하고 영구적으로 보존하려는 본능이 있다. 리처드 도킨즈(Richard Dawkins; 이기적 유전자) 류로 말한다면 자신과 후손의 번영을 도모하여 가급적 자신의 DNA를 많이 퍼트리고자 한다. 그런 만큼 인간은 자신에 대한 아집과 아상(我相)이 강하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으로는 그러한 아상은 덧없고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존재의 안전과 연장을 위해 본능적으로 욕심이 많고, 화를 잘 내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는 보통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아와 실체를 부정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아와 만물에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6파라밀과 8정도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인식주체의 인식에 오류와 문제가 있다는 불교의 주장은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으로 요약되는 노자의 사상과 유사하다. 인간의 인위적 선입견으로 판단하는 우주의 현상과 이름은 본래대로 있는 자연이 아니라는 노자의 말은 탐진치로 물든 인간의 인식상의 한계를 지적하는 불교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뜻이다.

 

한편 불교가 제기하는 인식주체의 불완전한 인식의 문제는 서양철학의 인식론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은 인식의 대상, 또는 경험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인간의 타고난 사유능력과 이성에 따라 보편적인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는 인간의 인식대상에 대한 판단을 결함투성이로 본 반면 칸트는 인간의 사유능력을 무한히 신뢰한 것이다.

 

2) 반야심경의 중심사상

 

반야심경의 핵심 내용은 위대한 반야의 지혜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일체의 고통이 소멸되는 열반과 무한자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깨달음이란 나를 포함하여 일체의 사물과 현상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즉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만물이 공()한 원리에 의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에 따라 반야심경에서는 공이란 개념이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공한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주의 만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조건과 원인이 되어 주고받는 영향 하에 존재한다는 것이 연기(緣起)의 원리이다. 나에게 영향을 준 조건과 원인이 변하면 나는 방금 전의 내가 아니라 새로운 내가 된다. 이렇게 모든 사물과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불교의 논리이다. 변해가는 순간순간의 모습은 우리가 감지할 수 있으나,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공()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만물의 존재양식에 공한 성격이 있지만 그 속에서 순간마다 변해가는 존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두고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하였다.

 

공한 모습의 존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바로 나이다. 개별 인간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색이란 우리의 몸이며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요소가 모인 것이다. 수상행식은 인간의 인식작용으로서 인간의 정신 또는 마음을 뜻한다. 우리는 몸과 정신이 함께하면서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인연이 변하면 색수상행식 역시 수시로 모두 변하기 때문에 공한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를 두고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의미에서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하였다. 오온(五蘊) 은 색, , , , 식 등 다섯 가지를 개별적으로 분리하여 각각이 연기법에 따라 쌓여있는 그 무엇()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야심경은 깨달음에 소용이 되는 모든 방편과 수단을 모두 공하다고 보고 부정하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우리가 매일같이 겪는 팔고가 없다고 한다(八苦; , , , 사의 고통,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싫어하는 자와 만나게 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온이 너무 성하여 오는 고통(五蘊盛苦)). 고통의 원인도 없고, 고통을 없애는 방법, 고통에 다시 빠지지 않는 방법 등 사성제(四聖諦) 모두를 부정하고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행하는 팔정도(八正道)도 물론 없는 것이다. 불교사상의 근간이 되는 연기법도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불교 자체가 없다고 대 반전의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의 논리는 불교의 온갖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의 논리에 편견으로 또 다른 상()을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선종의 6조 혜능 스님이 당부한 무엇이건 집착하고 애걸하지 않는 가운데 마음을 낸다(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는 말과 맥락이 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야의 지혜와 깨달음이란 불교의 교리에 집착하고 그 지식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편견 없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4. 반야심경의 본문과 해석


1) 반야심경의 구조

 

반야심경이 설해지는 각본(脚本)에는 부처님의 꿈에 나타난 관자재보살에게 사리자가 부처님의 가피력을 빌려 설법을 요청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부처님이 지혜제일인 사리자에게 관재재보살을 인용하여 설법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래도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관자재보살은 어떠한 것에도 끄달림이 없이 자유자재로 세상의 이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관자재보살을 공()의 이치를 설명하면서 가장 적합하게 인용할 수 있는 이유다.

 

반야심경은 통상 입의분(立義分), 파사분(破邪分), 공능분(功能分), 총결분(總結分)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입의분(立義分) :

관자재보살이 반야의 지혜를 닦아 일체의 사물과 현상을 공()의 입장에서 바라봄으로써 모든 고통과 재앙으로부터 벗어났다는 내용. 이는 불도들에게 반야파라밀다의 수행에 뜻을 세우(立義)게 함이 목적임.

(‘관자재보살에서 도일체고액까지)

 

파사분(破邪分) :

공의 의미를 설명하고 일체만물과 현상이 공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 불교의 기본교리로서 인간의 인식체계인 18, 12지 연기법, 사성제, 깨달음 마저도 공하다고 함. 이것은 불교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불교교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집착을 바로잡기(破邪) 위한 것으로 보임.

(‘사리자 색불이공에서 무지역무득까지)

 

공능분(功能分) :

공능분은 일체를 공하다는 견지에서 여실하게 바라보게 되면 공포와 번뇌를 벗어나 끝내는 열반,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반야파라밀다의 최종결과와 효험에 관한 것임.

(‘이무소득고에서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

 

총결분(總結分) :

반야지혜의 무한한 공덕과 신비성을 진언(眞言)과 주문(呪文)으로 칭송하는 부분임. 총결분의 진언과 주문은 위에서 교설한 내용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는 다짐에 해당됨. 또한 반야의 지혜를 통해 열반에 도달한 부처님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것임. 특히 최종 부분의 주문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동어반복에 의한 리듬감과 신비성이 있어 암송이 즐겁고 불심을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음.

(‘고지 반야바라밀다에서 모지사바하까지)

 

2) 반야심경의 본문과 해석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영문)

Avalokitesvara Bodhisattva, when practicing deeply the Prajna Paramita, perceives that all five skandhas are empty and is saved from all suffering and distress.

-반야심경 영문은 숭산스님이 번역하고, 현각스님이 교정한 것임.

 

(한글 번역)

관자재보살이 반야파라밀다를 깊이 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밝게 비추어 봄으로써 일체의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해설)

 

관자재보살은 위로는 깨달음 얻기 위해 정진하고 아래로는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이다(상구보리, 하화중생). 하화중생의 측면을 더 강조하여 관세음보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상()과 편견에 빠지지 않고 자유롭게 사물을 보아야 하므로 공개념을 강조하는 반야심경에서는 관자재보살의 명칭이 더 적합하다.

 

반야파라밀은 보살의 실천덕목인 6파라밀 중의 하나이다. 공한 이치로서 만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지혜(반야)를 얻고자 수행하는 것이 반야파라밀이다.

 

오온(五蘊)은 사물과 인간 존재를 다섯 가지의 집합(덩어리)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분류법이다. ()이란 빛깔이나 색깔이 아니라 외형적으로 드러나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물질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수상행식(受想行識)’은 인간의 정신작용을 느끼고, 생각하고, 충동심을 일으키고, 인식하는 등의 단계로 세분한 것이다. 인간은 물질적인 요소인 과 정신적인 요소인 수상행식이 모여서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이란 우주 만물은 연기법에 의해 매 순간마다 변하므로 실체가 없고 자아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는 이치나 현상을 말한다. 공이란 사물이 아애 없는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지속되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다. 순간마다 변해가는 순간의 사물 자체는 엄연히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일체고액(일체고액)’, 즉 모든 괴로움과 불행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 한다. ‘라는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온갖 고통과 불행이 수반된다고 한다. 기실 내가 없기 때문에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괴로움과 고통은 없는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나라고 할 수 있는 오온이 모두 실체가 없어 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라는 허상을 세우지 않음으로써 고액으로부터 탈출했다.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영문)

Shariputra, form does not differ from emptiness, 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 That which is form is emptiness, that which is emptiness is form. The same is true of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consciousness.

 

(한글번역)

사리자여, 색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다. 색은 곧 공이고 공은 곧 색이다. , , , 식도 역시 이러하다.

 

(해설)

 

여기서 색의 집합(集合)은 색이면서 공이 아닌 것의 집합과 색이면서 공인 것의 집합의 합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


= {색인 것/공이 아닌 것, 색인 것/공인 것} 이다.

 

색은 공과 다르지 않다(form does not differ from emptiness)색불이공은 색의 집합에서 색이면서 공이 아닌 것의 집합을 제외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색의 집합에서 남는 것은 색이면서 공인 것의 집합뿐이며, 이때 색즉시공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논리로,

 

= {공인 것/색이 아닌 것, 공인 것/색인 것} 이다.

 

공이 색과 다르지 않다(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공불이색은 공의 집합에서 공이면서 색이 아닌 것의 집합을 제외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공의 집합에서 남는 것은 공이면서 색인 것의 집합뿐이며, 이때 공즉시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색불이공의 집합과 공불이색의 집합은 색집합과 공집합의 교집합(交集合; 共通集合)을 각각 색집합과 공집합의 측면에서 바라본 것들이다. ‘색즉시공색불이공의 의미를 반복하여 강조한 것이며, ‘공즉시색은 공불이색의 의미를 반복하여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서 색이면서 공이 아닌 것과 공이면서 색이 아닌 것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색이면서 공이 아니라는 것은 사물은 연기법에 의해 계속 변해 가는데도 불구하고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공이면서 색이 아닌 것은 사물에 실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변해가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논리는 모순되는 논리들이다.

 

이와 같은 색과 공의 상관성은 인간의 정신적 측면인 수상행식4온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인간의 오욕칠정(五慾七情)은 모두가 실체가 없으나 우리는 오욕칠정의 주인공으로 매일을 살고 있는 것이다.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영문)

Shariputra, all dharmas are marked with emptiness, they do not appear or disappear, are not tainted or pure, do not increase or decrease.

 

(한글번역)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은 생기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불어나지도 줄지도 않는 것이다.

 

(해설)

 

공한 성격을 가지고 존재하는 세상의 만물은 연기법에 의해 다만 계속하여 변해나갈 뿐 실체가 없으므로 그것들을 생멸, 구정, 증감 등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다르마‘(達磨; dharma)를 의미하는 제법은 개별적인 존재들을 존재하게 하는 원리와 방식을 뜻하기도 한다. 만물의 존재방식인 공의 원리는 절대불변의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주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영문)

Therefore, in emptiness no form, no feelings, perceptions, impulses, consciousness.

 

(한글번역)

이런 까닭에 공에는 색이 없으며 수, , , 식도 없다.

 

(해설)

 

여기에서 논리의 대반전이 일어난다. 만물이 공한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만물이 실체가 없지만 순간순간 변하는 색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논지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공()중에는 색이 없다 한다(空中無色). 공즉시색의 색과 공중무색의 색은 상이한 색이어야 한다. 앞뒤 간에 논리의 일관성을 위해서다.

 

인간의 인식과정을 설명하는 12(十二處)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다만 인간의 왜곡된 인식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라 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모든 존재가 그들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방식대로 존재하고, 또 그렇게 보여 진다. 12처를 구성하는 6(인식의 주체)6(인식의 대상), 더 나아가 18계의 6식 마저도 실체가 없고 주관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유식론(唯識論)에서는 우주의 모든 존재는 인식 주체의 마음(인식작용)이 투영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했다. 즉 인식 대상은 인식작용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주관적인 인식을 통해 왜곡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따라서 공중무색(空中無色)이란 공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사물에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왜곡되게 판단하는 색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관적인 인식의 세계에서는 공의 원리에 의해 나타나는 객관적이고 여실한 색은 사라지고, 왜곡된 형태의 색만 나타나는데 그러한 색은 없다는 뜻이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왜곡된 수, , , 식 역시 없는 것이다. 만물이 공한 가운데 나의 몸과 마음이 실체가 있는 것처럼 색, , , , 식을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과 불행이 싹트는 것이다.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영문)

No eyes, no ears, no nose, no tongue, no body, no mind,

No color, no sound, no smell, no taste, no touch, no object of mind, No realm of eyes and so forth until no realm of mind consciousness.

 

(한글번역)

, , , , , 의도 없으며 색, , , , , 법도 없다. 안의 세계도 없으며, 내지 의식의 세계까지 없다.

 

(해설)

 

인간의 인식은 인식의 감각기관이 인식의 대상을 만나서 느끼고, 상상하고, 충동심이 일어난 결과를 최종적으로 종합 판단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식의 감각기관은 눈, , , , , 마음 등으로 육근(六根)이라 하고, 인식의 대상은 빛, 소리, 냄새, , 촉감, 법 등으로 육경(六境)이라 한다. 육근과 육경을 합한 12(十二處)에 인식작용과 판단을 하는 육식(六識)을 합하여 18(십팔계)라 한다.

 

십이처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모든 존재는 인간의 인식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며, 인간에 의해 의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12, 18계는 연기법에 의해 변화되는 것들로 실체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공한 가운데 12처와 18계는 모두 없는 것이다.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영문)

No ignorance and also no extinction of it, and so forth until no old age and death and also no extinction of them. No suffering, no origination, no stopping, no path, No cognition, also no attainment with nothing to attain.

 

(한글번역)

무명도 없으며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고, 내지 노사도 없으며 또한 노사가 다함도 없다. 고집멸도도 없다. 지혜도 없고 또한 얻음도 없다.

 

(해설)

 

여기서는 불교 교리의 근간이 되는 12연기(十二緣起)와 사성제(四聖諦)를 부정하고 있다. 12연기는 공관(空觀)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까닭에 무지와 무명(無明)이 원인이 되어 자아(自我)가 잘못 형성되고, 그렇게 허상으로 만들어진 자아가 늙고 죽음으로서 고통이 따른다는 곤경의 연쇄 고리를 말한다. 12연기의 출발점으로서 무명은 원래 없는 것인데 인간의 탐진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무명이 없으면 잘못된 내가 생겨나지 않고 노사의 고통도 없게 된다.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방법, 괴로움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수행하는 방법 등에 관한 가르침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집착과 욕망이 없어 무명이 없었다면 잘못 형성된 자아가 늙고 죽어가는 고통도 없을 것이므로 고집멸도 자체도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열반구경에 드는 깨달음이란 연기법에 따른 공의 이치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깨달음은 외부로부터 무엇을 새롭게 알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이치를 불현 듯 자각하는 일이다.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碍 無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多羅三三菩提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영문)

Because there is nothing to be attained, the Bodhisattva depends on Prajna Paramita and the mind is no hindrance, without any hindrance no fears exist. Far apart from every perverted view one dwells in Nirvana. In the three worlds, all Buddhas depend on Prajna Paramita and attain Anuttara samyak Sambodhi.

 

(한글번역)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파라밀다에 의지함으로써 마음에 장애가 없고, 장애가 없는 까닭에 공포가 없고, 전도된 꿈과 상상을 벗어나 필경에는 열반에 든다. 삼세제불은 반야파라밀다에 의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해설)

 

6파라밀(육파라밀)은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지향하는 보살(보리살타)의 수행항목을 열거한 것이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가 그것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항목은 반야파라밀이다. 반야파라밀은 모든 사물이나 이치를 밝게 꿰뚫어 보는 지혜를 수행하는 것이다. 분별과 집착을 끊어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수행이다.

 

이러한 수행에 지혜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는 것(無智 亦無得)은 지혜는 다만 스스로 깨달아야 함을 아는 일이며, 선입견과 분별을 가지고 상정(想定)하는 특정의 지혜는 없다는 의미이다. 깨달음에는 특정한 지식이나 교과서도 없고, 또 무엇으로부터 얻을 것도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반야파라밀 만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 반야파라밀 수행에 따라 아상을 없애고 나의 실체가 없음을 알게 되면 마음의 걸림과 공포와 뒤집히고 꿈같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삼세제불 역시 반야파라밀다 수행에 힘입어 오온개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파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영문)

Therefore, know that Prajna Paramita is the great transcendent mantra, is the great bright mantra, is the utmost mantra, is the supreme mantra, which is able to relieve all suffering and is true, not false.

 

(한글번역)

고로 알라. 반야파라밀다는 위대하고 신비로운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견줄 데 없는 주문이다. 능히 일체의 괴로움을 없애며 진실하고 헛되지 않다.

 

(해설)

주문(呪文; mantra)은 그것을 낭송함으로써 주술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글귀이다. 또한 지혜의 완성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반야파라밀다의 힘은 너무도 심오하고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반야파라밀다를 통한 지혜의 완성과 부처님의 경지는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로 주문(呪文; mantra)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한 주문은 중생이 외우고 낭송함으로서 반야 지혜를 얻겠다는 서원을 도울 수 있다.

 

반야파라밀다의 지혜는 진실하고 헛됨이 없어 그것을 통해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의 내용을 마지막에서 다시 반복한 것이다.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영문)

So proclaim the Prajna Paramita mantra, proclaim the mantra which says: gate, gate, paragate, prasamgate, bodhi svaha.

 

(한글번역)

고로 반야파라밀다의 주문을 다음과 같이 설하여 이른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해설)

 

반야파라밀다를 통한 깨달음의 신비함과 기쁨을 운율을 맞추어 노래처럼 표현한 것이 반야심경의 주문(mantra)이다. 주문은 신비성과 상징성을 유지하기 위해 원문을 번역하지 않는다. 구태여 번역하자면 가세, 가세, 건너가세, 건너가니 깨달음이 있네, ! 기쁘구나.‘라는 뜻이다.

 

5. 맺는 말

 

부족하기 짝이 없는 지식과 불심으로 팔만대장경의 내용이 응축되어 있다는 반야심경을 해설한다는 일은 처음부터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계기로 불교에 관한 글을 다시 읽어보고 생각하는 기회가 되어 불교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느낌이다.

 

불교가 어려운 이유는 불교의 내용이 오묘할뿐더러 나의 근기가 낮은 데 무엇보다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발심자를 안내하는 선각자들의 언어와 논리가 어려워 그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겠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의 해설은 개와 고양이가 한 듯하지만, 이를 기화로 현대 언어로 불경을 공부하는 스터디그룹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교의 고승들은 대개 평생을 다 바쳐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죽기까지 정진한다고 한다. 아무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여래장이 있으나, 아무나 부처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처럼 연기법에 의해 일체의 만물이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 아는 일,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 깨달음이라면, 그것이 어찌하여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다만 그 사실을 알고, 그 사실에 기초하여 매일을 살아가는 일이 지난한 일이다. 매일같이 끓어오르는 자아에 대한 편집과 오해로 당초의 깨달음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돈오(頓悟)는 쉬우나 점수(漸修)가 어렵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올바르게 갖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고, 그런 수련원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지를 여행하는 세계테마기행이라는 TV 프로를 볼 때가 있다. 그쪽 지방의 불교가 소개될 때마다 그들의 불교는 완전히 기복(祈福) 불교로 변질되었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의 기복 불교와 매우 유사하다. 모름지기 불교란 부처님이 깨달은 것을 벤치마킹하여 스스로 공부하고 깨달아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개요다. 일종의 마음 훈련이라고 할까, 철학공부라고 할까.... 불교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중생을 오도하는 현 불교승단의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부처님에게 백일기도를 하고 삼천배를 하면 빨리 승진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부부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가?

 

나는 호젓한 산기슭의 산사가 아니지만, 아침에 일찍 깨면 나는 왜 이렇게 살이 에이도록 외롭고 괴롭고 불안한가를 가만히 생각한다. 그리고는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유식사상(唯識思想)의 내용을 기억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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