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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법대서 한눈 판 덕분에 다국적 팀 지휘했죠"
05/30/20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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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정 변호사가 독립 사무실 개업 1주년을 맞아 의대를 포기하고 변호사가 된 얘기를 하고 있다.

캐런 정 변호사가 독립 사무실 개업 1주년을 맞아 의대를 포기하고 변호사가 된 얘기를 하고 있다. "18세에게 진로결정은 무리"라며 "기회를 많이 줘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대 가려다 병원실습서 '포기'
법대지원서 써주다 덜컥 '합격'
재학중 로펌인턴 대신 '비즈니스'
작은 로펌서 부동산 경력 쌓기도
"18세에게 진로결정은 잘못이죠"


10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취급하는 등 억센(?) 남자들이 좌지우지하는 건설업계에 기센(?) 변호사 캐런 정 변호사가 자신의 독립 사무실을 연 지 1주년을 맞았다. 세련되면서도 날까로운 모습으로 변호사가 천직으로만 보이는 정 변호사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어교사, 벤처 기업가 등 남다른 전력이 있었다고 전한다.

"발전소나 댐, 큰 다리, 도로 같은 것은 규모가 커서 웬만한 회사는 엄두도 못냅니다. 위험분산도 필요하고 보험도 들어야 하고 고민해야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정 변호사가 남북미대륙을 사업영역으로 갖고 있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법무팀장이었을 당시의 얘기를 잠시 들어봤다. 예를 들어 발전소를 지을 곳은 남미이고 금융은 홍콩에서, 합작선은 유럽·미국에서, 기술은 한국, 인력은 인도에서 끌어오는 방식으로 글로벌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하는 그야말로 종합 예술인 셈이다. 다국적 구성원을 아우르는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였다. 전임자가 하버드 법대 출신으로 머리와 네트워크만 믿고 일하다가 결국 만만치 않은 부담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만두고 '실제 경험'이 풍부한 정 변호사를 채용했던 에피소드도 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인데요. 다양한 건설업계 경험과 좋은 성격, 리더십이 다국적 구성원을 모아 일을 진척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법무팀장이라서 금융, 보험, 법제 등 프로젝트의 모든 분야에 걸쳐 관여해야 하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분야는 섭렵했다는 표현을 쓸 수 있을만큼 숙달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실력있는 변호사가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가 변호사가 된 것은 아주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원래 화학을 전공해 의대에 진학하려던 착한 학생이었는데 병원에 실습을 갔다가 꿈이 깨졌지요."

의대를 나왔어도 훌륭한 외과 전문의가 될 수 있었을 것같은데 당시 운명의 여신은 정 변호사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꿈꿨던 일이지만 앞으로 몇년이 아니고 평생을 감내하지 못할 것같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요즘도 후배를 만나면 조언을 아끼지 않습니다. 부모가 원하는 일이냐,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이냐 등 따져볼 게 많지요."

의대가는 길을 그만두고 짐을 쌌다. 그리고 당시로서는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영어 튜터가 됐다.

영어 튜터를 몇년 하다보니 학생들을 위해서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서 시험을 쳐보는 일이 생겼다. 시험을 보고 잘 알아야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법대 입학시험인 LSAT도 봤다. 그리고 입학 지원 절차를 파악하기 위해서 UCLA법대를 지원했다.

그런데 덜컥 붙었다. 알고보니 입학이 쉬운 곳도 아니어서 더 고민이 됐다고 회상한다. 남들은 합격을 못해서 노심초사하는 곳인데 자신은 그야말로 '얼떨결에' 입학이 가능해져서 또다른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충 이 정도 스토리면, 그 다음에는 죽기살기로 공부하는게 이제까지 흔히 볼 수 있는 성공 스토리다.

그런데 정 변호사는 달랐다.

큰 결심을 하고 입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별로 흥미로운 공부가 아니었던 이유 때문에 한 눈을 팔았다. 그러다가 2학년에 들어서 재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클래스 메이트와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법대를 졸업하고 로펌에 들어가기 위해서 로펌 인턴을 열심히 해야 할 상황인데도 정씨는 오히려 로펌 근처는 가지 않고 비즈니스에 열을 올렸다. 그래도 다행인 게 학교는 계속 다녔고 졸업도 하고 변호사 시험도 합격했다.

막상 변호사가 되고 보니 로펌 인턴 경력이 없어서 큰 로펌은 갈 수가 없었다. 대신 부동산 관련 로펌에 발을 디뎠다. 한번 해보고 시작하려던 일이 결국 건설업계의 경력이 됐다.

정 변호사는 이제 로펌 경험은 물론, 비즈니스 경험까지 갖춘 세련되고 경험 많은 변호사가 됐다. 의사가 되지 않은 것도 법대에 입학한 것도 후회는 없는 것같다.

"18세 학생에게 진로 결정을 하라고 하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이것저것 기회가 되면 다 해봐야지요. 그런 점에서 병원에 가서 봉사한 것도 좋았고 튜터로 입시를 경험해 본 것도 좋았고 삼성에서 억센 건설업계 종사자들과의 머리싸움도 제 인생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정 변호사는 버클리한인동창회(BKAA) 회장도 역임했다. 한인사회를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로 동창회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신의 로펌과는 별개로 사회활동도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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