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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박이섭 목사님
02/23/2020 18:45
조회  659   |  추천   5   |  스크랩   0
IP 97.xx.xx.194

그해 시카고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우리의 영혼도 많이 추웠다.

그당시 오랫동안 다니던 선교센터를 그만두고 

교회에 적응을 하려니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겠다 생각하고

같은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 적을 두게 되었는데

그 교회는 자리잡고 잘 사는 의사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픙족한 생활에 이미 길들은 분들이어서 

모이면 어디에 뭐가 싸다는 세상이야기가 주요 토픽이었고 

영적인 일은 관심 밖이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우리들이 출석하니 

귀찮은 대중기도등을 맡길수 있어서 아주 좋아라했던 것 같다. 

금방 중직도 맡게 되었고 

그해는 아무도 안 맡고 싶어하는 임원회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근데 마치 물 위에 뜬 기름 같다며 왜 우리에게 그 교회에 다니냐고 

이상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도 그때는 의사 가족이었지만 무언가 그들과 달랐던 모양. 

아무 교회나 다니면 안되는 줄을 그때는 전혀 모르던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힘들었던 것은 예배시간들이었다. 

목사님은 '도' 타령을 하셨다. 

예수님 이야기 대신 무슨 중 이야기, 절 이야기가 주요 설교 토픽이었다.

그리고 "중년이여 서글픔이여" 하는 시귀가 써있는 주보를 읽게 만들었다.

하고 많은 시편은 놔두고 왜 세상 시를 읽혔는지 지금도 이해 할수 없다.


절에 가서 도를 묻는 어떤 사람에게 

"가서 그릇을 씻어라" 했다는 어떤 스승 이야기를 하고 설교를 끝내던 날, 

나는 다음 주일에 그런 설교를 안 들을 수 있는 것 때문에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하게 되어 그 다음 주일 그 자리를 면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들고 외론 마음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친구 다니는 교회를 갔는데 

그때 목사님을 통하여 주신 말씀은 

"내가 너를 고아와 같이 내 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이었다. 

얼마나 위로가 되고 눈물이 났는지...


예배 후에 친구 집에 가서 괴로움을 호소했을 때 

친구는 그 교회를 당장 떠나라고 충고를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임원회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연말까지 어찌하든 참아 보려던 괴로움을 팽개치고 

다음 주일로 그만두게 되었다. 


목사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교회를 그만둬도 좋은데 

조용히만 떠나달라"고 요청하셨다. 

그분은 나중에 시인의 연애 감정이 너무 많아서 사고를 치셨던 것으로 알지만 

그 후 소식은 잘 모른다.

..................................................................


그 교회를 떠나 다음 주일에 찾아간 교회는 집에서 조금 더 떨어진 이웃교회 였다.

대번에 얼마나 마음이 좋았는지 몰랐다. 꼭 고향 집에 간 것 같았다.

그분들은 예수님 이야기, 신앙 이야기를 둘러 앉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처음 만난 박이섭 목사님의 인자하신 모습은

넓은 이마에 까무잡잡한 얼굴, 항상 웃는 모습...

지금도 목사님 생각하면 활짝 웃는 모습만 눈에 선하다. 


목사님은 성경 이야기를 예수님 처럼 아주 쉽게 이야기 해주셨다.

쉽게 말씀하시는 특별한 은사가 있으셨다.

교회는 화기애애했고 목사님은 우리를 참으로 좋아해 주셨다.


맥도날드에 가면 목사님은 자기 얇은 지갑을 털어서 사주시려고 하셨다.

그건 우리에게만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리하셨다.

우리 가족 전체 모두가 그 목사님을 좋아해서 

그때쯤 미국에 오신 우리 부모님은 세례도 받으실 뿐만 아니라

평생 있었던 목회자에 대한 불신을 다 버리게 되셨다.


목사님은 딸 둘, 아들 하나를 두셔서 모범적으로 잘 가르쳐 

모두 일류로 잘 교육 받고 효도하는 자녀들로 키우셨다.

세 자녀와 함께 한국으로 금의 환향하시며 자녀들의 크게 성공한 것을 보시며

지금 한국에서 은퇴하여 살고 계신다.


목사님에 대해 기억나는 것 중의 가장 재미난 것은 

우리 교회 아이들을 만날때마다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하시기를 

'너는 장차 대통령이 되어라,' '장차 장군이 되어라'

'지도자가 되어라' 하시며 축복을 많이 해 주신 것이다. 

"목사님 대통령이 너무 많아요!" 라고 우리는 웃었다.


그래서 일까

목사님의 축복을 받고 자란 그 당시 우리교회 아이들은 하나같이 공부 잘하고 잘 자랐고 

세상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지도자적 역할들을 하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되면 

'목사님이 그렇게 손얹어 기도해 주셔서 그런가봐' 하는 이야기를 하며 감사하였다.


특히 이중문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시기를 

순 한국 아이들보다도 혼혈아들은 미국에서 더 잘 나갈 수 있다면서 

대통령이 되라고 격려를 곱절로 해주셨다.

이중문화 가정의  여성도들은 목사님을 아버지 혹은 오빠같이 따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녀들을 신앙교육뿐 아니라 효도를 가르치도록 하셨다.

주일성수는 물론이지만 십일조를 교회에 하고

부모에게도 하도록 가르치라고 하셨다.


목사님은 우리부부 안 싸우고 사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셔서 

부흥회에 가면 예화감으로 쓰신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


한번은 세탁소를 하다가 지쳐서 목사님을 따라 

택사스로 부흥회  가실 때 따라 간적도 기억난다.


어린 우리 아이들을 주일학교에서 함께 키우던 날들

목사님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들... 

교회 식구들이 완전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느껴졌던 그때.

그 교회 20년 다니는 동안 누렸던 행복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기쁜날들이었음을 그리워한다


한도 없는 많이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야기가 길어져 이만 줄인다 

다만 박이섭 목사님과 남부 교회를 만난 뒤로 

추운 시카고가 따뜻해졌음을 

이제까지도 감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수 있다.

"목사님 만수무강 하세요, 사랑해요!"라고 전하고 싶다.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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