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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배반(끝)
05/03/202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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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97.xx.xx.252


"양숙이가 오라고 하네..."

엄마가 하늘에서 부른다고 하시던 아버지께서 

한달쯤 애쓰시다가 마침내 노환으로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고 

아파트를 청소하는 것이 급한 일이었다.

90세 되시던 추수감사절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동생과 나는 더 급한 일들을 대강 마친 후에 

이제부터 권사님이 혼자 사시게 될 그 아파트.. 

아버지께서 15년 사셨고 

권사님과 7개월 남짓 함께 사시던 노인 아파트에 카펫을 샴푸하고 

페인트 3 갤론을 사서 벽을 칠하기로 했다.

 

아파트가 적다고 그까짓 것쯤..하고 시작했으나 

이삼일 노가다 일은 둘이서 그리 쉽지 않았다.

샤워헤드와 전등갈기, 등등의 일은 재료를 구입하기만 하고 조카에게 부탁했다.

 

계속 청소를 하고보니 구닥다리 아파트가 환하고 완전 새 집이 되었다.

왜 아버지 살아 계실 때 진작 좀 해 드리지 못하고 

이제야 하나..하는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지금이라도 권사님을 위해서 해드리는 것을 

아주 좋아 하시리라 믿어졌다.

 

은행으로, 우체국으로, 권사님의 필요한 일도 해드리고

휴가 낸 일주일 동안 새벽마다 픽업하여 

허드슨 강변에 함께 뛰러 가기도 했다.

6, 7 개월 밖에 함께 살지 못하셨지만 잠간만에 정이 흠뻑 들어서

마음이 헛헛하신 권사님을 혼자 내버려 둘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그것으로 우리와의 관계는 끝이라고 하고 

시작한 관계였으니 

"유품만 정리하면 마지막이겠지..." 각오 하셨던

권사님은 우리에게 놀라셨던 모양이다. 

친구들에게 마구 자랑을 해 대신단다. "천사들인가봐~ " 라고.


말이 그렇지, 한번 시작된 인연이 

그렇게 칼로 무자르듯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 하나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데...이건 내 여동생 말.


권사님이 우리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 호강을 해드린 일은 

우리 자식들 모두가 다 합해서 해드린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는 깨달음.. 

진심으로 잘 해드리려고 애썼다는 것을 어찌 모를까?

이야기를 들어볼수록 우리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사님은 우리의 노동을 최고의 선물로 생각해서 

저녁도 사시고 연변사람들의 지압도 제공하시는 등,  몹시 고마워 하셨다.

어쩔줄 모르며 좋아하시니까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이 아주 기뻤다.

남을 기쁘게 해주면 반드시 내가 더 기쁜 것이니까.

하략,http://blog.koreadaily.com/insunrhee/495087  최고의 선물 전반부에서 (2011년 12월)

............................................

같은 동네 가까운데 사는 여동생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얼마나 오랫동안 그 분을 돌봐드렸는지 모른다.

일하지 않고 쉬는 날에는 모시고 여기저기 다니고 여행도 같이 가고...

돌봐드릴 여러가지 일이 쉴새없이 생기지만 

언제나 불평없이 열심히 해드렸다.


진실로 천사 칭호는 내 여동생 몫이다. 

남을 위해 풍성히 잘 쓰는 동생이니 

돈도 많이 썼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나야 일년에 한번 가서 점심식사 사드리고 

용돈 조금 드린 적이 한두번 있을 뿐.


동생은 그 분이 나중에 연세 때문에 직장을 잃어버렸을 때 

여기저기 주선하여 자기 집을 제공하여 

맛사지 일감도 잡아주는 등 6-7년 참 수고 많이 하였다. 

충분히..보다 더 흡족하게 돌봐드렸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분이 완전 자립하여 

동네 노인분들과 날마다 친하게 지내시느라 

동생에게서도 자주 오지 않게 되셨다.

나도 지난번에는 가서 만나 뵐 수도 없었다. 


워낙 바쁘게 재미나게 지내신다는 것.

열심으로 공부하여 영어로 시민권 시험도 패스하고 

자기 자녀들을 초청하셨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이만하면 사람사는 동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피 엔딩 아닐까?

........................................


아버지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미리 아신것처럼

7개월 채 못되는 시간동안 부지런히 서둘러 그 아주머니를 위해 

책임을 다 마치고 떠나셨다.

그렇게 되기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동생이 모시고 다닐 때는 일이 잘 안 풀려도 

아버지가 같이 다니면 일이 쉬워진다며 동생은 이상해 했다.

사탕으로 미리 삶아 놓셨다나, 미국 사람들이 "아, 당신 일이냐?" 하면서 

두말도 안하고 해 주더라는 것.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영주권이 나왔고 

물론 아파트까지 수속을 다 마쳤다. 

한국 전쟁용사 연금도 함께 타서 써 보기도 하시고 

그 아주머니의 소원은 최 단기간에 이루어진 대박이었다.


아마 아버지께서 꿍쳐 놓으셨던 현금도 다 가지셨을 것이다.

한국 재산이 마음대로 되었으면 

훨씬 더 많이 주시고 싶어하셨을 것 같다. 

그 많던 재산이 사기로 거의 다 없어지지 않았으면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ㅎㅎㅎ


마지막을 돌봐 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 욕심 사나운 사람들끼리 만났으면 

여러가지 복잡한 일에 얽힐 수도 있겠으나 

우리 가정은 아주 이상적으로 잘 끝이 났다는 것이 

생각할 수록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오랜만에 아버지 생각에 잠겨 며칠을 보내며 

그리워하면서 이글을 마친다.

아버지를 돌려 받으신 엄마도 이제는 안심하실 것이니.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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