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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insun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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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엄마
11/03/201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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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LA에 출타하여 친구들과 식당에서 떠들고 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늘  전화를 해드리므로 내가 할 때까지 기다리시고 직접은 거의 안하시는데 
전화를 친히 하시다니, 갑자기 걱정의 그림자가 목을 타고 기어 올라왔다.
옛날 외할머니처럼 구부정해진 가냘픈 몸매, 팔뚝 살갗 밑의 핏줄 터진 검은 멍들, 
그리고 가을 낙엽같이 스산한 엄마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엄마는 몸이 아프신 모양이었다. 
옆구리가 결리고 온 몸이 아프시다는데 이유인즉 

피가 갑자기 너무 묽어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늘 다니던 의사가 휴가 나간 중, 새 의사가 약 처방을 잘못하여 
몇 곱절되는 도수로 약을 얼마간 드시다가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참을 수가 없어지도록 몸이 불편하여 엊그제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는데 
오늘 의사가 결과를 가지고 직접 전화를 해서 
“ 당신의 몸 상태가 위중하니 당장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 입원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그래서 지금 엄마 병원에 있어요?”하고 여쭈었더니 
“아니”라고 하신다. 


나는 더 놀라서 “왜 의사 말을 안들었어요? 괜찮으세요?”라고 여쭈었더니 
의사한테 대답하기를 

“이제 살만치 살았는데 병원은 뭐 하러 가요? 난 안가요. ”라고 하셨단다. 
기가막힐 노릇이지만 엄마 다운 대답이셨다.

엄마는 평생 사시는 동안 죽음의 고비를 여러번 넘기셨었다. 
우리들이 아직 어릴 때 우리 아버지는 시골에서 방앗간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느날 엄마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뛰어와서 흉한 소식을 전했다. 
“당신의 남편이 피대줄에 감겨 넘어갔다”고… 


엄마는 그 소식을 듣자 너무너무 놀라서 땅 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셨다한다. 
도무지 일어날 기력이 다 빠져서 아주 한참을 못 일어났는데 
간신히 정신을 차려 달려가 보았더니 

불행중 다행히 아버지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하던 사람이 부주의 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고 그사람은 다리가 부러졌었다. 

놀라는 것이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모른다.

그래서 성경에서 "놀라지 말라, 두려워 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 걸까? 

아무튼 그때 놀란 후로 엄마는 그렇게 건강하던 몸에 병을 얻으셨다. 


갑상선 항진증.... 바세도우씨 병이라는 외국 냄새나는 병명으로 다가온 그 병은

한이 없이 피곤한 병이었다.

내 기억의 속의 엄마는 항상 앉아서 졸거나 

웃목에서 옆으로 돌아 누워 주무시는 모습이다. 
그래도 그 몸으로 하실 일은 다 하셨다. 
항상 졸면서 뜨개질을 해대셨고 우리 7 남매 모두에게 털실 내복을 겨울마다 입혀주셨다.

아버지께서는 얻기 어렵던 미국 약을 사서 꼬박 꼬박 엄마에게 한알씩 바치셨고 
엄마는 그 약을 아버지 눈 앞에서만 잡수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안 하시면 엄마는 약을 안 잡수셨다.

약이라면 진저리를 치고 싫어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십년을 지내셨는데 낫지는 않고 점점 나빠지셨다.

엄마가 53 세에 나의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 오셨다. 
공항에 마중 나가 보니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몇년 굶은 해골의 모습이었다.
그 병의 후유증으로 심장 판막까지 이상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오기 직전 서울대학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으나
치료를 해주지 않고 "포기하라" 했으니 

얼마나 힘든 상태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에 와서 외삼촌의 친구 의사가 지어준 방사선 치료약, 
꼭 한알을 잡숫고 그 오래 앓던 갑상선 병은 뚝 떼어 버리셨다. 
그렇게 간단히 치료되는 병을 왜 한국에서 못 고쳐 주었는지 지금도 이상하다.

그러므로 한 곳에서만 진찰을 받지 말고 제 이, 제 삼의 소견을 들어야 하는가 보다. 


얼마후 뉴욕의 큰 대학병원에서 심장 판막 수술도 하셨다. 
돼지 심장에서 판막을 띠어서 옮겨 붙이는 그런 수술을 15 년 전에 하셨는데

그때부터 점점 튼튼해 지셔 아버지와 농사를 지내며 지내 오셨다. 
미국에 와서 그 큰 병 두개를 떼어버리고 다시 건강하게 사시게 되니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병을 이겼던 가장 큰 비결은 엄마의 의지력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꼭 죽지 않고 살아서 막둥이 아들이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을 보고 싶어 하셨기 때문이다.
미국에 오신 것도 그 꿈 때문이었고 늦게 얻은 그 아들을 오매불망 사랑하셨다.


언젠가 공부하다가 지쳐서 "이제 더이상 못 하겠어요. 돈이나 벌어야 겠어요."하며 찾아온

막내 아들에게 엄마는 “이렇게 내가 죽지않고 기다리는데 어찌 네가 포기 할수 있느냐?”라고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간 동생은 마지막까지 힘을 낼수 있었다 한다. 


뉴욕 큰 대학에서 8-9 년만에 드디어 박사를 받던 날, 
엄마가 얼마나 흥분하시고 좋아하셨는지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가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다!" 백번도 더 말씀 하시던 엄마!


병도 나았고, 막내 아들 박사도 하고 엄마의 인생은 미국와서 활짝 피었다.
큰 아들은 한국에서 30 대에 차사고로,

둘째 아들은 병으로 40 대에 먼저 보낸 고통도 겪으셨지만 
믿음을 대신 얻으시고 그만하면 아주 행복하게 사신 것이었다. 

우리 엄마가 하지 않으시는 것 한가지는 보약을 안 잡숫는 것이다. 
남들은 몸에 좋다는게 있으면 인삼 녹용 뱀 지렁이 까마귀 몽땅 잡아 먹는다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고 삼가하셨다. 
그 약한 몸에 평생 한약 한번을 안 잡수셨다는 것은  나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 분이 지난번 내가 뉴저지에 갔을 때, 이사한 후 체중이 줄고 약해진 내 몸을 보해 주신다고

거금을 들여 한약을 맞춰 주셨다. 
무거운 것을 들고 와서 엄마를 생각하고 날마다 한달을 꼬박꼬박 먹은 후

"엄마 사랑 때문인지 한약 때문인지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말씀드리니 얼마나 좋아 하시던지!  
육십 가까운 딸의 고생을 애처러워 하시는 팔십 엄마 때문에 이 글을 쓰며 눈물이 난다.

이번 전화로 나는 엄마가 죽을 준비를 끝내고 계시다는 것이 확 깨달아졌다. 
그리고  엄마는 물론 아버지께서도 떠나실 날이 곧 닥치겠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60 도 못 살줄 알았다가 20 년을 더 살고 계시기 때문에 살만큼 다 사셨다는 엄마…..
만 81 세의 엄마와 86 세의 아버지, 노 부모님..


부지런히 밭농사를 해서 용돈을 만들어 쓰시는 자랑스런 나의 부모님! 
올해도 봄이 되면 밭농사를 다시 하실수 있으려나?

아, 부디 건강하게 병원 신세 지지 않고 
구구팔팔 이삼사...행복하시기를 이 불효녀는 간절히 빈다.(2008년 4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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