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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insun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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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소녀 내 친구 은희
01/28/2009 08:09
조회  1292   |  추천   2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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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월 말에 워싱톤 디씨를 방문 하려고 한다. 
아직도 소녀같은, 웃음기 가득한 친구도 보고, 그녀의 그림 전시회도 볼겸, 
희자도 만날 겸, 디씨 구경도 제대로 할겸, 
네 곱절 겸사로 기대가 벌써부터 잔뜩 부푼다.

은희와 나는 같은 초등학교와 같은 대학교를 다닌 고향 친구이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어쩌면 형제 만큼,아니 형제 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고 할수있다.
그래서 그녀와의 추억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으로 거슬려 올라갈수가 있다.

그녀의 집은 우리 동네 유일한 의원이었다. 
학교 가는 길목에 있는 그녀의 집에 어쩌다 놀러가면 아주 낯설은 냄새들이 났었다. 
첫째는 소독약 냄새가 났었다. 
청결이 그 집 제일의 신조였을 것이 틀림없었다.

당시로선 그림의 떡 같던 현대식 입식 구조의 그애의 집엔, 
최근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경성의대 출신 그애 아버지가 흰 가운을 입고 왔다갔다 하셨다.
(우리는 시골서 의원을 하니 돌팔이 의사가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었는데, 
경성 의대도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것을 최근에 아버지를 하나님나라로 떠나 보낸 은희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항상 기분 좋고 친절한 우리 아버지와 너무도 다른 분위기의, 엄하고 무서운 인상을 풍기셨다. 
친구의 엄마도 초등학교 선생님 출신이어서 
우리 시골에는 어울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나는 괜히 주눅이 들게 만드는 그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주 놀러가지도 않았다. 

내가 어려서 소독약 냄새보다 덜 민감히 느꼈지만, 부자집 냄새도 폴폴 났다. 
우리들은 싸구려 얼음 덩어리도 사치였던 때 
그당시 상상도 안되는 냉장고와 아이스크림 만드는 기계도 있을 정도로 문화 수준이 달랐으니까. 
우리 동네 전체에 중학교 밖에 없는 피아노까지 갖추었다면 더 할 말이 없을것이 아닌가?   

초등학교 교육배경 밖에 없으신 우리 엄마와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끼리 가깝게 지내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그집도 아이들이 7 남매나 되고 우리집도 7 남매로 많을새 
제일 큰언니가 우리 언니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다. 
그다음 오빠가 하나 있었고 나와 은희가 같은 나이가 되고, 
은희 동생들도 줄줄이 우리 동생들 하고 나이가 같았다.  
그래서 다 같은 초등학교 동문들로 부모들 보다 친할수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 은희가 우리 집에 와서 놀았던 기억 하나 생생한 것이 남아있다. 
그때 은희는 천역덕스럽게 
“깡통에 물을 붓고 밥을 할때 
또 물을 붓고 끓이고, 또 물을 붓고 끓이면서 밥을 하면 
밥알이 한도 없이 길게 커진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얘기가 안 믿어져 눈을 크게 떳더니 정색을 하고 이겨버리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하며 한번 나도 실험을 해 봐야지 했지만 아직까지 못해 보았다. 
은희가 보통 애들과는 많이 달랐던 것을 그 말을 가지고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그애가 조숙하여 다른 보통 애들과 다를뿐만 아니라 
얼마나 철학적인 이상한 아이였던가를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나는 밥을 꼬박꼬박 먹는 것이 너무 속된것 같아."하며 밥을 괜히 자주 굶었다.  
항상 배가 고파서 먹을것만 있으면 좌우를 돌아다 볼수 없을 가난한 때의 어린애로서 
나는 그애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해서 그애의 가족 모두가 다 키들이 크고 덕대가 좋았는데도 
은희만 키가 자라지 않고 마르고 비실비실했다. 
가끔 앓기까지 했는데 예의 밥 굶는 버르장머리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3 학년 때는 늑막염으로 많이 아팠던것 같다. 
몇달씩이나 학교를 빠졌다. 
시골 초등학교는 3반 밖에 없었는데 그애는 남녀 혼합반, 나는 여자반에 있었다. 
그애가 아픈 바람에 나는 6 학년때 문제없이 전교 어린이 회장도 해먹고 졸업할 때 1등도 다하고…

나는 인천으로 중학교를 갔는데 그애는 시골 중학교로 남겨졌다. 
언니 오빠가 있는 서울로 중학교 3학년 때야 비로소 전학하여 합세한것은 건강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중 들으니 내가 예쁜 교복을 입고 인천에서 내려가면 그렇게나 부러웠었다고 한다.
그애가 이화여고를 당당히 입학하고서부터 나를 이긴 값에 맘이 활짝 피었던것 같다.  

공부는 딴전이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공부 과목이 제일 적은 미술대학을 지원했는데 최광만 선생의 만류를 무시하고 
힘에 부치는 제일 좋은 학교를 배짱만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효녀의 심정을 갖고 학비가 싸다는 이유로 다른 것은 재지 않았다. 

은희가 자기도 같은 미술대학을 간다하며, 서울로 미술공부를 다녀야 한다고 우기며 강력히 권고해 이끌어 주었다. 
정말 은희가 그렇게 해주지 않았으면 결코 미술대학 근처도 못갔을 것이다. 
은희가 다니던 국제 미술학원을 등록하여 
마지막 몇달동안 인천에서 서울까지 밤기차를 타고 열심히 다닌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 덕을 본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이종민이다. 
내가 갖다 준 구성 그림을 모방하여 열심히 그린 덕에 합격할수 있었노라고 
지난번 한국에 갔을때 고맙단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나는 그런 일 조차 잊어 먹었었는데...결국 내덕이 아니라 은희 덕이었다.
서울과 지방의 실력이 미술 음악에 관한한 많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입학 시험을 치르고 집에 와 있을때 어느날 예감이 다른 전화가 왔다. 
서울에 남아 있던 은희였다. 
“얘! 인선아! 나랑 너랑 둘다 다 합격했어!” 
그 얼마나 신이 났던 일이었는지! 믿을 수 없이 좋아서 흥분했던 일이었다.
도저히 합격하리라고는 기대할수 없게 13대 1이란 높은 경쟁율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생활을 먼저 시작한 그 친구 때문에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심지어 촌닭 모양을 고쳐주려고 잔소리도 해대었다. 
그렇게 입을 오무리고 웃지 말라느니, 
그렇게 신발을 끌며 걷지 말라느니, 지가 언니나 된것처럼 굴었다.
괜한 구박이라고 느낀건 내가 볼땐 지도 별수없는 촌닭이었으니까...

둘 사이가 소원해 진 것은 같이 선교센터에 다니다가 그녀가 먼저 그만두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연락도 안하고 결혼도 먼저하고 미국에 먼저 들어왔다.
와서 사는 동안 내내 그 친구를 잊어버리고 살았었다. 
나도 이민 생활에 적응하며 아이들을 낳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으니까.. 
그녀와의 인연이 다 끝이 난듯 깡그리 잊어먹고 살았지만 우리의 인연의 줄은 더 질겼던 모양이다. 
다른 친구를 통해 연결이 다시 되어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사는 은희를 찾아갈수 있었다.
그게 벌써 25년전인가보다.

백인 의사와 결혼하여 예쁜 딸과 아들 하나씩을 두고 살고 있었다. 
그 집에 가보았더니 그림같이 아기자기하게 살고 있었다. 
어릴적 말괄량이 모습과 너무도 다른 그녀의 아주 생소한 모습에 아주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당시 군대 생활하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것에만 의존하여 알뜰한 살림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였다.
10년 만의 회포를 많은 이야기로 풀었다. 
사관학교 나온 신랑을 의대 공부를 시킨 이야기며, 
죽음에게 아주 가까이 갔었던, 인생의 허무함을 맛보았던 날들의 이야기며, 
선교센터의 비리 이야기며….
물론 좋아하던 남학생들 이야기며, 첫사랑 이야기까지... 

그후로는 자주 통화할 뿐 아니라 2-3년에 한번씩은 왕래하며 지나고 있다. 
이제와서 보니 이야기가 그렇게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히 생각하고 비슷히 말하고…
믿음의 배경까지 비슷하니 안 그럴수가 없다만, 
같은 고향, 같은 학교 출신이어서 더욱 그런 모양이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있는데 나보다 훨씬 생활에 지혜롭고 주관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로 그녀의 조언을 듣기를 좋아한다.

살림솜씨도 일류이면서 그때 벌써 그녀는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계속 그림을 그려서 미국인 화가들과 교통하며 
전시회도 계속하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의 전시회가 미국내 8번째 전시회면서 어쩌면 마지막 전시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꼭 가서 관람도 하고 축하도 해주고 싶다.

아 참, 하아프 연주도 들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지금쯤은 일류가 되었을 것이다. 
피아노, 하아프도 연주 할 줄 아는, 재주 많고 예술 혼이 가득한 내 친구 은희가 참 자랑스럽다.
소꼽친구에서 라이벌로, 언니로, 신앙의 동지로, 그리고 영원한 친구로 자라난 내 친구...
만년 소녀같은 미소 띈 그 얼굴이 눈에 삼삼하다. ( 2007년 )



      
어릴적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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