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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려한 외출/ 대학 졸업 30주년 동창회를 다녀와서
01/06/200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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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서림과 준비
 
다시 생각해보니 바쁜 5월에 만사 제쳐 놓고 한국에 다녀 온다는 것은 
나로서는 지나친 사치같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초여름에 과테말라로 선교여행을 가자던 어떤 교우의 제안을 
바쁘다는 핑게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이 속으로 좀 쩔리기도 하였다. 
두달 전 동창회신문에 써내지만 않았어도 
슬그머니 마음을 변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겠건만 
차마 광고하고 딴소리 할수는 없어서 눈 딱 감고 비행기표를 사버렸다.
 
틈틈이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설렌 마음을 가지고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하고 선물도 꾸리면서 피곤한줄을 몰랐다. 
이상하게 마음도 몸도 더 젊어지는 것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전시회를 한다고 그림을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너무 바쁘기도하고 ‘하긴 뭘해 그냥 가서 놀다나 오지.’ 
쉽게 사는 남편의 말이 큰 핑게가 되어서 차일 피일하고 있는데, 
마지막 순간에 순옥의 말처럼 몸만 가지고 가는 것보다 
졸작이라도 하나 들고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늦게사 깨달았다. 
 
급하게 되어 부랴사랴 집안을 둘러보니 25년 전에 그려둔 그림이 보였다. 
그날로 사진을 찍어 포스터 제작 전에 서울에 도착하게끔
오버나잇 메일로 부치는 등 야단을 쳤다.
 
나처럼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았다던 순옥이는 
캔버스를 부엌 바닥에 벌려놓고 
다 말라버린 물감을 뒤로 짜서 접시에 섞어 그렸다는데, 
온가족이 흥분했던 신나는 일이었다고 소감을 말해 주었다. 
처음부터 작정했더라면 나도 한 작품을 그렸을 것을 후회 했으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떠나는 날 아침 내 얼굴을 내 얼굴을 들려다보니 
싱싱한 그 옛날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깊은 골이 지기 시작한 초로의 얼굴로 옛 친구들을 만날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오이 맛사지 한번 할 시간도, 미장원 갈 시간도 없었다. 
미국 생활 29년 만에 세번째로 고국에 가는 데 
지난번으로부터 9년만의 화려한 외출은 그렇게 엉성하게 준비가 끝이 난 것이다. 
 
2)       오랜만의 만남들…
 
국제 수준의 인천 공항과 함께 그 동안 변한 것이 여럿 눈에 띄였다. 
채곡채곡 둘러 싸인 빌딩의 숲과 빌딩에 붙어있는 큰 영상화면들은 
대도시 시카고 근방에 사는 내가 오히려 촌사람같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파리의 지하도를 방불한 지하철과 덜 빵빵대는 차들, 
일률적이지 않은 옷차림과 화장을 한 여자들, 
독창성을 강조한 음식문화, 
깨끗한 시골 화장실과 휴지, 
국제 수준의 샤핑센터의 고급스런 물건의 풍성함 등, 
지난번 보다 훨씬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마침 월드컵 축구의 열기로  달아있는 덕분에 경기도 좋아졌다고 한다.
 
68학번 우리 동창회 같이 전시회 및 놀이 까지 계획된 좋은 동창회는 
선후배간에 아무도 갖지 못했다고 부러움을 샀다. 
우리는 이번에 평창동에서 한번, “
부산에서 내년 2월에  또 한번 전시회를 갖는다, 
여간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동창합동 전시회를 위하여 몇 사람의 헌신이 있었다. 
 
아이디어와 리더십을 발휘한 탁월한 회장 신경호씨와 
세계적으로 흩어져 사는 동창들에게 이집 저집 수도 없이 전화를 걸어서 
격려내지 협박까지 하며 애쓴 윤행이와 
포스터를 제작한 이재철씨, 
그리고 이름없이 도운 손길들에 박수를 보낸다.
 
포스터는 주소록,화집, 우편카드, 포스터까지 한번에 망라된 
좋은 작품 그 자체여서 볼수록 멋졌다. 
말 안듣는데 익숙한 우리들을 모아 힘을 합하게 만든 노고를 
아무리 치하해도 부족하다. 
34년전에 뽑아놓은 회장을 오래도 써 먹으니 재미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우여곡절끝에 평창동 그로리치 화랑에서 
5월24일 오후 6시에 모여 전시회 시작을 하는 순서를 가졌다. 
총 70명중 절반 정도 모였으니 참 큰 성과 이었다.
모두의 작품을 전시하고 보니 그럴듯한 전시회가 되었다. 
 
소풍나온 어린애들 같이 즐거워하는 우리들 모임에 
김태 교수님과 사모님이 같이 오셨고 
나중에 멋쟁이 임영방 교수님도 오셨다.
가족이 여러명 따라온 친구들도 여럿이 있어서 큰 잔치 기분이 났다. 
 
어떤 동창은 너무도 달라져 통성명을 하고도 한참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 옛날 그 얼굴에 세월이 살짝 심술을 부리고 지나간 흔적이 있었고 
“너는 옛날 그대로야” 라는 듣기 좋은 거짓말이 통할수 있었다. 
 
1학년때 안네의 일기 연극에서 안네 역을 맡았던 미순이의 
예의 방글 거리는  소녀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 상대역 미소년이었던 민정기씨는 얼마나 변했던지! 
혹 옛날 모습이 남아있을까 열심히 훔쳐보아도 
헐렁한 모습 밖에 안보여 아쉽기 짝이 없었다. 
 
대체로 장난꾸러기 남학생들은 하나같이 연륜이 묻은 성숙한 모습들로 변하여 있었다. 
연극이 끝나던날 밤새도록 제비처럼 춤을 잘추던 이재철씨는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었는데 얼굴은 팽팽했고, 
또 이정선씨는! 일학년 크리스마스 파티에 신경호씨 아파트에서 
대여섯쌍 모여 밤샘했을때 내 짝이었는데, 
그동안 가수로 데뷔하고 음악대학 교수로 있다나? 
그러나 그 준수했던 모습이 다 풀어져 완전히 아저씨가 된 모습….
자기 변한 것은 잊어버리고 남이 변한 것에만 놀래는 것은 더 우습고… 
 
아, 조금도 늙지 않고 그때보다 더 예뻐진 
경애의 사랑스런 모습과 부산 사투리, 
나중에 보니 예쁜 몸짓으로 노래도 잘하고 춤도 그렇게 잘출 수가 없었다. 
풍성히 차려놓은 상에 둘러앉아 전시회와 동창회를 인해 가진 즐거움을 
모두가 한마디씩 나누고, 애쓴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기념사진을 찍고는 근방에 있는 식당으로 몰려가 
다시 한 바탕 축배를 들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옛날같은 웃음이 연방 터져나왔다. 
 
식사가 끝난후 함께 몰려가 국민화가로 유명해진 임옥상씨 화실에 들어갔더니 
자기 알몸을 정면 사진으로 찍어 크게 붙여놓아 눈길을 주기가 괜히 부끄러웠다. 
새로 꾸민 화실은 아주 널찍하였는데 
잘나가는 화가의 화실답게 활기찬 분위기가 넘쳤다. 
그리고 어린 연인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이 또 한상 차려 있었다. 
 
언제 왔는지 아버지 신경호씨를 대신하여 두 아들이 
“아빠의 청춘”이란 노래를 목청 뽑아 합창을 하여 흥을 돋구어 주었다.   
자기보다 훨씬 잘나고 싱싱한 두 아들들을 보니 
아, 우리는 얼마나 나이가 들어 버렸는가 더 실감이 났다.
 
음식을 거반 먹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던 우리는 
이대로는 잠 잘수 없다고 근처의 노래방으로 몰려가서 한바탕 정열을 쏟아 내었다.  
일류가수 뺨치는 솜씨들이었는데 
그 정열들을 다 어떻게 들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세상 나서 처음 노래방에 들어간 나는 이방인 같기만 했지만 
옛날 알던 노래 서너곡을 불러 흥을 깨지 않기로하고…
밤 두시나 되어 근처의 올림피아 호텔에 남녀 따로 큰 방을 하나씩 잡고 잠을 잤다. 
새벽에 여행을 떠날 예정으로 서너 시간 눈을 억지로 붙이니 
꼭 옛날 수학 여행을 간 기분이었다. 
 
3)      하늘밭 화실에서의 하루
 
새벽에 서둘러 깨어 봉고차 두대로 나누어 타고 
거의 4시간을 걸려 강원도 인제군 진동리라는 곳으로 갔다. 
한해 후배인 최용건 화백의 하늘 밭 화실이 있고 
민박집이 있는 하늘과 가까운 아름다운 곳이었다. 
탄산수 샘물이 있고 시냇물이 흐르고 높은 산이 둘러 쌓여있는, 
공기 맑아 별이 쏟아져 내릴듯한 곳이었다. 
 
근처에는 송어 양어장이 있어 싱싱한 회를 실컷 먹을 수가 있었다. 
시골 첩첩 산중이지만 음식 수준이 깔끔하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점심을 먹고 한바탕 산보와 낮잠을 잔 후 
저녁에는 근처의 도시로 나가 막국수를 곱배기로 시켜먹었다, 
 
그리고 별이 총총 빛나기 시작한 달밤에 민박집에 돌아와 
뜰에 모닥불을 지펴놓고 둘러 앉았다. 
그동안 각자 살던 이야기들을 하고 또 하고, 듣고 또 듣고, 
시간이 한없이 늘어나면 좋을 밤이었다. 
 
미대 동창들은 외모의 화려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적었고 
생활 자체를 예술적으로 하려는 생각을 실천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시골에 화실을 짓고 닭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면서 
전원생활을 하는 것이 크게 유행인 것 같았다. 
부부가 함께 미술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화장을 전혀 안한 친구들이 여럿 있어서 참 의외였다. 
대학다닐때는 서로 콧대를 높이고 눈치 보느라  
친해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거품이 다 빠지고 
소박하고 인정스런 친구들로 변해있었다. 
 
얼마나 친절한 좋은 말들을 많이 해주고 즐겁게 해 주려는지, 
왜 이러한 따뜻한 마음을 나눌수 있는 친구들을 일찌기 알아보지 못하고 
친할 기회를 다 놓쳤을까, 어떻게 30년간 깡그리 잊어버리고 살았을까 아쉽기만 했다. 
 
걱정되는 것은 예술 창작이라 는 어려운 과제에 짓눌려 
술과 무절제한 생활로 건강을 잃기 시작한 듯한 남자 동창들이 몇이 있는 것이다. 
부디 이제부터는 몸을 아껴달라고 신신 당부 하려는데 
누나노릇 그만 하라고 핀잔을 주는 은희 때문에 그쳐버렸다. 
자기도 한술 더 뜨면서 나보고만 지나치다나? 
그렇게 서로 아껴주고 싶은 마음들이 넘쳤다.
 
다음날 실컷 놀고 늦게 가자고 하는 주장이 
주일날은 교회를 가야한다고 일찍 가자고 하는 주장에 져줘서 
새벽 바람을 몰고 일찍 서울로 돌아오고 말았다. 
 
 4)      예상치 못했던 일
 
주일 오후 예정에 없이 다시 그로리치 화랑에 들렀더니 화랑 주인인 미대 선배님이 계셨는데 부끄러운 내 작품을 아주 좋게 평가해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중에서 꼭 그림을 계속해야할 몇사람 중의 하나라고 까지 하시면서… 
 
아, 아마도 이 이야기를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날 임옥상 화실에서 바뀐 가방을 되찾으려다 
세번이나 허탕을 쳤기 때문에 
이모 가족들을 졸라 핑게낌에 전시회도 구경 시킬겸 함께 들른 것이었다. 
선배님은 우리 이모 식구들이 듣는데서 여러번 반복하여 
분에 넘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이었다. 
 
전공과는 하나도 상관 없는 일을 붙들고 여유시간이 조금도 없이 살아온 이민생활 근 30년, 
그림은 너무나 동떨어진 사치였고, 
생각하기도 싫은 부담이기도 했던가? 
하면 잘해야 된다는 압박감과 창작의 고통 때문에 
생활을 핑게로 안하는 것도 과히 나쁜 것은 아닌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 게을렀던 재능 낭비자로서 부끄럼을 느껴야한다. 
 
사실은 그동안 나이와 과로 때문에 팔 손목, 손가락 마디들이 아픔을 호소하였다, 
정말 이대로 언제까지 살것인가? 
 
힘든 법대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월급을 받기 시작한 효심많은 큰 딸은 
꼭 3년만 더 일하고 그만두라는 말을 백번도 더해주고 있다. 
차례로 대학원을 졸업할 나머지 세 아이들에게도 그건 기정 사실이 되어버렸는데 
과연 3년후 그만 둘것인가 무얼하고 살것인가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차마 아이들만 믿고 살순 없겠지. 
그러나 너무 많은 정력과 시간을 먹기 위해서만 팽개치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솟구치기 시작한 이즈음에 이런 격려를 듣는 것은 
참으로 뜻밖의 황송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몇 집 건너 임옥상 화실에 걸어가며 내 마음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다. 
이모는 그 임옥상씨 알몸 사진을 보고 놀래 기절할 뻔 하더니 
자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한대나, 이름을 받아쓰고 외웠다. 
나를 따라가서 참 재미있는 구경을 한셈이라나? 
 
그 선배님의 격려뿐만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미술반 친구들도 힘을 더해 주었다. 
“얘, 인선아 네 그림 너무 좋다 . 그 좋은 솜씨 썩혀서 어떡허니? 
이제부터라도 좀 해라.” 
미술대학에서 가르치는 매력이 넘치는 친구 풍미가 진심으로 나를 아까와 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가서 서울 사대 나온 고등학교 동창이 화가로 변신하여 
자랑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려주었다. 
자극 좀 받으라는 뜻이었는지 모르나 
이 모든 일들을 곰곰 생각할 수록 분명 한가지 강한 메시지가 
내게로 온것임을 부인할수 없다.
 
그렇다. 그동안의 수고의 세월을 지나 
이제는 그림만 그리며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새로 시작을 할 때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5)      다시 돌아오면서
 
떠나는 마지막 밤 인사동에 다시 모여 
사랑과 격려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던 친구들, 
선물을 주고 또 주려만 하고 헤어지기 섭섭해 하던 
그리운 친구들의 달콤한 말들이 빚이 되어 귀에 쟁쟁히 남아 있다.
 
너무 짧은 일정 때문에 보고 싶은 사람 다 못보고, 
하고 싶은 일 다 못하고, 
이야기할것 다 못하고 
인천 공항으로 떠나는 리무진 속에서 좋은 것은 오래 남겨두는 법이라고 
혼자 위로하면서 조금 눈물이 났다. 
 
그리고 잠시 화려한 외출에서 얻은 귀한 것들을 곱씹어 보며 한편 흐뭇했다. 
받은 격려들과 나의 결심을 단단히 묶으며 내 마음은 고무 되었다. 
 
시카고로 돌아온 후 나는 풍성해진 추억의 장을 뒤적이며 오랫동안 계속 즐거워하고 있다. 
이곳에도 격려자들이 잔뜩 기다린다. 
제대로 내 몫을 다하는 날이 오기를…
 
이번의 외출은 화려한 낭비가 아니라 꼭 필요한 내 삶의 이정표가 될줄로 믿는다. 
나에게 기쁜 젊은 날의 추억과 함께 끊임없는 자랑을 가져다 주는 S미대! 68학번 동창들! 
나도 언젠가 자랑의 빚을 갚는 기회를 가질수 있을까? (2002년 6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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