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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insun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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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동창회
12/27/2008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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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S 미대 68학번 다 모여라!
      --30년 만의 동창회

까맣게 잊고 살았던 대학 동창 순옥이에게서 어제 전화가 왔다. 
시카고 근교에서 살고 있는 것을 20여년 동안 알고 있었으면서도 
연락이 끊어져 목소리도 모습도 가물가물 하였다. 
단번에 아무 부담 없이 말을 놓고, 
“얘! 그동안 잘 있었니 그래?” 할수 있는 동기 동창, 
글쎄 30년 만에 미대 동창이 모인다고 서울에 같이 가자는 전화였다. 
한 학년이 70명도 못되는 적은 단과 대학인데다가 취향이 비슷하므로 
더 마음이 통하고 결속력이 강할수 있는 미대 동창… 벌써 30년이 지났나?

“아니 5월 달이라니, 제일 바쁜 달인데 어떻게 하냐? 난 안되겠다” 하고 끊었지만 
얼마나 마음이 들떠 버리는 지, 
머리 속에 궁리를 마치기 전에 남편에게 말을 비쳤더니 
2-3일 간이라도 갔다 오라고 당장 허락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큰 비용을 들여 힘든 고국 나들이를 하는데 사흘이라니, 
"안가는 게 낫겠다"고 했더니 차츰 마음이 커져서 결국 열흘을 허락해 주었다. 

막둥이 아들에게 전화로 의논 했더니 
순순히 자기가 대신 일을 해줄테니 다녀오라고 한다.  여름방학이라고. 
와! 어린아이 같이 동동 뛰었다. 

그때부터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사는 동기동창 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 5분 마다 전화를 걸어 마침내 통화가 되었는데 의기가 단번에 투합이 되었다. 
은희와 나는 시골 초등학교 동창이요, 대학도 동기동창인 특별한 인연이다.
그림 공부하는 화실도 같이 다녔다. 

같이 입학 시험을 치러놓고 시골집에 나 혼자 내려와 있었는데 어느날 아침 결이었다. 
전화벨이 울리는데 “저건 분명히 서울에서 오는 전화다.” 하는 예감이 들어서 막 뛰어가서 받았다. 
과연 은희가 들뜬 목소리로 “얘 인선아! 너도합격, 나도 합격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뜨는 기쁨 아직도 느낄 것 같다. 
생전 처음으로 제일 마음 졸이고 기다렸던 소식, 
믿을수 없이 기뻤던 소식이었다. 
그 해 우리 과는 S 대에서도 제일 경쟁률이 높아 13대1이나 했었기 때문에 
낙방 안한 것이 너무도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자랑과 권위의 상징이던 네모난 뺏지를 달고 시골 촌놈이 서울거리를 활보 할 때의 기분을 누가 알아주랴만 
........4년은 엄벙덤벙 지나갔다. 

그림공부 보다는 딴데 한눈을 팔고 4년을 후딱보낸 것은 지금도 후회 막급이지만 
그건 내 책임만은 아니라고 대학과정을 탓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너무도 후한 점수로 우리를 타락케 한 교수님들의 책임이 절반 이상이니까.

미대는 우중충한 건물에 조금도 미대 같지 않던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건물마다 회색페인트로 칠한 답답무미한, 정말 미적 감각을 질식시킬 환경뿐이었다. 
쉴새없이 깔깔대던 젊은 우리들, 
제마다 폼잡던 예비 예술가들의 몸에서 넘쳐나는 젊음과 자신감 같은 것들 때문에 
그 나머지는 무시할 수 있어서 다행 이었고,봄철마다 흠뻑 향내내던 라일락 꽃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었다.

몇 년 전 파리에 가서 수도 없이 많은 미술관 박물관들을 딸과 함께 돌아보면서 
“아 우리들은 얼마나 불쌍한 미술학도 들이었던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엄청난 분량의 예술품들과 도처에 넘쳐나는 예술혼을 훔쳐 볼때에… 

우리들의 도서실에 비치된 책이라고는 한달이면 다 섭렵할수 있는 빈약한 장서와 알량한 자료들… 
비교하기에는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영원한 작품들을 바로 앞에 놓고 마음대로 이젤을 펴놓고 하루종일 복사해 그려보는 
그네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나도록 미술과는 영판 상관 없이 시시하게 살고 있는 나는 
국고를 축낸 주제에 입을 다물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동기들 중에 끈질기게 한길 가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대견한 마음으로 박수를 쳐 주어야지. 
아, 지금은 어떻게들 변해있을까? 

순옥이와의 통화후 한국에서 띄운 글들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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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학번 S 미대 동창!
아직도 연건동 시절을 기억하시는지요? 
삐꺽이는 목조계단 2층의 낙산 다방과 
별나라 화방을 설마 잊어버리시진 않았겠지요? 

680**으로 시작하는 그대의 학번을 지워버리지는 않았어도, 
학창을 떠난 지난 30여년 동안 스스로를 지탱해 온 일과 놀이, 
혼례 그리고 일가를 이루고, 
몇 번의 이삿짐을 꾸리면서 
더러는 서랍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 있던 빛 바랜 그 시절의 사진들…. 
가끔은 호젓한 시간에 꺼내보지는 않았는지요? 
찢어버리기도하고 도려내기도 하였겠지요. 

혹은 연줄 끊어져서 어딘가에 걸려 있을 추억의 파편, 
그 시절 끼고 다녔을 법한 두툼한 책 갈피에 납작하니 박제된 채 누군가의 편지, 
벌써 이승을 하직한 벗은 없는지… 

30여년 전의 공간을 향해서 그리움은 문으로 열립니다. 
평소에 근황을 알고 지내던 몇 몇 벗들의 귀밑머리 하얗게 세어가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 우리 기쁜 젊은 날 한 때를 추억하다가 
문득 모두의 안위가 궁금해지는 마음 넘쳐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벌써 지명을 넘어버린 안타까운 나이들이 더 늦기 전에….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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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근사한 詩문 같은 동창의 편지를 읽으며 
30년전 일들이 비행기타고 내려다보는 땅의 가물거림같이 느껴지고 
자꾸만 되돌아 가고 싶어진다. 
하나같이 재주가 비상한 우리들 중 아주 여럿은 중고등 미술교사, 대학교수가 되었으며, 
최근에 대학 학장이 된이도 있고 프랑스 박사학위를 딴 친구도 있고 
화가가 되어 전시회를 해마다 여는 친구들도 여럿이 있고, 
목사부인, 미국 변호사, 비지네스 종사자, 재벌의 며느리, 
큰 교회 피아노 반주자, 가정 주부, 동기끼리 결혼한 커플도 있다고 한다. 

생각나는대로 이름을 써보니 스물 댓명의 이름이 나왔다. 
사람 기억 못 하기로 유명한 내게 이 많은 이름이 살아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번에 30주년 졸업기념으로 함께 전시회도하고 
친구들의 화실을 돌아보기도하고 어릴 때처럼 함께 놀아보려 한다니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다. 
흐뭇한 일정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5월이면 얼마 안 남았으니 가슴 두근대며 기다려보고 
내 젊은 날의 기쁨을 되살려 보기로 한다, 
이제 그때의 나보다 더 커버린 네명의 자녀들에게 조금 멋 적기는 하지만 …
내 생에 큰 의미를 가져다 주었던 S 미대! S 대학교! 
아직도 감사하고 늘 자랑스럽다.(2002년 3월 미주 동창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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