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unrhee
소정(insunrhee)
Arizona 블로거

Blog Open 07.08.2008

전체     888477
오늘방문     115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56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2015 Koreadaily Best Blog
2014 Koreadaily Best Blog
2013 Koreadaily Best Blog
2011 Koreadaily Best Blog

  달력
 
일본에서 만난 여장부들
08/24/2010 19:14
조회  2300   |  추천   3   |  스크랩   0
IP 184.xx.xx.59

 

 

그리 크지 않은 이층집을 사무실로 개조한 그 집에서 나는 두 명의 한국 여장부를 만났다.

이야기 할수록 놀랍고 흥미가 생기는 귀한 사람들.

한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후 42년 만에 만난 내 동창이다. 아마도 여고 동창 중에서 제일 큰 인물로 생각된다. 일본으로 유학 가서 근본이 훌륭한 일본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세 남매를 낳아 잘 길렀다고 한다. 장군의 아들이며 자기 일로 성공한 남편, 탁월한 자녀들...,

우리 세대에는 그것만 해도 여자로서 큰 성공인데 그녀는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해낸 장한 한국인이다.

그녀가 교육사업으로 아주 큰 성공을 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을 통해 이미 들은 바여서 내심 무척 궁금했었다.

 

일본 패키지 여행이 삼박 사일 밖에 안되어 하루를 더 일본에서 소일해야 하는 걱정을 들은

한 친구가 일부러 전화까지 해주면서 꼭 가보도록 연결해 줘서 전화를 했더니 선선히 하룻밤 와서 지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남편도 동행인데? 했더니 손님용 방이 따로 있으니 아무 걱정 말라고 오라는 것이었다.

 

동경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출구도 사방팔방 몇곱절 많고, 사람도 얼마나 밀물 흐르듯 흐르던지! 거기서 만난다는 것은 기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단숨에 만나 30분 더 간 동네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해변가 중상층이 사는 좋은 동네였다.

친구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 기다리는 동안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등박문 후손의 명패를 단 큰 집도 보았지만 그런 성이 많은 모양. 원수후손이라고 할수가 없나보다.

관광버스만 타고 다닐 때와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저녁에는 전통적인 가업을 몇 대째 이은 식당에서 새우 덴뿌라를 대접 받고 다음날 아침에는 해변까지 함께 걸어 나가서 산보하고...

 

하루 동안 가까이에서 사무실에서 일본어로 전화를 받는 낯선 장면을 보면서, 혹은 직접 그녀의 입으로 성공담을 들을 때 너무나 감동이 되는 점이 많았다.

S대학을 졸업하자 장학금을 받고 동경대학으로 유학하였는데 일년 코스 일본어를 육개월만에 끝내고 대학원을 진학하여 2년을 공부하였단다. 그때 자기 남편을 만났다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해군대장이었을 정도로 일류 가문이어서가 아니라 한국인을 무시하는 일본 문화때문에 양가의 반대가 극심하여 아기를 낳고도 오래..6년간을 기다렸다고.

 

그녀의 평생 사업의 기초가 된 가장 작은 시작은 대학 진학 하는 아이들 영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원봉사로 어떤 변호사의 통역을 한 것이란다. 아무래도 시댁의 후광을 입었을 것 같아서 물었더니 절대로 그렇지 않고, 잘나가는 남편이 반대하여 집에 앉히려 했다는 것.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불리한 한국 이름을 고집하여 쓰면서 사업을 했다는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사업은 규모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면

정부 기관들과 큰 회사들을 상대로 어학교육과 통역및 번역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 언어 교육, 범죄자 통역, 교도서 직원 영어 교육, 공무원 언어 교육 및 통역, 재벌기업 상대의 언어 교육과 통역 등등. 특별한 것은 한 클래스를 열 명 이하로, 거의 일대일 수준의 교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기발한 아이디어였고 철저한 교육효과를 가져와서 책임 있는 교육기관의 명성을 떨치게 되었던가 보다.

 

이웃의 일본 여자는 한시간 교습비 백불씩을 내면서 몇 년간 계속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한다. 미국 사람들에게 일어를 가르치는 자원 봉사 일을 보다 잘 하기 위해서 자기 돈을 내 가면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사람 외에는 개인적인 교습은 하지 않고 정부 상대의 일만 한단다.

 

선생님의 숫자는 140명, 담당하는 언어의 가지 수는 27개 국어, 삼십여개 국의 정부와 상대하는 일을 해 왔다고.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며 이 일을 하고 있으므로 점점 더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시시한 일은 아예 받지 않고 퉁겨가며 일하는 식으로 점점 쉬워지는 모양이었다.

경찰국 한군데서만 년 이십억엔 규모라고 하니 규모를 가히 상상할 수가 있는가!

우리를 맞은 집은 네델란드 대사의 아들 소유였으나 안면이 있던 그가 일본을 떠날 때 자기에게 사달라고 해서 제 2 사무실과 손님 접대용 집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자기 집까지는 오분 걸어서 간다고.

일본에서 제일 바쁘기로 유명한 신주꾸 거리에 빌딩 하나를 세내어 교육 장소로 쓴다고 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일을 하니 사람 다루는 일이 힘들지 않을까 했더니 자기가 쓰는 사람은 다른 업체로 옮기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이유인즉 남보다 일점 오배를 지불하기 때문이란다.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어찌 그런 엄청난 일을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을까... 너무나도 신통하고 자랑스러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 큰 일을 하다보니 거물급 사람들과의 교제도 많고, 국제적 큰일을 거들어 줄 일도 많아서 일본과 한국을 잇는 일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고.

일례로 한국에서는 짐승 사육에서 나오는 분뇨물 처리가 골치인데 일본에서는 그것을 파리 애벌레(일명 구데기)에게 먹여 살을 찌우고 그것은 말려서 양어장 양식을 만들고 나머지는 고급 비료로 쓰는 기술이 발달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지금 목하 연결 중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있던 그날에도 젊은 한국 남자 박사님들이 너댓 함께 지냈는데 그일을 위해서 와 있다고 한다.

너무나 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상당수가 극비 사항이란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세금과 인건비 등 정직히 계산하기 때문에 한없이 들어가 자기가 실제 버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하지만 자기의 신용이 큰 자산이라고 한다. 엄청난 세금을 내고 있고 정부 상대로 하다보니 너무나도 철두철미 하기 때문에 자기 이름은 정직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이제 네가 할 일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책으로 이야기들을 써내는 것이야”라고.

 

또 다른 사람의 거물급 여장부는

그녀보다 열 살쯤 더 많은 부인이었는데 일본사람 비슷이 생긴 재일교포 3세였다.

조총련 계통에서 큰 손인 사람이었다.  

북한과 일본에서 수백억엔 규모의 사업을 한다고.

이 사람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면 안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정신이 번쩍 날 민족에 대한 애국심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잠간사이 많이 하시는 것이었다.

 

그분 말씀에 이북 사람들은 남쪽 사람보다 더 깨끗하고 순수해서 도와줄 마음이 많이 난다고 한다.

남한 사람들은 돈이 조금 있다고 조잡하고 천박한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는 것.

실제로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남쪽 여자들이 많이 와서 주로 술집경영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한국 사람으로는 하기 어려운 사업을 하는 여장부들이라서 정치적인 배경을 뛰어 넘어 마침내 친해져서는 언니 동생처럼 아주 가까이 지내는 모양이었다.

 

남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면서 그동안 자기는 해빙기에 여러번 남한을 다녀올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절을 당하여 더 이상 못가노라고 섭섭해 한다.

자기는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끼리 결혼해야 한다고 굳게 믿어서

4대째 재일 교포이지만 한국 사람끼리만 통혼하는 전통을 굳게 지킨다고 한다.

 

더 많은 이야기들은 줄이기로 하고 언젠가 이북에 갈수 있게 되면 우리도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을 하였더니 선선히 그러라고 하신다. 언제 그런 날도 올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자주 일본에 들러 친하게 지내자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한가지 내 친구에게서 느낀점 내지 배운 점이라 할 것은 그녀의 축복을 나누는 정신인데

누구든지 부탁만 하면 자기 집에서 묵어가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게 느껴지는지!

일부러 베드룸 네 개 있는 집을 따로 사서 항상 남에게 베풀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그 집에 와서 자고 간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단다.

알음알음을 통하여 알게 되어 신세를 지고 간 사람들이 그렇게 많고 그들 중 훌륭한 인재들이 많다고.

어떻게 그런 훌륭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너무 신기해서 알아보니 기독교 감리교회를 통해 일찍이 사람 섬기는 태도를 익힌 가족이 배경이었다.

할아버지가 목사님이시고 엄마도 권사님이시란다. 어쩐지...

 

과연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이렇게 통이 크고 멋지게 살며 이렇게 화끈하게 베푸는구나..

하나님을 잘 믿는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축복의 샘이 되는 것은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언젠가 다시 찾아가 보고 싶은 참으로 자랑스런 친구를

가끔 생각만해도 마음이 많이 기쁘다.(2010년 8월)




 
이 블로그의 인기글

일본에서 만난 여장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