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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 얼마를 들고 미국에 들어왔나요?
04/13/2016 12:40
조회  6039   |  추천   45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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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나도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란 뜻인가보다.
우리 부부는 72년, 74년에 미국에 들어 왔는데 한사람에게 허락된 돈은 그 당시 200불이었다.
이것이 가장 적은 액수 인지 알았는데 69년도에 유학생으로 오셨다는 한 장로님은 
100불 밖에 허락되지 못하였단다.

그 후에 나라 사정이 좋아져서 90 년도에 온 사람들은 만불까지 가져 오면서도 
그걸 가지고 얼마나 견디며 어떻게 사냐고 고민하면서 들어왔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지금은? 제한이 없어져서 얼마든지 가지고 오고 
집도 차도 현금 일시불로 사는 사람도 많다니 
정말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수 없다.

요즈음 5인 가족 어떤 사람이 이민 정착금으로 10만불을 들고 오는데 
얼마나 버틸수 있냐고 하는 질문에 
1년이면 2-3만불정도 남고 다 까먹는다고 대답하는 글을 보았다. 
우선 여행부터 일단 하라고 충고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5인가족 10만불이 요즈음 최소 정착금이요, 먼저 놀고 보자 추세인가 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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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사십년전 옛날이라해도 그렇지, 100불, 200불이 무슨 말라빠진 이민 정착금이었을까?
내 나라 안에서도 고급식당 한끼 밥이면 다 없어질 돈을 들고 
아무 의지 가지가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들어와 삶을 꾸려 나가야 했던 그때! 
그러니 너무 재미있기도 하고 기가막히기도 한 이야기들이 많을 수 밖에.

남의 나라에 와서 구걸이라도 해서 연명하다 보면 살아갈 도리가 생긴다는 
엄청난 믿음으로 나라가 젊은이들을 내 몰았다!
아니다. 실은 하나같이 나가고 싶었지만 걸핏하면 안 내 보내줘서 
핑게만 있으면 그 나라를 떠날 기회를 찾기에 혈안들이었으니 가난한 나라 탓만도 아니다.

그리하여 군대식으로 무엇이든지 가능하도록 만들면서 사는, 
서바이벌 훈련을 우리 이민 일세들의 대부분이 자청하여 경험한 것이다.
그래도 그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홈레스가 되었다는 말은 좀처럼 들어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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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의 경우는 그랬다. 취업 증명서가 없으면 이민이 안되기도 했으니 
의사로 취업하여 들어 온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월급은 한달 후에 주는 것이고 당장 잠 잘곳과 세때 먹고 살아야 하였다.
200불로 한달을  살아야해서 룸메이트를 구했고 인도친구의 카레냄새를 자나깨나 맡아야 했었다.

실상은 돈을 더 가지고 가라고 해도 가져 올 돈이 없었다. 
그나마 꾸어서 가지고 들어 올 뿐만 아니라
비행기표도 외상으로 사서 마이너스 출발을 한 것이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이렇게 미국 본토인들보다 잘먹고 잘 살아 왔고 
아이들 넷이나 자립시키고 노년에 옛일을 기억하며 웃고 있다.

우리 외삼촌의 경우는 더 심한 이야기가 있다.
형이 이북으로 넘어갔던 빨갱이 가족, 요주의 인물로 주목을 받아 뇌물을 쓰고야 미국으로 나오게 되어
빚이란 빚은 다 얻어 쓰고 나왔기 때문이다. 
돈을 가지고 나오기는 커녕 너무나 어려운 시작이었다.

아마도 69년도에 들어 오셨을 것인데 
우리 집보다 몇배로 힘든 시작이어서 미국와서 의사 생활을 하였어도 
그 빚을 벗어나기 위해 십년 이십년 죽자고 고생했다고 한다.
그래도 나중에는 본토인들을 넘는 상류층으로 부족한 것 없이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으니 
미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


내 친구네는 여섯명 형제자매와 부모님 두분, 온 가족이 함께 들어오기를 330불을 가지고 74년초에 들어왔는데 
300불로 아파트를 구하고 
다음날로 잡(job)을 찾아 헤맨 이야기가 있다. 마침 재산을 다 날려 버려서  
더 이상 가지고 올 돈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 온가족 비행기 값을 다 외상으로 샀단다.
그래도 나중엔 형제들이 대학공부까지 다 하고 큰 일가들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100불만 허락된 그 유학생은? 어떻게 100불로 유학이 가능했을까? 물론 노오,
한 가족 가장인 그분은 옆집의 잔디깍는 기계를 빌려 용돈을 벌기 시작했었고
유학의 꿈은 금방 포기 되었다. 
하지만 점차 사업을 일구어 한때 피닉스 일대에서 유명한 상점을 운영하며 
아들 딸 최고 교육시키고 잘 살아 오셨다.


정식 이민이야 그래도 불체자나 유학생신분으로 온 사람들이 보면 
방석 깔아논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이민초기에 만났던 불체자 청년들... 그들이 갖고 다니던 자동차들은 다 기가막힌 사연들이 있었다.
한 청년 차는 마마차였는데 양쪽 문이 안 열려서 맨 뒤의 문으로 열고 기어서 드나 들었다. 
한 사람은 뒤로는 못가고 앞으로만 가는 차를 가졌고, 
한 친구는 개스가 꼭 5불어치 밖에 안들어가는 차, 
그리고 조금만 속도를 내면 앞의 후드가 홀딱 열리는 그런 똥차들을 몰았었다. 
그당시 간호사로 온 처녀들이 그 차들을 타라면 질색들을 하였다. ㅎㅎㅎ

이민교회 지하실에서 공동 기거 하면서 살던 그들...
그래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한국의 부모형제들에게 송금들을 하였다.

한사람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정착생활을 시작하여 시간이 얼마 지나면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처음 온 사람들 보다는 비빌 언덕이 있는 가족친척들은 덜 고생했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고
다들 용감하였다. 영어 영짜도 모르는 사람들이 배짱 하나만 가지고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삼년 안에 집을 장만했다!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 더 잘 살 수록, 돈을 많이 가지고 올수 있을 수록 
벌벌 떨고 겁내고, 5인 가족 10만불도 모자란다고 찡그리고 불평하니
우리 세대 사람들이 볼때 이해가 잘 안가는 것이다.

용감한 자들이여, 그대 이름은 가난한 자들! 
그런의미에서 가난한 것이 참 멋질 수도 있는게 아닌가?
고생을 한 사람들은 강인해질수 있어서 언제나 감사할 수가 있다. 
가난한 때나 부할 때나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은 보통 큰 재산이 아니다.

우리들의 옛날 이야기에 귀기울여 듣고  
지금 젊은이들은 용기를 찾았으면 참 좋겠다.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한국 이민의 정신을 이어갔으면 참 좋겠다.
한국 사람들은 이 세상 그 어디에 갔다 놔도 
잘 살아낼수 있는 민족임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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