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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회복이 필요한 이유 3가지
06/21/202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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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0:17-28 섬김의 회복

오늘 본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주제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 이것이 우리에게 불편한 주제인가 하면, 사람은 누구나 높아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혹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분이 있을 줄 압니다. 만일 그런 분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욕망을 이루지 못하는 처지를 합리화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회가 있다면 높아지기를 원하지 낮아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낮아짐을 요구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섬김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대표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 충만함에 대하여 말하면서 가장 크게 강조한 것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 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섬김은 삶의 모든 부분을 나타나는 원리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함으로 남편을 섬깁니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목숨 걸고 사랑하므로 섬겨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므로 섬겨야 하고 부모는 자녀에게 책임을 다해 줌으로 섬겨야 합니다. 사회생활에서는 아랫사람은 상사를 진실된 마음으로 섬겨야 하고 상사는 아랫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함으로 섬겨야 합니다(5:22-6:9).

그래서 기독교의 섬김은 도적이나 윤리적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와 관련이 있고, 예수님과 관계된 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러한 차원의 섬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날마다 섬김을 회복해야 합니다.

 

섬김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 3가지를 본문을 따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섬김은 그리스도로 인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증거입니다.

십자가로 인한 승리(17-19)

기독교가 말하는 승리는 십자가를 통한 승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놓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도 없고 기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17-19절은 예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번째로 반복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앞에 두 번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책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온 세상이 합의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라는 말씀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비극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인하여 승리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예수님 나라는 세상나라와 다르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세상 왕과 다르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고 오신 왕이 아닙니다. 힘으로 정복하려고 온 왕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승리하려 오신 왕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로 이루신 승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놓치면 우리는 세상적 기대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이 십자가를 잊고 살게 하는 겁니다. 마귀는 사실상 십자가로 그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건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세상에 일들을 동원하여 우리의 부패성을 자극하고 유혹하여 십자가를 잊고 살게 합니다. 그러면, 성도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승리는 십자가로 인한 승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코 세상의 방식으로 얻는 승리가 아닙니다.

 

둘째, 섬김은 우리의 영적상태를 점검하는 매우 중요한 지표입니다.

제자들의 무지(20-24)

오늘 본문은 두 내용입니다. 17-19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 것이고 20-28절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서 두 아들을 높은 자리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한 내용의 말씀입니다. 설교자입장에서 긴 본문을 설교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 두 본문을 함께 보는 것은 그래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영적무지와 그 원인이 십자가에 대한 이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영적으로 무지합니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 오는 영적인 무지를 보여줍니다. 20-24절을 보겠습니다(본문참조). 제자들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자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시는 자리에도 함께 했고 부활하신 빈무덤을 목격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께 자기 아들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이 살로메의 요구는 야고보와 요한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주의 우편에 그리고 좌편에 앉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실상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리입니다. 또한 그것은 제자들이 요구해서 얻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시는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면 구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일이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실 때 마다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16:21)에 죽음과 부활을 처음으로 가르치셨을 때에 베드로가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예수님을 막았습니다. (17:22-23)에도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자 제자들이 심히 근심했고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큰가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영적 무지한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즉 다시 말해서, 십자가를 모르면 죄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모든 일들이 자기를 위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심지어 예수를 따르는 일 조차도 결국 자기를 위한 일인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모르면 남을 섬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십자가를 모르면 신앙행위도 자기 높이기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우리를 높아지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는데 이 죄는 십자가로만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인간은 좋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죄는 인간의 정말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하여 흥미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것을 섬기는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즐거움을 스마트 폰을 보는 것보다 못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죄는 모두가 자기가 왕이 되어 살아 가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왕으로 살아가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옛날식과 현대식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연세가 있는 분들의 방식일 겁니다. 내가 가진 힘으로 남을 제압하여 자기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으면 그 힘을 가지고 유세를 부르고 남보다 높아지려고 합니다. 이게 옛날식입니다. 오늘 현대식은 개인주의 방식으로 자기가 왕 된 삶을 삽니다.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겁니다. 나도 당신 일에 간섭 안 하고 당신들도 내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이라는 겁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다 그 근본은 똑 같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는 겁니다. 누가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를 모르면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십자가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결국 자기 왕 노릇에만 열중하게 되는 겁니다.

 

셋째, 우리가 섬김을 회복해야 할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를 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섬기려 오신 예수님(25-28)

이제 오늘 본문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5-28입니다(본문 참조). 이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너희들은 달라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하면 25절에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세상에 권세를 잡은 자들은 그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소위 큰 자들은 그 힘을 휘둘러 사용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큰 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너희가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달라야 한다는 겁니다. 26절에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은 힘으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가 큰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3:16)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섬겨 주신 방법입니다.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오늘 본문28절에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고 말씀해 주십니다.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왕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분입니다. 그는 마땅히 섬김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섬기려 세상에 오신 겁니다. 섬기는 척하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심으로 섬기셨습니다.

(26:26-28)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시자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천국 잔치를 열어 주셨습니다. 잔치에는 음식이 차려집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로 우리를 먹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살이 찢기시고 피를 쏟으심으로 죄인인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십자가로 이루신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죄인인 우리를 섬기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쏟으심으로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의 삶이 섬김으로 가득차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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