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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될 일!!
06/14/20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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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0:1-16 포도원 품꾼 비유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본문 마지막20:16절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입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는일이 있습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는일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중성(경고이고 위로 기쁨의 말씀이다) / 에발산 그리심산 저주와 복 선포.

 

그런데,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는 일)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신앙과 그 보상에 대한 오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은혜가 그 중심입니다. 그런데, 신앙과 그 보상을 은혜가 아닌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잘 난 것이 있음)

이 잘못된 생각은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도 기독교 신앙의 풍성한 보상을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신앙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은혜의 하나님

포도원 품꾼 비유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포도원 품꾼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누구일까요? 포도원 주인입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주인이 하는 행동을 보면 좀 이상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실재로 그는 품꾼들의 불공정하다는 원망을 들었습니다.

주인이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일부터 이상합니다. 포도원 주인이 품군들을 이른 아침에 다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품삯을 주고 일을 시키려면 품꾼들을 모두 이른 아침에 채용해야 합니다. 미리 일꾼들을 알아보고 다 이른 아침에 들어야 합니다. 이득을 목적으로 하다면 그 정도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른 아침에, 제 삼시에, 제 육시에, 제 구시에 품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심지어 일이 끝나기 열한시에도 품꾼을 들어 보냅니다. 열한시는 마감 1시간 전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세상의 생각과 많이 다른 주인입니다. 그는 품꾼을 부르는 목적이 단지 일에 있지 않은 주인입니다.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데 목적이 있는 주인입니다. 우리 주인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일을 시켜서 무슨 이득을 남기시려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비유에도 보면, 품꾼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찾아서 불려 드립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9:12-13)을 볼까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자신이 오신 이유를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왜 죄인을 부르십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긍휼입니다. 죄인을 위해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시고 그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을 때 그 삶의 천국의 것으로 풍성해지는 겁니다.

 

먼저 온 자들의 원망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모르게 되면 신앙의 기쁨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오늘 비유에 보면 이른 아침에 온 자들이 주인을 원망했습니다(11-12).

왜냐하면, 그들이 볼 때에 주인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적 시각에서 볼 때 그렇게 보입니다. 주인이 일이 끝나고 나중 온 자부터 품삯을 주는데 열한시에 들어온 자에게 한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이른 아침에 들어온 자들은 한 시간 일한 자에게 한데나리온을 주었으니 이른 아침부터 일을 한 자신들에게 더 보상이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한데나리온을 주자 이른 아침에 온 자들이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만일 이 문제가 세상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러한 원망이 정당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천국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의 대한 이해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가? 이것이 그 요지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된 자라로서 나중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경고에 말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어떤 경고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은혜아래 살지 않으면 우리가 포도원에 먼저 들어온 자와 같이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마음에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왜 이렇게 된다고요? 은혜 아래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시는 또 하나의 비유가 있습니다. (15:11-32)에 보면 돌아온 탕자 비유가 있습니다.  비유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 자기 몫을 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주었더니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여 탕진했습니다. 그리고 굶주려 죽게 될 처지가 되자 아버지를 생각하고 돌아왔고 이에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기쁨으로 맞았습니다. 아버지가 송아지를 잡고 마을 잔치를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맏아들입니다. 그는 동생이 돌아온 것이 기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 불만을 퍼뜨립니다. 저는 아버지 옆에서 떠나지 않고 이토록 섬겼는데 저에게 해 준 것이 무엇입니까? 그런데, 저 재산 다 탕진하고 굶어 죽게 되니 돌아온 이 아들을 위해 이렇게 기뻐하십니까? 이건 불공정합니다.

큰 아들은 자신에게 있는 은혜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은혜를 기뻐하고 누리지를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허랑방탕한 아들을 맞아 주시는 아버지의 자애로움이 또한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자기가 잘 난 줄 아는 겁니다. 자기는 둘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닙니다. 물론 그가 아버지를 섬긴 것은 칭찬받을 일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매주 중요한 진리는 맏아들이나 둘째 아들이나 다 아버지의 은혜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둘 다 은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자신은 동생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에 마귀는 이것을 틈타 역사합니다. 네가 이런 대접받아야 되겠냐! 네가 지금까지 한 일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오늘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먼저 온 자들의 생각과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인 겁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바리새인처럼 되는 겁니다.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바리새인은 자기가 행한 것을 가지고 자신이 세리보다 나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리는 그저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누가 의롭다 여김을 받고 집에 내려 갔습니까? 세리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겁니까? 바리새인은 자신이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세리는 아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권

원망하는 품꾼들에게 주인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4절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고 하십니다. 15절에는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고 합니다.

은혜를 주시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은혜를 베푸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천국의 시민이 될 수 있는 근거이고 천국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결코 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거나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인인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의지이고 뜻이기 때문에 이 은혜를 우리가 얻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이 사실을 망각하면 안됩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마땅히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은혜의 약속을 아는 자가 복이 있는 자요. 은혜 아래 사는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하나님 나라의 상과 그 기쁨을 알고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은 하나님과의 거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마치 우리가 무슨 하나님께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는 줄 알면 안됩니다. 이런 자가 바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 자 되는 겁니다.

그러나 열 한시에 들어온 자처럼 자신이 받은 것은 온전히 은혜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겁니다. 열한 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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