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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으로 하는 용서
04/26/202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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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26 미주서부교회 주일예배 성경말씀 : 마태복음18장21절-35절 설교제목 : 중심으로 하는 용서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23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당치 아니하냐 하고 34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21-35, 용서 - 중심으로 하는 용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용서하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세상에서도 용서를 권합니다. 그러나 용서의 실천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이 사실상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참거나 무시하는 정도입니다. 이것을 용서했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겁니다. 죄는 인간을 용서할 능력이 없는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는 매우 영적인 겁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개입으로 성립되는 용서라는 겁니다. 용서는 결코 사람 대 사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용서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용서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것을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용서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형제가 나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면 되겠냐고 하면서 일곱 번 용서해 주면 되느냐고 합니다. 예수께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하고 권고이기도 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요,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용서는 단지 몇 번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새롭게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는 용서입니다.

 

용서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말씀

본문에 보면 21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질문합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질문은 용서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보여줍니다. 일단 사람들은 용서에 문제가 있으면 자신이 항상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자기는 옳은 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질문이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입니다. 자신이 형제에게 죄를 범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용서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는 인간은 용서를 자신이 우월한 자리에서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베드로의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이 질문은 용서를 해주고 안해주는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는 전제의 질문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용서를 자신이 우월한 입장에서 해 주는 권리인 줄 오해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거기에서 일곱 번까지 하면 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묻는 것은 베드로 입장에서는 대단한 겁니다. 왜냐하면 당시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해주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 일곱 번 용서는 그런 차원에서 굉장한 겁니다.

 

무제한 용서

그런데, 2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계산하면 490번입니다. 사실상 이것은 무제한의 용서를 말씀하는 겁니다.

그럼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제한 용서가 가능한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믿는 자라고 해서 무제한 참고 용서하는 것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겁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무제한 용서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용서를 말씀하는 겁니다. 용서의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용서는 몇 번을 참는가에 그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용서 자체를 아예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용서라는 것을 할 능력이 없는데 무슨 몇 번을 말합니까? 중요한 것은 용서가 가능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는 것은 결국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서 하는 용서를 말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란 마음이 새롭게 된 자라야 할 수 있는 겁니다. 즉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의 의무이고 책임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있어 용서는 내가 결정권을 가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자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용서입니다.

 

천국비유,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임금과 같으니…”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것을 비유를 통해 설명해 주십니다. 23-34절에는 그 유명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보다는 23절에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 해서 천국 비유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 천국 비유의 핵심은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라야 용납되는 곳이라는 겁니다.

비유를 보면, 천국은 그 종들을 결산하려 하던 임금과 같다고 합니다. 이 임금은 어떤 임금입니까?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을 탕감해 준 임금입니다. 탕감해 준 이유는 불쌍히 여겨입니다. 임금은 은혜를 베풀어 준 자비롭고 긍휼한 주인입니다. 그런데 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빚진 동관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은 종을 다시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임금이 이 종을 왜 다시 옥에 가두었습니까? 종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옥에 가두는 것으로 증명된 겁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종을 다시 옥에 가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이 임금과 같다는 겁니다. 천국은 자신이 어떤 죄에서 용서함을 받았는지를 모르는 자는 용납되지 않는 곳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죄의 삯은 사망

여러분, 결코 인간의 죄는 간단히 해결될 죄가 아닙니다. 일만 달란트는 당시 유대나라 전체가 로마에 내는 세금이 800달란트 정도였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갚는 것이 불가능한 빚을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로마서 6:23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으로만 그 죄 값을 치룰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망은 우리 육신의 죽음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그러니까, 지옥에서 영원히 그 죄값을 치러야 하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의 죄 값은 인생이 어려움이 겪는다고 해서 갚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옥살이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사형을 당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지옥에서 죄값을 영원히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죄 값을 예수님이 지불해 주신 겁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순종으로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다 이루신 겁니다. 천국은 바로 이러한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아는 자라야 용납되는 곳입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그래서 이제 예수님이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35절을 봅시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이 말씀은 경고이기도 하고 권고이기도 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용서하지 않으면 한 번 받은 구원을 취소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자는 천국과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에서 이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한다는 것은 진실된 용서를 말하는 것인데, 이 진실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 자의 형제 용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용서는 세상적인 미덕이나 도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왜 그리 빡빡해.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지.’ 이런 식의 용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으로 하는 용서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함을 알기에 하는 용서입니다. 내가 사망으로 죄 값을 치러야 하는데, 내가 지옥에서 그 죄 값을 영원히 치르면서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내 대신 값을 치르시게 하시고 내 대신 순종하게 하심으로 다 이루어 주셔서 내가 이 죄와 사망에서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도 그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자가 되어서 용서하는 겁니다. 이것이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 때문에 이제 내가 살 희망이 있고 그 긴 사망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빛에 거하기 때문에 그 긍휼과 사랑과 자비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용서받음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뻐서 그 용서하신 하나님의 성품의 자리에 자신도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는 겁니다.

 

성도가 받는 보상

우리 성도의 복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얻는 보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죄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인간의 인간 다움을 누리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사랑으로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인간 다운 모습이요 인간의 가치이고,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얻는 보상이고 복입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과연 우리에게 이것을 누리는 신자의 감격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여 누리는 감격이 있습니까? 이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 받은 그 은혜를 아는 자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가장 중요한 의무요 책임이며 동시에 복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의무를, 우리의 복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세상적 가치나 어떤 환경과 조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누리라고 주신 복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시켜 주신 인간의 고귀한 참된 가치들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난해도 우리가 아파도 세상이 이웃이 나를 속여도 그것 때문에 인간의 복됨을 포기하기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 중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렇게 기도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매일 기도할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자라야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은혜를 의지하여 또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용서를 경험한 자는 형제를 용서할 수 있고, 또 형제를 중심으로 용서하는 자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복입니다. 예수 안에서 받은 겁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으로 우리에게 용서에 대하여 알게 하셨습니다. 용서는 영적인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용서는 몇 번을 해 주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용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가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코 사람 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이 용서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는 존재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 우리의 의무이고 복이고 보상을 우리의 삶에서 누리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미주서부교회, 김인식 목사

Fullerton, California. www.seoboo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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