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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마17:14-20)
03/09/202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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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마17:14-20)


14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면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18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19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뢰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이 어떤 것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문제 중에 하나가 성경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가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 소망, 사랑 이런 것들은 모두가 하나님과 관련된 개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나서는 성립이 되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 소망, 사랑 이런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이도 얼마든지 통하는 단어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제가 믿음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믿음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 믿음을 점검하는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혼란의 상태가 된다.

먼저 우리는 믿음이 없으면 일어나는 혼란의 상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산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영광에 취해 그 곳에 초막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산 아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 위에 모습과 극명한 대조가 됩니다. 산 위에서는 예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산 아래서는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나머지 제자들과 서기관들과 무리들이 변론과 논쟁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에 직접적인 원인은 제자들이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이 일에 대하여 서기관들이 시비를 걸고 나온 것 같습니다.

 

이러한 중에 예수님과 세 제자가 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사람이 간질병 걸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주의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고 하면서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입니다.

여기에 믿음이 없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패역한 세대는 뒤틀린 세대라는 뜻입니다. , 이세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많은 기적과 사역을 보고도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왜곡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는 죄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간질병 걸린(귀신들린)아이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고 고통 당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일을 보고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기회 삼아 제자들을 공격하는 달려드는 서기관들이 있습니다. 또 비난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이 바로 이 죄의 지배아래 있는 세상의 현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것은 혼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와 우상을 섬기는 자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든지 아미면 우상을 믿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당연히 우상 숭배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우상 숭배는 절에 가서 불상 앞에 절하고 나무나 바위에 절하는 것만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무엇인가를 믿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면 다른 것을 믿는데 그것이 다 우상입니다.

(2:22-23)에 보면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가는 길은 오직 하나인데 우상숭배의 길입니다. 그 길이 정해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할 자를 반드시 구원하신다.

그러면, 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는 소망이 없는 겁니까? 아닙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사역을 멈추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일도 그 분의 길을 가십니다. 그것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하시고 즉시로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믿음이 없고 패역하니 내가 너희 중에 아무도 고쳐 주지 않겠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를 꾸짖으시지만 그 속에서 구원의 사역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구원할 자를 구원하십니다. 아무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 해도 그 가운데서 반드시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자들이 있습니다.

(6: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은 결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결코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하신 자들이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려 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혼돈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귀신들린 자였습니다. 그래서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자가 바로 우리였습니다. 또한 간질 병에 걸린 아들을 보고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자가 바로 우리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제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이 제자들을 비난하는 공격하는 서기관들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혼돈에 빠져 헤매던 자들이 저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아직도 이와 같이 죄 아래 혼돈속에 있어야 할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은 불가능이 없다

이제 오늘 설교의 두번째 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불가능이 없다는 겁니다.

제자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이러한 상황속에서 가장 당황하고 있는 것은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았습니다. (10:1)”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제자들은 이러한 일을 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간질병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겁니다. 제자들은 이유를 모르고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와서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신 대답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적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에 어떤 말씀처럼 들리지요? 꼭 믿음의 양을 말씀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질을 말하는 겁니다. 믿음의 질이라는 것은 그 믿음의 이해를 말합니다. 즉 제자들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지만 그 믿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조금 이해가 안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20절을 보면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하시고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로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 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믿음은 한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옮길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이 것은 믿음의 양에 대한 표현이 아니고 믿음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인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이 말씀은 믿음의 양을 지적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믿음의 이해와 적용의 문제를 말씀하는 겁니다. 우리가 알기 쉬운 표현이 있습니다. 믿음을 안 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믿음을 안 쓴 겁니다. 왜 간질병을 못 고쳤는가 하면 그들이 믿음을 쓰지 않은 겁니다.

 

그럼, 도대체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겁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저와 여러분이 내가 무엇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무엇을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고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에 믿음은 신념과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신념과 믿음을 혼돈합니다. 신념은 내가 믿는 믿음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통하여 내가 내린 판단을 의지하여 가지는 하나의 확신이 신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새로운 정보로 인하여 흔들리거나 바꿀 수 있는 겁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알게 되는 진리, 즉 신적계시를 기반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16:16)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베드로가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께서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자신의 신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한 겨자씨만큼만 있다고 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번 시험해 볼까요? 산에게 명해 볼까요? 그래서 산을 옮겨 볼까요? 그런데 해 보면 산은 고사하고 집 한 채도 못 옮깁니다. 옮겨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주장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15:1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구해도 안됩니다. 분명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고 하셨는데 왜 안됩니까?

그 앞에 말씀 때문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입니다. 기도 앞에 먼저 무엇이 있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 먼저입니다. 이 것이 먼저 있고 그 결과로 나오는 기도를 말하는 겁니다. 이것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산이 옮겨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순전히 100%로 내 소원이지 주님이 내 안에 말씀이 내 안에 있는 결과로 나오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명해도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됩니다. 태산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즉시로 옮겨집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다 이루어집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다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구하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성령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구하면 믿음을 더해 주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즉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 이루어집니다. 기도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이루어집니다.

또 예수님이 명령하시기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5:22)”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열매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우리의 삶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풍성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다 이루어집니다. 이게 믿음을 쓰는 겁니다.

왜 우리가 기도할 것이 없는가 하면. 이러한 정작 구해야 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쓰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럼, 성령이 열매가 필요없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성령의 열매 하나를 가지고도 밤이 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이것을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믿음이 적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한 겨자씨만큼만 있다면 산을 명하여 옮길 수 있습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믿음을 쓴다면 많은 산들이 옮겨질 겁니다.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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