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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자!
01/07/202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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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3:12-16 / 푯대를 향하여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경주자 바울

바울은 자신을 마치 경주자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달린다. 그러니, 우리 모두 달려 나가자!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은 계속 진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전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특성이고 기질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구원이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받은 구원이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가를 더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고 그 구원은 완전합니다. 그런데 이 완전하다는 것은 그 구원에 실패함이나 취소됨이 없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완전하지만 그러나 구원을 받으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은 자이기에 그렇기 때문에 달려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래서, 구원을 받은 자는 모두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좀 있을 수 있지만 모두 완성된 자가 아니라 그 날을 향해 날마다 나가는 자리에 그 과정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도덕적 완벽주의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신앙생활에 놓은 마귀의 덧이 도덕적 완벽주의 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한다고 강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구원은 우리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흠도 없도 점도 없는 자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만들어져 가야 하는 겁니다.

도적적 완벽주의가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앙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것을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면, 먼저

영적 무기력에 빠지게 됩니다.

도덕적 완벽주의는 신앙의 길을 막습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결벽증에 빠져 아무것도 안 하게 됩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일을 시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10개가 다 있어야 움직이겠다는 겁니다. 세상에 10개가 다 있는 인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되는가? 자포 자기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 핑계가 됩니다.

어떤 분은 담배 때문에 교회에 못 나온답니다. 몸에 때가 많아서 목욕탕에 못 가겠다는 겁니다. 병이 있어서 병원에 못 가겠다는 겁니다. 말이 됩니까?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에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은 더러우니 교회에 오지 말라는 겁니다. 참 웃기는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겁니다. 현재 자신이 부족함을 알고 이 자리에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끊임없이 달려나가기를 힘쓰는 겁니다. 이러한 것이 신앙이 정상적이고 성숙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하여는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도덕적 완벽주의에 빠지게 되면, 나타나는 게 무엇이냐 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과 정죄입니다. 전 이상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여 거의 도적적인 완벽을 요구한다는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자신도 그러지 못하면서,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은 비판하고 판단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가만히 말을 들어보면, 왜 저 사람은 완벽하지 못 한가로!! 하고 분개합니다. 그 사람이나, 분개하는 사람이나, 별 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데, 마치 자신은 안 그런 것처럼 그렇게 사람들을 모질게 판단합니다.

우리는 누굴 비방하고 판단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기도해 주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겁니다. 왜 그렇게 안 하는가? 왜 남을 판단하는 일을 즐기는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이 쉽습니다. 사랑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 줄 아는 게 판단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성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되는 자들이고 우리 모두는 갈 길이 먼 자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자리에 있지 않고 위로하고 함께 해 주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는 어떤 결함도 부족함도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그 완전하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완전하심으로 죄인들을 정죄하고 심판하신 것이 아니고 버려진 자와 같은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래서 바울이 하는 말이 이겁니다.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한 일, 그것에 나는 붙잡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붙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경주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행동이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신앙의 진전을 위해서는 과거에 잡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과거의 일, 자신이 이미 한 일에 사로 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과거의 일은 아무리 좋았다 해도 과거에 일입니다. 그것 붙잡고 살면 안됩니다.

제가 자짱면을 먹을 때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그 맛이 아니야!

당연하지요. 내가 그 때의 내가 아닙니다. 그 땐 배가 고팠습니다. 사실 지금 먹는 자짱면이 휠씬 나은 겁니다.

자짱면 집에 가서 옛날 먹은 자짱면 생각하면서 그 맛이 아니야! 하면서 불만하면 뭐가 유익합니까? 지금 눈 앞에 있는 자짱면 먹고 힘을 내서 일을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누가 신앙의 처음사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신혼생활과 같습니다. 뭐든지 좋습니다. 그런데 그 처음 사랑가지고 계속 비교하면 안됩니다. 처음사랑이 매여 있어서 다른 사랑에 방해가 됩니다. 처음사랑의 회복하라는 것은 그 처음의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그와 같은 사랑을 하나는 겁니다. 과거에 붙잡혀 있지 말고요!

신앙생활은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말씀을 어떻게 받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지 않고 늘 불만속에 있으면 안됩니다. 지금 주신 자리에서 달려 나가야 합니다.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 그대로 행할 것이라” ,는 겁니다.

 

푯대를 향하여

신앙의 진전에 핵심은 방향입니다.

13,14절을 읽어봅시다.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우리가 달려가는 일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방향입니다.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간다고 합니다. 푯대는 방향을 설정해 줍니다. 달려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 달려가는 것이 상이 되기 위해서는 방향이 옳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좋은 겁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행복은 열심이 사는 일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 내가 어떤 성공을 이루었는가에 이전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어디를 향해 가는 자인가로 묻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생긴 변화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어디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셔서 이렇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존재의 상태를 물으시는 겁니다. 네가 지금 어느 자리에 있느냐? 하는 겁니다. 지금 네가 있는 그 자리가 네가 있어야 될 자리가 맞는가? 물으시는 겁니다. 왜 물으십니까?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아담의 여자를 핑계 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물으십니다. 어디에 있느냐? 방향을 바로 설정하고 있느냐? 그렇게 계속 가도 되겠느냐? 그것이 네가 있을 곳이 맞나? 물으십니다. 이 말씀에 회개하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여러분은 세월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덕적 완벽주의에 빠져 한 걸음도 뛰지 않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과거에 붙잡혀 현재를 살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방향을 잃고 세월을 낭비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올 한 해 우리 모두가 푯대를 향하여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나가는 매일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 미주서부교회, 김인식 목사 Fullerton, California. www.seoboo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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