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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예수다.
07/12/20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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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1:12-17 예수가 답이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소란을 일으키십니다. 12절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성전은 바깥뜰에서 제물로 드리기 위한 소, , 비둘기 등을 팔고 살 수 있었습니다. 특히 비둘기는 가난한 자들을 양 대신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세를 위한 환전도 해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신앙의 종교화에서 벗어나라

예수께서 왜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셨을까요?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이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13절에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는 것은 단지 매매 행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일이 종교지도자들과 결탁되어 부패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전 뜰에서 제물로 바칠 짐승을 매매하는 것과 성전세를 환전해 준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하는 일에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신 것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의 형식화 종교화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 신앙이 아니고 종교의식만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나와서 열심으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성전 제사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즉 정말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된 삶, 하나님 백성다운 삶은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성전에서 제물을 열심히 바침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안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모습을 성전을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강도의 굴혈은 강도들의 거처입니다. 강도들이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거나 도둑질하여 숨겨 두고 또 숨어 지내는 장소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은 강도와 도적처럼 살면서 성전에 숨어서 우리는 거룩하다 우리는 안전하다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점검해야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종교화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온갖 종교 의식을 행하면서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신앙은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제물일까요? 

(51:17)”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원하시는 것은 그 예배자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있습니까? (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우리는 몸을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을 드리고 있습니까? 이것을 늘 점검해야 합니다.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라

왜 이것이 중요한가 하면, 예수님께 나아가면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성전정화에 말씀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심판을 위한 심판을 하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해 오신 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14절에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 오매 고쳐 주시니라 말씀합니다. 강도의 굴혈이 된 성전이 예수님으로 의하여 회복의 장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회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잊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으로 인한 회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회복이 필요합니다. 소경이 스스로 다시 볼 수 없고 저는 자가 온전하게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치유가 회복이 안됩니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아무리 똑바로 걷고 싶어도 똑바로 걸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불가능한 일을 해 주시려 온 분이 예수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되지만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고 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수를 믿어서 무엇이 다른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 믿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런 존재입니다. 사람은 예수 안 믿어도 얼마든지 형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아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소경을 보게 하시고 저는 자를 완전하게 하시는 분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회복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다 예수로부터 나오는 열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떠나면 성도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반대로 예수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가 되는 말씀인 겁니다.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삶입니다. 이러한 회복이 있어야 기쁨이 따라옵니다.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세상이 볼 때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슨 문제든 예수님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이 예수 안에 해답이 있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이런 우리를 이상하게 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저들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모른다고 깔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모든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언제나 모든 일을 예수 안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일의 실마리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정하는 것이 바리새인입니다. 15-16절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이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신 성전정화와 치유 그리고 아이들의 찬양은 예수님이 모든 일에 실체이며 해답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 종교 지도자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은 예수님이 모든 것에 답이라는 것을 거부합니다. 아니 우리의 이러한 증거에 대하여 분노합니다. 저항하고 핍박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치유와 회복이 있다는 것을 거부하십니까?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형식화되고 종교화 된 생명 없는 신앙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헌금하는데 삶의 변화와 회복은 없는 껍데기 신앙인 줄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잊지 않는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왕입니다. 예수님만 성전을 깨끗케 하십니다. 모든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예수로부터 나옵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삶 속에서 단지 이론이 아닌 진리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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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