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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가 진정한 왕이다
07/05/202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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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1:1-11 우리의 유일한 왕

본문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사건을 마가, 누가, 요한 모두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 일이 매우 인상적이고 중요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에 소극적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다른 모습을 보이십니다.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어 나귀를 구해 오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얹고 예수님이 그 위에 타셨습니다. 무리들은 겉옷을 길에 펴며 또 일부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께 열광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입성으로 온 성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이것은 왕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자신을 왕으로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어떤 왕이십니까?

 

예수님이 바로 그 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로 그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여기에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에게서 나실 메시야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삼하7: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코케 하리라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입니다. 여기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다윗의 후손을 말하는데 그것은 마태복음1:1장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서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2너희가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예수께서 그것을 아실 수 있을까요? 3절에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고 하십니다. 이것은 당시 왕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마태는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구약에 예언된 왕의 모습이라고 증거합니다. 4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타도다 하라 하였느니라고 증거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바로 그 왕이라는 것을 계속 증거하였습니다. ”(1: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1:23)”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베드로 사도도 (2:36)에 보면 그의 설교를 통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바울도(17:3)에는 데살로니가 전도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고 증거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약속의 왕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진실입니다. 다른 왕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왕입니다. 여러분,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 우리의 진정한 왕이라는 사실은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주신 바로 그 왕이라면 우리는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 분을 왕으로 인정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라면 우리는 그 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바로 그 왕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겸손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하십니다.

예루살렘 입성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만이 다루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부분입니다. “곧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2)” 다른 복음에는 나귀새끼만 나옵니다. 그리고 5절에시온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도 마태만 겸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겸손하신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의 겸손을 강조하는가 하면 이것이 예수님의 사역에 매우 중요한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5:19)”…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2:5-8)”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이처럼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세상에 예수님 같이 온유하고 겸손한 분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겸손(온유)와 권세는 조합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겸손(온유)와 권세를 함께 가질 수 없습니다. 온유하면 힘이 없습니다. 또한 힘이 있으면 온유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힘있고 돈 있고 권력 있는 자 중에 온유한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세상에 온유하고 겸손하며 권력 있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권력과 힘있는 자는 온유가 없고, 온유가 있는 자는 힘이 없습니다. 그게 세상입니다. 세상에 이 두 가지를 완전히 충족하는 왕은 없습니다. 정치에 의해서 미화되는 것뿐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진정으로 겸손한 왕입니다.

예수님이 겸손의 왕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겸손하심으로 세운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겸손이 통치 원리인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온유한 백성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입니다. 즉 왕입니다. 그 머리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그 몸은 이 온유와 겸손으로 움직여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온유하신 왕이라는 것이 거짓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그의 백성이라는 것이 거짓입니까?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겸손의 왕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그 왕의 백성이요, 한 몸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왕입니다. 그리고 그 왕은 겸손하신 왕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진리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만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 무리들, 예루살렘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그 누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먼저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대표적 제자인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을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혈육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가까이 그것도 오랫동안에 따라다녔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게 된 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리 예수님을 따라다닌 자라해도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룟유다입니다.

또 열광적인 무리들이 나옵니다. 무리들이 열광적으로 예수님께 환호를 보낸 자들입니다. 무리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십시오 8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요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절에는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고 합니다.

그들이 마치 예수님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열광하는 무리는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붙잡히자 금방 예수님을 조롱하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열광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소동을 일으키는 이상한 사람인 것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에 그 누구도 예수님이 우리의 참 왕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타락하여 모두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도 자력으로는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1:9-13)”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메시야를 갈망하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알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자신이 깨닫아 알게 된 자는 없습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만일 누군가 내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깨닫아 알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낸 예수입니다. 인간은 우상을 만드는 기술자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 중에 그 누구도 자기가 깨우쳐서 예수님을 알게 된 자는 없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는 이제 남을 함부로 비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 자리에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면 그것을 정말 안다면 우리는 결코 남보다 자신이 나은 자라고 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코 교만할 수 없고 우월감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신앙 문제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믿는다는 자들이 자신들이 무언가를 지켰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한 자들을 경멸하고 무시했습니까? 우리는 이 함정에 걸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겸손하기에 힘써야 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하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그 왕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어떤 왕으로 오셨는지도 들었습니다. 겸손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저와 여러분이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섬기고 따르는 삶이 가장 지혜롭고 복되다는 것을 아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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