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k677
그리스도인(insik677)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1.14.2016

전체     62675
오늘방문     50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불쌍히 여겨 주실 때에
06/28/2020 21:31
조회  226   |  추천   1   |  스크랩   0
IP 172.xx.xx.7



마태복음20:29-34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세상에 오셨습니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그리스도 인입니다.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려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어 섬기려 오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이유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는 동기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살펴볼 내용은 예수께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는 동기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도록 하셨습니까? 왜 예수께서 그렇게 해야만 하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거룩한 속성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부하실 수 없는 그 동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민망히(불쌍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예수께서 두 소경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소경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동기가 불쌍히 여기사입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 비유에서 임금이 그 종의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20:27)” 동기는 불쌍히 여겨입니다.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그 동기는 사랑하사 입니다.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기는 없습니다.

, 나 같은 죄인을 왜 살리셨나요? 도대체 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대신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불쌍히 여기사입니다. 다른 이유, 동기는 없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어떤 자를 불쌍히 여김을 받는가?

세상에 불쌍한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모두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가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까?

본문30-31절을 보겠습니다.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30)” 무리가 꾸짖어 가로되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31)”

이 두 소경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함을 듣고 소리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무리가 시끄럽다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예수께 간청합니까? 그들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알았나요? 첫째, 자신들을 이 어두움에 현실에서 고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들이 불쌍히 여심을 받아야 할 자들인 줄 알았습니다. 둘째, 지금이 바로 그 기회라는 것을 알았던 겁니다. 소경들은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예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 그들은 예수님을 약속의 메시야로 부르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필요한 자신들의 상태를 알았습니다.

누가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까?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자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소경들처럼 주께 부르짖지 않습니까? 자신의 불쌍한 상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경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비록 시력은 나쁘지만 소경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를 봅니까? 하나님을 봅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봅니까? 보지 못합니다. 인간은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소경으로 살아갑니다.

인간은 모두 불쌍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까? 자기 상태를 아는 자입니다. (요일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자신의 상태가 예수님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그는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다.

여기에 매우 은혜로운 서술이 있습니다. 3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33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해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가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이 대목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예수께서 소경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가시던 길에서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셨습니다. 예수를 좇은 무리들은 소경들을 무시하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 멈추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은혜를 구하는 자들 앞에 머물러 멈추십니다.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예수입니다. 우리는 언제 멈출까요?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야 가던 바쁜 길에서 멈출까요? 어떤 부류의 사람이 불러야 멈출까요? 부자입니다. 유력한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오직 은혜를 구하는 자의 소리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간청입니다. 우리는 주님은 이러한 자들을 소리에 머물러 서십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소경의 부르짖음은 기도의 중요한 부분을 가르쳐 줍니다. 기도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이 기도의 핵심입니다. 기도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을 구하는 겁니다. 자신의 처지와 상태를 알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마치 기침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가장 명백한 증상이 기도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열이 나고 그 증상이 나타나듯이 자기의 처지를 정말 알게 된 자에게 나오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회개합니다. 누가 불쌍히 여기심을 받습니까?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불쌍히 여기심의 결과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34)”

예수께서 이 두 소경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들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불쌍한 사람을 위해 실재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도 용기가 없어서 게을러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권능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으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첫째,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만나 주십니다. 저희 눈을 만지시니 예수님이 만져 주십니다. 이것은 인격적 만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보게 됩니다. 곧 보게 되어 즉시로 보게 되었습니다. 영적무지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진리를 보게 되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셋째, 따르게 됩니다. 예수를 좇으니라 예수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갈 길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그 존재가 달라지고, 그 인생이 달라지고 그 미래가 달라집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8-9)”

누구든지 그를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을 보는 자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본 자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삶이 변하는 겁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삶의 변화는 그 시작점이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불쌍히 여김을 받을 때입니다. 자 한 번 정리합시다. 누가 불쌍히 여김을 받습니까? 자신이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자라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자를 주님이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면,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만나주시고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면 보게 되고 보게 되면 인생이 변합니다.

자 다시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불쌍히 여김을 받으면 결과적으로 삶이 변합니다. 왜 변합니다.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았는데 안 변합니까? 어떻게 맞았는데 안 아픕니까? 예수님을 만난 것이 주먹으로 맞은 것보다 충격이 없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과 같은 겁니다. 하나님을 본 자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복음이 놀라운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이 변하게 한다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긍휼이 무한하신 아버지입니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부르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간구합시다. 주여! 불쌍히 여기 달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은혜를 구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불쌍히 여겨 달라 부르짖는 자들에게 만나 주시고 보게 해주시고 그 삶이 변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소경,어둠,빛,복음,예수
이 블로그의 인기글

불쌍히 여겨 주실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