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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05/03/20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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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3 미주서부교회 주일예배설교 성경본문 : 마태복음19장1절-12절 말씀제목 :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큰 무리가 좇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3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7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 찐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11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찌니라 12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 찌어다 미주서부교회, 김인식 목사 Fullerton, California. www.seoboochurch.org


마태복음 19:1-12, 너희 마음에 완악함을 인하여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의 이혼이 옳은가?’ 하는 질문에 예수께서 답하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지방에 이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공생애의 대부분을 지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을 하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사역으로 인하여 명성이 퍼졌고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큰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저희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계속해서 메시야의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일을 멈추지 않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시험(3)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시험하려 나아왔습니다.

3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 나아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예수께 대한 생각은 오로지 예수님을 넘어뜨리는 겁니다. 왜 이렇게 예수를 미워할까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일반 백성들 보다 더 예수님을 알아보고 반겨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자기들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게다가 많은 무리가 예수를 좇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들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이혼문제를 들고 나오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문제로 이혼을 들고 나왔습니다.

3절 중반절에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이 왜 하필 이혼 문제를 시험거리로 들고 나아왔을까요? 유대인들에게 이혼 문제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아내를 내어버리는 근거인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에서 수치되는 일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혼에 대해 엄격한 파는 간음한 이유 외에는 이혼 못한다는 것이고, 자유적인 파는 광범위하게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도 이혼 사유가 된다는 식입니다. 분봉왕 헤롯의 이혼 문제로 그 논쟁이 더 심해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이혼을 반대하고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한 일의 부당함을 지적한 일로 결국 처형을 당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혼 문제를 질문하여 예수님도 이러한 일에 걸리도록 하려는 의도인 겁니다.

이것이 타락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세상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자신들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의 사역을 보여주시지만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과는 맞지 않는 일들을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낮아지는 것을 가르치시고 겸손과 온유를 가르치시고 용서를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라도 기회만 오면 넘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4-6)

예수님의 말씀은 명확하고 단호합니다.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은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문제를 창조의 원리로 말씀하십니다. 4절에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하시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모든 문제에 답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왜 세상이 혼란스러운가? 그것은 답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혼의 문제에 왜 혼동이 있는가? 그 답이 하나님께 있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결혼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5절에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 말씀은 창세기 2:22-25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25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결혼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인데 이것을 모르느냐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은 한 몸이 되는 겁니다. 한 몸이란 육체적인 것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인격적으로 하나가 된 겁니다.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관계가 된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됨에 참여하는 겁니다. 이것이 결혼입니다.

6,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그래서 인간의 생각으로 이 관계를 깰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내를 버리고 배후자를 버립니다.

죄로 인하여 파괴된 관계

어떻게 이 아름다운 관계에 깨어지는 겁니까? 죄로 인하여 관계가 깨졌습니다. 죄로 인하여 아름다운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시키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어그러뜨렸습니다.

이런 일이 왜 생길 수밖에 없는가 하면, 죄가 인간을 자기중심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각자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에 자기와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맞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가 되는 척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자기에게 이득이 될 때입니다.

그래서 결혼의 풍성한 복을 인간들이 누리지를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법적으로 이혼은 안 했지만 사실상 이혼한 것 같이 살고 있습니다. 한 몸이 됨으로 즐거움과 그 풍성한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저 마지 못해 삽니다.

가장 아름다운 관계인 결혼마저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해 모두 자기가 주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위해서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하는 겁니다. 또 이혼을 하지 못하더라도 실재로는 이혼한 것과 마찬가지 마음으로 삽니다.

그리고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어 그 풍성함을 함께 누리고 함께 행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죄가 이것을 파괴한 겁니다.

이것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습니까?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이 관계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참된 결혼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시면 회복됩니다. 사람이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주인이 될 때에 회복되고 치유됩니다.

 

모세의 이혼증서로 반문하다(7-9)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반문합니다. ‘그러면 모세는 왜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보내라고 명했습니까?’ 하고 반문합니다(7).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4:1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바리새인들이 이 모세의 율법을 오해한 겁니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보내라는 것은 이혼을 어렵게 하려는 조치입니다. 당시 이혼이라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일방적으로 버리는 겁니다. 이것 저것 구실 삼아서 여자를 버렸습니다.

모세는 남자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이유가 분명한 것이 아니면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유대인이 아내를 버리는 방법으로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라는 것은 이혼을 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고, 그들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그런 규정을 정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마음의 완악함

이 마음의 완악함이 문제입니다. 그 마음이 완악함이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 중 하나가 이혼입니다. 인간의 모든 혼란스러움과 죄가 마음의 완악함에서 나옵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비방, 무자비, 이런 악한 것들이 마음의 완악함에서 나옵니다.

인간의 마음은 완악합니다. 마음의 완악함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마음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가 주인 행세하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완악한 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욕망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마음의 완악입니다.

어떻게 자기 욕정, 욕망에 사로잡혀 아내를 버리고 배후자를 배신할 수 있는가 하면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이 완악함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이 완악함이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완악함을 벗어 버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제자들의 반응(10-12)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러면 차리리 장가를 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장가를 가지 않는 것은 타고난 자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장가 들지 않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죄를 짓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도록 타고난 자가 아니면 욕정의 문제 때문에 죄를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찌니라.” 타고난 자라야 장가 들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12절에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찌어다.” 그래서 타고난 자라야 되지 아무나 장가들지 않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고 마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완악함에 문제인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인간의 완악함이 해결되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신 삶을 살자!

기독교 신앙은 마음의 완악함을 벗어는 겁니다. 마음의 완악함이 무엇이라고요?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라면 날마다 이 싸움을 해야 합니다. 나를 나의 주인 삼지 않고 예수님을 주인 삼는 겁니다.

예수를 믿어도 기쁘지 않고, 예수를 믿어도 한 몸 이루는 참된 연합이 없고, 예수 믿어도 나와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신앙의 감격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주인이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이 된 사람은 천국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어 신앙으로 인한 감격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마음에 항상 불만이 있고 원망이 있고 마음에 안 드는 것만 보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가장 복되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사는 아름답고 복된 삶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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