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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여자의 믿음, 예수님만 나의 주인이십니다.
01/27/20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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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5:21-28 가나안 여자의 믿음

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오늘 본문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한 이방 여인의 믿음에 대하여 예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믿음의 적은 자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 여자가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믿음이 이러한 칭찬을 받는 것은 이 여자의 믿음이 믿음의 본질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께 찾아 나옴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방인의 지역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를 벗어나 이교도들의 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여자는 예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소리 질렀습니다.

우리는 이 여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마가복음에는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가나안 여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한 딸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딸에게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다고 합니다. 여자는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여자는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고 예수님을 불렸습니다. 이 호칭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죄인의 구주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여자는 딸의 문제로 예수께 나왔습니다.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합니다. 딸의 문제는 이 여인에게 참으로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자이지만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생에는 괴로운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다 삶의 문제들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그에게 삶의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 여인도 딸의 문제로 큰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모든 일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도 이 고난이 왜 자신에게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나안 여인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았다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예수께서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자 예수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많은 사람이 문제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가지고 모두가 그리스도를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방여자가 예수님을 찾아온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았습니다. 같은 가나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유대인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제자들은 또 나를 박대하지 않을까? 이런 것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이 연인은 아주 단순하게 예수께 나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가나안 여자에게 딸의 문제는 큰 문제이고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여인은 믿음의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을 더욱 찾게 만드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 겪는 고난으로 인하여 더욱 그녀의 믿음이 드러나는 일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증거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는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시고 거절하심

본문에서 매우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여자의 간청에 침묵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친절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에도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다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 연인에 간청에 바로 응답하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23절에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24절에는 나는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고 냉정한 말씀을 하십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예수께서 가나안 여인의 요청에 침묵하시고 또한 그 요청을 거절하셨습니다. 그럼 왜 예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침묵과 거절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 예수님의 침묵과 거절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주의를 뛰어넘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유대인이 신앙관과 대조를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적 사고에 갇혀 있습니다. 그 유대적 사고가 제자들에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청했습니까?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 합니다. “그 여자가이방여자가 성가시게 하니 쫓아 내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는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고 냉정한 말씀을 하십니다.

, 그런데 보십시오. 이러한 예수님의 침묵과 거절의 냉정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십시오. 여자는 더욱 예수께 나왔습니다. 25절에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합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침묵에도 거절에도 유대주의 벽에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께 나왔습니다. 여자는 예수께 와서예수께 절하고예수님께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역사속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침묵하실 때가 있고 예수님이 거절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있는 침묵이고 거절이며 그것은 결국 유익이 되고 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무례한 분도 아니시고 무정한 분도 아닙니다. 이 침묵은 이 가나안 여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큰 유익을 주시기 위한 침묵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우리는 본문에서 한 이방여인을 통하여 믿음의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우리의 고난마저 우리로 더욱 예수께 나가게 한다는 것을 봅니다.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의 침묵과 거절을 넘고 유대주의를 넘어 예수께 더욱 가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간청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또 하나의 큰 장애물을 가나안 여자 앞에 두십니다. 이 말씀은 정말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하실 수 있나! 하고 놀랄 말한 말씀입니다.

26절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고 가나안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비유이지만 그 뜻이 매우 원색적입니다. 자녀는 유대인이고 개는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유대인의 것이고 너희 이방인들의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각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유대주의적 사고를 말씀하는 겁니다.

이에 여자가 대답합니다. 27절에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은 여자의 믿음을 보여주며, 믿음의 본질을 보여주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자신이 비천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는 자신이 더럽고 비천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자격 없음을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모든 인간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모두 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선민이고 율법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모두가 죄인이고 하나님의 아들,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께 엎드려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유대인의 무리들은 예수께 환호하면서도 예수님이 메시야로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나 세례요한 같은 선지자로 생각하고 그런 식의 존경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무리 중에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 이방의 여자 하나가 예수께 나와 주 다윗의 자손이여하며 엎드렸습니다.

가나안 여인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참으로 놀라운 고백입니다. 주님, 맞습니다. 저는 개입니다. 저는 더럽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니, 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게 해 달라는 겁니다.

참 놀랐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겁니다. 이것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입니다. 주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나의 복입니다.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시편84:10)에 시인은 고백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족합니다. 이 믿음의 역사가 우리 안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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