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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주시는 은혜
12/03/201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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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4:13-21 빈 들에서 주시는 은혜, 오병이어의 이적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17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18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마태복음14:13-21 오 천명을 먹이심

본문은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이적을 행하신 내용입니다. 사실은 1만에서2만가량 되는 무리를 먹이신 이적입니다.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것만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알 수 있습니다.

 

공급하시는 메시야

왜 이렇게 먹이신 이적이 중요하게 기록되고 있는가 하면, 먹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먹어야 생명이 있고, 또 자라나고, 그 밖에 모든 활동을 활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먹기 위해서는 공급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안에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공급받지 않으면 얼마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우리에게 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가 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와 진리와 거룩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우리는 결국 멸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반드시 공급이 필요합니다.

오 천명을 먹이신 이적은 예수님이 우리를 먹이시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공급자이십니다. 우리가 굶주림에서 벗어나서 충족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충족함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살아나고 예수님을 만나야 자라나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 만이 유일한 우리의 공급자입니다.

 

빈 들에서 주시는 은혜

우리가 먼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볼 것은 장소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장소가 어디입니까? 빈들입니다. 13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예수께서 하필 빈 들에가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까? 중요합니다. 15절에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 들이요라고 해서 예수께서 제자들과 그리고 무리들과 빈 들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이적을 다른 장소가 아닌 빈 들에서 행하셨습니다. 왜 빈들일까요? 빈 들이라 말로 예수님이 먹이시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하시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던 일을 연상하게 합니다.

(8:3)”3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40년동안 광야에 두셨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약속에 땅에 들어가서 살 만한 실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실력에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자신들이 누구냐 하는 것을 바로 아는 겁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려고 광야에 두시고 그 광야생활에 먹도록 주신 주식이 만나였다는 겁니다. 너희는 어떤 자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만나를 주셨다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만나는 광야에서 주신 겁니다. 광야에서 만나의 은혜가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은 빈 들에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빈 들이기 때문에 받게 되는 은혜가 있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위 매점, 마켓이 있다면…)주위에 먹을 것이 풍부했다면 오병이어의 이적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로는 광야로 빈 들로 두 실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만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주님은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편23편에 다윗의 시에 보면 다윗이 고백하시기를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도 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에 목초지에서 또 다른 목초지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 이동의 길 가운데는 험한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험한 골짜기를 지나야 또 다른 신선한 목초지로 가게 되고 양들을 배부르게 먹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자 이신 예수께서는 우리를 때때로 험한 골짜기를 때때로 만나게 되고 또한 광야와 빈 들도 만나게 됩니다. 왜 이런 어려운 상황이 오는가 하면, 그것으로 통해서만 받게 되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빈들에 있으십니까? 은혜 받을 때입니다. 험한 골짜기를 지나고 있습니까? 곧 푸른 초장이 펼쳐 집니다. 빈 들이기에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있다고 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빈 들이나 광야나 골짜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예수님의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공급하시는 예수님을 그 빈 들에서 만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의 주시는 은혜를 어디에서 풍성하게 받는가? 그 장소가 빈 들이었습니다. 이제 볼 것은 그럼 예수께서 빈 들에서 어떻게 무리를 먹이셨는가! 이것을 보겠습니다.

그 방법은 제자들을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시는 겁니다.

제자들이 지금 이러한 들 빈에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 무리를 마을로 보내는 겁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16절에 보면 전혀 제자들이 상상도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시고 제자들을 통해 무리들을 먹게 하십니다.

그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일차적으로 예수님이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제자들이 그것을 받아서 50에서 100씩 모인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겁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가지신 것은 한 사람이 먹을 정도의 떡과 물고기인데 그런데, 그 나누어 주는 것이 계속되는 겁니다. 제자들이 받아서 나누어 주고, 또 받아서 나누어 주고 제자들이 한참을 반복했을 겁니다. 먹은 인원이 대력 만 명정도라고 해도 엄청난 양의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었을 겁니다. 참으로 놀라운 이적에 제자들이 참여하게 된 겁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공급하신 방법입니다. 제자들을 이 나누어 먹이는 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비스니스 맨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능률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그의 제자들이고 굶주린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은혜를 풍성히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목적입니다.

이 이적에 최대 수혜자는 제자들이라는 것은 분명할 겁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통하여 증폭되어서 나가는 은혜를 역사를 체험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복음의 사역에 참여할 때 그일로 인하여 가장 큰 은혜와 복을 받는 수혜자는 바로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빈 들에서 많은 무리 앞에 작은 도시락 하나 달랑 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이것은 정말 순종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받아서 나누어 주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나누어 주시는 분은 공급해 주시는 분은 예수님 이십니다. 제자들은 받아서 나누어 주면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순종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

여러분, 실마리가 무엇입니까? 엉클어진 실타래에 처음 머리가 실마리입니다. 그것을 찾으면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 수 있습니다. 순종은 실마리와 같습니다. 순종하면 엉클어진 실뭉치가 점점 술술 풀어지듯이 순종하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이런 경험은 쉽게 경험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하나? 힘도 없고, 하기도 싫고 막막한데, 하다 보면 힘이 나고 생기가 넘치는 일들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순종하십시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이것이 빈 들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순종이 실마리입니다. 이 순종이 실마리가 되어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이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될 겁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우리 예수님이 이 특별한 이적을 행하신 장소와 그리고 행하신 방법을 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것은 무엇을 가지고 이 특별한 이적을 행하셨는가 하는 겁니다.

예수께서 들 빈에 모인 무리를 먹이실 때에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을 사용하셨다는 겁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18)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으로 누구 코에 붙이겠느냐? 그런 것 필요 없다. ! 너희 주위에 돌이 있느냐? 내가 그것을 떡으로 만들어 주겠다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게 더 놀라게 할 만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사용하여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을 굳이 사용하셨을까요?

우리 주님은 우리에 가장 작은 것도 사용하시는 분이심을 배우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작고 연약함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에 요한복음에 보면 의미 있는 두 사람의 대조가 나옵니다. 요한복음3장에 한 인물이 나오고 바로 4장에 이와 대조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이 두 인물은 아주 비교되는 인물입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그는 유대사회에서 존경받는 자이고 매우 종교성이 있는 인물입니다. 당연히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로 믿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자는 이에 비하면 아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인이고 여자이고 결혼에 다섯번 실패하고 지금도 어떤 남자와 살고 있는 여자입니다.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도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여자입니다.

이 두 인물이 대조됨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니고데모와 같이 모든 것을 가진 자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개 취급을 받는 사마리아 여자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하나님에 나라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가, 얼마나 작은가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느냐 하는 겁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느냐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면서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정말 구제 불능이라는 겁니다. 늘 연약합니다. 늘 부족합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마음을 흔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말씀을 붙들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작은 소년의 적은 도시락인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2만명(?)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은 예수님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가 된다면 하나님의 능력에 손에 붙잡힌 자가 된다면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즐거워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연약함을 핑계로 숨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니 우리의 영원한 공급자 이시니, 오늘도 숨지 말고 포기 하시 말고 계속하여 전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주서부교회, 김인식 목사

Fullerton, California. www.seoboo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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